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낙원 _ 정윤수 지음, 궁리, 403쪽, 1만8000원

뭐라고? 정감 어린 기록의 저장고? 영속적인 장소? 자기 내면의 현대 세계에 대한 불만을 가진 ‘연약’한 존재가 우연과 변화를 느끼면서도 ‘안심’하는 장소? 그런 곳이 어디 있는가?
나의 ‘인공낙원’은 이런 질문으로부터 시작한 책이다. ‘정감 어린 기록의 저장고’인 영속의 장소는 현대에 이르러 급격히 해체됐다.
생각해보자. 오늘날 왜 집집마다 냉장고에 음식이 남아 결국 버리게 되는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같이 나눠 먹는 풍습이 사라진 것도 중요한 이유가 된다. 전통 사회에서는 음식이 남을 까닭(돼지나 닭이 있으니까)이 없고 설령 그렇다 해도 마을 사람끼리 툇마루에 둘러앉아 나눠 먹었다. 그런데 오늘날, 아래층 아저씨가 밤 9시쯤 ‘찐고구마를 나눠 먹으려고 왔어요’ 하면서 초인종을 누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겁부터 날 것이다.
내가 ‘인공낙원’에서 표현한 대로, 오늘날 도시는 거대해지고 인간은 왜소해졌다. 우리는 주눅 든 채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거대한 ‘인공낙원’ 사이로 걸어간다. 알렉시스 토크빌은 “다양성이 인류에게서 사라지고 있다. 똑같은 방식으로 행동하고, 생각하고, 느끼는 것은 이제 전 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고 썼는데, 이는 그가 1830년대의 서구를 묘사한 풍경이다. 그로부터 180여 년이 지난 오늘날, 광화문광장과 테헤란로와 송도신도시와 인천공항과 화려한 백화점과 형형색색의 테마파크에서, 그러니까 이 최첨단 시대의 ‘인공낙원’에서 우리는 과연 행복한 개인으로 존재하는가.
몇 해 전, 나는 그것이 몹시 궁금해 현장을 직접 방문하고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눠보고 싶었다. 때마침 월간 ‘신동아’의 후의로 1년 가까이 대한민국의 거대 인공 공간을 취재할 수 있었다. 1년 동안의 연재를 마친 후, 다시 1년 정도의 시간을 들여 연재 때 미처 쓰지 못한 얘기와 너무 서둘러 얘기한 부분을 보완해 ‘인공낙원’을 출간할 수 있게 됐다.
도시공간에 대한 심미적 비평을 개척한 에드워드 렐프는 현대 도시가 기존의 익숙한 공간 체험을 완전히 해체하면서 이른바 ‘무장소성’으로 급변하는 것을 두고 “불행한 일이지만 불가피한 현대 기술 사회의 부작용이라고 비판하기는 쉽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현명하지도 정확하지도 않다”고 쓴 바 있다. 이런 지배적인 현상에 의해 인간과 공간의 진실된 교감이 점점 사라지는 현황을 제대로 판별하고 그 길이 아닌 우회로를 탐문하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고 렐프는 말했다. 나는 그것을 시도하기 위해 공항, 기차역, 광장, 경기장, 모텔, 백화점, 테마파크, 카지노, 모델하우스 등을 찾아다녔고 그 결과가 ‘인공낙원’이다.
정윤수 │문화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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