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박근혜 의원의 ‘동남권 신공항 재추진 의사’ 발언은 어떻게 읽어야 할까.
한나라당 정몽준 전 대표는 “속으로는 철저한 표 계산을 하면서 국민에 대한 신뢰로 포장하는 것은 위선이다. 신공항 문제에 대한 박 전 대표의 언급은 무책임하고 위선적인 태도라고 본다”고 말했다. “정치인이 국민을 표로만 보면 국정이 어지러워지며 원칙과 신뢰보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더 큰 덕목은 정직과 책임”이라는 것이다. 한나라당 정두언 최고위원은 “국가지도자라면 지역의 열망이 있더라도 국민 전체의 이익에 맞는 입장을 용기 있게 펼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에둘러 말했지만 같은 얘기다.
일리 있는 비판이다. 박 의원이 세종시 원안 고수(固守)로 충청표를 얻고, 동남권 신공항 계속 추진 의사로 영남표를 구하려 한다는 현실적 정치셈법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녀로서는 국민과의 약속이란 상위 가치를 표 얻기란 하위 셈법으로 해석하는 것에 일일이 대꾸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박 의원은 이제 좀 더 긴 말로 설명해야 한다. 측근이 아닌 자신의 입으로 입장을 정확하게 밝혀야 한다. 자신이 필요할 때만 일방적으로 던지는 짧은 말의 효용성은 시효가 거의 다 됐다고 봐야한다. ‘미래권력 1순위’를 자임한다면 적어도 국가 미래와 연관된 사안에 대해서는 보다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발언으로 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현안으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이하 과학벨트) 문제가 있다. 당초 이 대통령이 충청권에 세울 것으로 공약했던 과학벨트가 충청과 영호남으로 3각 분산된다는 논란인데,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의 설명이 걸작이다. “벨트는 길지 않으냐, (기니까) 몇 군데 걸칠 수가 있는 것이다.”
과학벨트가 흔들리게 된 것은 세종시 문제와 연관된 듯하다. 여권 핵심의 복안은 세종시가 행정도시에서 교육과학도시로 수정되면 그곳에 과학벨트를 건설할 계획이었는데, 세종시 수정안이 무산되면서 기본 얼개가 흐트러졌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2월 과학벨트 입지 선정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뜻을 공식화했다. 그 후 여야 가릴 것 없이 국가예산 3조5000억원이 투입되는 과학벨트에 한 자락씩 걸치겠다며 나서면서 혼선이 빚어졌다. 최근에는 과학벨트의 핵심시설인 중이온가속기와 기초과학연구원은 한군데(충청)에 묶어두고 기초과학연구원 분원을 대구와 광주에 설치하는 안이 유력하게 검토되는 모양이다. 청와대 측은 이럴 경우 분산배치가 아닌 협업체제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과학벨트는 한곳에 집중해야 미래 성장동력으로 효과가 있을 것”이란 과학계의 견해에 비추어본다면 억지 춘향이의 기미가 짙다. 이렇다 보니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에 따른 ‘영남민심 달래기용 선물’이라느니, ‘형님(이상득 의원) 벨트’라느니 온갖 풍설로 시끄럽고, 충청은 충청대로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나라가 갈기갈기 찢긴 형국이다.
그러나 박근혜 의원은 아직 이 문제에 대해 아무런 말이 없다.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에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발언하면서도, 충청의 과학벨트 공약 파기에는 침묵하고 있다. 한 달 후 최종결과가 나온 다음 코멘트한다면 만날 ‘뒷북 발언’만 하느냐는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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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으로 여당의원이 모든 국정현안에 시비를 걸고 대통령과 각을 세우는 것이 옳으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현실 권력과 정면승부를 하기에는 아직 때가 이르지 않으냐고 반박할 수도 있다. 이 또한 일리 있는 얘기다. 하지만 박 의원 스스로 자신이 ‘미래권력 1순위’임을 부정하지 않는다면, 차기 지도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국정현안에 대해 그때그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국민이 자신을 검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스스로 검증대 위에 올라서야 한다. 그것은 ‘국민 지지율 1위 정치인 박근혜’의 국민에 대한 도리이자 의무다.
박근혜는 더 말해야 한다. 자신에게는 단문(短文)이 더 어울리고 매력적이라고 생각할지라도 때로는 장문(長文)으로 자신의 내공을 보여줘야 한다. 내공 없는 이미지의 정치로는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