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농촌 마을에 가면 이곳저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호 중 하나다. 1987년 등장한 이 구호는 협동농장 포전(圃田·구획을 나눠놓은 경작지)을 개인 텃밭처럼 정성을 다해 가꾸라는 뜻이다. 북한의 다른 정치구호들과 전혀 달리 이 구호는 나오자마자 주민들의 입에 수없이 오르내리는 ‘인기’ 구호가 됐다. 물론 그 이유는 당국의 의도와는 완전히 다르다.
가을이 되면 농장원들은 저마다 농장 밭에서 벼나 옥수수를 훔쳐가기에 바쁘다. 한밤중에 훔친 곡식을 배낭에 담아 메고 집에 들어와 아내에게 “농장포전은 나의 포전이라고 하지 않았어. 주인인 내가 좀 조절(도둑질)해 오지 않으면 남이 다 가져가잖아” 하면서 흐뭇한 웃음을 짓는 사람들을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심지어 군인들도 농장 밭을 털다 잡히면 “농장포전은 나의 포전이라고 하지 않았시오. 왜 그래요” 하며 능글맞은 표정을 짓기 일쑤다.
주인이 없어진 북한의 사회주의 협동농장, 그 현실을 해부해본다.
“농장포전은 나의 포전”
매년 5월10일~6월10일, 9월20일~10월10일에 북한 농촌은 사람들로 바글거린다. 당국은 이 시기에 각 도시와 군 소재지인 읍에서 노동력 있는 사람들을 차출해 어떻게든 농촌에 보내려고 한다. “숟가락 드는 사람은 다 농촌에 나가라”는 것이 노동당의 지시다. 북한에선 이 시기를 ‘농촌동원기간’이라고 부른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5월31일 일본 아사히신문은 북한 당국이 탈북자 가족을 색출하기 위해 가가호호 돌아다니며 호구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주민들에게 새로운 공민증(주민등록증)을 발급하기 위해 가구조사를 벌이면서 행방불명된 사람들도 함께 조사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런 세대별 가구조사도 5월10일부터는 중단됐다. 사람들이 모두 농촌에 가 있어 정확한 조사가 어렵기 때문이다.
농촌동원기간에는 곳곳에 단속초소가 설치돼 길 가는 사람들을 붙들고 왜 농촌에 내려가지 않았는지 따져 묻는다. 합당한 사유가 없으면 즉시 농촌에 실려 간다. 그렇기 때문에 농촌동원기간에는 도시가 한산해지게 마련이다.
북한에는 전국적으로 3000여 개의 협동농장이 있는 것으로 집계된다. 이 농장들에 속해 있는 농민은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30% 정도로 추산된다. 하지만 모내기철에는 농민들보다 훨씬 많은 도시 사람이 농촌으로 내려간다. 농장별로 적게는 수천, 많게는 수만 명씩 지원을 나간다.
대학생은 물론이요 중학교 3학년 이상은 모두 농촌으로 가 합숙하면서 일을 도와야 한다. 중3이면 만 13세 정도다. 농촌학교에선 10세만 돼도 ‘강냉이 영양단지 이식’에 동원된다.
영양단지는 고 김일성 주석이 창시했다는 주체농법의 일환이다. 영양물질이 많이 섞인 흙덩어리를 만든 뒤, 여기에 강냉이 씨앗을 심고 어느 정도 자라면 흙덩어리째 밭에 옮겨 심는 것이다. 빨리 고르게 튼튼한 모를 키우고 씨앗을 절약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손이 많이 가는 까닭에 효율성 측면에선 상당히 뒤떨어진 농법이다.
북한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우스갯소리로 영양단지를 ‘학생단지’로, 농민은 ‘지도농민’으로 부르고 있다. 영양단지를 밭에 옮겨 심는 일을 거의 다 학생들이 하고, 농민들은 그저 노력동원 나온 도시 사람들을 감독, 지도만 한다는 뜻에서다.
영양단지 이식은 대개 5월 중순이면 끝나지만 모내기는 6월10일을 전후로 마무리된다. 가을 추수는 9월20일경부터 시작된다. 먼저 강냉이를 수확하고 벼는 10월10일까지 수확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제 기일을 지킬 때가 많진 않다.
너나 할 것 없이 1년에 두 차례씩 농촌에 동원을 나가다보니 웬만한 북한 주민들은 다 농사 전문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