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9월호

복원과 재개발 두 마리 토끼 다 잡는다

염태영 수원시장

  • 이형삼│동아일보 신동아 편집위원 hans@donga.com│

    입력2010-08-31 14: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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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경기술사·환경운동가로 잔뼈 굵은 ‘환경通’
    • “2014년 전체 초·중학교 친환경 무상급식”
    • “수원 화성 복원사업, 50년 이상 걸릴 수도”
    • “다음 선거에서는 ‘통합시장’ 선출될 것”
    복원과 재개발 두 마리 토끼 다 잡는다
    누군가는 그를 ‘조선 정조 이래 수원 최초의 개혁·진보 수장’이라 했다. 지난 6·2지방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 격전 끝에 당선된 염태영(廉泰英·50) 수원시장을 일컫는 말이다.

    수원은 ‘개혁군주’ 정조가 1789년 선친 사도세자의 능을 경기도 양주에서 수원 화산으로 옮기면서 조성된 조선 최초의 계획도시다. 정조는 능 주변에 성을 쌓아 ‘화성(華城)’이라 칭하고 대대적인 신도시 건설사업에 나섰다. 자신이 거처할 행궁도 지었다.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를 기리는 효심에서 비롯된 일이지만, 당파정치를 근절하고 왕도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개혁 구상의 중심지로 이곳을 활용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국정을 농단하는 노론의 근거지 한양을 떠나 이 신도시에 새 정치의 터전을 마련하려 한 것. 정조는 아예 도읍을 수원으로 옮길 생각도 있었으나 젊은 나이에 타계하면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보수 성향이 강한 수원에서 개혁·진보를 표방하는 야당 후보가 민선 시장에 당선된 것은 민선 5기 염태영 시장이 처음이다. 그를 정조와 연결짓는 것은 이런 사정 때문이다. 더욱이 그와 맞붙은 한나라당 심재인(58) 후보는 35년간 공직에 있으면서 부시장을 3차례(과천·포천·파주)나 지내고 경기도 자치행정국장을 역임한 ‘행정의 달인’. 염 시장의 고교(수원 수성고) 10년 선배로 당내 공천에서 12대 1의 경쟁을 뚫은 거물이었다.

    “무상급식은 ‘철학’의 문제”

    민주당-민노당의 후보단일화, 한나라당의 공천 지연, 한나라당 공천 탈락자들의 무소속 출마 등이 선거전에서 염 시장에게 유리한 형국을 조성했지만, 무엇보다 여당 소속 전임 시장의 8년 장기집권에 변화를 열망하던 시민들이 염 시장의 개혁의지에 주목하게 됐다는 분석이다.



    사실 수원시장 후보들이 내놓을 만한 공약은 눈에 띄는 차별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수원 화성과 수원천 복원, 수원비행장 이전, 수원시·화성시·오산시 통합 등의 숙원사업이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어차피 신임 시장이 한두 해에 걸쳐 끝낼 수도, 크게 흐름을 바꿀 수도 없는 대형·장기 사업일뿐더러 몇몇 세부 사업은 이미 전임 시장 때부터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이런 해묵은 카드에 새삼 덧칠을 하기보다는 시민의 일상에 직접 와 닿는 말랑말랑한 ‘생활 공약’의 호소력이 훨씬 클 수 있다. 시민운동가 출신답게 복지, 환경, 청렴 같은 참신한 카드에 파스텔톤을 입힌 염 시장의 접근법이 제대로 먹혀든 이유다. 6·2지방선거의 최대 쟁점 중 하나였던 초·중학생 친환경 무상급식 공약도 염 시장이 “이것은 경제가 아니라 철학의 문제”라며 일관되게 몸을 던지다시피 하자 그저 당론 쓸어담기가 아니라 정치인 이전에 한 개인의 강고한 의지와 신념으로 비쳐졌다. 실제로 이 공약은 그 또래 자녀를 둔 상당수 30~40대 주부의 표심(票心)을 파고들었다는 후문이다. 이 얘기부터 물어봤다.

    ▼ 공약에선 철학의 문제일지 몰라도 집행에선 분명 경제의 문제일 텐데요.

    “무상급식은 무상교육의 연장선에서 추진해야 합니다. 교육의 공공성과 교육복지를 증진하면서 친환경 농업의 기반을 넓히고, 수원과 인근 지역 간에 급식전달체계를 만들어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어요. 아이들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지역경제도 살리니 일거양득이죠. 한 마디로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는 첫걸음입니다.

    다만 먼저 수원시 조례를 개정하고 예산을 확보해야 하기에 연차적으로 추진할 계획입니다. 우선 올해 하반기(10월)부터 초등학교 5·6학년을 대상으로 실시합니다. 여기에 드는 예산이 34억원인데, 경기도교육청과 수원시가 50%씩 부담하고요. 이후 2012년엔 초등학교 전체, 2014년엔 초·중학교 전체로 확대할 예정입니다.”

    ▼ 2개 학년을 3개월 동안 먹이는 데 34억원이 든다면 전체 초·중학생을 1년 동안 먹이는 데는 어마어마한 예산이 들겠군요.

    “수원의 미래 주역인 아이들을 키우고 아이들에게 투자하기 위한 노력입니다. 전체 무상급식에는 526억원이 필요한데, 수원시가 50%를 부담한다 해도 263억원이니 큰돈이죠. 그래서 무상급식 예산을 교육청 50%, 광역자치단체(경기도) 30%, 기초자치단체(수원시)가 20%씩 부담하게끔 관련법과 도 조례를 개정하도록 관계기관에 건의할 계획입니다.

    예산도 예산이지만, 친환경 식자재를 안정적으로 유통시키려면 친환경급식센터 설립도 시급합니다. 여기에 적지 않은 기간이 소요되고, 수원시에서 생산되는 친환경 농산물이 미나리 등 4종류뿐이라 어려움이 커요. 그래서 화성시, 오산시 등 인근 기초단체와 농산물 생산 및 유통 관계자, 학교, 영양사 등으로 ‘친환경급식추진 준비단’을 구성해 차근차근 준비해갈 생각입니다.”

    소년 가장과 복지 시장

    복원과 재개발 두 마리 토끼 다 잡는다

    7월14일 수원 환경사업소를 찾아 해박한 환경 지식을 보여준 염 시장.

    주민 복지에 대한 염 시장의 관심은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발아했을지 모른다. 밝고 곱상해 보이는 지금의 인상에선 짐작하기 어렵지만, 그의 성장기는 순탄하지 못했다. 중1 때 말단 공무원이던 아버지를 여읜 데 이어 고1 때는 어머니마저 세상을 뜨는 바람에 장남인 그는 졸지에 소년 가장이 되어 두 동생을 돌봐야 했다. 교복은 친척 형에게 얻어서 줄여 입었고, 수학여행은 멀미 핑계를 대고 가지 않았다. 몸도 불편하고 변변한 돈벌이도 없었지만 그나마 부모 대신 보호자 노릇을 하던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그후 2, 3년 사이에 유명을 달리했다. 미대에 진학해 한국화 공부를 하려던 꿈은 날개가 꺾였다. 아니, 스스로 날개를 접었다.

    “하고 싶은 게 많았어요. 성적도 괜찮았고 과학이며 예술에도 관심이 많았죠. 그러나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자 남과 경쟁하는 일에 흥미를 잃었어요. 다 부질없고 막막해 보이고…. 그러다 그림에 빠져든 겁니다. 아이들과 웃고 떠드는 것보다 미술반 교실에 남아 새하얀 화선지에 나만의 세계를 열어 보이는 게 더 좋았어요. 그림 속에는 가난도 불행도 없고 평화로운 풍경만 있으니까.”

    그러나 돈 많이 드는 미대 진학은 언감생심. 결국 등록금이 사립대의 3분의 1밖에 안 되고 수원에 캠퍼스가 있는 서울대 농대에 원서를 냈다. 그것도 수원에 250년 넘게 터를 잡고 살아온 파주 염씨 북석공파 문중에서 장학금을 대준 덕분에 가능했다.

    ▼ 다양한 복지정책을 구체화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수원시에 65세 이상 어르신이 7만3000여 명인데, 40%인 2만9000여 명이 기초노령연금을 못 받아요. 우선 내년부터 85세 이상 어르신들께 ‘효사랑 지원금’을 월정액으로 지급할 계획입니다. 독거노인 1000가구에는 IT를 활용한 ‘U-케어’ 시스템을 설치해 소방서 119센터와 연계하는 24시간 돌봄 서비스를 추진합니다. 주의력 결핍이나 과잉 행동장애를 겪는 초·중학생을 전문상담사와 연계해 문제의 근원을 해결하는 ‘희망 만들기’ 사업도 추진하고요. 학교에는 학교사회복지사 자격이 있는 전문요원을 배치해 심리·정서치료를 맡기려 합니다.

    취약계층 여성의 경제적 자립과 육아 지원도 소홀히 하지 않겠습니다. 올해 안에 화서2동과 행궁동, 내년엔 원천동에서 국공립 보육시설을 개원합니다. 또한 취업 여성과 저소득 맞벌이 가구를 위한 시간연장 보육시설을 올해 77개에서 2014년 195개로, 장애아 통합보육시설도 4개에서 195개로 늘려갈 예정입니다.”

    ‘휴먼 서비스 통합체계’는 이러한 복지 공약이 효율적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지역사회의 복지자원을 거미줄처럼 연계해 촘촘한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다. 수요자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원스톱 통합 서비스를 받게 함으로써 서비스의 중복과 누락을 막고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는 게 목적이다. 이를 위해 ‘수원 휴먼서비스센터’가 민·관 복지자원 연계활동의 구심체로 운영되고, 권역별로 4개의 휴먼 서비스 거점기관이 설치된다.

    길은 환경정책에 있다!

    염 시장이 취임한 지 2주째 되던 7월14일, 수원 환경사업소 직원들은 그야말로 임자를 만난 기분이었다. 이곳에서 첫 ‘방문대화’를 가진 염 시장의 해박한 환경 지식에 놀랐기 때문이다. 염 시장은 수질분석자료를 일일이 점검해 처리장 관리의 문제점을 지적하는가 하면, 총질소(T-N) 및 총인(T-P) 측정장치가 고장 난 것을 찾아내기도 했다. 그가 환경기술사(수질관리) 자격 보유자일 뿐 아니라 여러 환경단체에서 잔뼈가 굵은 사실을 몰랐던 직원이라면 놀라움은 더욱 컸을 것이다.

    1984년 서울대 농화학과를 졸업한 그는 미원그룹에 입사했다. 마요네즈, 케첩 같은 가공식품 샘플의 미생물 수치가 법적 기준 이내인지 검사하는 게 주업무. 일이 지겨우면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공장 오·폐수 처리장에 나가 미생물을 촬영하고 조사해 도감을 만들기도 했다. 이후 삼성건설 환경사업부 창립멤버로 들어가 전국 건설사업장의 환경관리 실태를 조사했고, 두산엔지니어링 환경사업부에 스카우트된 뒤에는 30대 초반에 임원으로 파격 승진했다. 그러나 한참 잘나가던 무렵인 1993년, 돌연 척박한 환경운동가의 길로 접어든다.

    복원과 재개발 두 마리 토끼 다 잡는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수원 화성의 행궁. 정조가 거처하기 위해 지었다.

    “세 가지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첫째는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라는 종중 할아버지와의 약속, 둘째는 현장활동을 통해 시민의 진리를 깨닫겠다는 약속, 셋째는 주민들이 참여하는 도시설계를 하겠다는 약속입니다. 이 약속들을 가장 잘 실천할 수 있는 일이 수원에서의 환경운동이었어요. 지역에서 환경운동을 하면서 행정과 정책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됐습니다. 나중에 청와대에서 일한 것이나 수원시장에 출마한 것도 이와 관련이 있죠.”

    수원천 되살리기 시민운동본부, 녹색연합, 환경정의시민연대, 수원환경운동센터, 녹색환경연구소 등 열 손가락이 모자랄 만큼 다양한 환경단체에서 활동했다. 그 중에서도 수원지역 시민단체들과 함께 수원천 복개사업을 중단시키고 자연형 하천을 조성하도록 한 수원천 되살리기 운동이 가장 보람스럽다고 한다. 한때 시한부 생명 선고를 받은 수원천에 버들치가 살기 시작했고 여름에는 물놀이장, 겨울에는 얼음썰매장이 되면서 도심 속의 주민친화적 친수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그 전문성을 인정받아 2003년 대통령직인수위 환경부문 자문위원으로 노무현 정부와 인연을 맺었고, 2005년에는 대통령비서실 국정과제(지속가능발전) 비서관으로 국정에 참여한다. 이듬해 민선 4기 지방선거 때 열린우리당 공천을 받아 수원시장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수원 화성과 수원천 복원, 수원비행장 이전 등 수원이 떠안고 있는 해묵은 과제들은 이래저래 환경 문제와 관련될 수밖에 없다. 평생 수원을 떠나본 적이 없다는 토박이이자 환경전문가인 염 시장은 이 뜨거운 감자들을 제대로 굽고 볶고 삶고 데쳐 성찬(盛饌)으로 펼쳐놓을 수 있을까.

    복원·재개발 지연 이중고

    ▼ 수원 화성 복원사업이 시작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지지부진합니다. 타개책이 있습니까.

    “정조대왕의 사상이 깃든 수원 화성 복원사업은 총 2조390억원을 투입해 2020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5565억원이 투입됐으나 기초자치단체로서 재원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이대로 간다면 복원사업은 50년 이상 걸릴 수도 있습니다. 화성은 수원만의 것이 아니에요. 세계문화유산입니다. 수도권의 한류(韓流) 명소를 잇는 한국 문화 체험의 중심지로 키워내야 해요.

    이런 대규모의 국가적 사업에 중앙정부의 지원과 협조가 없으니 답답한 일이죠. 국회에 계류 중인 ‘세계문화유산 도시조성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하루 속히 통과돼 중앙정부의 안정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합니다. 이를 위해 세계문화유산을 보유한 지방자치단체들과 ‘세계문화유산 도시정책협의회’를 구성, 정책연대를 추진하며 지혜를 모을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이런 현실을 고려해 당장은 복원에 주력하기보다 큰 예산을 들이지 않고 만들 수 있는 다양한 테마관광 프로그램을 운영해나가려 합니다. 그러면서 다각적인 국·도비 확보…연간 400억원 정도의 지원이 절실한데…방안을 찾아봐야죠. 아직 복원하지 않은 곳이 37개인데 그중 23개의 복원을 유보했어요. 취임 직전인 6월29일 김문수 경기지사를 만나 초당적 공조와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 사업은 사업대로 안 되고, 화성 문화재 보호 때문에 구도심권 개발도 지연되는 이중고가 계속되고 있는데요.

    “지적하신 대로 구도심의 건축제한, 재산권 침해, 개발제한 등 이중삼중의 규제로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최소한 주민들이 살아가는 데 불편함은 없어야 하는데 슬럼화가 가속되고 있어 피해지역의 규제완화조치를 추진하려고 합니다. 아울러 구도심 재생사업에서 발생하는 개발이익금을 화성 복원과 낙후지역 개발사업에 투입하고, 남수문과 행궁 2단계 복원 등의 관광 인프라를 구축해 이 지역 상권에 활기를 불어넣겠습니다.

    사업 우선순위를 정할 때도 관광 동선(動線)과 연계된 도로, 공원, 주차장, 문화시설 등의 기반시설 확충에 무게를 실어야겠죠. 이렇게 시범 테마 거리를 하나 둘 조성하면서 볼거리 위주보다 먹을거리·체험 위주의 관광 콘텐츠를 접목시켜 경유형 관광이 아닌 체류형 관광으로 유도하려 합니다.”

    ▼ 수질관리 전문가로서 수원천을 자연형 하천으로 돌려놓는 데도 남다른 관심을 보여 왔는데, 어떤 계획을 갖고 있습니까.

    “수원천 복개구간 복원사업은 재해를 예방할 뿐 아니라 수원천 본래의 생태환경을 되살림으로써 수원 화성의 역사성을 회복하는 목적도 갖고 있습니다. 단절된 수원천 전 구간을 연결해 광교산에서 세류동 끝자락까지 산책로를 조성, 도심의 자연녹지축 기능을 하게 할 계획입니다. 수원을 ‘산책의 천국’으로 만드는 것이죠. 여기에다 화성 관광 루트를 개발해 문화 콘텐츠를 더하면 관광과 쇼핑이 자연스럽게 유발돼 지역경제에도 큰 도움을 줄 겁니다.

    수원천이 복원되면 이를 유지하는 데 하루 2만800t의 물이 필요하기 때문에 건천화를 우려하는 시각도 있는데, 광교 용수 6900t과 수원천 상류 및 주변지역 지하철 배출수 방류수원 1만3000t을 활용하면 평균 수심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복원구간은 상·하류의 자연하천처럼 하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최대한 생태적인 호안을 조성하는 한편, 비비추 노루오줌 부처꽃 부들 물억새 등 다양한 수변·수생식물이 자랄 수 있도록 콘크리트 시설물을 최소화할 겁니다. 제방도 녹지공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게 하고요.”

    3개 시가 합쳐야 하는 이유

    수원시 권선구 장지동에 있는 수원비행장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건설한 것으로, 광복 후 지금껏 공군비행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군용기가 하루 평균 76차례나 이·착륙해 소음피해도 크거니와, 면적이 6.5㎢에 불과한 이 비행장 때문에 수원시 전체 면적의 절반에 가까운 58.4㎢가 고도제한구역으로 묶여 있다. 임야·공원 등을 제외하면 시 전체 면적의 70%에 달한다. 소음과 고도제한으로 인한 피해 추산액은 2조3000억원.

    수원시는 수원비행장을 당장 통째로 이전하는 게 어렵다면 우선 1번 국도상에 있는 수원-오산 간 비상활주로를 수원비행장 안으로 이전해 비상활주로 주변의 고도제한부터 풀어달라고 요구해왔다.

    ▼ 비행장 피해 대책은 진전이 있습니까.

    “군용비행장의 소음방지 및 소음지역 지원 법률안이 국무회의를 거쳐 국회에 상정됐지만 아직 국방위원회에 계류돼 있습니다. 비상활주로는 경기도가 수원시와 협의한 뒤 공군본부에 해제안을 제출해 검토 중이고요. 그동안의 피해실태 용역조사를 바탕으로 ‘종합대응대책’도 수립했는데, 9개 분야 15개 사업에 35억원이 투입됩니다. 학교와 어린이집 등 공공시설 환경개선사업, 고도제한완화 용역, 주민건강 증진, 소음피해 주민 지원조례 제정 등이 주요 내용이죠.

    앞으로는 관 주도의 대책활동을 지양하고 시민단체, 학계 등과 연계해 해결방안을 모색하면서 피해대책을 요구할 생각입니다. 또한 국방부가 광주와 대구의 공군비행장 이전 타당성 용역조사를 수행한 바 있는데, 국방부 측에 수원비행장 이전 용역도 해달라고 요청해 이전과 관련한 기술적 자료를 확보하려 합니다.”

    무상급식 확대, 수원 화성 복원, 비행장 피해대책 같은 현안들이 원활하게 추진되려면 도비 지원 등 경기도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 한나라당 소속 김문수 경기지사와 민주당 소속 염태영 시장의 향후 이해관계 조율이 그 속도를 결정할 것이다. 이에 비해 속도가 무척 빨라진 현안도 있다. 수원·화성·오산시 통합 논의가 그것. 수원시의회는 지난해 9월 이들 세 도시의 행정구역 통합 건의문을 의결했으나 화성시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하지만 6·2지방선거에서 3개 시 모두 민주당 시장을 배출한 데다 시의회도 민주당이 장악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3명의 시장 모두 통합 의지가 강해 임기 4년 동안 충분히 논의하고 준비하면 다음 지방선거에선 통합시장을 선출할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우리 3개 시가 분리된 것은 60년에 불과해요. 이전엔 1000년 넘게 같은 생활권과 행정구역이었기에 지역 정체성을 회복하는 건 시간문제죠. 이미 화성문화제를 수원과 화성이 함께 개최하고, 화성·오산 시민들이 수원의 장사(葬事)시설인 연화장 등 도시계획시설을 이용할 때 사용료를 수원시민과 같게 받거나 할인해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복원과 재개발 두 마리 토끼 다 잡는다

    농수산물 도매시장을 방문해 상인들을 격려하는 염 시장.

    ▼ 통합의 가장 큰 이점은 아무래도 경제적 측면에 있겠죠?

    “그래서 첨단 IT산업단지와 KTX 중간역사 공동 유치 등을 추진해 통합의 동력으로 삼아야 합니다. 예컨대 삼성이 세종시에 투자하려 했던 LED사업을 우리 지역으로 끌어오고, 화성시에서 생산한 농산품을 수원에서 소비하는 유통구조를 만들면 좋겠죠. 서해와 수원 화성(華城)을 연계한 관광벨트, 광역 교통망을 구축하는 데도 힘을 쏟을 겁니다.

    물론 재정적인 면에서도 기반시설의 중복투자를 막을 수 있어 효율성이 커집니다. 택지 위주로 조성된 수원은 개발부지가 적은 반면, 화성은 땅은 넓지만 농업 위주라 도시 기반시설 투자가 어렵고 세수(稅收)를 늘리는 데도 한계가 있거든요.”

    “무능은 용납해도 부패만은…”

    ▼ 창원·마산·진해시의 통합도 커다란 자극이 됐겠네요.

    “수원시 인구(107만)는 통합 창원시 인구(108만)와 거의 같습니다. 행정수요가 대등하다는 얘기죠. 그러나 공무원 수는 수원시가 2490명, 창원시가 3863명입니다. 공무원 1인당 주민 수는 수원이 431명, 창원이 280명이고요. 창원시엔 2·3·4급 공무원이 있지만 수원시는 3급이 없는 비정상 조직입니다. 게다가 광교신도시, 호매실지구, 권선지구 등의 대단위 개발사업이 끝나면 인구가 15만명 더 늘어나 행정 서비스의 질이 떨어질까 봐 우려됩니다.

    이것만 봐도 통합의 당위성을 절감할 수 있죠. 수원시는 통합 창원시와 함께 전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기초단체인데도 통합시만 공무원 직급을 확대할 수 있다는 인센티브 규정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고 있습니다. 모든 행정은 평등한 수혜를 보장해야 하는데, 수원시 공직사회 직급의 하향평준화로 인해 시민들이 상대적 불이익을 받는다는 건 평등권에 위배된다고 봅니다.”

    이 같은 여건을 의식해서인지 염 시장은 취임 직후 단행한 인사에서 ‘흔들기’를 시도하지 않았다. 한나라당 소속 전임 시장 체제를 거의 그대로 유지한 것. 4급 22명 중 2명만 인사를 했는데 그나마 서로 자리를 맞바꾼 것이었다. 4개 구청장은 물론, 보건소장과 사업소장들도 모두 유임됐다. 6급 이하 하위직 인사에서도 61명만 보직이 바뀌었다. 6급 이하 인사권을 구청장에게 주는 등 구청장의 재량권도 키워줬다. 일단은 조용한 출발이다.

    다만 부정과 비리 척결에 대해서는 확고한 의지를 내비쳤다. 비리 소지가 많은 개발사업 등의 민원처리 상황을 단계별로 보고하게 했고, 개발이익금을 투명하게 관리하기 위해 ‘공정한 이익산출위원회’에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도록 했다. 전임 시장 시절 수원시는 국가권익위원회의 지방자치단체 청렴도 평가에서 꼴찌를 하는 수모를 겪었다.

    시장 집무실에 기록담당 직원을 배치한 것도 눈에 띈다. 시장 집무실을 찾은 공무원과 외부인들의 대화 내용을 기록으로 남겨 시장 독대 과정에서 생겨날 수도 있는 부패의 싹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것. 그래서 왕조시대의 사관(史官)을 부활한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다.

    “업무능력이 좀 모자란 것은 용납될지 몰라도 부정부패는 용납할 수 없습니다. 부정부패와 단절하려면 먼저 시장인 저 자신에게부터 엄정해야 하고요. 그런 투명행정의 의지를 다지기 위해 논란이 될 만한 시점의 기록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했죠. 정조의 기록유산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잖아요.

    그렇지만 이 제도가 실제보다 과장되게 알려지면서 개인의 사생활까지 구속하는 것처럼 비쳐졌어요. 거듭 강조하지만 그 취지는 투명행정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가정 형편 때문에 미술가의 꿈을 접은 염 시장은 그림에 대한 미련 때문에 지금도 출장이나 여행을 떠날 때면 스케치북과 4B연필을 챙긴다고 한다. 아름다운 풍경과 마주하면 그 자리에 주저앉아 크로키를 그린다. 앞으로 4년, 그의 붓끝을 따라 그려질 수원은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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