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중견기업에서 부장으로 일하던 나억울 씨는 2007년 4월 직장인들이 꿈에도 그리는 이사로 승진했다. 5000만 원에 못 미치던 연봉은 6000만 원을 훌쩍 넘어섰다. 회사로부터 법인카드와 중형 승용차를 지급받는 등 대우도 확 달라졌다. 그러나 나씨가 회사에서 맡은 직책은 변함없이 연구소 팀장이었다. 맡은 일도 다른 임원 밑에서 연구·개발 업무를 하는 것으로, 부장시절과 달라진 것이 없었다. 나씨는 임원 생활 1년 반 만에 회사로부터 실적 부진을 이유로 계약해지 통지를 받았다. 그는 졸지에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했다.
#2 J학습지회사의 방문학습교사 홍연필 씨는 5년 이상 성실하게 근무해왔고 꾸준히 회원 수를 늘렸다. 그럼에도 오히려 최대 100만 원까지 깎인 보수를 받게 되자 노조를 통해 회사 측에 이의를 제기했다. 단체교섭도 계속 요구했다. 회사 측은 이에 불응했고 노조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홍씨 등 방문학습교사 8명에게 위탁계약해지를 통보했다.
#3 K방송사는 2007년경 2년 이상 근무한 계약직 근로자를 정규직 근로자로 전환하게 하는 비정규직보호법 시행을 앞두고 소속 VJ들을 정규직 근로자로 전환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VJ들에게 사업자등록을 하도록 요구했다. VJ들이 거부하자 방송사는 이들과의 계약을 종료했다. VJ는 방송국에서 지급되는 카메라가 아닌 본인 소유 6mm 카메라를 가지고 촬영하고 출·퇴근시간 등의 근태관리를 받지 않으며 4대 보험에 가입되어 있지도 않다.
승진 1년 반 만에 해고
그렇다면 나억울 씨, 홍연필 씨, VJ들은 해고무효소송을 통해 구제받을 수 있을까. 우리 법은 정당한 이유 없이 근로자에게 해고 등 징벌을 하지 못하게 한다. 경영상 이유에 의해 부득이하게 해고하더라도 우선 재고용 기회를 주어야 하는 등 고용의 안정성을 꽤 강하게 보호하는 편이다. 근로자의 임금은 회사의 다른 채권에 비해 우선 변제받을 수 있으며 근속연수에 비례해 증가하는 퇴직금도 보장받는다. 또한 일을 하다 다치면 산업재해에 해당하는 보상을 받을 수도 있고 일자리를 잃으면 실업급여도 받는다.
그뿐만 아니다. 근로자는 노동조합법에서 정한 권리도 행사할 수 있다. 헌법도 근로자의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보장하고 있다. 근로자가 노조 조직, 노조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회사가 근로자에게 부당한 대우를 하면 그 고용주는 부당노동행위로 형사 처벌될 수 있다. 이와 같이 근로자는 근로기준법 및 노동조합법의 혜택을 누린다. 문제는 근로자로 인정받느냐다.
근로자는 일을 해 번 돈으로 생활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근로기준법은 근로자에 대해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자”라고 정의했다. 이에 따르면 근로자는 임금을 지급받는 사람이다. 여기서의 임금은 사용자가 근로의 대가로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돈을 말한다. 월급이든 주급이든 시간급이든 상관없지만 반드시 고정적으로 지급되는 급여가 있어야 한다. 기본급 없이 순전히 실적 수당만 지급받는 경우 임금을 받는 것이 아니므로 근로자가 될 수 없다.
근로자의 근로 형태는 일용직, 임시직이라도 상관없고 육체노동을 하든 정신노동을 하든 무관하다. 또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아도 무방하고 심지어 불법체류자라고 해도 근로자가 될 수 있다. 다만 근로자가 하는 일 자체가 불법인 경우에는 근로자로 보호받지 못한다. 성매매, 불법도박, 청부살인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은 근로자가 될 수 없다.
근로자는 또한 종속적인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해야 한다. 즉 사용자의 지휘, 감독하의 일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법원은 근로자의 업무가 사용자에 의해 정해지는지, 근무를 거부할 수 있는지, 사용자가 근무 시간과 근무 장소를 정하는지, 업무를 지휘감독하는지 등 여러 요소를 종합해 종속성 여부를 판단한다. 이 중 일부 요소가 없더라도 전체적으로 종속성을 인정할 수 있으면 근로자로 본다.
회사의 임원은 보통 근로자가 아닌 사용자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법원은 회사의 이사 또는 감사 등 임원이라고 해도 임원 지위나 명칭이 명목적인 것이고 실제로는 매일 출근해 대표이사나 다른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 일정한 근로를 제공하면서 보수를 받는 관계에 있었다면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본다. 사례1의 나억울 씨가 이사라는 직함을 받았지만 업무수행에 관해 다른 임원의 지휘·감독을 받아왔다면 근로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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