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학사정관들이 대입 면접을 진행하고 있다.
입학사정관제를 둘러싼 이런 소동과 논란의 배경은 무엇인가. 입학사정관제는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새로운 대입전형 방식으로 검토되기 시작했으나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은 이명박 정부 들어서다. 입학사정관제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성적 이외의 평가 요소를 적극적으로 고려한다는 것이다. 지원자의 성장환경이라든지 비교과활동(extracurricular activities)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성적만으로 드러나지 않는 종합적이고 총체적인 됨됨이를 평가하겠다는 것이 입학사정관제다.
입학사정관제의 가장 큰 약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교과성적’과 ‘비교과활동’ 중에서 어느 쪽에 부모의 영향력이 더 많이 미칠까. 물론 교과성적에도 부모의 영향력이 작용한다. 부모의 학력이나 소득에 따라 학업성취도나 수능 점수에 차이가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럼에도 교과성적은 공교육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평가한다는 원칙이 있다. 반면 비교과활동이란 거칠게 말하면 ‘밑도 끝도 없는’ 것이어서, 부모의 학력·문화·소득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더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
미국, 영국만 도입한 ‘예외적 제도’
적지 않은 사람이 입학사정관제가 선진국에서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제도인 줄 안다. 그런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서구 주요 선진국 가운데 성적에 비교과활동까지 더해 대학 입학생을 선발하는 나라는 미국과 영국밖에 없다. 나머지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성적만으로 선발한다. 독일도, 프랑스도, 스웨덴도, 캐나다도, 호주도 그렇다. 프랑스의 일부 그랑제콜에서 추천서를 요구한다든지, 캐나다의 일부 대학에서 에세이(자기소개서)를 요구하는 등의 사소한 예외가 있을 뿐이다. 구체적으로는 프랑스처럼 대학입시 성적만으로 선발하기도 하고, 캐나다처럼 고교 내신성적만으로 선발하기도 하며, 독일처럼 대학입시와 고교 내신성적을 합산하기도 하고, 스웨덴처럼 고교 내신성적과 대학입시 성적 가운데 지원자가 택일하도록 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쨌든 대부분의 선발 기준은 성적이다.
같은 북미지역이지만 미국과 캐나다에 사는 고등학생의 생활을 비교해보면 재미있는 대척점을 발견할 수 있다. 미국에서 교육열이 높은 중산층 이상 거주지역의 학생들은 비교과활동을 한 가지라도 더 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인다. 봉사활동, 인턴, 연구클럽, 오케스트라 연습 등으로 쉴 틈이 없다. 반면 캐나다 학생들은 고교 내신성적만으로 대학에 진학할 수 있기 때문에, 에세이를 요구하는 일부 대학에 지원하거나 미국 대학에 진학하려는 일부 학생을 제외하고는 삶에 여유가 있다. 최근 이른바 ‘기러기 가족’이나 ‘교육이민자’ 가운데 상당수가 미국이 아닌 캐나다를 택하는 데는 이런 배경이 작용하는 것이다.
입학사정관제는 선진국에서 보편화한 제도라기보다는 다소 예외적인 제도다. 다만 세계 최강국인 미국이 채택하고 있어 그 가치가 과대평가된 측면이 있다.
특히 미국에서는 명문 사립대에서 입학사정관제의 우산 아래 기여입학제(legacy admission)를 시행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유사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노골적인 ‘학벌 장사’가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2000년대 들어 ‘월스트리트저널’에서 입학사정관제를 파헤친 보도가 퓰리처상을 수상하고 ‘타임’ 등 주요 언론에서 이 문제를 다루면서 비로소 그 실상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아이비리그 신입생 가운데 무려 13%가 기여입학제로 입학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기자 대니얼 골든의 저서 ‘왜 학벌은 세습되는가?’(동아일보사)나 UC버클리대 교수인 제롬 카라벨의 ‘누가 선발되는가?’(한울) 등을 보면 입학사정관제의 가장 어두운 부분을 실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