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호

재미와 실력 끌어올리는 지렛대

라운드의 ‘감초’ 캐디와 동반자

  • 정연진│골프라이터 jyj1756@hanmail.net

    입력2012-01-19 14: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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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골프에서 캐디와 동반자는 약방의 감초 같은 존재다. 감초를 명약으로 만드는 일은 온전히 골퍼의 몫이다. 캐디를 내 편으로 만들고, 훌륭한 동반자와 라운드를 즐길 수 있다면 골프는 더욱 흥미로워진다. 재미와 실력을 모두 거머쥐는 데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재미와 실력 끌어올리는 지렛대
    “나의 아내이고, 형님이고, 가족이다. 그와 함께했던 많은 일이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이 말을 한 주인공은 최경주 프로다. 여기서 ‘그’는 캐디인 앤디 프로저다. 두 사람은 2003년 9월부터 한솥밥을 먹은 이후 PGA 통산 8승 중 7승을 합작했다. 하지만 최 프로는 앤디를 눈물로 떠나보냈다. 환갑을 눈앞에 둔 앤디가 체력적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둘은 ‘찰떡궁합’이란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는 관계였다.

    만약 최 프로가 앤디를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과 같은 성적을 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평범한 선수로 전락했을지 모른다. 최 프로는 기회 있을 때마다 앤디에게 고마움을 나타냈다. 그만큼 앤디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다. 둘은 선수와 캐디 이상의 인연을 이어가며 숱한 명장면을 연출했다. 그래서 가장 환상적인 ‘커플’ 중 하나로 인정받았다.

    프로 선수에게만 캐디의 역할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아마추어 골퍼도 적지 않은 영향을 받는다. 스코어는 물론 라운드 분위기도 많이 좌우된다. 골퍼들이 라운드 후기에 캐디에 대한 평가를 빼놓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 골프장 캐디들, 둘째가라면 서러워한다. 세계 최고의 능력을 갖췄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우선 코스를 손바닥 안에 넣고 다닌다. 두세 홀만 지나면 골퍼들의 성향까지 파악한다. 골퍼가 말하기 전에 적절한 클럽을 척척 갖다 준다. 농담 한마디로 침체된 라운드 분위기를 끌어올린다. 어떤 이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비유하기까지 한다.



    그렇다면 실제 캐디가 스코어에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일까? 물론 수치로 환산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골퍼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최소한 5~7타 정도는 캐디의 영향권 안에 있다. 여기에는 조건이 하나 따라붙는다. 핸디캡이 어느 정도는 돼야 한다는 것이다. 수도권 한 골프장 캐디의 설명이다.

    세계 최고의 능력 갖춘 골프장 캐디

    “초보는 정보를 줘도 제대로 소화할 만한 능력이 안 된다. 싱글은 스스로 알아서 잘 한다. 캐디가 끼어들 틈이 별로 없다. 초보티를 벗고 골프에 재미를 한창 느끼는 골퍼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사소한 조언 하나가 한 홀에서 한두 타를 좌우할 수 있다. 고집이 세거나 남 탓 잘하는 골퍼는 여기서 제외된다. 좋은 의도에서 얘기를 해도 도통 듣지 않는다. 이런 골퍼에게는 캐디의 의견이 무용지물이다. 괜히 뒤탈만 생기고 분위기를 망칠 수 있다. 상황을 잘 파악해 알게 모르게 게임을 유도하는 센스가 필요하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세컨드샷을 해야 하는데 볼의 라이가 좋지 않다. 초보는 평소 비거리를 생각하고 클럽을 선택한다. 반면 고수는 한 클럽 길게 잡고 짧은 스윙을 한다. 그린에 갔을 때 그 결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캐디는 이런 상황에서 골퍼의 실력에 맞는 적절한 클럽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다음 그린에서의 상황. 캐디가 초보 대신 라이를 봐주는 경우가 많다. 출발선에서의 미세한 차이는 홀컵 주변에서 큰 차이를 불러온다. 캐디가 볼을 어떻게 놓느냐에 따라 타수가 달라진다. 더욱 중요한 것은 캐디의 라이 보는 방법을 골퍼가 참고한다는 사실이다. 그린에서 두세 번 퍼팅을 한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스코어와 직결되는 아주 중요한 문제다. 이런 장면이 홀이 바뀔 때마다 계속 연출된다면, 캐디의 역할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잊을 수 없는 캐디의 조언과 이름

    서울 역삼동에 사는 김원웅(48) 씨는 캐디 덕을 톡톡히 봤다. 싱글로 가는 길목에서 매번 발목을 잡은 것은 퍼팅. 퍼터를 몇 번 바꾸고, 주위의 조언을 들어봤지만 소득이 없었다. 거의 포기하다시피하다 경기도 용인의 한 골프장 캐디에게서 깨달음을 얻었다. 라운드가 거의 끝나갈 무렵, 캐디가 지나가는 말로 “왜 퍼팅을 끝까지 하지 않으세요?”라고 한마디 던졌다. 김씨는 순간 머리에 강한 충격을 받는 듯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피니시를 끝까지 하지 않고 멈칫하는 나쁜 습관이 몸에 배어 있었던 것이다. 아주 미세한 차이지만, 결과는 좋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제야 왜 공이 홀컵 주변을 맴도는지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김씨는 지금도 그 캐디의 조언과 이름을 잊지 않고 있다.

    캐디도 사람인지라 에티켓을 지키지 않는 골퍼에게는 마음이 가지 않게 마련이다. 아주 드물게는 ‘장난’을 치는 캐디가 있다. 골퍼가 눈치 채지 못하게 소심한 복수를 한다. 충북의 한 골프장 캐디는 애교 수준이라고 말한다.

    “에티켓은 클럽하우스에 두고 나오고, 안 맞으면 캐디 탓으로 돌리는 골퍼가 있다. 마음까지 힘들게 하는 골퍼에게는 슬슬 ‘작업’에 들어간다. 정확한 거리를 불러주지만, 바람의 영향을 말하지 않는 식이다. 그린에서는 반 컵 정도 빠지도록 말해준다. 그러곤 정말 아깝다는 표정을 짓는다. 물론 아주 간혹 있는 일이다. 모든 캐디를 색안경을 끼고 볼 필요는 없다.”

    캐디를 내 편으로 만들면 라운드가 즐겁고 스코어가 좋아진다.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캐디를 클럽만 갖다주는 보조원이 아닌 전문직으로 대해주면 된다. 선심을 쓰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일부 캐디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캐디는 대우를 받을 만한 충분한 능력을 갖고 있다. 골프장을 대표하는 베테랑 캐디의 운영능력은 예술에 가깝다. 욕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상황에서 재치로 위기를 넘긴다. 이런 캐디에게 ‘언니’란 호칭과 뜬금없는 반말은 금기사항이다. 기계적인 서비스만 받을 수 있을 뿐이다.

    나이 들어서도 가능한 유일한 스포츠가 골프라고 한다. 노년에 골프를 즐기기 위해선 세 가지가 필요하다. 시간과 경제력, 그리고 친구다. 골프에서 친구는 통상 동반자를 의미한다. 국내에선 거의 불가능하지만, 외국에선 나 홀로 골프가 가능하다. 하지만 혼자서 도는 라운드는 골프의 흥미를 반감시킨다. 골프는 역시 어울려야 제격이다.

    뛰어난 캐디를 만나는 것은 행운이지만, 동반자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 어떤 유형의 동반자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골프인생이 달라진다. 게임에 집착하지 않고 남에게 피해 주지 않는 동반자는 차선이다. 매너가 좋으면서 실력까지 준수한 동반자는 최선이다. 클럽메이커의 입지전적인 인물인 정모 대표의 조언은 새겨들을 만하다.

    “내 나이 일흔이 다 됐다. 하루가 멀다 하고 골프를 즐기지만, 라운드 전날 여전히 설렌다. 수십 년 골프 친구들과 라운드를 한다는 게 흥분의 주된 이유다. 친구들과의 라운드 횟수가 늘면서 타수가 줄었고, 삶의 재미도 깊어졌다. 나처럼 평생을 함께하는 골프 동반자가 있다면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라고 장담한다. 골프 동반자는 인생의 친구와 똑같다.”

    훌륭한 동반자의 두 가지 조건

    훌륭한 동반자란 매너 좋은 골퍼와 같은 말이다. 골프는 유난히 에티켓을 따진다. 실력이 떨어지는 골퍼와는 동반해도 매너 없는 골퍼와는 함께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인기 있는 동반자는 매너를 기본으로 갖추고 있다. 초보에게 골프 룰뿐만 아니라 상황에 따른 에티켓을 세심하게 가르쳐준다. 그래야만 골프의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고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고수는 초보에게 스윙보다 골프 룰과 에티켓을 먼저 일러준다.

    훌륭한 동반자 한 명은 열 명의 캐디 부럽지 않다. 훌륭한 동반자란 또 다른 의미에서 출중한 실력을 갖춘 골퍼를 뜻한다. 이런 동반자는 비기너나 보기 플레이어에게 뛰어난 레슨 프로가 된다. 라운드에서 굳이 팁을 주지 않더라도 게임 운용 자체가 하나의 교본이다. 그동안의 풍부한 경험을 다른 동반자들에게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상황에 따라 어떤 클럽을 선택하는지, 트러블샷은 어떻게 하는지 눈앞에서 재생한다. 훌륭한 동반자와 라운드를 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인생의 반려자를 선택하는 조건과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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