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호

독일 경제가 위기에 강한 이유

  • 이서원| LG경제연구원 미래연구실 책임연구원 swlee@lgeri.co |

    입력2010-07-05 17: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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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년 금융위기와 최근 남유럽 국가들의 이른바 소버린 리스크 사태에서도 견고한 안정세와 재정건전성으로 주목받는 국가가 있다. 바로 독일이다. 통일과 유럽통합 같은 엄청난 사건을 겪고 나서 오히려 지속적인 성장세를 구축한 것. ‘신동아’가 각 전문기관의 연구결과물을 검토해 선정한 이달의 보고서는 LG경제연구원이 6월초 내놓은 ‘독일 경제가 위기에 강한 이유’다.
    2008~09년의 경제위기 속에서 여러 국가가 갖가지 위기 요인이 중첩돼 위험이 확대되는 과정을 겪은 바 있다. 진원지였던 미국은 부동산에서 시작된 경기 침체가 소비와 노동시장의 침체로 이어졌고, 일본의 경우에도 경기 침체 이후에 제조업 설비투자 부진과 디플레이션, 막대한 재정적자 등의 어려움을 겪었다. 2010년 남유럽 국가들로 인해 촉발된 유로화의 위기는 여타 유로권 국가들까지 큰 혼란에 빠지게 만들었으며, 몇몇 국가는 여전히 재정적자로 인한 신용등급 하락과 국가 부도 위기에 처해 있다.

    반면 독일은 경제위기 과정에서도 실업률 등이 꾸준한 안정세를 유지했을 뿐 아니라, 이번 유로화 위기를 계기로 그 수출활력과 재정건전성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독일 경제는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통일 후유증으로 지속적인 실업증가 및 소비 침체의 악순환을 경험한 바 있다. 서구 언론들이 당시의 독일을 ‘유럽의 병자(sick man of Europe)’라고 비웃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독일은 일회성 경기부양의 유혹에 빠지는 대신 꾸준히 경쟁력 회복에 중심을 두고 경제를 운영해왔다. 최근 독일 경제의 성과를 살펴보고 그 원인을 분석해보기로 한다.

    독일 경제의 최근 성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몇몇 경제성과 면에서 주목할 만한 결과를 보이고 있다. 독일의 강점은 특히 수출에서 확인된다. 선진국들 가운데 예외적으로 상당히 강한 수출주도형 경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독일은 2003년 이후 미국을 넘어 이른바 세계 수출의 챔피언(Export Weltmeister) 자리를 유지해왔다. 국내총생산(GDP)은 미국의 4분의1, 일본의 4분의3 수준이지만 수출에서만은 세계 최고의 자리를 지킨 것이다. 다만 이번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전세계의 공장으로 자처하는 중국이 2009년 수출에서 독일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독일의 수출증가 속도다. 고부가가치 제품을 중심으로 하는 수출구조로 인해 시장이 제한되어 있음에도 독일은 2000년대 연평균 13.1%의 수출증가율을 기록했다. 아직 저가 범용제품 중심의 수출구조인 중국의 24.4%에 비해서는 낮지만 미국(6.4%)과 일본(6.1%)에 비하면 두 배 이상이다. 또한 이는 수출이 경제성장을 견인하고 있는 한국의 같은 기간 수출증가율(11.9%)보다 높은 수치다.



    특히 유로화가 강세를 지속한 지난 수년간 독일의 수출 성과는 주목할 만하다. 유로화는 저점이던 2000년 10월 이후 2010년 3월까지 중국 위안화 대비 31%, 일본 엔화 대비 33%, 미국 달러 대비 59%, 한국 원화 대비 60% 절상됐다. 어려운 환율 여건에서도 지속적으로 높은 수출증가율을 보인 것이다. 환율 절상을 넘어서는 생산성의 증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독일 경제의 위기 대응과 관련해 주목할 부분으로 경기 위축에도 불구하고 고용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이번 위기로 대부분의 국가에서 실업률이 급격히 상승한 2007년 2분기~2009년 4분기에 독일은 8.5%에서 7.5%로 실업률이 낮아졌으며(같은 시기 미국은 4.5%에서 10.0%, 스페인은 8.0%에서 19.0%, 영국은 5.1%에서 7.8%, 일본은 3.8%에서 5.2%로 실업률이 증가했다), 향후에도 경기 회복에 따라 기계류 등 제조업을 중심으로 빠른 고용 회복이 예상되고 있다. 더구나 독일의 GDP는 2009년 경제위기로 인해 마이너스 5%를 기록했다. 과거 경기 침체기에는 항상 GDP의 감소폭을 훨씬 웃도는 실업률 증가를 보여왔던 독일이 이번에는 정반대의 양상을 보인 것이다.

    독일 경제가 위기에 강한 이유


    독일 경제가 위기에 강한 이유
    마지막으로 독일의 재정건전성을 지적할 수 있다. 독일 또한 금융위기로 인한 재정확대 때문에 건전성이 악화되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여타 선진국에 비해서는 상당히 안정적인 재정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독일의 2009년 재정적자는 GDP 대비 3.3% 규모로 아일랜드(14.3%), 그리스(13.6%), 스페인(11.2%), 영국(11.1%) 등 유럽 국가들이나 미국(9.9%), 일본(7.4%)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이다.

    특히 2009년 헌법에 연계한 재정건전화 법안을 만들어 GDP 대비 0.35%의 적자만을 허용하는 재정적자금지정책(Sc-huldenbremse)을 2011년 회계연도부터 적용할 예정이다. 이러한 엄격한 정책 추진과 함께 현재의 정부부채 또한 GDP 대비 70%대에 머물고 있어 선진국 가운데 가장 빨리 재정이 안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활력 회복이 가능했던 이유

    독일 경제는 이른바 ‘라인 자본주의’라고 불린다. 이 용어는 프랑스 경제학자이자 금융그룹 AGF의 회장을 역임한 미셸 알베르가 영미식 자본주의와 대비되는 자본주의의 한 형태로 독일 경제를 지칭하며 처음 등장했다. 독일 경제는 다음의 세 가지 특징적 요소 때문에 라인 자본주의라 불리게 되었다. 먼저 ‘라인강의 기적’이라는 경제성장을 통해 패전 상황을 극복했다는 역사적 사실, 라인강변에 위치한 구(舊)수도 본(Bonn)을 중심으로 한 정치와 경제의 유기적 결합, 독일 사민당(SPD)이 라인강변에 자리한 고데스베르크에서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를 받아들이게 된 것(Godesberger Programm) 등이 그것이다.

    독일은 전후 연평균 4%가 넘는 지속적인 성장과 8%가 넘는 수출증가율, 12% 수준의 저축률로 1980년대까지 지속적 성장을 이루며 유럽을 대표하는 국가로 떠올랐다. 그러나 1980년대 말 급작스럽게 진행된 독일 통일은 역설적으로 큰 어려움을 불러왔다. 통일로 인해 재정지출이 급증했고, 서독 화폐(Deutsche Mark)와 동독 화폐(DDR Mark)의 1대1 통합으로 동독 지역 민영화 기업들의 경쟁력이 급격히 사라졌으며, 서독 기업들도 동독 특수라는 단기적이고 손쉬운 매출확장에 기대어 현실에 안주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여기에 1990년대 초반 통일 특수가 소멸하고 나자 저성장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경제 전체가 어려운 상황에 빠진 것이다.

    특히 전자제품, 광학기기, 조선 등 몇몇 산업부문에서 일본 등의 급속한 부상으로 글로벌 경쟁우위를 빼앗기면서 1990년대 연평균 성장률이 1.9%를 기록하는 등 어려운 시기가 도래했다. 특히 수출 중심의 경제구조로 인해 외부의 경기변동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고 아직 유럽 통합이 실질적으로 이뤄지지 않아 역내시장도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반면,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의해 금리와 재정 등 정책수단마저 제한돼 그야말로 삼중고의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던 것이다. 이 시기 독일은 잠재성장률에 미치지 못하는 성장을 기록한 해가 많았다

    이렇듯 통일의 후유증을 오래 경험한 독일 경제는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점차 활력을 되찾게 된다. 활력 회복의 중요한 요인으로는 유럽 통합과 구 동독 지역의 존재, 그리고 낮은 물가상승 등을 지적할 수 있다.

    독일 경제가 위기에 강한 이유
    먼저 유럽 통합의 효과를 살펴보자. 독일은 통독과 유럽 통합을 통해 두 번에 걸친 내수시장 확대 계기를 갖게 되었다. 통독에 따른 시장 확대가 불러온 반짝 효과가 소진된 이후 1990년대 내내 장기침체를 겪었던 독일은, 약 10년 후 유럽 통합을 통해 경쟁력 회복의 계기를 잡았다. 일반적으로 통합으로 인한 단일시장의 출현은 경제 성장에 긍정적인 계기로 작용한다. 이를 통해 역내 교역이 활발해지고 나라별 분업의 효과가 극대화하면서 유럽연합 내에서 전체적인 생산성 증가가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유럽 통합의 효과를 모든 국가에서 공평하게 나눠 가진 것은 아니었다. 세계 경제가 성장을 유지하고 있던 시기에는 모두가 함께 성장하는 것으로 생각됐지만, 경제위기 이후에는 이에 적절히 대응하는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로 명확하게 나뉜 것이다.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등 남유럽 국가들과 아일랜드 등이 후자의 대표적 예라면 독일이나 네덜란드 등은 전자의 예다.

    독일의 생산력이 유럽 통합을 계기로 더욱 높아진 원인 중 하나로는 통일 이후 하향 안정된 임금 추이를 지적할 수 있다. 특히 침체를 보였던 구 동독 지역은 유럽 통합과 함께 점차 수출 활력의 거점으로 부상했다. 우선 낮은 임금으로 인해 실질적으로 저임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고, 서독 지역의 임금 상승을 억제하는 부차적인 역할도 수행했던 것이다. 실제로 독일에서는 1999~2008년 기간 실질임금 상승률이 오히려 연평균 마이너스 0.5%를 기록할 정도로 억제됐다.

    유럽 통합 이후 많은 기업은 저임금 동유럽 국가로의 사업장 역외이전을 언급하며 노동자로부터 많은 양보를 받아냈고, 최종적으로는 물류와 품질관리에서 불리한 동유럽 국가 대신 동독 지역을 새로운 사업장 입지로 선택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라이프치히에 건설된 BMW의 공장이나 폭스바겐의 드레스덴 공장이다. 동독 지역의 임금수준은 서독 지역 대비 1992년 55%, 2004년에 66% 수준에 불과하여, 인프라 수준과 높은 생산성을 고려할 경우 각종 법규의 복잡함과 급격한 임금상승에 시달리는 동유럽 지역보다 많은 장점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구 동독 지역은 점차 독일의 수출전진기지 역할을 담당하게 됐다. 실제로 국외에서의 주문량 지표를 살펴보면 동독 지역은 2000년 대비 80% 가까이 증가했는데, 이는 20% 남짓 성장한 서독 지역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동독 지역이 독일 전체의 수출 증가를 주도해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독일은 최근 인위적인 저임금으로 주변 국가들을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다는 이른바 ‘소셜 덤핑(Social Dum-ping)’ 혐의를 받고 있다. 하지만 임금상승률이 낮았던 것은 독일의 물가 수준이 낮게 유지된 덕분이었다. 독일은 지난 10년간 낮은 물가상승률이 지속됨으로써 임금상승이 억제되는 일종의 선순환 구조를 유지했다. 1999~2008년 독일의 연평균 물가상승률은 1.7% 수준으로 주변국보다 낮다.

    이렇듯 낮은 물가상승률을 유지할 수 있었던 요인은 크게 유럽 통합 요인과 독일 고유 요인으로 나눠볼 수 있다. 우선 유럽 통합 이후 역내 국가들 사이의 교역이 활발해지면서 생필품 가격이 낮게 유지됐고, 유로화 강세 덕분에 고유가의 충격을 덜 받을 수 있었던 점이 크게 작용했다. 그러나 독일이 다른 유럽 국가보다 낮은 물가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만 봐도 고유 요인이 더 크게 작용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먼저 살펴볼 것은 독일의 주택가격이 낮게 유지됐다는 사실이다. 독일은 근 30년간 주택가격이 거의 변화가 없었으며 실질 부동산 가격은 1975~2007년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또한 농산물 가격도 낮게 유지됐다. 남유럽 등지의 저렴한 농산물이 대거 수입된 데다 인근 동유럽에서 유입되는 한시적 노동자들을 통해 독일 현지에서 생산되는 농산품 가격 또한 낮게 유지된 것이다. 또한 유럽 물류의 중심이라는 지리적 장점이 가져온 비용 경쟁력도 낮은 물가를 유지하는 데 적잖이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렇듯 임금과 물가의 안정, 유럽 통합의 효과 등이 독일의 경쟁력 회복을 가능케 한 기본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 덧붙여 제조업 중심의 장기 투자와 전문화 등 ‘라인 자본주의’의 오랜 전통(legacy)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바로 이 전통이 위기에 강한 독일의 오늘을 만들어낸 요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독일 경제가 위기에 강한 이유
    제조업의 경쟁력 강화

    독일은 1990년대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제조업에 대한 투자를 늘려왔다. 제조업의 기반인 금속 및 기계류 관련 투자는 최근까지 2% 가까운 증가가 계속되고 있다. 미국이나 영국뿐 아니라 수출 중심의 성장을 지속하던 일본조차 금속·기계류에 대한 투자가 정체 혹은 감소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또한 서비스업 중심의 성장이 고착화된 영미권 국가들과 달리 독일은 제조업 분야로 우수한 인력이 지속적으로 공급되고 있다. 제조업 분야의 임금이 다른 국가보다 높게 유지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독일의 제조업 임금은 2009년 기준 시간당 35.6유로로, 공무원·공기업 임금 31.6유로보다 훨씬 높다). 이 때문에 독일에서는 아직도 BMW나 보쉬와 같은 제조기업들이 대학을 졸업하는 학생들로부터 최고의 직장으로 꼽히고, 서비스 부문에 우수 인재가 대거 몰리는 경향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라인 자본주의’와 관련해 최근에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사이 슈뢰더 정부의 산업개혁으로 전통적인 금융산업과 제조기업 간의 상호지배가 해소됐다는 점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 독일의 기업들은 은행이나 다른 기업과의 상호지배를 통해 안정적인 투자와 지배구조의 확립을 도모했다. 이는 외국기업에 의한 적대적 인수합병의 가능성을 낮추는 효과가 있었지만 일종의 카르텔이 되어 상호 경쟁을 가로막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독일 정부에서는 제조업 전문화를 위해 1998년 ‘기업부문 통제와 투명성 법안(KonTraG·Gesetz zur Kontrolle und Transparenz)’을 마련했고, 다음 단계로 2001년 한스 아이헬 당시 재무장관이 입안한 독일 금융기업의 자본참여 축소에 대한 조세감면 계획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2002년 1월 이후 자본출자 해소에 대한 법인세와 영업세가 이전과는 달리 한시적으로 면제됐고, 독일 기업들의 전통적인 상호지분참여 관행이 상당히 약화됐다. 정부의 집중적인 전문화 유도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2005년에 이르면 도이체방크가 벤츠에 출자했던 지분이 거의 정리되고, 뮌헨 재보험과 알리안츠 보험의 상호 지분결합이 줄어들었으며, 이들 두 금융기업의 벤츠 및 상용차 생산기업 MAN에 대한 출자지분이 정리되는 등 독일 산업계 전반의 자본참여가 크게 감소했다. 은행들의 산업계 참여가 줄어들면서 전체 독일 기업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이른바 ‘독일 주식회사(Deutschland AG)’ 논란도 점차 해소되고 있다. 또한 연관이 적은 분야의 지분참여가 정리되면서 더욱 전문화한 M·A나 해외공장 증설에 대한 투자가 증가해 전문화를 통한 효율화가 모색되고 있다.

    정책이 경쟁력을 부른다

    독일은 현재 환경산업 분야에서 글로벌 선두를 다투고 있다. 일찌감치 신재생에너지 육성을 위한 각종 정책을 수립해 신성장동력 발굴에 나선 독일 정부의 정책 이니셔티브 덕택이다. 우선 2000년 관련법 제정 이후 신재생에너지 생산이 급증했다. 1990~99년 연평균 5.7% 성장에 그쳤던 신재생에너지 생산은 2000~07년 연평균 14.1%로 두 배 이상 높아졌고, 2009년 현재 전체 전력의 약 16%를 신재생에너지로 조달하고 있다. 아울러 독일 정부는 2020년까지 이 비중을 30% 수준으로, 2030년까지 40% 수준으로 높일 계획이다. 또한 kWh당 25~45유로센트에 달하는 보조금을 향후 20년간 보장한다는 강력한 지원 정책도 시행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지원에 힘입어 독일 기업들은 태양광 산업 부문에서 선두권을 차지하고 풍력산업에서 세계 시장의 27.7%를 점하는 성과를 올렸다. ‘환경산업정책’으로 불리는 독일의 이러한 정책기조는 최근에는 전기 자동차 규격의 통일 및 지원방안 마련 등 다양한 분야로 진화하고 있다.

    독일 경제가 위기에 강한 이유

    구 동독 지역 데사우에 건설된 풍력발전시설. 독일의 환경산업 육성정책은 꾸준한 경제성장의 주 요인 가운데 하나다.

    산업정책에서는 경쟁정책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기업을 지원해 일자리를 만들고 연구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위에 현재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정책은 지역별 산학연계에 의한 기술개발 지원이다. 함부르크 지역의 항공산업 지원을 위한 연구센터 지원, 작센 주 인근의 반도체산업을 위한 지원, 자동차산업을 위한 지원, 괴팅엔 지역의 측정산업 지원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또한 독일 정부는 표준시장 선점을 통해 자국 기업이 세계시장에서 우위를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미 독일은 독일표준협회를 통해 DIN(Deutsche Industrie Normen)이라는 자국의 표준규격이 글로벌 시장의 기준이 되도록 각종 지원정책을 수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 독일 기업들은 표준인증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낮은 진입장벽으로 전세계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하게 된다. 특히 라인 자본주의의 전통 속에서 기업들이 협력해 표준을 설정하는 일이 활발했던 그간의 경험 덕분에, 각 기업이 다양한 표준을 서로 내세우기보다는 단일한 표준을 업계 스스로 마련하고 정부가 이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표준 선점에 발 빠르게 나설 수 있었다.

    독일 경제의 안정적 성장은 앞서 살펴본 것처럼 통독, 유럽 통합 등 외부적 요인에 적극 대처하면서 내부적인 체질개혁을 수행한 데 따른 성과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 독일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은 독일보다 제조업 비중이 높은 한국 경제에 적지 않은 시사점을 준다.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우선 제조업의 활력을 확보하면서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안목을 가진 자본 투자, 전문화된 인력, 특허 등 무형자산이 중요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일관된 경제정책의 실행도 중요하다. 독일의 경우 환경정책의 기본기조가 20년 넘게 유지되면서 독일 환경산업 발전의 계기로 작용했다. 경쟁정책이나 산업정책도 글로벌 경제정책 변화의 흐름에 한 발 앞서감으로써 경제 주체들의 미래 변화 대응을 선도하고 있다.

    끝으로 어떤 제도를 운영하든 위험과 기회는 공존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1990년대 독일이 ‘유럽의 병자’로 전락하게 된 원인으로 지적됐던 ‘라인 자본주의’ 모델이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대변한다. 경제제도는 시대의 변화에 대처하지 못할 경우 국가경제의 발전을 가로막는 원인이 되지만, 반대로 낡은 제도도 지속적인 혁신을 통해 새로운 발전의 동력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는 동안 다른 선진국과 대조적으로 위기극복 능력을 보여준 독일 경제의 부활을 타산지석 삼아 한국 경제, 한국 산업의 성장활력 유지와 체질강화의 길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라인 자본주의’와 ‘독일 주식회사’

    서독의 재건과정에서 확립된 라인 자본주의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독일 자본주의의 고유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국가개입주의 및 카르텔 전통과 차별화된 특징을 갖고 있다. 미국의 영향으로 독일 재건과정에서 경쟁정책이 성공적으로 정착되면서 국가의 개입이 약화되었고, 카르텔의 폐해를 없애기 위한 기업들의 강제분할이 성공적으로 이뤄진 것이다. 즉, 독일 고유의 자본주의 흐름에 미국식 정책이 조화를 이루어 탄생한 것이 라인 자본주의다.

    라인 자본주의의 특징으로 가장 먼저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산업자본의 조달이 은행의 직접적인 참여를 통해 이뤄졌다는 점이다. 은행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산업에 자본을 공급하고 그 대가로 해당 기업의 감독이사회에 이사를 파견한다. 다음으로는 기업들 간에 상호 자본참여를 통해 협조관계를 맺는 특징을 들 수 있다. 이를 통해 장기적인 공급계약을 맺고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표준 설정 등에서도 성과를 불러올 수 있다. 마지막으로 노사관계에서 안정적인 고용유지와 직업교육에 의한 높은 전문화를 이루는 것이 라인 자본주의의 특징이다.

    결국 라인 자본주의는 산업자본과 은행, 기업 간, 노사 간 협조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제조업 중심의 장기 성장모델이다. 기업 간 자본참여의 특징 때문에 독일 전체가 하나의 주식회사처럼 운영된다는 뜻에서 ‘독일 주식회사’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러한 독일식 자본주의 모델에 대해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의 마이클 포터 교수는 미국 체제에 비해 장기성장에 유리한 제도라고 분석했다. 미국식 제도가 주주의 수익을 우선하는 단기적 고려에 치중한 결과 장기적 성장을 위한 무형자산에 대한 투자가 저조해진 반면, 독일식 모델은 직업교육이나 R&D, 투자의 장기적 성향에서 경쟁우위를 보인다는 것이다.

    * 자료 : Michel Albert ‘Capitalism against Capitalism’(1993), Andreas Busch ‘European Integration, Varieties of Capitalism and the future of Rhenish Capitalism’(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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