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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탕아’ 월가 황제 등극하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CEO

  • 하정민│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dew@donga.com

‘돌아온 탕아’ 월가 황제 등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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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구조조정→매각·합병

1998년부터 2003년까지 씨티그룹 CEO를 지낸 샌포드 웨일은 1990년대 월가의 금융황제로 현대 미국의 금융역사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1933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폴란드 유대인 출신 이민자 후손으로 태어난 웨일은 코넬대를 졸업한 후 1960년 시어슨을 차렸다. 지금이야 제이컵 루, 티모시 가이트너, 헨리 폴슨 등 유대인 출신 미국 재무장관이 3명 연속 배출되고 월가 주요 금융회사 CEO의 상당수가 유대계지만 당시만 해도 유대인은 월가의 소수자였다.

저돌적이고 불같은 성격의 웨일은 20년 만에 시어슨을 월가의 알짜 회사로 키웠다. 1981년 대형 카드회사 아메리칸익스프레스(아멕스)에 9억3000만 달러를 받고 시어슨을 매각한 후 자신이 합병회사 사장이 됐다. 웨일은 아멕스의 사장으로 월가 황제가 될 채비를 차근차근 하고 있었고, 다이먼은 그의 M·A 기술을 어깨너머로 배우면서 제2의 웨일을 꿈꿨다. 하지만 1985년 웨일은 아멕스 내부 파워게임에서 패해 회사를 나왔다. 다이먼도 사회적 아버지를 따라 미련 없이 아멕스를 떠났다. 웨일이 아멕스에서 나올 때 그를 따라 나온 사람은 다이먼이 유일했다.

웨일은 퇴사 1년 만인 1986년 소형 대부회사 커머셜크레디트를 인수한다. 아멕스에 비해서는 볼품없는 회사였지만 웨일과 다이먼은 무자비한 구조조정으로 커머셜크레디트를 완전히 다른 회사로 바꿔놨다. 이후 웨일과 다이먼은 걸프인슈어런스, 프라이메리카, 살로먼브러더스, 드렉셀번햄램버트, 트래블러스, 아테나 라이프·캐주얼티 등 중소형 보험회사, 채권회사, 증권회사를 줄줄이 인수했다. ‘남이 눈여겨보지 않는 조그만 회사를 사들여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한 후 비싼 값에 되팔거나 더 큰 회사와 합병해서 자신이 합병회사의 CEO가 된다’는 웨일의 고유한 성공방식도 정립됐다.

당시 월가의 주류였던 기업금융이 아니라 소매금융 전문회사를 사냥감으로 삼는 웨일의 방식은 훗날 다이먼과 JP모건이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무난히 헤쳐나갈 수 있도록 하는 데 큰 힘이 됐다. 기업공개(IPO), 증권 발행, 인수합병 등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금융은 성공하면 소매금융보다 훨씬 큰돈을 벌 수 있지만 그만큼 위험도 크다. 소매금융은 ‘폼 나는’ 사업은 아니지만 안정적인 운용이 가능했다. 웨일과 다이먼에게 금융이란 ‘소매금융과 구조조정’의 동의어나 다름없었다.



‘돌아온 탕아’ 월가 황제 등극하다
‘사회적 아버지’에게 버림받다

1998년 4월 샌포드 웨일은 꿈에 그리던 월가 금융황제가 될 기회를 잡는다. 당시 보험, 증권, 자산운용사 등으로 구성된 트래블러스의 CEO였던 웨일은 미국 최대의 지점망을 자랑하는 씨티코프의 존 리드와 손잡고 합병회사를 출범시켰다. 세계 100여 개 국가에 27만 명 직원, 2억 명의 고객을 둔 초대형 금융종합회사 씨티코프의 탄생은 그 자체로 미국 경제와 월가의 위용을 상징했다.

트래블러스와 씨티코프는 합병회사의 이름을 씨티그룹으로 정했고 웨일과 리드는 공동 CEO가 됐다. 각각 보험과 은행을 기반으로 한 두 회사의 짝짓기는 ‘가장 이상적인 결합’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월가에 엄청난 회오리를 몰고 왔다. 실제 씨티코프를 찾는 고객에게 트래블러스의 보험 및 자산운용 상품을 팔고, 트래블러스의 보험 고객에게 씨티코프의 은행 및 카드 상품을 판매하는 일은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냈다.

씨티그룹은 1998년 출범 후 2008년 금융위기 전까지 약 10년간 독보적인 세계 1위 금융회사의 지위를 유지했다. 그 주춧돌을 놓은 사람이 웨일과 다이먼이라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다. 다이먼은 앞으로 ‘원 톱’이 되어 씨티그룹과 월가를 호령할 웨일을 잘 보좌하기만 하면 언젠가 그 자리가 자신에게 돌아오리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하지만 그의 꿈은 7개월 만에 무참하게 깨졌다. 사회적 아버지였던 웨일이 그를 차갑게 내쳤기 때문이다. 어이없게도 이는 사회적 자식인 다이먼과 웨일의 친자식 간 균열에서 비롯됐다.

웨일에게는 결혼해서 비블리오위츠라는 성을 쓰는 제시카라는 딸이 있었다. 젊은 시절 비서와 눈이 맞아 가족을 버린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있는 웨일은 자식을 끔찍이 아꼈고 배신을 세상에서 제일 싫어했다. 그가 다이먼을 높이 산 이유도 아멕스에서 쫓겨날 때 자신을 배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합병 당시 제시카는 씨티그룹 소속의 살로먼스미스바니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다. 아버지가 그룹 경영자인 만큼 그녀는 합병 직후 인사에서 당연히 승진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불과 42세의 나이로 살로먼의 CEO을 맡고 있던 다이먼은 제시카를 승진 대상에서 제외했다. 다이먼은 아무리 실적이 좋다 해도 웨일의 딸을 바로 승진시키면 옛 씨티코프 세력들의 반발을 사 순조로운 합병이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웨일은 불같이 화를 냈고 제시카는 회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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