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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 분석

역사 다큐 ‘백년전쟁’의 이승만 죽이기

역사 왜곡해 친일파 몰고 사진 합성해 ‘플레이보이’ 비하

  • 이정훈 기자 | hoon@donga.com

역사 다큐 ‘백년전쟁’의 이승만 죽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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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사실로 만든 역사 공작

역사 다큐 ‘백년전쟁’의 이승만 죽이기

친일파 연구를 했던 故 임종국씨.

민문연은 이승만·박정희는 각 2편, 전두환·노무현은 각 1편씩 모두 6편의 ‘백년전쟁’을 각 50분 정도 분량으로 제작하겠다고 했다. 현재는 이승만과 박정희를 소재로 각 1편씩만 내놓았다. 민문연이 ‘백년전쟁’을 ‘새로운 스타일의 역사 다큐’로 규정한 것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대한민국 역사를 민문연 스타일로 정리하겠다는 뜻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민문연이 제시한 역사관을 토대로 사구체 논쟁 같은 것을 해보자는 얘기가 된다. 그렇다면 이 다큐는 사실을 토대로 해야 한다.

신념은 좌파와 우파로 나뉘더라도 역사 인식만큼은 사실을 토대로 해야 한다. ‘백년전쟁’은 사실을 토대로 역사를 해석하고 있는가. 민족문제를 다루겠다는 민문연이 사실이 아닌 것을 근거로 역사 다큐를 만들었다면 그 조직의 본연성에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다. 일방적인 사실과 허위 사실로 역사를 만드는 것은 민족 정통성을 부정하는 심각한 ‘역사 공작’이다. 단순한 실수와 다르다.

1차 인혁당이 실존했다고 증언한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해서 그렇지, 인혁당 사람들은 정말 순수한 사람들이었다”고 강조했다. 순수한 사람들은 사실을 사실로 볼 수 있다. 재미를 위해 유튜브 특유의 희화화·비틀기·단순화를 할 수 있지만, 역사 다큐라고 한 만큼 ‘백년전쟁’은 사실에 충실해야 한다. 두 편의 ‘백년전쟁’을 보면서 민문연의 역사 인식을 따져보기로 한다.

이승만을 다룬 ‘두 얼굴의 이승만’(이하 ‘두 얼굴’)은 이승만을 친일파와 파렴치범으로 규정한다. 이승만을 친일파로 규정한 근거는 두 가지로 판단된다. 첫째 광복 후 친일파 척결에 반대했고, 둘째 일제 때 다른 독립운동가와 마찰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또한 이승만을 박사학위를 억지로 받아내고 여성과 놀기 좋아한 바람둥이로 묘사해 이승만의 도덕성에 일격을 가했다.



‘두 얼굴’이 주장하는 ‘이승만=친일파’를 거시적으로 살펴보자. 이승만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왔기에 그에 대해서는 만인만색의 의견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란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1919년 그는 상하이의 (통합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 1948년 건국한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을 지냈다.

이승만이 친일파라고?

역사 다큐 ‘백년전쟁’의 이승만 죽이기

‘두 얼굴’은 나치 독일을 거론하며 이승만을 콜라보·친일파로 몰았다.

박정희처럼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것도 아닌데 왜 그가 대통령에 추대됐는지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3·1운동 9년 전인 1910년 이승만은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국제정치학을 공부하고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당시엔 프린스턴 같은 아이비리그 대학도 매년 1~3명의 박사만 배출했기에 박사는 매우 드문 존재였다. 박사가 된 이승만은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펼쳤고, 미국인들은 박사인 그를 인정했다.

3·1운동 후 국내외에서 생겨난 여러 임시정부도 그를 인정했다. 13도 대표가 모여 만든 ‘국내 임정’ 한성정부는 미국에 있던 이승만을 지금의 대통령과 비슷한 ‘집정관총재’로 추대했다. 내각제를 채택한 상하이(上海) 임정은 그를 국무총리로 추대했다. 여타 임정도 이승만을 주요 보직에 추대했다.

그 후 상하이 임정이 여타 임정을 통합하며 대통령제로 바꿔 이승만을 초대 대통령에 추대했다. 이승만이 친일파였다면 독립의 기운이 펄펄 끓던 시절 상하이 임정을 비롯한 여러 임정에서 그를 핵심적인 지위에 추대할 수 있었을까.

이승만이 친일파였다면, 그를 추대한 여러 임정의 사람들, 그리고 그를 압도적인 표 차로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선출한 제헌의원들도 친일파였다는 굴레를 벗기 어렵다. 196명이 투표한 제헌의회에서는 무려 180표(91.8%)가 이승만에게 쏟아졌다. 김구는 13표, 서재필은 1표였다. 이승만이 전략적인 판단으로 반일(反日)의 강도를 낮춰, 강경 반일을 외친 사람들과 맞섰던 것을 근거로 그를 친일파라고 규정한다면, 국가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을 간단히 종북세력·친북파라고 몰아버리는 것과 뭐가 다른가.

1952년 선포된 이승만 라인(평화선)을 보라. 그가 친일파였다면 독도 영유권을 분명히 한 평화선을 선포했을까. 이승만의 반일노선은 일관됐고 생각 이상으로 강력했다. 대한민국 정부 출범 나흘째인 1948년 8월 18일 그는 처음으로 한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일본에 대마도를 한국에 반환할 것을 요구할 것이다”라고 천명했다. 미군정 치하 일본의 요시다 시게루 내각이 반발하자 9월 9일 대마도는 대한민국의 영토라는 ‘대마도 속령(屬領)에 관한 성명’을 발표했다. 1949년 1월 8일 연두회견에서는 “대일(對日) 배상문제는 임진왜란 시부터 기산(起算)해야 한다” “대마도는 별개로 취급돼야 할 것이다”라고 밀어붙였다. 이승만은 6·25전쟁에서 한국을 도와준 미국이 그렇게 권해도 일본과 수교하지 않았다.

나치 독일까지 동원

그런데도 ‘두 얼굴’은 나치 독일의 선전장관 요제프 괴벨스를 이용해 이승만을 친일파로 만드는 공작을 한다. 허무맹랑한 것으로 사실을 바꾸었으니 공작이다.

‘두 얼굴’은 괴벨스가 “우리가 어떤 나라에 쳐들어가면 그 나라 국민은 자동적으로 세 부류가 된다. 한쪽엔 저항세력(레지스탕스), 다른 쪽엔 협력자(collaborator, ‘콜라보’로 약칭)가 있고, 그 사이에 머뭇거리는 대중(masses)이 있다. 그 나라 국민으로 하여금 자신들의 온갖 부(富)가 약탈되는 것을 참게 하려면, 머뭇거리는 대중이 레지스탕스 무리에 가담하지 않고 콜라보 편에 서도록 설득해야 한다”라고 연설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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