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광진구 건대병원 건너편에 위치한 도심형 실버타운 ‘더클래식500’
서울 서대문구 세란병원 옆 시니어타운 ‘골든팰리스’에서 만난 이영(81)씨는 일흔, 아니 예순이라 해도 믿을 만큼 젊고 건강해 보였다. 꼿꼿한 허리와 정정한 걸음걸이 때문만은 아니다. 또렷한 말투와 현대적인 어휘 구사, 세련된 옷차림까지 어느 모로 보나 ‘할머니’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는 달랐다.
가족과 함께 오랫동안 외국에서 생활했다는 그는 모시고 살겠다는 자식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홀로 한국에 들어왔다고 했다. 며느리 시집살이 시키며 불편하게 살기 싫은 마음, 노랑머리 이방인보다는 또래의 한국인 친구들과 즐거이 지내고픈 마음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절대 그럴 수 없다”며 반대하던 자식들도 시니어타운을 직접 방문한 뒤 “우리와 계시는 것보다 오히려 편안히 보내실 수 있을 것 같다”며 이씨의 결정에 동의했다.
서울 광진구 건대병원 건너편 ‘더클래식500’에 사는 조영숙(63)씨 역시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하얀 야구모자를 쓰고 티셔츠를 입은 그는 부모를 만나러 온 딸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는 현재 문화센터 강사로 일하는 커리어 우먼이다.
이씨나 조씨뿐만이 아니다. 취재를 하며 만난 서울 곳곳의 시니어타운 입주자들은 대부분 외모나 스타일로는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젊고 싱싱한 모습으로 핑크빛 황혼을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에게 지금의 삶은 결코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이 아닌 것으로 보였다.
실버타운 문화의 확산

‘시니어스타워’ 동호회룸에서 서예 연습 중인 입주자.
과거의 노인요양시설은 대부분 양로원처럼 거동이 불편하거나 건강이 좋지 않은 노인들이 모여 있는 시설이었다. 부모를 직접 돌볼 수 없는 자식들이 무거운 마음으로 부모를 시설에 입주시켰다. 실버타운은 노인들이 자발적으로 주거지를 선택하고, 적지 않은 비용을 내고 입주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이런 요양시설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최초 입주할 때 주택구입비나 임차료 못지않은 비용을 내고, 이후에도 매달 최소 100만~200만원의 유지관리비를 지급해야 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충분한 뒷받침이 되지 않으면 입주 자체가 불가능하다. 집에서 부모를 모실 형편이 못돼 어쩔 수 없이 ‘불효’를 저지르는 자식 세대의 고충과는 거리가 먼 곳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