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9월호

“인간다운 삶은 끝까지 보장되어야 한다”

최고의 시스템 갖춘 요양시설, 장인정신으로 무장한 요양사, 최적의 서비스 제공

  • 독일 도나우워드, 고핑엔 =글·사진 | 구자홍 기자

    입력2010-09-01 17: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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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에서 노인장기요양제도가 시행된 지 꼭 2년이 지났다. 전국 곳곳에 수많은 요양시설이 생겨났고, 요양보호사 자격을 취득한 이도 50만명을 넘어섰다. 양적인 면에서 보면 노인장기요양제도가 빠르게 정착한 모양이다. 이제는 질적인 측면에서 서비스 수준을 높여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한국보다 앞서 장기요양제도를 시행한 독일은 ‘노인들의 천국’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을 만큼 잘 갖춰진 시스템과 품질 높은 서비스를 자랑한다. 독일의 노인요양시설 평가에서 최고점수를 받은 요양원 몇 곳을 직접 돌아봤다. 시설에 입소한 노인들의 생활습관에 맞춰 서비스를 제공하고, 무엇보다 모든 일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운영의 원칙으로 삼고 있었다. 침상에 마냥 누워 죽을 날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새로운 삶을 영위하도록 도우려는 독일의 장인정신이 인상적이었다.
    “인간다운 삶은 끝까지 보장되어야 한다”
    HIER BIN ICH MENSCH,

    HIER DARF ICH?S SEIN.

    (여기 나는 인간이고,

    여기서 나는 인간답게 산다.)

    - GOETHE -



    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Baden Wu˙˙rttemberg)주 고핑엔(Goeppingen)시 근교 바트 위버킹엔(Bad U˙˙berkingen)에 위치한 플레게하임 암 뮐바흐(Pflegeheim am Mu˙˙hlbach) 현관에는 괴테의 글귀가 적혀 있다. 노인요양시설에 대한 독일 정부의 MDK(Medizinischer Dienst der Krankenversicherung·건강보험 의료서비스 단체) 평가에서 최고점수를 받은 이 요양원은 ‘입소한 환자 누구나가 인간의 존엄을 지키며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고 있다.

    요양원 원장 우테 그뢰너(Ute Gro˙˙ner)는 “비록 몸은 요양원에 와 있지만 집에서 생활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도록 취미와 경력, 생활습관 등을 감안해 최적의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그의 얘기는 요양원을 둘러보는 동안 충분히 실감할 수 있었다. 점심식사 시간이 한참 지난 시간에도 층마다 마련된 간이취사장에서는 늦은 점심식사를 하는 노인을 마주할 수 있었고, 몸이 불편한 노인을 위해 침실로 음식을 배달하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다. 식사를 마친 노인 가운데에는 요양원 주변을 산책하거나, 휴게공간에 삼삼오오 모여앉아 담소를 나누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몸이 불편하고 기력이 쇠했을 뿐 저마다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 다양한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노인들의 모습이 평화로워 보였다.

    ‘집처럼 편안하게’라는 슬로건은 노인들이 기거하는 생활공간에서부터 철저히 지켜졌다. 품질관리 담당자(Qualita˙˙ts Management) 다그마르 융블루트 라슬(Dagmar Jungblut-Rassl)은 “장기요양하는 노인을 위해 요양원 차원에서 옷장과 책상 등 생활비품을 구비해놓는데, 원한다면 집에서 쓰던 것을 가져와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손때 묻은 옷장이며 책상 등 눈에 익은 물건들을 생활공간에 두도록 함으로써 낯선 환경으로 옮겨왔다는 불안감을 떨쳐내고 노인들이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요양원의 배려였다.

    “인간다운 삶은 끝까지 보장되어야 한다”

    뮐바트 요양원 안내 팜플릿.

    노인요양 전문회사, avendi

    젊은 나이에는 머리로는 짐작하면서도 실감하지 못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노년의 삶이다. 힘과 체력이 뒷받침돼 의지대로 몸을 움직여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때에는 ‘설마’하는 생각에 별 걱정 안하고 지내지만, 막상 몸이 맘처럼 움직이지 않게 됐을 때 찾아오는 상실감과 좌절감은 말로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다. 더군다나 치매 등으로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고 원활한 의사소통마저 어렵게 되면, 본인은 물론 가족 등 주위 사람들까지 어려움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혼자서 생활하기 어려운 노인들의 생활을 도와 가정에 과도한 짐이 되는 것을 사회가 흡수하기 위해 시행한 제도가 바로 ‘노인장기요양제도’다. 우리나라에서는 몇 차례 시범사업을 거쳐 2008년 7월1일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독일은 우리보다 앞서 1995년부터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우리가 걸음마를 막 뗀 단계라면, 독일은 이제 성숙기에 접어든 셈이다.

    플레게하임 암 뮐바흐의 시설과 운영 노하우는 노인요양시설의 존재 의의가 무엇인지를 새삼 일깨워줄 만큼 모범적이었다. 1970년대 호텔 영업을 목적으로 세워진 건물을 개조해 1980년대부터 요양원으로 운영해왔다는 뮐바흐 요양원은 독일 만하임(Mannheim)에 본사를 둔 아벤디(avendi Senioren Service GmbH)사에서 2001년 인수해 운영해오고 있다. 아벤디는 독일 14개 지역에 요양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독일의 대표적인 노인요양 전문회사다.

    뮐바흐 요양원에서는 장기요양과 단기, 일일요양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장기요양 수용 가능인원이 99명이다. 싱글룸이 39개, 더블룸이 30개로 구성돼 있다. 단기, 일일요양은 6명 정도가 출퇴근하며 이용하고 있다.

    “인간다운 삶은 끝까지 보장되어야 한다”

    노인들이 과거를 회상하며 기억을 더듬어볼 수 있도록 마련된 바이오그라피(Biographie)룸.

    3개 층으로 구성된 요양원은 층마다 입원한 노인들이 거주하는 생활공간과 공동 휴식공간, 간이취사장, 노인전용 욕실, 요양보호사 사무실 등이 갖춰져 있다. 지층(독일에서 1층은 우리나라 2층에 해당한다. 우리나라 1층은 독일에서는 Erde(지층)로 불린다)에는 공동으로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과 주방이 있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테라스와 정원 등이 조성돼 있다. 또한 세미나를 하거나 예배를 볼 수 있는 다용도실과 각종 테라피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체조실이 자리 잡고 있다.

    잘 갖춰진 시설도 훌륭했지만 무엇보다 노인 개개인의 생활습관에 초점을 맞춰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사회복지사 시몬 쉬퇴러(Simon Sto‥hrer)씨는 “노인분이 요양원에 입원할 때에는 먼저 그분이 살아온 과거 이력에 대해 본인과 가족들로부터 상세히 청취한다”고 했다. 그간 살아온 삶을 고려해 요양 서비스를 설계하기 위해서라는 것. 예를 들어 제과나 요리 분야에 종사해왔던 노인은 여러 요양 훈련 프로그램 가운데 비슷한 일을 경험한 노인들과 함께 그룹을 이뤄 훈련을 받도록 한다. 그렇게 되면 좀 더 편안하게 요양 프로그램에 임하게 된다고 한다. 쉬퇴러씨는 “거동이 불편하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도록 하고, 무조건 편하게 해주는 것이 노인을 위하는 길이 아니다”며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조금이라도 더 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요양의 목적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뮐바흐의 자랑, 바이오그라피룸

    이 때문에 뮐바흐 요양원에 근무하는 요양사들은 노인들이 스스로 옷을 입거나, 세수를 하도록 옆에서 거들고, 식사도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도록 보조 역할을 하는 데 그친다. 전혀 거동하지 못하는 노인들에게는 이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조금이라도 할 수 있겠다 싶으면 인내심을 갖고 곁에서 지켜보며 필요할 때 거든다고 한다.

    요양원 곳곳에는 노인들이 지각과 감각 능력을 되살리고 훈련할 수 있도록 여러 장치를 해두었다. 요양원 복도 한켠에는 수세미, 빗자루, 먼지떨이, 구둣솔 등을 걸어둬 지나다니는 노인들이 직접 만져보고 촉감을 느낄 수 있도록 했고, 맞은편에는 여러 가지 조화를 걸어둬 꽃에 대한 기억도 더듬고 색감도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융블루트 라슬씨는 “여러 자극을 경험해 감각을 되살릴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요양원 곳곳에 노인들이 평소 생활하면서 자주 접했던 익숙한 물건들을 설치해뒀다”고 소개했다.

    노인들의 생활공간으로 통하는 복도 정면에는 같은 층에서 생활하고 있는 노인들의 사진을 걸어뒀다. 한결같이 밝게 웃는 모습이었다. 사회복지사 쉬토러씨는 “사진은 요양원에 기거하는 노인을 만나러 온 가족들을 위한 것”이라며 “밝고 즐거운 모습으로 함께 생활했던 기억을 떠올릴 수 있도록 밝은 사진을 걸어두고 있다”고 했다.

    취재진이 요양원 시설 곳곳을 둘러보는 동안에도 요양사들은 분주히 움직였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모시고 휴게공간으로 이동하는가 하면, 치료용 애완견 ‘배니’와 함께 노인을 찾아가는 요양사도 있었다. 아직 식사를 하지 않은 노인을 위해 별도의 식사를 준비해 방으로 배달하는 이도 있었다. 여러 사람이 함께 공동생활을 하는 모습 속에서 ‘소외’라는 단어는 들어설 자리가 없어 보였다.

    요양원 3층 좌측 끝 전망 좋은 방에 들어서자 오래된 흑백영화에서나 봤음직한 장면이 펼쳐졌다. 낡은 테이블 위에 어딘지 모르게 촌스러워 보이는 문양의 식탁보. 수십 년 전에 독일 일반 가정에서 즐겨 사용했다는 주방가구들과 싱크대, 수납장, 거실장 그리고 구닥다리 TV와 라디오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곳은 뭐하는 방입니까?”

    생경한 풍경에 호기심이 일었다.

    “이곳은 노인들이 과거를 회상하며 기억을 더듬어볼 수 있도록 마련된 바이오그라피(Biographie)룸입니다. 노인들이 젊었을 때 즐겨 썼던 물건들을 한데 모아놓은 곳이죠.”

    인터뷰 | 뮐바흐 품질관리 담당자 다그마르 융블루트 라슬씨

    “품질관리 통한 요양서비스 표준화가 효율경영 밑거름”


    “인간다운 삶은 끝까지 보장되어야 한다”
    품질관리 담당자? 독일 요양원에는 다소 생경한 직책을 가진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요양사의 서비스를 지도 감독하고, 더 나은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 주요 업무라고 했다. 뮐바흐 요양원에서 품질관리를 맡고 있는 다그마르 융블루트 라슬씨는 요양원 근무 경력이 28년이나 되는 베테랑 중에 베테랑이었다.

    -뮐바흐 요양원의 핵심적인 운영이념은 뭡니까.

    “저희 요양원에 들어서면서 건물 입구 벽면에 쓰여 있는 괴테의 문구(Hier bin ich Mensch, hier darf ich?s sein)를 보셨나요? 저희 요양원의 운영 슬로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일무이한 존재인 모든 거소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우리 요양원의 최대 경영이념입니다. 우리는 요양원의 모든 거소자가 인간으로서 존중받으며 과거 자신의 삶, 그리고 개개인의 일상을 이곳에서도 최대한 동일하게 연장,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2010년 1월 독일 건강보험사 의료서비스 단체인 MDK의 품질관리평가에서 최고점수인 평점 1(1에 가까울수록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이고, 숫자가 클수록 나쁜 평가다)을 받았던데, 비결이 뭡니까.

    “아벤디 본사에서 매달 한번씩 MDK 평가와 같은 수준의 자체 평가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평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자체 점검을 꾸준히 해온 것이 비결이라면 비결일 수 있겠습니다. MDK 평가요원들은 예고를 하고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날 갑자기 현관 앞에 서서 평가를 시작하기 때문에 요령이 있을 수 없습니다. 평소 요양원을 운영하는 모습 그대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지속적으로 서비스 품질관리를 하고, 이를 통해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더 많은 비용 부담이 불가피할 텐데, 그럼에도 타 요양원에 비해 더 저렴한 비용을 받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최고의 서비스를 저렴하게 제공할 수 있는 경영비결이나 노하우는 뭡니까.

    “Planen(계획수립)입니다. 거소자 급식을 위한 장보기에서부터, 요양보호사의 인력운용, 요양서비스 품질관리, 사회복지 프로그램 등 모든 분야에서 철저한 자료 분석을 기반으로 체계적으로 계획을 수립해 시행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모든 거소자의 생활습관을 분석해 환자 대다수가 아침식사를 오전 9시경에 하는 경우, 그 시간대에 요양보호사를 집중 배치하는 겁니다. 아침식사 시간대를 중심으로 세안과 옷입기 등이 이뤄지기 때문에 기초신체관리를 하는 데 많은 인원이 필요합니다. 아침 6시나 7시에 식사를 하는 거소자가 적은데도 모든 시간대에 같은 인력을 배치하는 것은 경제적인 면에서 효율적이지 못합니다.”

    뮐바흐 요양원에 근무하는 요양보호사는 크게 정규직과 파트타임으로 나눌 수 있는데, 파트타임 직원은 오전 9시를 전후해 집중배치한다고 한다. 일손이 달릴 때에는 더 많은 인원을 투입하지만, 오후나 저녁 등 비교적 한가한 시간대에는 필수인력만 투입한다는 것. 이 같은 인력배치를 통해 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다고 한다. 뮐바흐 요양원은 또 직업을 갖고 있으면서 노인요양시설에서 자원봉사를 하려는 이들에게는 주말과 휴일에 와서 돕도록 하고 있다. 이런 인력운용을 통해 요양보호사는 충분히 쉴 수 있고, 요양원은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공백 없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요양서비스는 사람이 제공해야 한다는 점에서 개개인에 따라 서비스의 내용이나 질적인 면에서 차이를 보일 수 있는데, 균일한 서비스 제공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까.

    “사람에 따라 서비스에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품질관리가 중요합니다. 아벤디는 품질관리를 기업의 핵심정책으로 삼고, 모든 요양과정을 표준화하고, 회사 고유의 가이드라인을 설정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이드라인은 실제 요양원에서 실무과정을 통한 재검증 과정을 거치면서 끊임없이 보완하고 수정합니다. 품질관리를 통한 요양서비스의 표준화는 효율적인 경영의 밑거름이 되고 있습니다.”

    -뮐바흐 요양원에서 제공하는 사회복지 프로그램의 특징이 있다면….

    “우리 요양원에서 제공하는 모든 사회복지 요양 프로그램은 ‘자율성’을 원칙으로 실행되고 있습니다. 즉 단체 공동생활에서 오는 강요나 강제성은 용납되지 않습니다. 모든 거소자가 참여할 수 있는 기본 단체 프로그램도 공동 참여를 권하지만, 절대 강요하지 않습니다. 한 거소자가 단체 테라피에 거부감을 보이며 개별 테라피를 원하면 우리는 그 기회를 제공합니다. 거소자 개개인이 요구하는 서로 다른 욕구에 유연하게 대응함으로써 개개인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 바로 우리 요양원 사회복지 프로그램의 핵심입니다. 예를 들어 뜨개질이 취미인 거소자가 뜨개질을 원하면 기본 프로그램에 뜨개질 작업이 포함돼 있지 않더라도 거소자의 욕구에 맞춰 뜨개질 작업을 함께 합니다. 그림을 그리자고 하면 함께 그림도 그리고요.”

    뮐바흐 요양원을 비롯해 아벤디가 운영하는 요양원에서는 거소자 개개인의 개인사에 대해 복합적으로 자료를 수집하고, 체계적으로 분석한 뒤 요양 프로그램을 짠다고 한다. 즉 개개인의 삶의 경험이나, 기호, 취향, 취미생활과 생활습관, 과거 직업 등에 대해 자료를 수집하고, 이를 토대로 테라피에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내용과 역효과를 낼 수 있는 프로그램을 구분해 요양계획을 수립한다는 것이다.

    최근 뮐바흐 요양원에서는 테라스 보수공사를 했는데, 주변에 허브정원을 새로 마련했다. 과거에 정원일을 취미로 했던 거소자들이 공동작업을 통해 완성했다. 자신이 과거에 즐겨 하던 일에 동참하게 된 노인들은 모두 적극적으로 작업했고, 허브정원에서 수확한 허브로 차도 함께 끓이고, 아로마테라피에도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 같은 활동은 바로 거소자들의 개인사 분석을 통해 얻은 자료를 테라피에 긍정적으로 활용한 예라 할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사방 벽지도 아주 오래전에 쓰였던 것들이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1950년대나 60년대로 시간을 거슬러 온 느낌을 줬다.

    바이오그라피룸은 독일에서도 뮐바흐 요양원에서 최초로 시도한 것으로, 특히 치매환자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입원 이후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치매환자가 옛 물건들이 놓인 바이오그라피룸에 들어와 “이것은 무엇에 쓰던 물건이다. 저것은 어디에 쓴다”며 말문을 연 경우가 있다고 한다. 또 한번은 요양보호사가 되기 위해 인턴과정을 밟던 17세 된 소녀에게 치매를 앓던 노인이 오래된 전자제품의 기능을 설명해주며 대화를 나눠 친하게 된 일도 있다고 한다. 옛 물건들이 세대차를 뛰어넘어 함께 대화를 나누게 만드는 매개가 되고 있는 셈이다. 바이오그라피룸은 요양원을 거쳐간 환자들이 사후에 유품을 요양원에 남기고 떠나면서 아이디어를 얻게 됐다고 한다.

    “요양원에 입원한 노인 가운데에는 자신이 썼던 손때 묻은 오래된 가구를 곁에 두고 싶어하는 노인이 많아요. 노인께서 돌아가시고 나면 유품이 요양원에 남는데, 어떻게 처리할까 궁리하다가 한데 모아보자고 아이디어를 낸 것이지요. 요양원에 기거하시는 노인 분들은 이 방을 특히 좋아하세요. 그렇지만 요양원을 운영하는 저희 입장에서는 노인들의 가족에게 충분히 설명해야 하는 문제가 있어요. 자칫 ‘이 요양원은 오래된 물건들만 쓰나? 시설이 왜 이래?’하는 생각을 하실 수도 있으니까요.”

    독일 요양서비스 수준 높이는 지렛대, MDK 평가

    “인간다운 삶은 끝까지 보장되어야 한다”

    뮐바흐 요양원에 대한 MDK 평가표.

    독일에서 장기요양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설은 정부 차원에서 실시하는 MDK 평가를 받는다.

    MDK에서 실시하는 요양품질관리제도는 2008년 7월1일자로 시행된 독일 요양제도 발전안에 따라 기존의 자체 품질관리 평가제도와 MDK를 통해 이루어진 외부 평가제도를 통합, 보완해 실시되고 있다. 올 연말까지 독일 전역의 모든 장기요양 서비스 업체를 평가한 뒤 내년부터는 연 1회 평가를 실시할 예정이다.

    지금까지는 평가 결과가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평가내용을 소비자가 인터넷을 통해 확인해볼 수 있도록 공개할 방침이다.

    장기요양업체에 대한 평가항목은 크게 다섯 개 분야 총 82개 항목으로 이뤄져 있다. 요양/의료서비스 분야에서 총 35개 항목에 걸쳐 평가를 하고, 치매환자와 관련된 요양내용 10개 항목, 사회복지와 일일 생활프로그램 10개 항목, 거주시설, 급식, 위생 등 9개 항목, 입소자 설문조사 18개 항목 등이다.

    MDK의 평가 항목은 전문가표준(Exper-tenstandard)을 기준으로 만들어진다. 전문가표준은 요양과 관련한 서비스 질 향상을 위해 학술적인 방법론을 기반으로 요양서비스의 질을 표준화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즉 개별적인 요양서비스가 실무에서 어떻게 적용돼 수행되어야 할지를 설명하고 있다.

    독일은 1999년 이래 국가 차원에서 전문가표준을 만드는 작업을 진행해왔는데 우선 전문가들이 함께 모여 논의를 하고, 학술자료분석을 거쳐 컨퍼런스를 통해 연구내용을 단일화한 뒤, 현장에서 수행하면서 수정, 보완 작업을 거쳐 표준화한다.

    2009년까지 욕창예방치료와 통증관리, 낙상예방, 비뇨기(요실금 등) 관련 훈련, 만성적 창상 환자 요양법, 영양관리, 그리고 After Care Management(병원 퇴원 후 관리 등) 등 7개 분야에 전문가표준이 만들어져 실무와 평가에 활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치매환자 관련 요양법에 대한 표준화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이 같은 요양서비스에 대한 표준화 작업은 전국 어디서나 동일한 양질의 요양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노인요양시설에 대한 MDK 평가는 이 같은 전문가표준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항목들에 대한 이행 정도를 실사해 계량화함으로써 이뤄진다.

    ‘신동아’가 방문한 뮐바흐 요양원과 도나우워드 BRK는 모두 MDK 평가에서 최고 수준의 점수를 받은 기관이다. 특히 뮐바흐 요양원은 1점을 기록해 만점을 받았고, BRK 역시 1.4점으로 만점에 가까운 수준의 평가를 받았다.

    MDK 평가항목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수발/의료서비스 분야에서는 욕창과 외상 처리를 어떻게 하는지, 낙상위험은 없는지, 낙상시 보고는 어떻게 하는지 등 노인의 일상생활과 관련한 세부적인 항목까지 꼼꼼하게 체크해 평가한다. 치매노인환자의 경우에는 개인사를 고려한 요양법을 시행하고 있는지, 환자의 의사결정권을 어느 정도 존중하는지, 치매환자의 생활에 대한 기록과 문서화를 어느 정도 하고 있는지 등을 중점 점검한다. 특히 안전장치가 있는 외부공간이 있는지 등 치매환자의 활동공간까지 감안한 평가가 이뤄진다.

    이처럼 MDK 평가는 요양시설에 입소해 생활하는 노인들의 생활 편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MDK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수급자 입장에서 시설을 갖추고, 요양 프로그램을 운용해야 한다. 요양시설을 운영하는 이들 모두가 장인정신으로 무장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좋은 평가 시스템을 바탕으로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있어 장기요양 중인 노인들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바이오그라피룸에 대한 노인들의 반응이 뜨겁자, 요양원은 복도와 다른 층 휴게공간으로 확대할 계획을 갖고 있다. 요양원 현관에는 기자가 아주 어릴 적 어머니가 사용하시던 것과 비슷한 오래된 재봉틀이 놓여 있었다. 어릴 적 추억이 담긴 재봉틀을 발견한 기자는 참으로 반가웠다. 30년의 세월을 거슬러 과거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이제 막 40대에 들어선 기자도 그처럼 반가운 마음이 들었는데, 노인들이 수십 년 전 추억이 담긴 물건을 봤을 때 얼마나 기쁠지 충분히 짐작이 됐다.

    “요즘은 옛날 가방을 수집하고 있어요. 다양한 재료로 제작된 옛 가방을 수집해서 바이오그라피룸 앞 통로에 걸어둘 생각이에요. 자극이 필요한 치매환자들에겐 촉감자극을 위한 치료도구로 사용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융블루트 라슬씨는 “바이오그라피룸은 뮐바흐 요양원을 대표하는 가장 특징적인 명소”라면서 “앞으로 독일은 물론 한국 등 다른 나라에 우리의 좋은 사례가 전파되길 바란다”며 활짝 웃었다.

    독거노인의 벗, 재가서비스

    “인간다운 삶은 끝까지 보장되어야 한다”

    카리타스 재무담당 Martin Gaertner씨.

    독일은 2009년 1월1일 이후 모든 요양서비스 수급자가 요양컨설턴트에게서 상담과 조언을 구하는 등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법으로 규정해놓고 있다. 따라서 시설에 입소해 장기요양을 하거나, 출퇴근하면서 단기 요양 서비스를 받는 방법 외에도 가정에서 가족과 함께 생활하거나, 실버타운 등에 거주하는 노인들도 요양서비스 수급자로 선정되면 재가서비스(방문요양)를 이용할 수 있다. 방문요양은 서비스기관과 요양서비스 수급자 간 계약을 통해 이뤄지는데 노인의 상태에 따라, 또는 필요에 따라 꼼꼼하게 계약내용을 명시한다. 그렇지만 실제 요양서비스를 제공하다보면 계약된 시간을 초과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고 한다.

    7월26일, 독일 전역에 체인을 두고 운영되는 대표적 재가서비스 기관 카리타스(Caritas-Sozialstation)의 도나우워드 지부를 찾았다. 방문요양사 넨닝(Nenning)씨는 매주 월요일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실버타운을 찾아 노인들과 상담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기자가 동행한 7월26일에는 다음날(27일)로 예정된 고기파티 메뉴를 묻는 것이 주 목적이었다. 카리타스 도나우워드 지부에서 재가서비스를 받는 노인들을 위해 돼지고기를 숯불에 구워 대접할 예정이었는데,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노인에게는 칠면조 등 다른 고기를 제공하려고 선호하는 고기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오전 11시15분에 시작된 넨닝씨의 실버타운 방문은 점심시간을 훌쩍 넘겨 오후 2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일주일 만에 넨닝씨를 만난 노인들은 짧게는 5분, 길게는 20분 이상을 붙잡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통에 점심도 거른 채 일해야 했던 것. 15명의 노인 가운데 집에 있는 10여 명의 노인을 만나는 데 3시간 가까이 소요된 셈이다. 직접 만나지 못한 노인에게는 별도로 전화를 걸어 선호하는 고기를 묻고, 불편사항 등을 청취할 예정이라고 했다.

    방문요양은 단순히 생활하는 데 불편한 점을 청취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의 불화, 개인적 관심사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노인들의 ‘말동무’가 돼주는 작업이다. 그뿐만 아니라 노인들이 얘기한 불편사항 등은 즉시 해결이 가능한 것은 현장에서 해결해주고, 그렇지 않은 사항에 대해서는 꼼꼼히 기록해 카리타스 차원에서 혹은 실버타운 관리실에 연락을 취해 시정해준다.

    실버타운에 거주하는 왈터(Frau Walter) 부인은 “요양사가 매주 한 번씩 찾아와 이것저것 어려운 점을 묻고 해결해주는 것이 생활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재가서비스는 기본 케어에서부터 방문간호, 가사업무 보조, 긴급비상전화, 가족구성원들에 대한 요양교육과 상담, 발마사지, 낙상예방교육 등 다양하게 이뤄진다. 필요한 경우 음식물을 배달해주기도 한다. 재가서비스 기관 역시 이 같은 재가서비스 내용에 대해 MDK로부터 평가를 받는데, 기자가 동행한 카리타스 도나우워드 지부는 평점 1.1을 받았을 정도로 수준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다.


    치매환자 체류공간 Bernstein

    독일을 여행한 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가보는 곳이 바로 ‘낭만가도’다. 중세부터 이어져온 작은 소도시들이 길을 따라 이어져 있어, 여행자는 고풍스러운 멋을 한껏 느낄 수 있다. 낭만가도가 시작되는 뷔르츠부르크에서 낭만가도를 따라 1시간30분쯤 내려가다보면 도나우워드에 도착한다. 도나우워드에는 독일 바이에른주 적십자에서 운영하는 요양전문기관 BRK-Pflegezentrum am Mongoldfelsen가 있다. 1963년부터 요양업을 시작했다고 하니, 무려 47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셈이다. BRK는 현재 129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 건물로 이전해 운영되고 있다.

    BRK는 장기요양은 물론, 단기, 일일요양과 재가서비스까지 제공하는 종합 노인요양시설이다. 특히 장기요양과 치매환자를 위한 별도의 체류공간을 둔 것이 특징적이다.

    “인간다운 삶은 끝까지 보장되어야 한다”

    BRK-Pflegezentrum am Mongoldfelsen 전경(왼쪽). 원장 안젤리카 쉐퍼.(오른쪽)

    원장 안젤리카 쉐퍼(Angelika Scha‥fer)씨는 열정적이었다. 노인요양시설 운영에 대한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그는 한국에서 찾아온 취재진에게 노인요양시설 운영 노하우를 하나라도 더 설명해주기 위해 온 힘을 쏟았다. 그 덕에 2시간 예정이었던 인터뷰가 4시간 넘게 진행됐다. 이런 그의 모습에서 독일인 특유의 Meister(장인)정신이 느껴졌다.

    이곳의 시설에 기거하는 노인을 위한 프로그램은 뮐바흐 요양원과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다만 도나우워드 요양원에서는 ‘노인정신과’라는 이름의 치매환자 체류공간을 둔 것이 특이했다. 자신이 어디를 가는지도 모른 채 돌아다니기 십상인 치매환자를 위해 별도의 공간을 마련하고 특별한 자격을 갖춘 요양보호사를 배치해 운영하고 있었다.

    “치매환자 보호지역 Bernstein은 중증 치매환자를 위한 노인정신과의 성격을 띱니다. 평균기대수명이 길어지는 요즘 추세를 보면 치매는 독일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2008년 독일요양법 개혁안을 보더라도 치매에 대한 국가적 관심도가 매우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MDK가 주도하는 요양품질관리평가에도 치매환자를 위한 요양서비스 내용이 평가의 한 영역으로 구분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앞으로도 치매환자 수는 급속하게 늘어갈 전망입니다. 우리 요양원은 이런 추세에 대비해 중증치매환자를 위한 특별 요양서비스를 이미 1980년대 초반부터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쉐퍼 원장은 각 층에 구비돼 있는 환자전용 목욕실을 보여주며, 특히 치매환자 전용구간인 Bernstein의 독특한 목욕치료법에 대해 자세히 소개했다. 그는 “밝은 오렌지색과 노란색으로 꾸민 욕실에서 이뤄지는 치매환자 목욕은 단순한 신체관리 이상의 효과가 있다”며 “따뜻한 햇볕과 여름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어 삶에 대한 활력을 불어넣어준다”고 했다. 음악이나 아로마, 향료요법을 겸한 목욕치료법은 이곳에 머무는 치매환자들에게 웰니스(Wellness) 여행을 하는 것과 같다고 한다.

    비어가르텐에서 맥주 한잔

    “인간다운 삶은 끝까지 보장되어야 한다”

    요양원에서 장기요양 중인 노인들이 비어가르텐에서 맥주잔을 기울이고 있다.

    이밖에도 도나우워드 요양원에서는 시각과 청각, 후각, 촉각, 진동감각 등 다양한 감각을 제공해 심리적 안정과 신체적 안정을 되찾도록 하는 스뇌젤렌 룸(Snoezelen Room)을 활용한 치료와, 애완동물을 이용한 요법도 시도하고 있다. 특히 애완동물을 이용한 요법은 독일 학자들에 의해 의학적 효과를 인정받았다고 한다. 쉐퍼 원장은 “애완동물을 지켜보는 과정에 환자의 집중력이 높아지고 자연스럽게 심리적으로 안정을 되찾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고 했다.

    구름 낀 우중충한 날이 잦은 독일에서는 모처럼 햇살이 비치는 날이면 일과를 마친 이들이 ‘비어가르텐(Biergarten)’에 모여 맥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때마침 기자가 도나우워드 BRK를 방문한 7월22일은 날씨가 화창했다. 쉐퍼 원장과 함께 노인요양 시설 내부를 모두 둘러본 뒤 테라스 쪽으로 나오자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널찍한 마당 한켠에는 일반적인 비어가르텐처럼 커다란 나무 아래로 테이블이 여럿 놓여 있었다. 테이블마다 20여 명의 노인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휠체어에 앉은 채 맥주잔을 기울이는 노인도 보였다.

    “멋지다”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건강한 일반인과 조금도 다를 바 없이(비록 요양사의 도움을 받아야 했지만) 함께 맥주잔을 기울이는 노인들의 모습 속에 ‘웰빙’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웰빙이 건강한 젊은이들만의 전유물은 아니지 않은가. 노인들의 평화로운 모습은 마치 ‘아름다운 삶은 오랫동안 쭉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을 웅변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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