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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함께하는 우리 산하 기행 <마지막회>

머나먼 방랑 끝에 돌아온 빛과 냄새의 항구

강원 주문진

  • 최학 │우송대 한국어학과 교수 hakbong5@hanmail.net

머나먼 방랑 끝에 돌아온 빛과 냄새의 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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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향한 작별의 몸부림

머나먼 방랑 끝에 돌아온 빛과 냄새의 항구

주문진 어시장.



기록을 보면, 주문진 등대는 1918년 3월에 세워졌다. 3·1운동이 일어나기 한 해 전이라고 생각하니 등대의 나이를 실감한다. 강원도에서 첫 번째로 세워진 등대로 우리나라 등대 건축의 초기 양식을 보여주는, 건축사적으로도 가치가 큰 등대로 알려져 있다. 밤이 되면 등대 불빛이 15초에 한 번씩 반짝이며 37km 거리에서도 불빛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주문진항에 여객선이며 화물선이 처음 입항한 것이 1917년 부산-원산을 내왕하는 기선의 중간 기항지가 되면서부터라고 하니 이 등대는 그 이듬해부터 밤바다의 뱃길을 열어주는 착한 일을 한 셈이다.

해가 기울고 바람이 좀 더 세찰 무렵 어시장으로 돌아왔다. 회 접시를 놓고 소주잔을 채우고 싶은 그런 때였다.

마른 물고기들이 죄 저편 건어물시장에 있다면 살아서 펄떡이는 바닷고기들은 모두 이편 어시장에 있다. “네 마리 만 원! 네 마리 만 원!” 그중에서도 가장 흔한 것이 산 오징어다. 홍게와 복어도 흔하디흔하다. 미로처럼 생긴 시장 통로마다 생선을 구하고 보려는 이들로 북적이고, 잠시라도 그들을 붙잡으려는 상인들이 소리 소리를 지르는 이곳은 말 그대로 장판이다. 저마다 장화를 신고 고무 앞치마까지 걸친 상인들이 뜰채를 든 채 줄지어 통로에 버티고 서 있다.



손님이 가리키기만 하면 그들은 뜰채로 수족관의 물고기를 냅다 건져 올린다. 물고기들의 퍼덕임, 퍼덕임… 살아 숨 쉬는 자들의 가장 역동적인 모습이 이곳에 있으며 죽음은 저편 실내 장막 뒤에 있다. 여느 어시장이 그렇듯이, 여기서도 횟감을 골라 즉석에서 회를 먹을 수 있다. 회를 쳐줄 뿐만 아니라 주류며 채소와 양념값만 받고 자리를 내주는 식당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 이들 식당엔 전문적으로 회만 치는 이들이 있어서 온종일 장막 뒤에서 생선을 처리한다.



변두리 떠도는 성긴 눈발들

등 뒤에 발걸음 서성거리게 하고

붉은 국물 엷게 밴

싱싱한 사발낙지 한 마리

살짝 데쳐

좌판 소주 한 잔에

바늘 침으로 집어 올릴 때

누린내 졸아드는 국물 위로

첫사랑 여자의

망설이던 눈동자 떠오른다



어깨에 쌓인 눈 툭툭 털어내고

살찐 사발낙지 마지막

한 점 씹어 넘길 때

머나먼 바다를 떠돌던

방랑의 귀향자들아!

바다를 향해 작별의 깃발을 흔들어라!

자욱한 어둠이 먹물처럼 목구멍에 차오르면

얼얼한 얼굴에 부딪쳐 오는 찬바람

좌우로 가르며 선창가 걷는다



다가설 수 없는 그리움 껌벅이는

오징어 배 불빛

눈가에 가물거리고

빈 터

떠돌던 진눈깨비

불빛 환한 선술집 유리창에 몸 부딪쳐

참았던 눈물

터뜨리며 얼었던 몸 부르르 떤다

-최동호 ‘주문진 겨울 어시장’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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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학 │우송대 한국어학과 교수 hakbong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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