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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치의 달인

여러 갑이 눈길 주는 ‘슈퍼을’이 되자

을(乙)의 정치학

  • 이종훈│시사평론가 rheehoon@naver.com

여러 갑이 눈길 주는 ‘슈퍼을’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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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은 갑(甲)인가. 누구도 쉽게 ‘그렇다’고 답하지 못한다. 그만큼 드문 게 갑이다. ‘슈퍼갑’은 더 드물다. 갑이 을(乙)과 거래를 해줘야 을은 생존할 수 있다. 그런데 을은 을이되 여러 갑이 눈길을 주는 ‘슈퍼을’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을의 정치학은 ‘그냥 을’을 슈퍼을로 만들어준다.
여러 갑이 눈길 주는 ‘슈퍼을’이  되자
울트라 슈퍼갑이라고 해도 항상 울트라 슈퍼갑인 경우는 거의 없다. 재벌 오너는 울트라 슈퍼갑이지만 가끔 검찰에 불려갈 땐 을이 된다. 검사는 울트라 슈퍼갑이지만 인사권자 앞에선 을이 된다. 대기업은 시장에선 갑이지만 정책당국이나 국회의원 앞에선 을이다. 국회의원도 후원금을 많이 내는 기업 앞에선 을이다.

‘半甲半乙’로 사는 운명

재벌 2세로 태어난 사람은 ‘모태갑’에 해당한다. 이런 운을 타고난 사람은 극소수다. 10대 대기업 대부분은 ‘을 중의 을’로 시작했다. 창업주는 대다수 일반인처럼 ‘모태을’로 태어났을 뿐이다. 일반인이 을로만 사는 건 아니다. 중간 관리자 정도만 해도 완전 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도 부하 직원이나 협력업체 관계자 앞에서는 갑이다. 이런 점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반갑반을(半甲半乙) 상태로 사는 운명이다.

우리는 현재의 반갑반을 상태에 만족할까. 아마 아닐 것이다. 최선은 인생의 99%를 갑으로 사는 울트라 슈퍼갑이다. 그러나 이렇게 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차라리 슈퍼을에 도전하는 편이 좀 더 현실적일 수 있다. 물론 이것 역시 쉽게 달성할 수 있는 목표는 아니다. 당장 필요한 것은 현실 진단이다. 내가 갑인 관계 말고 을인 관계서 어떤 국면인지부터 진단해보자. 아래 표에서처럼 다갑일을, 일갑일을, 다갑다을, 일갑다을 중 하나일 것이다.

다갑일을은 을이 혼자인 가운데 갑이 여럿인 경우다. 이 경우 을이 주도권을 쥘 수 있으므로 을에겐 최선의 국면이다. 일갑일을은 을과 갑이 각각 혼자인 경우다. 일대일 협상이 가능하므로 을에겐 차선의 국면이다. 다갑다을은 을과 갑이 모두 여럿인 경우다. 을은 다른 을들과 경쟁해야 하지만 특정 갑에 얽매일 필요는 없으므로 차차선 국면이다. 일갑다을은 을이 여럿인 가운데 갑이 혼자인 경우다. 을이 하나의 갑을 놓고 다른 을들과 무한경쟁을 벌여야 하는 그야말로 최악의 국면이다.



여러 갑이 눈길 주는 ‘슈퍼을’이  되자
돈 많은 시어머니와 며느리들

돈 많은 시어머니가 홀로 사는 집안에 며느리가 여럿인 경우 일갑다을에 해당한다. 며느리들은 무한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가 모두 있는 집안의 외며느리라면 경쟁을 할 필요가 없다. 시아버지와 시어머니 사이에서 줄타기를 잘하면 온갖 실리를 다 취할 수 있다. 아무리 울트라 슈퍼갑 10대 대기업이라고 하더라도 유일무이한 독자 기술을 가진 협력업체는 함부로 대할 수 없다. 특히 돈 많은 외며느리는 절대 만만치 않다. 이른바 슈퍼을이 이런 존재다.

따라서 을이 가야 할 바람직한 길은 최악의 국면인 일갑다을 구도에서 최선의 국면인 다갑일을 구도로 넘어가는 것이다. 한마디로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줄을 서서 나 또는 내 물건을 사가도록 해야 한다.

‘다갑일을’로 가는 길

수많은 경쟁자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다갑일을 구도를 만들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거래’를 잘해야 한다. 거래는 기본적으로 상업행위다. 그래서 비상업적 영역에서는 터부시한다. 대표적인 것이 ‘정치적 거래’다.

그러나 정치에서도 거래는 일상이다. 여야 협상이 거래 없이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보는가. 유권자와 거래 없이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고 보는가. 거래를 비도덕으로만 재단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어릴 때부터 거래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자녀가 부모를 상대로 거래를 시도하면 일단 꾸짖는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나쁜 것부터 먼저 배운다고, 감히 어른을 상대로 거래를 하려 해?’ 이런 태도다. 그러나 부모는 상습적으로 자녀에게 거래를 시도한다. 자녀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성인이 되어 돈을 벌기 전까지 오랫동안 가정에서 을일 수밖에 없는 자녀에게 거래를 원천 금지하는 것은 가혹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나아가 자녀의 학교생활과 사회생활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슈퍼을이 될 수 있는 역량을 키울 기회를 봉쇄하는 셈이니까.

이런 점에서 자녀가 거래를 시도하면 적극적으로 호응해주는 게 좋다. 인생 대부분을 을로 살아갈 자녀가 낙오하지 않고 살아남기를 원한다면 더욱 그렇게 해야 한다. 나아가 슈퍼을을 넘어 울트라 슈퍼갑이 되기를 원한다면 집안에서부터 거래의 기술을 잘 가르쳐야 한다. 내 경험에 따르면, 아이들이 ‘거래의 기술’을 학습하는 속도는 가히 경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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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훈│시사평론가 rheeho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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