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9월호

막장의 여왕? 마음 다스리기의 달인 장서희

“내 별명은 오뚝이 … 불꽃처럼 살다 훌쩍 떠난 여배우로 남고 싶어요”

  • 최영일 │문화평론가 vicnet2013@gmail.com│

    입력2010-09-01 13: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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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장의 여왕? 마음 다스리기의 달인 장서희
    여배우들을 인터뷰하다보니 자연스레 몇 가지 분류법이 생겼다. 화면에서 더 예쁜 배우, 실제가 더 예쁜 배우, 화면과 실제가 거의 같은 배우, 화면에서나 실제로나 예쁘지 않은 배우. 여기서 ‘예쁘다’는 것은 단순히 외모만의 얘기는 아니다. 인간으로서 뿜어내는 매력이 더 중요하다. 더욱이 ‘배우’라는 직업에서 이 ‘예쁨’과 ‘매력’은 바로 존재감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화면에서도 별로 매력이나 존재감을 못 느꼈는데 실제 만나도 돋보이는 무언가가 없으면 완전히 실망하게 된다. ‘존재 가치’에 대한 기대마저 무너지기 때문이다. 독자는 “그런 배우라면 인터뷰를 안 하면 되지 않나”라고 말하겠지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니다. 우선 한 번은 만나봐야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분류에 넣을 사람인지를 확인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 기준으로 봤을 때, 장서희는 실제의 모습이 화면으로 접했을 때와거의 비슷했다. 화면에서처럼 생동감이 있고 또 아름다웠다. 하지만 아름다움과 생명력을 빼면, 성격은 연기로 보던 캐릭터와는 완전히 달라보였다. 대화가 깊어지면서 처음 마음을 빼앗겼던 그녀의 맑은 눈과 예쁜 얼굴은 그리 중요하지 않게 느껴졌다. 대신 내면에서 새어나오는 빛이 점점 강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알 수 없는 카리스마에 슬슬 빨려들어갔다. 아마도 그것은 장서희 스스로도 인정하듯, 연기에 젊음과 생활을 모두 걸고 살아온 시간이 만들어낸 부산물이 아닌가 싶었다. 도를 닦듯 모진 풍파를 겪어낸, 이제야 막 평정심의 잔잔한 바다를 순항하기 시작한 ‘여인의 향기’가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도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흐트러짐 없이, 조곤조곤 차분하게, 때론 톡톡 튀듯 즐겁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인터뷰어는 본분을 잊고 그녀와의 대화에 빠져들었다.

    # ‘막장 드라마’의 여왕

    ▼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꽤 오랜 기간 장서희씨를 봐오면서 지적이고 도회적인 이미지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실제로는 ‘막장 드라마의 여왕’이라는 수식어도 달려 있거든요. 언제 이미지 변신을 하실 겁니까?

    “물론 많이 듣는 얘기지요. 하지만 지금 말씀에는 반론이 있어요 (이 ‘반론 있습니다’의 말투가 주는 여운은 글로 표현할 길이 없다. 똘망똘망한 어린 여학생의 반항에 찬 모습이 엿보였다고 하면 비슷할 듯싶다.) 막장 드라마라고 많이들 욕을 하시긴 해요. 그래도 시청률이 높다는 것은 수많은 시청자가 그만큼 관심을 보였다는 방증 아닐까요? 전 작품마다 나름의 가치가 있기 때문에 성공을 거두는 거라고 봐요. 요즘 시청자가 얼마나 예리하고 판단이 뛰어난데요. 단순한 ‘막장’만이었다면 그냥 안 보고 막 내렸겠죠.(웃음) 이야깃거리가 만들어지고 화제가 되는 것은 그만큼 ‘공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겠죠?”



    ▼ 그렇군요. 죄송합니다.(웃음) 그래도 지난해 ‘무릎팍도사’에 출연했을 때 본인 스스로 ‘막장의 여왕으로 이미지가 굳을까봐 고민이에요’라고 하신 적도 있잖아요.

    “그게요. 재미있는 사실이 있어요. 제가 드라마에서 독한 역을 맡다보니 많이들 ‘악녀’ 이미지로 생각하셔서 고민은 되었죠. 그런데 지금까지 ‘악역’을 맡아본 적은 없어요. 드라마 속 캐릭터는 다 그렇게 폭발할 법한 사건과 배경을 가지고 있는 비련의 여주인공이었거든요. 사실 악을 가했던 진짜 악역들에게 복수를 하는 내용들이었지요. 그래서 저 나름대로는 연기하면서 속으로 묘미를 느꼈지요.”

    ▼ 복수와 독기에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네. 이유가 있어요. 제 연기생활이 대기만성형이거든요. 꽤 오랫동안 무명으로 활동하다가 서른이 되어서야 ‘인어아가씨’로 첫 주연을 맡았고 그 작품이 최고로 성공했죠. 그래서 나름 설움이 많았어요. 참았던 설움이 복수로 터져나오는 대목을 연기하면서 남몰래 저 자신만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던 것 같아요.(웃음)”

    ▼ 그러면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인어아가씨’나 ‘아내의 유혹’에서와 같은 복수극의 여주인공을 하실 건가요?

    “요즘 심각하게 고민 중이에요. 저희 집에 10여 개의 각종 연기상 트로피와 상패가 놓여 있어요. 그중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두 개 있는데요. 2002년 ‘인어아가씨’로 받은 MBC 연기대상과 작년 ‘아내의 유혹’으로 SBS에서 받은 연기대상이에요. 이 두 개의 상이 지금까지 제가 오랜 연기생활에서 거둔 가장 큰 성취거든요. 그런데 일반 시청자를 만나거나 인터넷에 올라온 댓글을 보면, 최근 작품인 ‘산부인과’를 칭찬해주시는 분이 아주 많아요. ‘이제야 장서희가 자신에게 맡는 역을 하는 것 같다, 너무 좋다, 축하한다’는 얘기를 많이들 하세요. 이런 반응에 스스로도 깜짝 놀랄 정도예요. 그런 걸 보면 아무래도 변신을 계속 시도해야 할 것 같아요.”

    # 뽀빠이 아저씨

    ▼ 그러고 보니 최근 예능 프로그램에서 뽀빠이 이상용씨가 37년 방송경력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로 장서희씨를 지목했더군요. ‘모이자 노래하자’ 진행자로 객석에 있던 장서희 어린이를 무대로 불러 올려 데뷔시키고, 일곱 살 때부터 함께 진행을 했다고 밝혀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죠.

    “그래요? 전 못 봤는데, 그런데 맞아요. 뽀빠이 아저씨와의 인연으로 제가 방송에 데뷔했거든요. 그런데 아저씨가 조금 착각하셨나보다. 그게 일곱 살이 아니고 열한 살 때였어요. 4학년 때였고 6학년 때까지 ‘모이자 노래하자’를 아저씨와 진행했었죠. 그리고 장래희망을 결정하고 열아홉 살에 MBC 공채 19기 탤런트로 입사해서 본격적인 전업 연기자 생활을 시작했지요. 지금까지 전 연기밖에 모르고, 연기만 하며 살아왔어요. 그거 아세요? 연예인은 작품에 캐스팅이 돼서 그 안에서 연기하며 살아갈 때는 화려하고 행복하지만 작품이 끝나고 쉴 때면 완전히 백수예요.(웃음) 이것도 일종의 전문직이라 그런가? 일반 직장인과는 큰 차이가 있어요.”

    ▼ 열한 살 때부터 방송생활을 하셨으니 이건 뭐 30년 가까이 연예인 생활을 해온 거잖아요? 연기대상으로 인생을 건 성취는 하셨는데 가장 힘들었던 기억은 어떤 건가요?

    “2002년 ‘인어아가씨’로 주연을 맡기 전까진 무명생활이 가장 힘들다고 생각했어요. ‘무릎팍도사’에서도 얘기했는데, 매일 방송국 화장실만이 제 마음을 다스리는 공간이었죠. (웃음) 이런저런 설움에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그런데 겪어보니, 처음 연기대상을 받고 나서 작년에 재기할 때까지 정점과 정점 사이의 공백기간이 더 무섭더라고요. 2005년까지는 영화 ‘귀신이 산다’도 개봉하고 나름 괜찮았는데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중국에서 주로 활동(중국에서는 역사드라마 ‘경자풍운’에 출연했다)하는 동안 ‘장서희는 이제 갔다. 나이가 많아 재기도 어렵다’는 식의 얘기가 많이 나와서 아주 힘들었어요. ‘인어아가씨’ 주연 발탁에 대한 왜곡된 오해까지 증폭되면서 더 힘들었죠. 그때 깨달았어요. 성공하기까지보다 정상에서 굴러 떨어질 때가 더 무서운 거라는 걸요.”

    ▼ 지금 아주 좋아보이는데 그 번뇌의 시기를 어떻게 이겨내셨나요.

    “첫째는 가족의 힘이죠. 제가 복이 많은 것이 부모님과 언니 둘, 저희 가족이 너무나 끈끈해요. 식구 중 하나가 잘나가는 연예인이면 소녀가장이 되거나, 어쨌든 나머지 가족의 의존도가 커지거나 하면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되는데 저희는 엄마와 언니들이 늘 마음속 깊이 지지해주면서 ‘너 하기 싫은 건 하지 마. 우리가 밥 먹여줄게’ 하시거든요. (웃음) 그게 늘 든든하죠. 그리고 둘째는 마음수양. 정말 많이 했어요. 틈만 나면 전국의 좋은 사찰들을 방문하며 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노력을 엄청나게 했지요. 많은 연예인이 성공과 인기에서 밀려나는 것이 두렵고 힘들어 우울증에도 빠지고 자살도 하잖아요. 무엇보다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젠.”

    # 장서희의 일상생활

    ▼ 서희씨의 연기인생을 듣고 나니 참 대단해 보이세요. 불굴의 여인이었군요.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잔 다르크’였죠?

    “아우, 민망해요. 그냥 팬들이 불러주는 별명인 ‘오뚝이’ 정도?”(웃음)

    막장의 여왕? 마음 다스리기의 달인 장서희
    ▼ 이젠 가볍게 일상생활 얘기도 들려주세요.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시나요.

    “음, 좋아하는 건 강아지! 전 귀여운 새끼동물이 좋아요. 큰 개 말고 예쁜 강아지, 또 사자도요. 자그마할 때. 그런데 고양이는 싫어요. 왜냐하면 고양이는 아홉을 잘해주다가 하나 잘못하면 할퀴잖아요? 강아지는 그런 게 없죠. 일단 믿으면 무한 충성하는 그런 관계랄까. 그러고 보니 사람관계에 대한 비유도 되겠네요. 전 신뢰할 수 있는 관계가 좋아요. 아, 그리고요. 새도 무서워해요.”

    ▼ 새가 왜요? 예쁘기만 한데.

    “어릴 적 기억과 관계되는 것 같아요. 새 자체보다 새의 ‘부리’를 아주 무서워하는데요. 어릴 때 명화극장에서 그, 히치콕 감독의 ‘새’, 그 영화 보다가 새떼가 사람을 막 덮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지금까지 영화의 공포감이 남아있는 것 같아요. 너무 소심한가요?”(웃음)

    ▼ 좋아하고 싫어하는 게 다 동물이네요.

    “음, 그리고 여행 좋아해요. 해외나 국내 두루 다녀봤지만 앞으로 나이 들어가면서 더 유유자적하게 가고픈 곳으로 훌쩍 떠날 수 있는 삶이면 좋겠어요.”

    ▼ 다녀본 여행지 중 어디가 제일 좋으셨나요?

    “터키예요. 그곳이 특별했던 것은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묘하게 섞여 있고, 또 오랜 과거와 현대가 안 어울리는 듯 조화롭게 섞여 있어서 큰 매력이 느꼈죠.”

    ▼ 아까 직접 말씀하셨듯이 낼모레 마흔인데 결혼관이나 바라는 배우자상은요?

    “하하, 나이가 있으니 환상은 없죠. 저라고 연애를 안 해봤겠어요? 지금 바라는 것은 꽤 간단해요. 날 존중해주고, 나를 자랑스러워해줄 남자가 있다면 그걸로 족한데 제가 바라는 자유로움을 지켜주면서 그렇게 해줄 상대가 쉽게 있겠어요?”

    장서희와의 인터뷰는 한참 더 계속되어도 이야기가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마치 천일야화 아라비안나이트처럼. 그러나 사람의 만남과 대화에는 시작과 끝이 있게 마련. 장서희는 자신의 연기인생이 바닥부터 시작하는 후배 연기자들과 하루하루 노력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고진감래’라는 고사성어의 사례로 전달되길 바란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바라는 미래를 물었다. 그녀는 뜬금없이 ‘문숙’이라는 이름을 꺼냈다. 문숙 여사는 1970년대를 풍미했던 여배우다. 최근 국내 매체에 등장하기까지 오랫동안 대중의 기억에서 사라졌던 이름. 고(故)이만희 감독과 23세의 나이차를 뛰어넘은 로맨스로 결혼했으나 이 감독 사망 후 실의에 잠겨 한국을 떠나 하와이 마우이 섬에서 자연을 벗 삼아 살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장서희는 문숙 여사의 모습에서 여배우로서의 자아가 깃들어 있으면서도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 사는 삶을 봤다고, 아름답게 느껴졌다고 말한다. 자신도 연기에 대한 열정을 다 불태우고 나면 어디론가 훌쩍 떠나 자유롭고 평화로운 일상의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인터뷰 다음날 국제봉사 홍보대사 활동을 위해 베트남 하노이로 떠난다는 그녀와 헤어지며 문득 “올겨울 개봉 예정인 ‘사물의 비밀’에서 연하의 제자와 사랑에 빠지는 여교수를 연기할 장서희는 또 어떤 모습일까” 생각했다. 생각만으로도 조바심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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