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 A는 피해자 OO건설 주식회사(이하 피해자)의 현장소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는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할 걸 염려해 사무실에서 회사 명의의 농협 통장 한 개를 몰래 갖고 나왔다. A가 위조한 예금청구서에 속은 농협 여직원은 A의 딸 명의로 된 통장에 1000만원을 송금했다. 그 직후 A는 통장을 제자리에 갖다놓았다. 검사는 통장 절도, 사문서 위조, 사기 등의 혐의로 A를 기소했다.
1심 재판부는 A가 임의로 회사 통장을 사용한 점에 대해 절도죄를 인정했다. 하지만 2심은 무죄를 선고했다. 피고인의 행위로 인해 통장이 갖는 경제적 가치가 인출된 금액만큼 소모됐다고 할 수 없고 곧바로 반환한 점에 비춰 불법영득의 의사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반면 대법원의 견해는 1심과 비슷했다. 피고인의 무단사용으로 통장이 갖는 경제적 가치가 소모되었고, 피고인이 사용 후 제자리에 갖다놓았더라도 소모된 가치에 대한 불법영득 의사가 인정된다는 것. 대법원은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되돌려 보냈다.
■ 타인에게 양도한 은행계좌에 있는 돈을 인출한 경우 사기죄인지
피고인 A는 길거리에서 B를 만나 자신의 명의로 된 OO은행 통장과 연계된 현금카드를 6만원에 넘겨줬다. 얼마 후 A는 B가 위 통장에 배모씨와 서모씨로부터 가로챈 돈을 입금한 사실을 알게 됐다. A는 OO은행 모 지점에 찾아가 신분증을 제시하면서 통장을 해지한 후 그 자리에서 출금 명목으로 20만원을 받았다. 검사는 A를 사기죄로 기소했다.
1심 재판부는 공소사실을 받아들여 유죄를 선고했다. 2심의 판단은 달랐다. A는 은행계좌의 예금주이므로 예금반환을 청구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는 것. 따라서 OO은행에서 통장을 해지하며 돈을 받은 것은 기망행위로 볼 수 없기에 무죄라는 것이다. 대법원 역시 2심과 같은 판결을 내리며 검사의 상고를 기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