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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치의 달인

공범이 되고 ‘묵은 김치’가 되어라

승진의 정치학

  • 이종훈│시사평론가 rheehoon@naver.com

공범이 되고 ‘묵은 김치’가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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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하게 넋 놓고 있다간…

공범이 되고 ‘묵은 김치’가 되어라

임원은 ‘별’이다.

그렇다면 상위 1%에 속해보겠다고 마음먹는 직장인은 구체적으로 얼마나 될까. 잡코리아 에이치알파트너스가 지난 4월 전국 남녀 직장인 69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임원 승진을 준비 중인 직장인은 남성이 38.5%, 여성이 25.8%, 평균이 31.8%였다. 현실에 비해 여성 직장인의 의지가 의외로 도발적이다.

임원 승진 준비를 시작하는 시기는 대략 언제쯤일까. 직장 경력 3∼5년 때부터 준비한다는 응답이 26.8%, 입사하는 순간부터 준비한다는 응답이 22.3%였다. 신입사원 때부터 상위 1%에 속해보려 준비를 시작하는 직장인이 대략 5명 중 1명 정도에 불과하다. 다른 말로 5명 가운데 4명은 신입사원 시절, 그 중요한 시기를 프레시(fresh)하게 넋 놓고 지낸다는 뜻이다.

임원이 되어보겠다는 사람들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도 알아보자. 직무분야 전문지식 습득 44.1%, 인맥관리 41.4% 순이었다. 그런데 업무 역량은 기본 중에서도 기본이다. 임원 승진심사에서 결정적 고려사항이 아니다. 부장 정도까지 승진할 정도면 업무 역량은 그야말로 도 긴 개 긴. 인사권자인 사주(또는 CEO)의 마음을 움직일 ‘결정적 그놈’은 과연 뭘까. 충성도? 섭외력? 판단력? 결단력? 통솔력?

대한석탄공사 사장을 지냈고 ‘임원의 조건’을 집필한 조관일 창의경영연구소 대표가 꼽은 임원의 첫 번째 조건은 ‘정치력’이다. ‘사내 정치를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것도 신입 때부터. 사내 정치를 잘 모르면 임원이 되기도 어렵지만, 된 이후에도 오래 살아남기 어렵다고 한다. 조 대표가 꼽은 두 번째 조건은 ‘충성심’이고 세 번째는 ‘추진력’이다.



미세하지만 이론(異論)이 있을 수 있다. 일부는 ‘충성심’을 첫 번째 조건으로 꼽기도 한다. 틀린 관점은 아니다. 그런데 충성심을 보여주는 것도 결국 사주(또는 CEO)를 상대로 하는 사내 정치의 일종이다. 사주(또는 CEO)의 처지에 서보면 답이 바로 나온다. 업무 역량이 비슷하다면 어떤 사람을 임원, 특히 등기임원으로 삼고 싶을까. 역시 충성심이 높은 사람일 것이다. 충성도가 높다면 업무 역량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큰 문제가 아니라고 저들은 생각한다. 왜 이토록 충성심에 매달릴까. 그것은 당신이 연애를 하거나 결혼을 하는 이유와 같다. 외롭고 두렵기 때문이다.

능력보다 충성심

인간은 기본적으로 외로운 존재다. 또 불완전하기에 늘 두려워한다. 그런데 사주(또는 CEO)가 되면 이런 감정이 극대화한다. 더 외로움을, 두려움을 느낀다. 조직은 기본적으로 피라미드 구조다. 그 파라미드의 정점에 혼자 서 있다고 생각해보라! 책임을 오롯이 혼자 져야 한다면? 결정이 잘못될 경우 회사가 망할 수도, 교도소에 가야 할 수도 있다면?

이때 사주(또는 CEO)는 ‘누군가 이 일을 대신해줄 사람이 없을까?’ ‘이 외로운 결정에 확신을 불어넣어줄 사람이 없을까’라고 생각한다. 바로 이때 부르면 군말 없이 신속하게 달려와 조언도 해주고 확신도 불어넣어주는 존재가 바로 임원이다. 더 정확한 조언, 더 확고한 확신을 불어넣어줄 수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별 중의 별, 차기 CEO감이다.

이사회는 늘 아름다운 결정만 내리는 곳이 아니다. 오히려 비난을 받거나 비판을 감수해야 할 때가 더 많다. 감원 결정도, 임금삭감 결정도, 사업철수 결정도 내려야 한다. 때로는 편법, 불법 행위도 공모해야 할지 모른다. 회사 밖에 나가 발설하면 회사가 위기에 빠지는 비밀을 공유해야 한다. 사주(또는 CEO)가 충성도를 따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죽으라고 하면 죽는 시늉이라도 할 만한 충성도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아니, 사주(또는 CEO)가 그런 충성도를 하루아침에 확인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꽤 긴 시간인 20여 년 동안 내 사람이 될 만한지 아닌지를 진단하는 것이다. 처음엔 멀리 두고 눈여겨보다 나중에는 가까이 두고 검증하는 식이다. 그래서 임원이 되기 원하면 가능한 한 빨리 저들 곁으로 다가가야 한다. 최대한 신속하게 직속 라인에 들어가는 게 유리할 수밖에 없다.

A급 직원은 따로 관리

사실, 어느 기업이건 A급 직원은 입사 초기부터 따로 관리한다. 회사가 이 직원의 근무지나 경력을 엘리트 코스로 관리해준다. 그러다 못 따라오면 중도 탈락시키고 잘 따라오면 요직에서 요직으로 돌리며 키워나간다.

이 때문에 직장에서는 첫 근무지가 대개 자신의 라인이 된다. 첫 상사가 그만큼 중요하다. A급 직원을 따로 관리하는 이유도 결국 라인과 관련이 깊다. 유력 부서의 유력 인물 밑에 잠재력 있는 신입사원을 배치해 회사를 이끌 엘리트 집단을 만들어가는 전략이다. 실력도 있지만 충성도도 높은 직속 진골 라인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입사 초기 A급 직원으로 분류돼 핵심 부서를 첫 근무지로 배정받았다면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일단 직속 라인에 속할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반면 B급 이하 직원으로 분류돼 평범한 부서의 눈 풀린 상사 밑에서 일하는 처지가 됐다면 빨간불이 켜졌다고 봐야 한다. 신입사원에게 빨간불 운운하다니 너무 잔인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엄연한 현실, 실제 상황이다. 이 경우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발군의 역량 발휘로 B급 딱지를 떼거나 초강력 충성 맹세 요법으로 기존 라인에서 탈출해 직속 라인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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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훈│시사평론가 rheeho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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