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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주의 눈으로 본 평양의 ‘천안함 파워게임’

“서울이 불바다가 되면 당신이라고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소?”

  • 황일도│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강석주의 눈으로 본 평양의 ‘천안함 파워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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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주의 눈으로 본 평양의 ‘천안함 파워게임’

김정일 국방위원장(가운데)이 조선인민군 제586부대(정찰총국) 지휘부를 시찰하고 있다. 김영철 총국장(앞줄 왼쪽)과 김영춘 인민무력부장(앞줄 오른쪽)이 수행하고 있다. 인민군 창건일인 4월25일 공개된 사진이다.

“‘그분’이 벌인 일이라면, 위원장에게 어떻게 보고했는지는 알 방법이 없습니다.”

그랬다. 알 방법이 없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공포스러운 부분이었다. 지금 위원장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는 사람이 이 넓은 평양 바닥에 거의 없다는 사실. 어둠 속에 손을 뻗어 길을 찾아 헤매는 기분. 쉽게 해결되지 않을 혼란이었다.

관자놀이를 쑤셔대던 편두통이 온 머리로 번지는 것 같았다. 그는 가만히 손을 들어 이마를 연신 눌러댔다.

전문관료로서는 정점에 올랐지만 강 부상을 권력자라고 말할 수는 없다. 김정일 위원장이나 다른 권력핵심 인사들과의 혈연관계도 전혀 확인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힘의 향방을 다툴 만한 인물은 아니라는 것. 북한 정치구조의 특성상 오히려 그러한 권력투쟁의 부침에 따라 딛고 선 자리가 흔들릴 수 있는 위치다.

그럼에도 이렇듯 오랜 기간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김 위원장의 대외전략 판단을 누구보다 빨리 간파하고 이를 정책화해왔기 때문이었다. 주변국 모두가 북한을 압박하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늘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어내는 게 그의 장기였다.



그러나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 전문가들조차 해결하지 못한 의문은 ‘이 시점에서 북한이 얻을 수 있는 외교적 이득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유화책이든 강경책이든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기획돼온 그간 북한의 대외전략 구사 패턴으로는 가늠하기 쉽지 않다는 것. 천안함 사건이 평양 내부에서 사전에 치밀하게 조율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한 전직 정보당국 고위관계자는 “강석주 라인 특유의 치밀함을 감안하면 이번과 같은 군사행동 계획을 사전에 알았다면 반대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상당수 전문가와 당국자들이 천안함 사건을 후계체제 구축이라는 최근의 ‘특수상황’과 연결 지어 해석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6월5일 ‘동아일보’는 “정부는 천안함 어뢰 공격이 김정은을 추종하는 군부 내 신진 엘리트와 원로 간부들 간의 권력투쟁 과정에서 빚어진 것이라는 잠정 판단을 내렸다”고 보도한 바 있다. 2000년대 초 김일성종합군사대학에서 김정은을 가르친 적이 있다는 김영철 정찰총국장 등이 오극렬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대표되는 군부 원로그룹과 갈등을 빚다가 충성심을 과시하는 차원에서 기획했다는 시각이다.

상당수 탈북관료와 정보당국자들이 “김영철은 오극렬에게 맞서려야 맞설 수가 없는 수준의 인물”이라며 이러한 구도의 개연성을 낮게 평가하지만, 후계체제 구축이라는 비정상적인 상황을 감안하면 이야기가 다를 수 있다. 권력이동 과정에서 후계자나 그 주변인물들이 선대의 핵심 권력자들을 ‘쳐내는’ 사례는 정치사에서 무수히 발견되기 때문. 천안함 사건과 관련한 북한의 의도와 내부정치를 이전과는 다른 관점에서 봐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장면 2 ‘위신에 관한 문제’

“나한테 상의도 없이 이런 일을 저지르면 어떡하자는 말입니까!”

화가 나야 했다. 최소한 화가 났다고 느끼게 만들어야 했다. 그러나 산전수전 다 겪은 노장들이다. 지금 자신이 내지르는 분노가 앞으로의 상황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제스처라는 것을 모를 이들이 아니다. 교교히 버티고 있는 저 침묵 속의 여유로움이 말해주는 바였다. 비록 상무조라는 껍데기를 쓰긴 하지만, 그의 역할은 그저 군복 입은 자들의 앞뒤 가리지 않는 행보를 뒷수습하는 것에 불과한 지가 벌써 수년째였다.

“그럼 이제 와서 뭘 어쩌라는 말이오? 정중히 사과라도 할까요?”

김영철의 이마 위에 새겨진 주름살이 꿈틀거렸다. 순간 그는 진짜 분노가 아랫배로부터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저 웃음을 얼마나 더 참아낼 수 있을까.

“강 부상도 잘 아시다시피, 강하게 맞받아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소. 공격을 가해오면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 각오를 해야 이길 수 있는 싸움이란 말입니다. 이건 위원장의 위신에 관한 문젭니다.”

‘위원장의 위신에 관한 문제.’ 모든 논의를 완벽하게 봉쇄하는 마법 같은 단어였다. 공화국의 전략 어디에도 그보다 우월한 가치란 있을 수 없다. 토를 다는 것이 곧 반역이 되는 이 말을 꺼낸 것은 분명 자신감의 발로였다. 후계자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위원장 본인의 승낙을 받고 저지른 일임을 은근히 내비치는 자신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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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일도│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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