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호

대풍그룹 내부 문건에 나타난 대풍그룹 실체

대풍그룹인가, 허풍그룹인가 “북한이 박철수에게 속았다”

  • 송홍근│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10-07-02 14: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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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풍그룹 내부 문건에 나타난 대풍그룹 실체

    1월20일 평양에서 열린 대풍그룹 이사회

    조선대풍국제투자그룹이 북한 당국자들에게 브리핑할 때 사용한 대풍그룹 내부문건을 ‘신동아’가 단독입수했다. 이 문건에 나타난 대풍그룹의 실체는 미덥지 못하다. 문건을 검토한 외국계 컨설팅 회사 한국 대표 C씨는 자본주의를 모르는 북한 당국이 박철수란 사람한테 속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브리핑을 듣고 국가개발은행 설립을 결정했다면 국제금융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것이다. 한심한 일이다.”

    대풍그룹이 2009년 작성한 이 문건은 국가개발은행 설립을 촉구하는 내용으로 이뤄졌다. 문건은 국가개발은행을 조선국제개발상업은행으로 표기했다. 대풍그룹은 지난해 9월 평양 양각도호텔에서 브리핑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경협 브로커로 활동

    문건은 “대풍그룹의 신청 내용이 타당하고 은행설립 자본융자 가능성이 확실하면 2009년 12월까지 설립준비를 완료하고 2010년 국가개발은행을 설립한다”고 촉구했다. 북한은 1월20일 국가개발은행을 설립하면서 대풍그룹을 외자유치 창구로 지정했다.



    대풍그룹 총재 겸 국가개발은행 부이사장 박철수는 조선족으로 북한 고위직에 오른 첫 인사다. 1959년 출생. 옌볜대를 졸업하고 대외경제무역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고 알려진 그는 1990년대 후반 중국국영 석유회사 임원으로 일했다. 이때 북한 군부에 휘발유를 공급하면서 북측 인사들과 친분을 쌓았다고 한다. 아버지 고향은 경남 밀양이라고 한다.

    대풍그룹은 2006년 설립된 북한의 대외경제협력기관. 대풍그룹은 홍콩, 베이징에 법인을 등록했으나 매출이 거의 없는 사실상 서류로만 존재하는 회사였다. 박철수는 부총재 명함을 쓰면서 박성철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박철수는 대풍그룹 부총재를 맡기 전 남북경협 현장에서 브로커로 활동했다. 좋지 않은 소문도 나돌았다. 성과물이 나오지 않아서다. 박철수가 일이 매끄러운 컨설턴트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박철수는 한국에서 구속·기소된 적도 있다. 삼성물산과 수출입 계약을 맺고 북한산 수산물을 납품하는 과정에서 삼성물산으로부터 받은 돈을 북한에 송금하지 않고 챙긴 뒤 수산물을 제대로 납품하지 않은 혐의로 2001년 구속·기소돼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횡령 혐의는 무죄, 외화 밀반출 혐의는 유죄였다. 삼성물산은 어선과 어구를 북한에 제공했으나 손해만 봤다.

    박철수는 한국광물자원공사에 북한 자원 개발과 관련한 제안서를 넣었으나 사업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2007년엔 풍어(豊漁)로 시장에 남아도는 오징어를 한국 정부가 구입한 뒤 북한에 인도적으로 지원하는 사업을 제안했다. 이재정 당시 통일부 장관이 이 사업 논의에 관여했는데 이 일도 무산됐다.

    박철수는 국가개발은행을 매개로 사실상 페이퍼 컴퍼니이던 대풍그룹을 되살렸다. 그렇다면 박철수는 북한을 어떻게 설득했을까.

    “대풍그룹은 진정한 실력과 자본으로 국가경제의 발전을 이룩하겠습니다!”

    대풍그룹이 작성한 브리핑용 문건 마지막 장의 첫 문장이다. 이 문장 아래엔 “조정에 의해 변화될 것인가, 변화에 의해 발전될 것인가”라고 적혀 있다. ‘조정’이란 표현은 제3자 개입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박철수는 국가개발은행의 목표를 셋으로 나눠 제안했다.

    “세계 일류급 금융기구를 설립해 현대화 금융기업 제도를 구축하겠다.”

    “국가 신용도를 기초로 시장 업적을 기본으로 하는 금융기구를 창설하겠다.”

    “국가의 종합적 경쟁력 회복을 증강하고, 대상 건설과 제도 수립의 전면 성공을 실현해 국가의 금융 안전과 경제적 안전성을 보장하겠다.”

    대풍그룹 내부 문건에 나타난 대풍그룹 실체

    대풍그룹 총재 겸 북한 국가개발은행 부이사장 박철수

    북한은 국가 신용도가 바닥이다. 북한의 국가 신용도를 기초로 세계 일류급 은행을 세우겠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대풍그룹이 브리핑한 국가개발은행의 임무도 실현이 의심스럽다. 임무가 경제 전반을 망라하고 있어서다. ▲국가경제 기반시설 ▲하부구조 건설대상 ▲농업축산 ▲첨단기술 산업 ▲에너지 개발 ▲기초산업 ▲농업 축산을 중점 지원하는 게 국가개발은행 임무라고 문건은 설명한다.

    대풍그룹은 국가 신용도를 회복하고 현대화 경제 강성대국을 건설하기 위해 국가개발은행을 세워야 한다고 제안했다. 국가개발은행을 통해 경제 부흥을 이룩하고, 국제경제 협력·교류를 촉진하겠다고도 밝혔다.

    “세계 일류급 은행 세우겠다”

    문건에 따르면 국가개발은행 자본금은 100억달러. 북한 정부와 대풍그룹이 각각 출자해 투자회사를 세운 뒤 북한 정부가 세운 투자회사가 40%를 출자하고, 대풍그룹이 세운 투자회사가 60%를 출자한다. 대풍그룹 지분이 더 많다는 게 눈에 띈다. 대풍그룹은 출자액 중 30%를 자체 조달하고, 70%는 IBRD(국제부흥개발은행) ADB(아시아개발은행)에서 융통하겠다고 밝혔다.

    자금 조달 계획도 미덥지 않다. 북한이 비핵화 수순을 밟고 북미 관계가 개선되지 않는 한 국제금융기구가 북한 금융기관에 융자를 해줄 일은 사실상 없다. ▲외화 채권 발행 ▲자산 증권화 ▲해외 시장 상장 ▲국내외 각종 저금 인수로 자금을 확보하겠다고 브리핑했으나 이 또한 실현 가능성이 매우 낮다.

    대풍그룹은 “정부는 국가개발은행의 설립 준비 권한을 대풍그룹에 전적으로 위임”하고 “국가 승인과 정부 위임에 따라 국내 해당 부문들은 대풍그룹의 국내외 편리 조건을 제공” 해달라고 요청했다. 대풍그룹과 북한 내각이 공동으로 ‘공화국10년경제발전전략계획’을 작성하자고도 제안했다.

    실체 없는 조직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3월2일 “대풍그룹은 국가 재정과는 별개로 식량·철도·도로·항만·전력·에너지 등 6개 사업을 추진해 ‘경제 인프라 구축 10개년 계획’을 추진할 방침”이라고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국가개발은행은 3월10일 첫 이사회를 열고 전일춘을 이사장에 임명했다.

    국가개발은행은 설립은 됐으나 실체는 없는 조직이다. 자본금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천안함 사건으로 북한 제재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중국을 제외한 국가로부터의 외자 유치는 한동안 어려울 전망이다.

    대풍그룹 인사와 친분을 가진 한 북한 전문가는 “박철수 총재가 중국 은행이 보증하는 경협자금 보험회사를 세우겠다고 한다. 몽골 자본 유치가 임박했으며 중국, 유럽과도 접촉하고 있다고 한다”고 전하면서 “작은 건은 모르겠으나 큰 건의 외자유치를 성사시킬 것 같지는 않다”고 전망했다.

    또 다른 북한 전문가는 “박철수가 북한 당국을 속였다기보다는 북한 당국이 박철수를 이용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대풍그룹 내부 문건에 나타난 대풍그룹 실체

    ‘신동아’가 확보한 대풍그룹의 북한 보고용 내부 문건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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