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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그 후

그들이 면도칼을 휴지에 쌌다 “들키면 삼키고 죽갔습네다”

채널A 다큐 ‘특별취재 탈북’ PD 육성 증언

  • 구술·양승원│채널A 제작본부 PD swyang@donga.com 정리·남윤서│채널A 경영전략실 기자 baron@donga.com

그들이 면도칼을 휴지에 쌌다 “들키면 삼키고 죽갔습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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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면도칼을 휴지에 쌌다 “들키면 삼키고 죽갔습네다”

북한 양강도 해산시의 최근 사진.

“딩동”

갑자기 들려온 현관벨 소리에 일동은 순간 굳어버렸다. 사람들이 불을 끄고 방으로 들어가는 동안 한 명이 조심스럽게 문 밖을 확인했다. 아무도 없었다. 윗집 아이들이 벨을 잘못 누른 모양이다. 탈북을 시도하다 북송된 경험이 있는 윤경 씨(26·여)는 특히 긴장된 표정이었다. 한 번 더 북송된다면 그땐 더 강력한 처벌을 받기 때문이다.

안가에서 머무르는 날이 많아질수록 긴장감은 점점 고조됐다. 한곳에 오래 머무를수록 발각될 위험도 커진다. 떠나야 할 날이 다가왔다. 안가를 떠나기 전, 탈북자들은 면도기에서 면도날을 떼어내 휴지에 쌌다. 위기의 순간이 닥치면 차라리 면도날을 삼키고 죽겠다는 그들에게 강 PD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미국놈’이 만든 약

탈북자들의 다음 목적지는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A국. 국경까지는 버스를 갈아타며 5, 6일을 가야 한다. 13명이 집단으로 움직이면 어딜 가나 눈에 띄기 쉽다. 대화 소리가 들리면 들키기 십상이다. 탈북 브로커는 일행에게 몇 번이고 “말을 하지 마라”고 강조했다. 버스는 하루에 단 한 번 휴게소에 들른다. 나머지 시간에는 버스 안에서 말 한마디 꺼내지 못하고 버텼다.



위기는 불쑥 찾아왔다. 강 PD는 탈북자 분홍 씨(30·여)와 휴게소에 내려 일행의 먹거리를 사러 가고 있었다. 그때 중국 공안이 다가와 신분증을 요구했다. 다행히 강 PD는 신분증이 든 가방을 들고 있었다. 또 분홍 씨가 중국어를 할 줄 알았던 덕에 두 사람은 적당히 관광객이라고 둘러댔고 공안은 자리를 떴다. 만약 가방을 차에 두고 내렸다면 공안이 버스 안까지 따라와 탈북자들을 발견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와 두 명의 아이는 성인 탈북자들이 출발한 지 이틀이 지나서야 국경으로 향했다. 공안이 우리를 의심한다면 자녀를 데리고 여행 중이라고 할 작정이었다. 버스 멀미로 고생하던 진혁이의 눈이 가장 아이답게 반짝거리는 순간은 하루 한 번 들르는 휴게소에서였다. 휴게소에 있는 가게에 아이를 데려간 뒤 말했다.

“너 먹고 싶은 것 마음대로 골라.”

진혁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가 뭔지 잘 몰라 머뭇거리더니 빵이며 과자를 하나씩 주워 담기 시작했다.

진혁이가 고른 것들은 하나같이 양만 크고 맛은 없었다. 빵은 종잇장처럼 뻣뻣했다. 아이에게 내가 고른 소시지를 줬더니 큰 눈이 더욱 커졌다. 허겁지겁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콜라도 건네줬다. 진혁이는 물인 줄 알고 들이켜고는 톡 쏘는 맛에 얼굴을 찡그렸다. 하지만 곧 익숙해졌다. 그다음부터 진혁이는 휴게소에 들를 때마다 소시지와 콜라부터 챙겼다. 한번은 윤정이가 머리가 아프다고 하기에 가지고 있던 아스피린을 반으로 잘라줬다. 약을 받아먹은 윤정이는 금방 머리가 나았다며 물었다.

“그거 무슨 약입니까?”

“이거 미국에서 만든 약이야.”

아이는 얼굴을 찡그리더니 “미국놈”이라고 말했다. 나는 “너희 잘 먹는 콜라도 미국에서 만든 건데?”라고 얘기했다. 그랬더니 “그래서 목을 그렇게 쏘는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먼저 출발한 성인 탈북자 그룹과 A국 국경지역에서 만났다. 강 PD와 헤어진 지 열흘 만의 재회였다. 탈북 브로커는 우리가 중국에서 A국으로 밀입국하는 길에 동행하는 것을 한사코 거부했다. 루트가 공개되면 안 된다는 이유였다. 나와 강 PD는 촬영을 포기하고 합법적으로 먼저 국경을 넘었다. 15명의 탈북자는 브로커와 함께 산을 넘어 A국으로 들어올 것이다.

‘아들아 소중히 너를 키워서…’

나는 A국을 넘자마자 바로 탈북자들의 다음 목적지인 B국으로 갔다. B국의 안가를 답사하고 탈출 루트를 미리 가보기 위해서였다. B국을 둘러본 뒤 다시 A국으로 돌아온 나는 탈북자들이 기다리고 있을 안가로 향했다. 감시가 약해진 새벽에 비를 맞으며 산을 넘어온 일행은 지친 얼굴이었다. 10개월짜리 딸을 업고 산을 넘은 분홍 씨는 특히 지쳐 있었다. 아기가 비에 맞지 않도록 비닐을 뒤집어씌우고 왔다고 했다.

“산에서 내려오니까 처음 보는 글씨로 써진 간판이 보이더라고요. 그제야 우리가 성공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중국을 벗어나자 이들의 얼어붙었던 마음이 조금 녹아내린 듯했다. 일행은 진혁이에게 노래를 해보라며 박수를 쳤다. 진혁이는 한번 빼는 법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노래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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