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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들의 술 풍경(상)

“술이 문학 잡아먹어? 문인이 술 잡아먹어?”

문인과 술, 그 불콰하면서도 들쭉날쭉한 포옹

  • 이소리│시인·전 민족문학작가회의 총무 lsr21@naver.com

“술이 문학 잡아먹어? 문인이 술 잡아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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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도 갖고 노는 대한민국 소설가

“술이 문학 잡아먹어? 문인이 술 잡아먹어?”

도시빈민 노동자들의 삶을 형상화해온 박태순 소설가

1980년대 허리춤께 나는 서울로 올라왔다. 문학을 제대로 하자는 야무진 꿈을 품고. 나는 그때 서울에서 살고 있는 고향 선배 정규화 시인을 만나기 위해 여기저기 수소문을 하고 있었다. 정규화 시인을 만나면 뭔가 제대로 된 문학으로 가는 지름길을 알 수 있을 것 같았고, 그가 나를 그런 문인들에게 소개할 것만 같았다.

그런 어느 날 하루는 정 시인을 만나기 위해 북한산으로 갔다. 정 시인이 북한산 계곡에서 문인 몇 명과 개를 한 마리 잡아 술을 마시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기 때문이었다. 아마 초여름이었을 것이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구파발에서 북한산 쪽으로 1㎞ 남짓 올라가면 왼편으로 민가가 몇 채 보이는 숲 속에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날, 계곡을 따라 조금 올라가자 저만치 바위틈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쭈욱 내밀며 올라가자 소설가 박태순과 강승원, 안석강, 구중관, 시인 정규화, 출판인 김규철이 계곡에 개고기가 담긴 시커먼 솥단지를 걸어놓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4홉들이 소주를 수십 병째 비우고 있었다. 그분들을 향해 일단 고개부터 꾸벅 숙인 뒤 가까이 다가가자 정 시인이 나를 소개했다.

“이소리라고, 시를 쓰는 친구입니다.”



“소리? 소리 아버지 쏘리, 소리 아들 쏘리, 소리 형도 쏘리….”

“그래? 잘 왔어. 앉어, 앉어.”

“짱구 아버지 짱구, 짱구 아들 짱구, 짱구 형도 짱구….”

소주에 거나하게 취해 ‘짱구타령’을 부르던 박태순 소설가가 종이컵에 소주를 가득 따라 내게 주더니 어서 마시라는 손짓을 했다. 소주를 한 잔 쭈욱 마신 뒤 박태순 소설가에게 잔을 건네자 이번에는 안석강 소설가가 개고기 한 점을 내 앞에 기세 좋게 내밀었다.

“선생님…전…개고기 못 먹습니다.”

“이 친구 이거 봐라. 경상도 촌놈이 이렇게 맛있고 몸에 좋은 개고기를 못 먹는다고? 이 친구 이거 웃기는 친구로구먼. ‘고향 앞으로’ 해서 개고기 먹는 법부터 배워가지고 다시 서울로 올라와야 되겠구먼.”

개고기를 앞에 놓고 먹지 못해 쩔쩔매고 있는 나를 바라보던 박태순 소설가가 측은하다는 듯이 한마디 툭 내던졌다.

“뭐 하러 서울까지 올라왔어. 그냥 고향에서 조용히 글을 쓰면 될 걸. 서울이라고 시골보다 별다른 게 있겠어. 입에 풀칠하기는 시골보다 조금 나을지 몰라도 서울살이는 인정사정, 피도 눈물도 없는 동네야. 규화야, 너가 이 친구 많이 도와줘. 짱구 아버지 짱구, 짱구 아들 짱구, 짱구 형도 짱구….”

“….”

소설가 강승원과 구중관, 시인 정규화, 출판인 김규철은 박태순, 안석강 소설가가 하는 얘기에 빙긋 웃으며 개고기를 안주 삼아 소주잔만 계속 홀짝거렸다. 그렇게 30여 분쯤 지났을까. 입만 열었다 하면 청산유수처럼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왕구라’에 목소리가 가장 센 안석강 소설가가 김규철에게 소리를 꽥 질렀다.

“규철아! 너 지금 눈에 콩깍지 씌었냐? 소주가 또 다 떨어졌잖아. 어르신들이 몸소 개고기까지 삶아 젊은 넘 몸보신까지 시켜줬으면 이깟 소주 정도는 눈치껏 척척 조달해야 되지 않아.”

“이거 큰일이네요. 요 아래 가게에 있는 소주는 좀전에 떨이 해버렸거든요. 어쩌죠?”

“야 이 ××야! 그게 말이냐? 말똥덩어리냐? 저 아래 마을에 가서 사오든가 구파발까지 가서 사오든가 그건 네 자유야.”

“돈은요?”

“아, 북한산 산신령인 김규철이가 북한산 바닥에서 돈이 없어 소주 몇 박스 못 사온다고 하면 말이나 돼? 얼른 가서 나 팔고 아예 소주 10박스쯤 가져와.”

“이곳에 살지도 않으시는 선생님께서 여기 있는 가게주인들을 어찌 다 아십니까? 북한산 산신령인 저도 잘 모르는데요?”

“난 북한산 산신령보다 훨씬 더 높은 대한민국 소설가야, 소설가! 대한민국 소설가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게 똥종이지, 어디 사람 ××야. 별것 아닌 봉이 김선달이도 대동강 물을 팔아먹었는데, 명색이 대통령도 당선시켰다 떨어뜨렸다, 그날 기분에 따라 맘대로 갖고 노는 대한민국 소설가가 소주 몇 박스에 좌지우지하면 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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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리│시인·전 민족문학작가회의 총무 lsr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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