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웬걸, 2009년 봄에 입학 관련 서류를 챙기면서 학교에서 보내온 외국인 학생용 입학 안내서를 꼼꼼히 읽어보니 희원이는 ‘유치원’에 가야 한다고만 나와 있었다. 어디에도 리셉션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결국 궁금증을 못 이기고 학교의 외국학생 담당 사무실에 국제전화를 해보니 스코틀랜드의 교육제도는 잉글랜드와 다르며, 리셉션은 잉글랜드에만 있다고 했다. 스코틀랜드의 초등학교에도 무료로 운영되는 병설 유치원이 있긴 하지만, 오전에만 수업을 해서 12시에는 부모가 아이를 데려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종일반이 있는, 비싸지 않은 글래스고의 유치원 찾기’가 시작됐다. 스코틀랜드 교육청 홈페이지, 글래스고 시의회 홈페이지 등등을 깡그리 뒤져가며 수없이 메일을 보내고 또 보낸 결과, 운 좋게도 글래스고 시에서 운영하는 공립 유치원을 몇 군데 찾아낼 수 있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운영하며 학비는 점심값 포함해 한 달에 30만원 정도. 그 정도면 더 바랄 나위가 없는 조건이었지만, 스코틀랜드 학부모들 역시 공립 유치원 종일반이 드물게 좋은 조건이라는 정도는 다 아는지라 유치원 입학 경쟁이 만만치 않았다. 나는 공립 유치원에 아이를 입학시키지 못하면 희원이를 한국의 할머니 댁에 맡겨두고 가야 하는 처지여서 마음이 타들어갈 듯 급했다.
결국 5월에 억지로 런던 출장을 만들어 런던에서 글래스고까지 영국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날아갔다. 글래스고 대학에서 가장 가까운 공립 유치원을 찾아가서 내 사정을 설명하며 울먹울먹 통사정을 하니 마음씨 좋은 원장 미세스 켐벨은 “그 이야기를 하러 한국에서 글래스고까지 왔느냐”며 입을 딱 벌렸다. 결국 미세스 켐벨이 특별히 희원이를 위해 한 자리를 마련해줘 그 해 가을 희원이는 포트로즈(Fortrose) 유치원의 종일반에 들어갈 수 있었다.
나중에야 알고 보니 공립 유치원의 종일반에 아이를 넣으려면 엄마가 직장에 다니거나, 나처럼 풀타임 학생이거나, 그도 저도 아니면 싱글맘이어야만 했다. 아무튼 나는 런던에서 글래스고까지 날아가는 수고를 감수한 끝에 희원이를 한국에 남겨두고 오지 않아도 됐던 것이다. 이 모든 해프닝은 결국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교육제도가 다르다는,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 때문에 생겨났다.
영국의 유치원비는 유럽에서도 가장 비싼 수준으로 악명이 높다. 어느 통계에 따르면 유치원 종일반의 평균비용이 주당 30만원쯤 되고, 런던 지역은 최고 70만원 선이라고 한다. 웬만한 유치원 종일반에 보내려면 엄마 월급의 반 정도가 들어가는 셈이다. 이 때문에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서 직장을 그만두는 영국 엄마도 적지 않다고 한다. 영국인도 아닌 희원이가 공립 유치원의 종일반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정말로 행운이었다.
시험도 없고, 교과서도 없고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던 영국의 복지 정책이 상당부분 후퇴한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인 듯하다. 더구나 현 보수당 정부는 정부의 재정지출을 줄이기 위해 각종 교육예산을 삭감하고 있어 초등학교 이전의 보육비가 더 올라갈 가능성도 크다고 한다. 하긴 희찬이가 올해 봄까지 다니던 외국인 특별학급 역시 글래스고 시의회의 예산 삭감으로 문을 닫고 말았다.
말이 난 김에 조금 설명하자면, 스코틀랜드를 포함해 영국의 초등학교는 대부분 정원 500명에 못 미치는 작은 규모다. 한 학년이 한 반에 불과한 학교가 적지 않고, 제법 큰 규모인 킬러먼트 초등학교 역시 한 학년이 두 반뿐이다. 그나마 완전하게 두 반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고 한 반은 두 학년이 합반으로 돼 있다. 즉 1학년은 1A반과 1·2학년 합반으로 구성돼 있는 것이다. 희찬이도 4학년 때는 4·5학년 합반이었다. 희찬이에게 “그럼 4학년과 5학년이 같이 수업하니?” 하고 물어봤더니 보조선생님이 각기 다른 과목을 가르치기도 하고, 수학 같은 과목은 성적에 따라 여러 그룹이 구성돼서 수업하기도 한단다.
킬러먼트 초등학교 홈페이지를 보니 이번 학기의 전교생 수는 307명이다. 우리 기준으로 보면 완전 미니학교 수준이지만 ‘데일리 텔레그라프’의 보도를 보면 잉글랜드, 웨일스의 초등학교 평균 학생 수는 240명에 불과하단다. 초등학교 한 반의 정원에 대한 정확한 규정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한 반 학생 수가 30명을 넘지는 못하게 돼 있는 듯싶다.
교복을 입고, 1학년부터 수업이 오후 3시까지 진행되고, 다섯 살부터 입학하는 것 같은 외형적인 차이도 있지만, 사실 한국 초등학교와 영국 초등학교의 가장 큰 차이점은 수업 방식에 있다. 영국의 초등학교에는 교과서가 없다. 교과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고 국어(즉, 영어)와 수학 교과서는 있지만 학생 개개인이 이 교과서를 들고 다니거나 집으로 가져오지는 않는다. 학교에서만 교과서를 보기 때문에 학부모는 아이들이 지금 어떤 과정을 어떻게 공부하고 있는지 짐작하기 어렵다.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