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언문실록 <br>정주리·시정곤 지음/ 고즈윈/ 240쪽, 1만1800원
“세종대왕의 가장 위대한 치적은? 훈민정음 창제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청소년 시절에 학교에서 배운 내용이다. 좀 삐딱한 학생은 한글이 가장 과학적인 문자라는 점에 대해 “국수주의적인 자화자찬(自畵自讚)이 아닐까?”라는 의문을 품었으리라. 어떤 학생은 한글이 위구르 문자를 베꼈다느니, 인도 어느 지방의 글자와 비슷하다느니 하는 주장에 귀가 솔깃하기도 했으리라.
세종(1397~1450) 당대에는 한글 창제가 백성들에게 피부에 와 닿는 일은 아니었다. 먹고살기가 최대 과제인 때여서 세종의 중요 치적으로 ‘농사직설(農事直說)’이란 농업기술 서적과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이란 의학 서적을 보급한 것이 꼽힌다. ‘농사직설’ 덕분에 농민은 농산물 생산량을 크게 늘려 굶주림에서 벗어났다. 농사에 필요한 노동력을 늘리려면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워야 할 때였다. ‘향약집성방’은 중국에서 수입한 값비싼 약재 대신 조선 땅에서 나는 약초를 이용하는 방법을 모아놓은 책이다. 이 책은 소아과와 부인과를 독립 항목으로 내세울 만큼 출산과 양육에 대해 관심을 기울였다. 향약 의술에서 해열제가 개발돼 소아병인 홍진, 두창 등으로 사망하는 아기가 줄어들면서 인구증가율이 높아졌다.
한글이 만들어진 지 600년이 돼간다. 창제 당시에는 상상도 못했던 디지털 시대가 열렸다. 한글이 편의, 속도를 생명으로 하는 온라인 체제에 가장 적합한 문자임이 속속 입증된다. 과연 세종의 최대 치적이 한글 창제임을 실감한다. 한국인이 한글 없이 말글살이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알파벳, 한자, 한글이 세계 3대 문자라는 주장을 펼쳐도 무리가 아닌 듯하다. 한글의 중요성을 한글날에만 외칠 게 아니라 평소에도 인식해야 하지 않나.
세자도 언문 배워 한문 읽어
한글 전문가가 집필한 ‘조선언문실록’은 한글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추적한 책이다. 정주리 동서울대 교양학부 교수와 시정곤 카이스트(KAIST) 인문사회과학과 교수의 공저다. 책날개의 저자 소개란을 보자. 정주리 교수에 대해서는 ‘국어학에 발을 내디딘 후 국어의 의미를 밝히는 데 관심을 가져왔다. 특히 국어 동사와 구문의 관계, 언어와 사회의 관계, 인간의 정신과 언어 코드의 비밀스러운 공모 관계를 밝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시정곤 교수에 대해서는 ‘말글 속에 숨어 있는 무한한 힘과 놀라운 질서의 세계에 매료돼 그 비밀을 찾는 언어 탐정으로서 우리말과 우리글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왔다. 대중과 호흡하는 말글살이 연구를 지향한다’고 씌어 있다. 저자들이 언어에 숨은 비밀을 찾는 전문가여서 내용이 흥미진진할 듯하다.
책 제목에 붙은 ‘실록’은 ‘조선왕조실록’에서 비롯됐다. 한글이 창제된 세종 25년(1443)부터 마지막 왕인 순종 때까지 ‘조선왕조실록’의 한글 관련 기록을 찾아 분석한 것이다. 저자들은 “우리는 한글로 명명되기 이전, ‘언문’으로 불리던 우리 문자가 조선 백성들의 삶 속에서 어떻게 숨 쉬고 있었는지를 기록 영화 보이듯 전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저자 서문을 직접 옮겨보자.
어떤 때는 사랑하는 임에게 띄우는 편지에 쓰이고, 어떤 때는 억울함을 호소하는 상소문에 쓰이고, 또 어떤 때는 암호 문자처럼 쓰이고, 또 어떤 때는 누군가를 고발하는 투서에 쓰이면서 삶 속에 녹아들어 간 한글의 모습을 생생하게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이 책에는 사건, 스캔들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다. 한글 자체를 고찰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역사 속에서 사람들이 한글을 어떻게 사용했는가를 보려 한 때문이다.
이 책에 나오는 여러 이야기는 실록에 기록된 것이니만큼 당대에 이목을 끈 중요한 사건이었다. 정치적 사건에서부터 백성의 생활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을 아우르고 있다.
중국을 사대(事大)하고 공식 문서는 한문으로 써야 했던 시대에 세종이 한글 창제에 나선 것은 엄청난 정치적 결단이었다. 최만리 등 관료권력이 훈민정음 창제가 옳지 못하다고 상소를 올리는 등 거세게 반발했다. 세종은 1446년 9월 훈민정음을 세상에 공포하고 일반 백성뿐 아니라 지배 계층에서도 이 글자가 널리 쓰이기를 바랐다. 하급 관리인 서리를 뽑는 시험에 훈민정음을 포함시키라고 명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