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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김병일 한국국학진흥원장 겸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

“내면의 선비정신 깨워야 나라가 산다”

  • 김희연│신동아 객원기자 foolfox@naver.com│

김병일 한국국학진흥원장 겸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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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일 한국국학진흥원장 겸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

한국 선비문화의 본산지 경북 안동에서 ‘선비정신’의 부활을 역설하는 김병일 한국국학진흥원장

“세계 모든 나라는 나름의 역사와 전통을 통해 특유의 국민정신을 형성하게 마련입니다. 영국은 신사정신, 일본은 사무라이정신, 미국은 개척자정신을 갖고 있지요. 그것이 그들의 상품에 또 다른 아우라를 더해주고요. 우리에겐 이들 못지않은 선비정신이 있는데, 이 사실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어요. 탄탄한 도덕성의 선비정신이 우리 사회의 뿌리가 되면 머지않아 우리가 생산한 제품에도 코리아 프리미엄이 붙지 않겠습니까.”

그가 말하는 선비정신의 요체는 나를 낮추는 ‘겸손’과 남을 배려하는 ‘공경’이다. 그 안에 담긴 효도는 은혜를 베푼 사람에게 반드시 보답하는 인간관계 원리를 배우는 첫걸음, 동시에 내가 잘해야 남에게 존경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길이기도 하다. 김 원장은 이러한 근본을 배우지 못하면 아무리 유능한 사람이라도 성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이는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프로그램 중 그가 직접 진행하는 ‘현대사회 엘리트와 선비정신’ 강의의 주제이기도 하다.

“선우후락(先憂後樂)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의 근심을 남보다 먼저 근심하고, 즐거워할 일은 나중에 즐거워한다는 뜻이지요. 나라가 위난에 처한 때 앞에 나선 의병장처럼 엘리트들은 공동체를 우선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식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입니다.”

퇴계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김 원장은 선비정신을 이야기하며 퇴계 이황에 관한 옛 이야기 한 토막을 들려줬다. 선생이 안동에 있고, 아들 내외는 서울서 생활하던 시절의 일화다. 손주며느리가 종손을 얻었는데 젖이 돌지 않아 애를 먹었다. 마침 안동에 있는 여자 노비가 같은 시기에 애를 낳았다. 그를 서울로 올려 보내 달라는 기별이 왔다. 노비가 주인의 소유물 취급을 받던 과거 사회에서는 으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퇴계는 내 아이 살리자고 남의 아이 젖을 끊을 수 없다며 거절했다. 노비의 아이가 좀 자라고 나면 그때나 다시 생각해 보자고 했는데 결국 선생의 종손은 얼마 안 가 세상을 뜨고 만다.



“퇴계에게는 대를 잇는 것보다 세상 모든 인간을 존중하는 것이 더 큰 가치였던 것이지요. 퇴계의 그 정신은 후손에게 대물림되며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금 퇴계 종택을 지키고 있는 이는 퇴계의 16대 주손 이근필 선생. 여든이 다 된 나이지만 이 선생은 지금도 나이 어린 방문객에게 허리 굽혀 인사하고 그 앞에 무릎을 꿇은 채 앉는다. 손수 쓴 ‘예인조복(譽人造福)’이라는 글귀를 선물하는데, 다른 사람을 칭찬하면 복이 돌아온다는 뜻이다. 이 선생은 종종 방문객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지만 퇴계의 삶과 가문의 내력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수련생들이 종택을 방문할 때면 김 원장이 따라다니며 설명을 거들어야 할 정도라고 한다. 겸손과 공경의 덕목을 지키며 사람의 길을 걷고자 했던 옛 선비의 모습, 그대로다.

“수련생들은 어르신의 이런 태도를 통해 선비정신을 마음으로 배우게 됩니다. 이렇게 생생히 깨달음을 얻은 뒤 사회로 돌아가면 자연스레 남과 나누고 싶어지지 않겠습니까.”

한창 대화를 나누는 중 김 원장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잠시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받았다. 누군가 동명이인과 착각하고 잘못 걸어온 모양이었다. 인자한 기색으로 몇 마디를 주고받고는 통화를 마친다.

“저보다 연배가 한참 어린 사람인데 얼마나 무안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예전에는 이런 작은 것을 살피지 못했어요. 수련원에 와서 남을 헤아리는 예절을 하나둘 배워가는 중입니다.”

심신 채우는 마음 공부

마침 경제 얘기를 좀 해보려던 차에 제동이 걸렸다. 안동까지 간 김에 전직 장관으로서 요즘 국가 경제정책에 대한 김 원장의 견해를 듣고 싶었다. 그러자 ‘부재기위 불모기정(不在其位 不謀其政)’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공자가 노나라 정계에서 은퇴한 후 누군가 정치 상황을 묻자 한 말이다. ‘그 자리에 있지 않으면 그 정치를 논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역시 김 원장 나름의 겸손과 공경에서 나온 대답인 듯싶었다.

“제가 잘한다 하면 국민이 좋아하겠습니까. 반대로 잘못한다고 하면 공무원들이 좋아하겠습니까. 국가 경제와 글로벌 경제는 잘 다룰 수 있는 동료와 후배가 많다고 생각해서 자리에서 물러난 사람입니다. 경제는 현재 경제에 골몰해 있는 분들께 맡겨야지요.”

현직에서 물러나 또 다른 인생을 살고자 했던 그는 장관 퇴임 후 3년간 그냥 쉬었다고 했다. 뉴욕 마라톤에 출전해 완주를 하고, 한문 서당에 나가 사서를 배웠으며, 역사 관련 모임을 꾸려 여행을 다니는 등 몸과 마음을 새롭게 채웠다. 그는 지금도 시간이 나면 서당에 나가 ‘시경’을 읽는다. 1주일에 두 번씩 국학진흥원 내에서 열리는 ‘소학’ 강좌에 참석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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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연│신동아 객원기자 foolfox@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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