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9월호

8·8개각 외교안보라인 유임 막전막후

원칙파 현인택 교체 노린 협상파의 공세 … “결전은 11월에 벌어진다”

  • 황일도│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10-08-31 16: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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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관성 주장하는 학자 그룹 對 유연성 중시하는 정치인 그룹
    • 여당 중진, “임태희가 현 장관 바꾼다기에 말리느라 혼났다”
    • “남북관계 안정 없이 정권 재창출 불가능, 천안함 대응 총체적 실패”
    • ‘안보라인 교체 + 광복절 메시지 + 우회적 유감표명 유도’ 로드맵
    • 겉으로는 강경 유지, 속으로는 정상회담 교섭?
    • “김양건 통전부장 대신 장성택 부위원장 직접 뚫어야”
    • 김태영 장관 유임은 ‘군의 사기’ 존중하는 인사 될 수 있나
    8·8개각 외교안보라인 유임 막전막후

    7월21일 휴전선 비무장지대를 방문한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과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 미 국방부가 촬영, 배포한 이 사진은 7월22일자 ‘뉴욕타임스’ 1면 머리에 실렸다.

    # 장면 1

    7월22일 ‘뉴욕타임스’ 1면에는 한미 외교국방장관 회의(2+2회의)를 위해 방한했던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과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의 휴전선 비무장지대 방문 장면이 메인 사진으로 게재됐다. 북한 병사가 창문을 통해 굳은 표정으로 이들을 들여다보는 모습이었다. 2+2회의를 통해 대북 추가 금융제재 등 강도 높은 압박조치가 발표된 직후 외교안보라인의 한 핵심관계자는 기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 국방부가 촬영한 이 사진을 두고 한반도 문제 관련 미국 측 주요 당국자가 ‘지나치게 냉전적인 이미지’라며 배포에 반대했다고 들었다. 그러나 클린턴 장관 본인이 ‘개의치 말고 진행하라’고 선을 그었다는 것이다. 최근 한반도 상황에 대해 워싱턴 고위층이 얼마나 강경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지는 이처럼 명확하다.…미국뿐 아니라 다른 우방들도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북한 내부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올 수 있다는 데 동의하는 분위기다. 남북관계에서 원칙을 지켜나가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방침이 실효를 거둘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 기회의 역사적인 무게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 장면 2

    ‘대북정책에서 원칙을 견지해나가겠다’는 안보라인 관계자들의 발언이 한창이던 8월2일, ‘동아일보’에 실린 흥미로운 기사가 안보부처를 뒤흔들었다. 지난해 8월 김기남 북한 노동당 비서와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의 서울 방문 때부터 임태희 당시 노동부 장관의 ‘협상파’와 현인택 통일부 장관을 중심으로 하는 ‘원칙파’가 물밑에서 힘겨루기를 벌여왔다는 보도였다. 지난해 10월부터 시작된 정상회담 관련 비밀접촉 과정에서 임 장관이 상당부분 합의에 이르렀지만 11월 진행된 공식라인 논의과정에서 통일부가 ‘더 높은 수위의 조건’을 내세우는 바람에 무산됐다는 게 그 골자. 이후에도 북측이 논의를 제의했으나 남측은 확실한 답을 주지 않았고, 북한이 회담 결렬에 대한 보복으로 천안함 사건을 일으켰을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묘한 시점에 터져 나온 ‘1년 전의 비화’는 안보당국자들 사이에서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다. 수면 아래에서만 거론되던 비선(秘線)과 공식라인 간의 힘겨루기가 개각을 코앞에 두고 현 장관의 경질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상황에서 공개됐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비선의 핵심인 임태희 전 장관은 이제 대통령실장으로 권력의 핵심에 선 상태. 일선 당국자들은 민감한 정보가 민감한 시기에 흘러나온 배경을 타진하기 위해 분주히 안테나를 가동했다.



    # 장면 3

    한나라당의 한 중진 의원은 8월 초 임태희 대통령실장과 개각과 관련해 전화로 장시간 대화를 나눴다. 다음은 그가 전한 대화내용이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을 이번에 기필코 교체해야 한다는 뜻을 임 실장이 여러 차례 강조했다. 남북관계의 불안정이 국정에 큰 부담을 주고 있으므로 대북정책의 근본적인 재검토 차원에서 안보라인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섣불리 생각하지 마라, 평양에 의도하지 않은 신호가 될 수 있다’고 설득했더니 ‘일단 알겠다’고 하더라. 이번 개각에서 현 장관이 유임된 것이 나와의 대화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임 실장이 계속되는 남북관계 경색의 책임이 상당 부분 현 장관에게 있다고 본다는 것이다.”

    뜻밖의 인사

    8·8개각 외교안보라인 유임 막전막후

    5월24일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 현인택 통일, 유명환 외교, 김태영 국방장관(왼쪽부터)이 가진 공동기자회견.

    8월8일 단행된 개각에서 단연 눈길을 끈 부분은 외교안보라인의 전원 유임이었다. 개각 직전 설화(舌禍)가 있었던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과 천안함 사건의 책임을 물어 교체하는 방안이 당연시되던 김태영 국방부 장관, 정치인 출신으로 바뀔 것이라는 설이 무성했던 현인택 통일부 장관이 모두 자리를 지킨 것이다. 유임 확정 소식이 퍼져나가기 시작한 8월 첫째 주, 관련부처 당국자들 사이에서조차 뜻밖의 결과라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청와대는 개각 발표 자리에서 “현재의 국무위원들이 11월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를 준비해온 만큼 업무의 연속성과 일관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 당국자들이 전하는 막후의 논의과정은 사뭇 다르다. 교체 여부, 특히 안보라인의 수장 역할을 담당해온 현인택 통일부 장관의 거취를 둘러싸고 청와대 안에서 격렬한 ‘엎치락뒤치락’이 이어졌다는 이야기다. 한 핵심 당국자가 “남북관계의 유연성을 주장하는 정치인 출신 실세들과 원칙 견지를 주장하는 학자 출신 안보라인 사이의 대립”이라고 정리한 힘겨루기다.

    관가에서 통용되는 ‘이명박 정부의 주류 외교안보라인’에는 대략 여섯 사람이 포함된다. 통일·외교·국방장관과 원세훈 국가정보원장, 김성환 청와대 외교안보수석과 김태효 대외전략비서관이 그들이다. 이 가운데 대북정책의 큰 기조를 설정하는 핵심 중의 핵심으로는 단연 현인택-김태효 라인이 꼽힌다. 대선캠프 참모 출신으로 ‘창업공신’에 해당하는 두 사람이 현재 안보정책의 키포인트를 쥐고 있다는 데에는 당국자들 사이에 별다른 이견이 없다. 정통파 관료 출신인 유명환 장관과 김태영 장관, 김성환 수석과는 경우가 사뭇 다르다는 것. 원세훈 원장의 경우 조직성격이나 안보문제에 경험이 적은 경력 특성상 큰 틀의 정책방향을 설정하는 일에서는 반 발짝 떨어져 있다는 게 정설이다.

    지난해 2월 현 장관의 부임으로 큰 틀이 만들어진 외교안보라인은 이후 ‘원칙 있고 단호한 대응’이라는 대북정책 기조를 꾸준히 유지해왔다. 천안함 사건 이후로는 “북한에 책임을 묻지 않고 넘어갈 경우 언제든 다시 도발할 수 있다”는 논리가 강화됐다. 여기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과 후계체제 구축과정의 혼선 때문에 북한 체제 내부에 조만간 큰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상황판단도 깔려 있다. 남북 간의 섣부른 대화 시도, 특히 대북지원을 전제로 한 정상회담은 이전 정부의 ‘퍼주기’를 반복하는 것일 뿐 의미 있는 성과가 나오기 어렵다는 냉정한 인식이다. 이번 기회에 남북관계의 틀과 북한의 행동패턴을 바꿔내지 못하면 언제까지나 끌려 다닐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무와 실세의 개입

    눈여겨볼 대목은 외교안보라인의 핵심 관계자들이 그간 가장 부담스러워한 부분이 바로 ‘실세와 정무의 개입’이었다는 점이다. 청와대 정무·홍보파트와 권력 핵심실세들을 중심으로 ‘국내정치와 지지율을 고려해야 한다’는 요구가 쏟아지고 있어 부담스럽다는 게 주요 당국자들의 토로였다. 지난해 8월 김기남 비서의 서울 방문에 즈음해 정부의 대응기조가 ‘원칙’과 ‘유연함’ 양쪽을 혼란스럽게 오간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 “단기적인 표 계산으로 장기적인 국가전략을 흔들려 한다”는 감정적인 반응도 나왔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진행됐던 남북 간 비선접촉이 수포로 돌아간 이후, 대북정책은 현 장관을 중심으로 하는 안보라인이 확실히 장악하고 있었다. 이 시기에도 평양은 여당 중진이나 권력실세들을 통해 정상회담의 문을 두드렸지만 변화는 없었고, 오히려 3월26일 천안함 사건으로 남북관계의 긴장지수가 급상승하면서 이 같은 분위기는 더욱 굳어졌다. 여기에 7월 들어 이른바 ‘영포라인’과 선진국민연대 출신 인사들의 권력전횡 논란이 여권 내 권력투쟁으로 비화하면서 청와대 내부에 ‘힘의 공백’이 형성된 것도 안보라인의 주도권 강화에 힘을 실었다.

    8·8개각 외교안보라인 유임 막전막후

    2009년 8월23일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 조문차 방남한 김기남 노동당 비서와 김양건 통전부장 등 북한 사절단을 접견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임태희 실장이 임명된 것이 바로 이 시기였고, 청와대 주변에서는 “무주공산에 입성한 최측근이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장악력을 행사하게 될 것”이라는 평가가 흘러나왔다. 더욱이 7월7일 단행된 청와대 조직개편은 임 실장 본인을 비롯해 정진석 정무수석과 김희정 대변인 등 정치인들의 등용으로 정무 감각의 중요성을 크게 강조한 인사였다.

    임태희 실장 혹은 그와 함께 지난해 싱가포르 비밀접촉을 추진했던 인사들은 현 장관을 중심으로 하는 외교안보라인이 자신들을 ‘물먹였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비밀접촉의 얼개가 언론에 새어나간 것 자체가 외교안보라인의 작품 아니냐는 이야기가 회자됐을 정도. 개각 논의가 시작되던 6월 무렵 임태희 장관이 통일부를 희망한다는 뜻을 청와대에 전한 것도 이와 관련이 깊어 보인다.

    7월말 대북압박 쏟아진 까닭

    사석에서 이들이 쏟아내는 비판의 수위는 상상 이상이다. “남북관계의 안정 없이는 정권 재창출이 불가능하다”는 것. 북한 문제가 이미 국내정치의 주요 변수로 등장한 만큼 계속 긴장을 유지할 경우 2012년 대선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논리다. 북한이 갑작스레 붕괴하거나 어떤 돌발행동을 벌일지 모르는 상황이라면 더욱 더 접촉의 끈을 놓지 말아야 이를 사전에 감지하고 일정 부분 개입할 수 있는 수단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사실상 여권 핵심의 공통적인 기류였고, 이는 비공개 당정 협의과정에서 통일부 등 안보부처 관계자들에게 ‘압력’으로 작용했다. 단순히 천안함 국면의 출구전략 차원이 아니라 근본적인 남북관계 개선을 고민해야 한다는 ‘MB정부판(版) 관여(engagement) 정책’ 구상인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임 실장 임명소식이 전해진 직후 정부의 대북압박은 이전보다 수위가 높아졌다는 점이다. 정부 고위관계자들이 천안함 응징을 넘어 북한 정권교체까지 염두에 두고 있음을 시사하는 발언을 쏟아내기 시작한 것.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북한이) 그렇게 좋으면 김정일 밑에 가서 살라”는 발언으로 논란에 휩싸인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여기에는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등 워싱턴 고위층의 기류가 2+2회의를 기점 삼아 더욱 강경해진 것으로 분석된게 큰 역할을 했지만, 안보라인 핵심의 ‘위기의식’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됐다.

    그러나 ‘협상파’ 일각에서는 천안함 대응과정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평가를 주저하지 않는다. 애초에 합동조사단이 어떤 결과를 내놓든 중국이 이를 수용하거나 북측이 공격을 시인할 공산이 사실상 없었음에도 마치 가능한 일처럼 판단한 부분은 결정적인 실책이라는 것이다. 특히 대응과정에서 한미 동맹이 사실상 유일한 레버리지로 활용되면서 한중 간에 긴장이 높아지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쇠고기 문제 재협상론이나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 동참 요구 등의 ‘동맹의 계산서’가 경제 분야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는 결과로 돌아온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현재의 구도가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겠느냐는 지적도 있다. 지금은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백악관이 자국 내 비판여론을 피해가기 위해 압박기조를 유지하고 있지만, 그 후에는 분위기가 어떻게 바뀔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추가 금융제재 발표 과정에서 미국이 강력한 법률 제정 대신 비교적 탄력적인 행정명령을 수단으로 삼아 ‘퇴로’를 열어둔 것이 그 주요 근거 가운데 하나다. 중간선거 이후 미국이 핵 확산 방지 등을 위해 평양과 직접대화에 나설 경우 한국만 따돌림을 당하는 구도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재오를 주목하는 이유

    이 때문에 개각을 앞둔 8월 초 협상파를 중심으로 현인택 장관 등 외교안보라인을 물갈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고 여권 핵심인사들은 전한다. 이를 기점으로 남북관계 개선을 추진한다는 구체적인 로드맵도 작성됐다는 것이다. 평양 역시 임태희 실장의 임명 이후 남한의 태도변화 여부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만큼, 현인택 장관의 경질로 더욱 분명한 ‘신호’를 보내야 한다는 게 그 골자다. 여기에 광복절 담화를 통해 대통령 본인의 육성으로 메시지를 명확히 하면 관계 개선의 모멘텀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는 복안. 사전 물밑접촉을 통해 북한이 모호하게나마 천안함 사건에 대해 ‘유감 표명’ 정도의 제스처를 취하면 국면전환의 명분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뜻은 끝내 성사되지 못했고, 외교안보라인은 유임됐다. 청와대가 밝힌 공식적인 이유는 성공적인 G20 정상회의 준비였지만, 북한에 섣부른 시그널을 줄 타이밍은 아니라는 대통령의 최종판단이 있었다는 게 당국자들의 전언이다. 당장 북측이 담화를 통해 현 장관을 “반공화국 대결정책의 고안자”라고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보니 떠밀려 교체했다는 인상을 줄 것이라는 우려가 작동했다는 것이다.

    대신 현재 만들어진 그림은 당분간 대외적으로는 안보라인을 유지해 원칙적인 입장을 고수하면서 물밑으로는 정상회담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일종의 역할분담론 혹은 이중전략인 셈. 11월까지는 통일부-통일전선부 라인으로 대표되는 남북 간의 공식 대화통로 이외의 채널을 통해 공개되지 않는 방식으로 남북접촉을 추진하다가, 구체적인 성과물이 나오면 개각과 함께 공식화한다는 계획이다.

    이 대목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이 이번 개각에서 특임장관에 임명된 이재오 의원의 역할이다. 임태희 실장 본인이 노동부 장관 시절처럼 직접 비밀접촉에 나설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 이 의원은 2008년 미국에 머무르던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대통령) 특사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고 싶다”고 밝히는 등 남북한 문제에서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피력한 바 있다. ‘대통령이 특별히 맡긴 일을 처리하는’ 특임장관 자리의 특성이나 핵심실세라는 이 의원의 위상은 정상회담 논의 창구로 손색이 없다.

    덧붙여 이명박 정부 들어 기능이 상당 부분 취약해진 국정원 대북파트를 활용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그간 안보라인 핵심관계자들이 “(북한을 담당하는) 국정원 3차장실은 조만간 폐지될 것”이라고 말해왔던 것과 달리, 대화 재개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정보당국의 대북접촉이나 회담 사전조율 기능을 복원해야 한다는 견해를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북측의 접촉점도 김양건 통전부장보다는 지난 6월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사실상의 2인자 지위를 공식화한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 측과 직접 선을 잇는 방식이 채택될 공산이 크다. 지난해 사전논의 내용이 구체적인 결과물로 이어지지 못한 경험이 있었던 만큼 양측 모두 절대적인 공신력을 갖는 채널을 구축해야만 논의가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문고리 권력’의 힘

    그러나 정상회담이 실제로 열리기 위해서는 공식라인의 협조가 필수적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이중구조가 순조롭게 유지될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우선 ‘원칙 있는 대북정책’기조를 유지하면서 회담을 성사시키는 일이 만만치 않고, 감정적인 앙금까지 엿보이는 양측의 견해 차이가 상상 이상으로 크기 때문. 청와대 일각에서 “8월 개각 직전의 힘겨루기는 예고편이었고, 본 게임은 오히려 이제부터 시작될 것”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반적인 구도 자체는 협상파에게 더 유리해 보인다. 우선 대통령과의 거리부터 그렇다. ‘문고리’를 쥐고 있는 쪽이 정책 대결에서도 나은 위치를 점한다는 것은 권력학의 기본공식이다. 여기에 김태효 비서관 등 청와대 안보라인 역시 공식적으로 대통령실장의 지휘하에 있다. 김성환 외교안보수석이 강단 있는 소신 관철보다는 ‘윗선’의 뜻을 민감하게 수행하는 데 능한 관료 출신임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대통령실장이라는 자리가 가진 힘이다.

    여권 인사들은 외교안보수석실 내부에도 임 실장의 우군(友軍)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국회의원을 지낸 정문헌 통일비서관은 한나라당에서 오랜 기간 생활하며 임태희 실장과는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통일비서관의 업무 자체가 남북대화에 가까운 데다 정 비서관은 청와대 입성 전부터 북측 인사들과의 접촉에 공을 들여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청와대 관계자들 사이에서 “앞으로는 정문헌을 주목해야 할 것”이라는 말이 흘러나오는 이유다.

    물론 반론도 만만치 않다. 남북관계에 대부분의 에너지를 투입할 수 있는 안보라인에 비해 임태희 실장이나 이재오 장관의 역할은 국정이나 정치 현안 전체를 포괄한다. 당장 개헌 추진과 같은 메가톤급 이슈가 정가의 논쟁주제로 떠오르는 마당에 이들이 남북관계에 충분한 공력을 쏟아 부을 수 있겠느냐는 것. 정권 재창출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대북정책은 심모원려(深謀遠慮)에 해당하지만 친박(親朴) 진영과의 관계 설정이나 당·정·청 소통 강화는 눈앞에 떨어진 이슈다.

    여기에 안보분야에서 큰 변화를 주저해온 이명박 대통령 본인의 캐릭터도 변수다. 특히 천안함 이후 단호한 대응을 수차례 강조해온 이 대통령이 이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극적인 선택을 하기란 쉽지 않다는 것. 정치공학적 관점에서 봐도 자칫 산토끼 잡으려다 집토끼를 놓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는데다, 현인택-김태효 라인에 대해 이 대통령이 그간 여러 차례 보여준 두터운 신뢰도 예측을 어렵게 만든다.

    평양이 기다려야 하는 이유

    분명한 것은 G20 정상회의가 마무리되고 미국의 중간선거가 끝나는 11월이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물밑접촉을 통해 정상회담의 큰 가닥이 잡히면 외교안보라인을 전면 쇄신해야 한다는 협상파의 요구는 수면으로 떠오를 수밖에 없기 때문. 청와대가 안보라인 유임의 배경으로 G20을 공식 거론한 만큼 명분도 충분하다. 8·8 개각에서 한 차례 미뤄진 싸움이 11월을 목표시점 삼아 이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 여권 핵심관계자의 말이다.

    “역설적으로 그때까지 진행될 힘겨루기의 키는 평양이 쥐고 있다. 3차 핵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발사 같은 강수를 둔다면 대북정책 재검토나 대화재개에 대한 대통령의 관심도 차가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연히 현재의 정책기조는 유지 혹은 강화될 테고, 안보라인 쇄신은 사실상 물 건너간다. 거꾸로 말해 평양이 남측의 ‘출구전략’을 내심 기대하고 있다면 지금은 조용히 기다려야 하는 시점인 셈이다.”

    국방장관 유임의 정치학

    “예산은 청와대 뜻대로, 인사는 군심(軍心) 존중해서”


    8월8일 개각과 13일 차관 인사 발표를 마주한 국방부 주변의 분위기는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밝다. 김태영 장관의 유임과 함께 그간 ‘개혁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던 장수만 차관의 경질 소식이 이어졌기 때문. 천안함 사건의 정치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여권의 분위기가 뚜렷해지고 청와대 주변에서 문민장관론이 흘러나오던 와중에 결정된 인사이기 때문에 더욱 뜻밖이라는 평가다.

    문민 국방장관 임명이 충분히 검토할 만한 카드라는 데에는 외교안보라인 핵심이나 정치인 출신 청와대 인사들 사이에 별다른 이견이 없다. 다만 문제는 ‘군의 사기’라는 것. 이와 관련해 한 핵심 당국자는 기자에게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MB처럼 전쟁과 군부독재를 몸으로 겪은 세대에게 군은 여전히 부담스러운 존재다. 국방분야의 비효율을 제거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있지만 그 과정에서 소란이 벌어지거나 군 수뇌부가 공개적으로 반발하는 모양새를 본능적으로 피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그간 군 관련 인사에서 MB는 군의 사기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왔다. 쉽게 말해 ‘예산은 내 뜻을 관철하겠지만 인사는 가급적 군의 뜻을 존중하겠다’는 취지다. 전임자에 비해 대인관계가 원만한 것으로 알려진 이용걸 차관을 선택한 것도 마찬가지 맥락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국방장관 유임이 군의 사기를 고려하는 인사인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군’의 범주를 국방부 주요 당국자나 수뇌부에 한정하면 그럴 수 있지만, 젊은 장교들 사이에서는 전혀 다른 분위기도 감지되기 때문이다. 분위기를 일신해 새로운 그림을 그려나가야 할 시점에 거듭 머뭇거리는 듯한 청와대의 태도에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8월12일 김 장관이 천안함 사건 대응과정의 책임을 물어 당시의 주요 지휘관들을 군사법정에 회부하는 방안에 서명했다는 이야기가 퍼지면서 뒷말이 나온 것도 이와 관련이 깊다. 미뤄왔던 결재를 유임 결정이 나오자마자 처리했다는 것은 원칙이 없음을 보여준 행동이라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본인은 살았지만 부하들은 형사 처벌을 받는 모양새가 됐다”는 평가도 제기된다.

    분명한 것은 청와대 관계자 대부분이 이번 유임을 재신임보다는 유보에 가깝다고 본다는 사실이다. 11월로 미뤄진 안보라인 내부의 힘겨루기와 그에 따른 재정비는 국방부라고 해서 예외가 아닌 셈. 남은 기간 북한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 역시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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