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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의 힐링 healing 필링 feeling

관계가 소거된 테마파크市 그 골목에서 만난 옛 애인

북촌에서, 서촌 방향으로

  • 정윤수│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관계가 소거된 테마파크市 그 골목에서 만난 옛 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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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가 소거된 테마파크市 그 골목에서 만난 옛 애인

서울 종로구 통인동 통인시장.

내 짐작에 개작에 대한 욕망은 이미 단편의 끄트머리에 불씨처럼 남아 있었다. 단편의 끝에서 박완서는 “그래. 실컷 젊음을 낭비하려무나. 넘칠 때 낭비하는 건 죄가 아니라 미덕이다. 낭비하지 못하고 아껴둔다고 그게 영원히 네 소유가 되는 건 아니란다. 나는 젊은이들한테 삐쳐지려는 마음을 겨우 이렇게 다독거렸다”고 썼다. 회한과 부러움이 뒤섞인 한숨처럼 들렸다.

노작가는 왜 젊은이들에게 삐쳐지려고 했는가. 단편에서(그리고 아마도 개작 장편에서도) 박완서는 저 6·25전쟁 직후의 스산한 서울 도심을 묘사했다. 그 시절에 살았던 돈암동 일대가 작품의 무대다. 작가는 공들여 돈암동의 그 시절을 묘사한다. “얌전하게 쪽찐 노부인처럼 적당히 품위 있고 적당히 퇴락한 조선 기와집 동네” 말이다. 그 시절의 한옥과 골목과 꽃밭. 그리고 사립여자대학을 중심으로 펼쳐진 오늘날 돈암동의 활달한 풍경. 그 사이의 기나긴 시간대를 작가는 서성거린다. 우선 전쟁 직후의 풍경을 보자.

“한길에서 그 집을 들여다보면 대문이 보이지 않고 고궁에서나 볼 수 있는 홍예문이 보였다. 홍예문은 사랑마당으로 통하는 문이었고 안채로 통하는 대문은 홍예문이 달린 담장과 기역자로 꺾인 곳에 달려 있었다. 난 왠지 문지방이 돌로 된 위압적인 솟을대문보다는 단아하고 고풍스러운 홍예문에 더 압도당하고 있었다. 추녀를 나란히 한 고만고만한 조선 기와집하고는 격이 달라 보였다. 마침 짐을 나르던 청년이 우리 곁에서 머뭇대며 아는 척을 하고 싶어하는 눈치를 보이자 노마님이 우리 막내라고 인사를 시켰다. 서글서글한 미남이었다.”

그렇게 만난 사이였지만 인연이 다 이뤄지지는 못했다. 서로를 갈망하였고 그리하여 ‘아슬아슬한 위기의식’까지 느꼈으나 이뤄지지는 못했다. 그것은 사랑이었고 연애였고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이었지만 무엇보다 육체적인 젊음과 금기 사이의 갈등이기도 했다.

아니, 박완서는 소설에서 분명하게 말한다. “나에게 그가 영원히 아름다운 청년인 것처럼 그에게 나도 영원히 구슬 같은 처녀일 것이다. 우리는 그때 플라토닉의 맹목적 신도였다. 우리가 신봉한 플라토닉은 실은 임신의 공포일 따름인 것을.”





到處 옷가게, 皆有 커피숍

옛 기억 속의 한옥과 골목과 천변의 밤 풍경 속에서 소설 속의 ‘나’는 사랑을 앓았고 미처 그 사랑을 온전히 다 풀어보지는 못했다. 그게 회한이 되었다.

그러나 단지 그 시절의 사랑을 그리워하는 것뿐일까. 그 정도라면 공들여 단편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고 개작하여 장편으로 내놓지도 않았을 것이다. 박완서는 그 시절의 풋내 나는 사랑의 기억을 어루만지면서 전쟁으로 인해 파괴돼버린 가족과 생의 윤리와 오로지 생존만이 유일법칙이 되었던 한 세대의 집합적 정한을 되살린다. 그런 시절에 비하여 오늘날 돈암동 일대는 언뜻 보기에 생의 희열과 욕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작가는 말한다. “넘칠 때 낭비하는 건 죄가 아니라 미덕”이라고. 자기 세대는 그럴 수 없었고 그럴 처지도 아니었다고.

1인칭 소설을 읽고 나서 ‘아, 작가의 개인사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것만큼 초보적이고 위험한 독후감도 없겠지만, 그러나 박완서 스스로 밝힌 바 있듯이, 그의 1인칭 소설은 대체로 그 자신이 겪은 이야기다. 그런 점에서 그가 ‘임신의 공포’를 언급한 것은 자신의 기억을 ‘낭만화’하지 않는 대가의 마침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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