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일본 도쿄에서 열린 극동국제군사재판.
해마다 ‘종전기념일’엔 천황 부처와 총리 등이 참석한 가운데 도쿄(東京)황궁 옆의 일본무도관(武道館) 건물에서 전국전몰자추도식이 열리고, 무도관 바로 건너편에 있는 야스쿠니(靖國)신사엔 일본의 침략전쟁에서 숨진 군인, 군속(약 310만명) 등의 유족과 옛 일본군 군인들이 대거 참배한다. 근래 들어 참배객은 점차 줄어 20만명 안팍이라고 한다.
올해 8월15일은 일본이 패전한 지 정확히 65년이 되는 날이다. 이날 야스쿠니신사엔 예년과 마찬가지로 많은 옛 일본군 군인이 참배했다. 이들 대부분은 80대 중반을 넘긴 노인이기 때문에 그 수는 매년 줄어들고 있다.
참배객 중엔 옛 군복을 차려입고 나온 사람들도 있고, 과거 부대원들끼리 모여 부대 깃발이나 일장기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도 여기저기 눈에 띈다. 새벽부터 몰려든 보도진이 신사의 본전으로 통하는 배전(拜殿) 앞에 진을 치고 각료들 중 누가 참배하는지를 취재한다.
배전 입구 게시판엔 태평양전쟁 말기 경전투기를 몰고 미군함정 등에 자폭공격을 가했던 가미카제(神風)특공대원들이 출격 전 고향의 부모, 친지에게 보낸 편지가 게시돼 있다. 참배객들은 “천황폐하를 위한 성전에 기꺼이 목숨을 바치기 위해 내일 출격합니다.… 부디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시길 기원합니다”라는, 죽음을 앞둔 젊은이의 마지막 편지를 읽어본다. 편지를 읽은 일본인들은 “가와이소(불쌍하다)”라며 혀를 찬다.
전국에 8만여 개 신사
일본은 고대 이래 스스로를 신의 나라, 즉 신국(神國)이라 불렀고 일본인은 신도(神道)가 자연스럽게 일상생활 속에 배어있는 생활을 영위해왔다.
메이지(明治)유신(1868년) 이후 일본 정부는 “신국 일본은 신의 자손인 만세일계의 천황이 통치하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국체를 가지고 있다”는 국체 이데올로기에 근거해 천황에 대한 충성심을 강화시키고 침략전쟁에 국민을 동원하기 위한 국가신도체제를 만들었다.
현재 전국에 약 8만개의 신사가 있는 일본에서 가장 중요한 신사는 일본 황실의 선조를 모신다는 이세(伊勢)신궁(미에현 이세시 소재)으로 총리 등이 매년 참배한다. 그러나 외국에 가장 널리 알려진 신사는 단연 야스쿠니신사다.(신사 가운데 격과 비중이 가장 높은 것이 신궁으로 이세신궁, 메이지신궁 등 14개의 신궁이 있다. 일제강점기엔 서울 남산에 조선신궁이 건립됐다가 광복 후 철거됐다.)
야스쿠니신사는 한국의 TV화면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배전과 본전 건물 외에 약 2만8000평(9만2000여㎡)의 경내에 여러 건물이 들어서 있는 규모가 아주 큰 신사다. 지하철 구단시타(九段下)역에서 내려 신사 정문 쪽으로 들어가면 기둥 높이 25m, 기둥 위에 걸쳐놓은 횡목 34m, 무게 100t에 달하는 거대한 철제 도리이(鳥居)가 세워져 있다. 본전에 이르기까지 그 같은 도리이가 3개나 더 있어, 동네 곳곳에 있는 규모가 작은 보통 신사와는 다른 장중한 분위기를 풍긴다.
본전 옆엔 유취관(遊就館)이란 전쟁기념관 건물이 있고 전시실과 그 주변엔 태평양전쟁 때 구 일본군이 사용했던 전투기, 인간어뢰 등의 각종 무기와 태국과 버마 국경을 오가던 군용열차(영화 ‘콰이강의 다리’에서 일본군이 사용했던 열차 중 일부) 등이 진열돼 있다. 군마와 군견 위령탑도 세워져 있다. 야스쿠니신사는 일본군인뿐만 아니라 일본군을 위해 희생된 개와 말까지 그 영혼을 위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야스쿠니신사 경내는 ‘사쿠라’ 명소여서 도쿄의 사쿠라 개화를 알리는 표본목이 있고, 봄철엔 수많은 상춘객이 몰려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