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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쿠니신사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

일본에 의해 희생된 조선인 2만1181명도 합사 … “神道의 신앙상 합사취소는 없다” 주장에 유족들만 분통 터져

  • 이종각 | 전 동아일보 기자, 일본 주오대학 겸임강사 |

야스쿠니신사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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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급 전범 14명 합사

야스쿠니신사의 전신인 도쿄 초혼사(招魂社)가 세워진 것은 메이지유신 이듬해인 1869년이다. 이 신사는 메이지 신정부 수립 후 구 막부군과의 내전에서 죽은 관군 등을 의미하는 국사순난자(國事殉難者)와 청일·러일전쟁 등 대외전쟁에서 죽은 전몰자의 영혼을 위로하는 시설로 세워졌다. 강화도사건(1875년)이나 임오군란(1882년) 당시 죽은 일본군 10여 명도 합사돼 있다.

이후 중일·태평양전쟁 등 일본의 침략전쟁으로 수많은 전사자가 발생해 야스쿠니신사가 제사 지내는 제신(祭神)은 현재 246만여 위에 달한다. ‘1사(一社) 1주신(一主神)’을 원칙으로 하는 일본 신도에선 극히 이례적인 경우로, 이 점이 야스쿠니신사의 특이성을 말해준다.

일본 패전 직후인 1945년 12월, 연합군총사령부(GHQ)의 신도지령(神道指令)에 따라 국가신도체제는 폐지됐다. 지령의 핵심은 정교분리 방침이었다. 이에 따라 전국에 11만여 개에 달했던 다른 신사와 함께 국유국영의 야스쿠니신사도 일개 종교법인으로 격하됐다.

연합국은 일본이 장기간에 걸쳐 침략전쟁을 계속해온 정신적 배경에 현인신(現人神·아라히토가미)으로 추앙됐던 천황의 신성성을 받드는 신앙과 신국의식이 깔려 있다고 보고 국가신도체제를 폐지한 것이다.



그러나 패전 후 쇼와(昭和)천황이 처음 야스쿠니를 참배(1951년)한 이래 역대 총리도 반드시 참배하는 등 야스쿠니신사는 전몰자에 대한 위령, 추도, 현창(顯彰)의 중심시설이란 위치가 그대로 유지돼왔다. 일본의 침략전쟁으로 숨진 한국, 중국인 및 동남아시아 제 국가의 희생자는 약 2000만명으로 추산되고 일본인 전사자는 약 310만명에 달한다. 이들 일본인 전사자의 유족만 해도 수천만명에 달해 선거를 의식해야 하는 정당들, 특히 보수·우익 성향으로 장기집권했던 자민당은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가 유족 등의 지지를 얻는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였으므로 참배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일본 패전 후 연합국 측의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재판)에서 A급 전범으로 판결(1948년)받아 사형 또는 옥사한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전 총리 등 14명을 1978년 10월17일 야스쿠니신사에 비밀리에 합사함으로써 외교문제로 비화한다.

이에 앞서 1966년 구 육군성, 해군성의 업무를 이어받은 당시 후생성이 A급 전범들의 이름, 소속부대, 계급, 사망연월일, 장소, 사망원인 등을 기재한 ‘제신명표(祭神名票)’를 신사 측에 전달했다. 신사 측은 정부로부터 이 제신명표, 즉 전몰자명부가 송부되지 않는 한 영령으로 합사하지 않는다. A급 전범 합사 분위기를 살피던 신사 측은 1978년, 전쟁이 끝난 뒤 30여 년이 지난 만큼 일본사회도 합사를 용인할 것으로 판단하고 슬그머니 합사했다. 유족들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이 사실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으나 다음해 교도통신의 특종보도(4월19일)로 일본 매스컴에 일제히 보도돼 세상에 알려졌다.

일본이 벌인 침략전쟁 당시 일본군의 통수권자이자 대원수로 전쟁 책임이 있는 쇼와천황(재위 1926~89년)은 1975년 11월을 마지막으로 야스쿠니 참배를 중단했다. 그 이유는 신사 측의 A급 전범 합사 움직임을 불쾌하게 생각했기 때문(2006년 공개된 쇼와천황 보좌 궁내청장관의 메모에서)이라고 알려져 있다. 현 헤이세이(平成)천황도 참배하지 않고 있다. 현재 야스쿠니신사에는 A급 전범 외에 B~C급 전범 등 총 1005명의 전범이 합사돼 있는데 신사 측은 ‘전범’은 연합국 측의 주장에 불과하다며 이들을 ‘쇼와순난자(昭和殉難者)’라고 한다.

공식참배 강행한 고이즈미 전 총리

1985년 8월15일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총리는 ‘전후 정치의 총결산’을 주창하며 일본 총리로선 사상 처음 야스쿠니신사를 공식 참배했다. 이전까지의 총리들은 의식적으로 8월15일을 피했다. 8월15일 사상 처음 참배(1975년)한 미키 다케오(三木武夫) 총리는 어디까지나 ‘사적 참배’라고 강조했다. 나카소네의 공식참배에 대해 한국과 중국이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행위라며 맹비난하자 그는 이듬해 참배를 중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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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각 | 전 동아일보 기자, 일본 주오대학 겸임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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