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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식으로 만들었더니 ‘과학적으로 최고’ 라네요”

고려紙 재현에 평생 바친 김삼식 한지장(韓紙匠)

  • 한경심 │한국문화평론가 icecreamhan@empas.com

“옛날식으로 만들었더니 ‘과학적으로 최고’ 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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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종이는 일본 전통종이 화지(和紙)지만, 예부터 동양 최고의 종이는 ‘고려지’였다. 서양 종이가 200년을 넘기지 못해 서양의 역사책과 희귀본을 복원하는 작업에 화지가 주로 쓰이는데, 이에 도전장을 낸 이가 있다. 한지장 김삼식 장인이다. 천년을 견디는 고려지를 재현하는 그의 공방에는 영국, 프랑스 박물관 관계자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옛날식으로 만들었더니 ‘과학적으로 최고’ 라네요”
경북 문경에서 전통 한지를 뜨는 김삼식(68)장인은 평생 옛 방식대로 종이를 만들었다. 일제강점기부터 유행한 일본식 쌍발뜨기와 화학약품으로 처리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홀로 종이를 만들어오던 그는 뒤늦게 경북 무형문화재가 됐다. 과학적인 조사 결과, 그의 종이가 나라에서 으뜸가는 품질로 밝혀져 고려 초조대장경 복원과 조선왕조실록 복제 사업에 들어가는 종이를 만들게 됐다.

양심, 진실, 전통

김삼식 장인과 후계자인 아들은 천년을 가는 ‘고려지(高麗紙)’를 만드는 데 열심이다. 그의 공방 ‘삼식지소(三植之所)’에 심은 세 가지 뜻은 양심과 진실, 전통이라고 한다.

찬바람 부는 섣달, 경북 문경 농암면 내서리 골짜기에는 구수하고 달콤한 냄새가 솔솔 피어난다. 고구마를 굽는가 싶어 따라가보니 닥나무를 찌는 냄새다. 언덕바지에 자리한 한데 아궁이 속은 활활 타고 있다. 닥나무 150단을 차곡차곡 쌓은 닥무지는 왕릉의 봉분처럼 보이기도 하고, 커다란 롤케이크처럼 보이기도 한다. 커다란 쇠 닥솥에 물을 붓고 닥무지를 쌓은 다음 그 아래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 물이 끓어 올라온 수증기로 닥이 쪄진다. 닥 껍질이 쉬 벗겨질 만큼 충분히 찌는 데는 여덟 시간 정도 걸린다.

“닥나무에는 피부를 곱게 하는 성분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화장품 회사에서도 이 닥나무를 쓰지요.”



불을 때던 아들 김춘호(36) 씨는 인사말 대신 얼른 닥무지에서 나는 증기를 쐬라고 권한다. 아궁이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는 김삼식 장인이 맨 땅바닥에 앉아서 닥나무를 손질하고 있다. 닥나무는 추워지는 11월경 잘라서 이렇게 잔가지를 손질해 20kg 정도 되게 한 단씩 묶어 닥무지를 한다(‘닥무지’는 닥나무를 쌓은 무더기를 말하지만, 닥무지를 찌는 과정 자체를 ‘닥무지’ 또는 ‘땅무지’라고도 한다).

불과 물이 씨름하며 나무를 익히는 여덟 시간이 지나 마침내 닥을 걷는 시간, 닥무지를 덮었던 비닐 덮개를 열자 닥무지에서 피어오르는 더운 김으로 주위가 자욱하고 향긋한 냄새가 진동한다. 김삼식 씨를 비롯해 아들 춘호 씨, 부인 박금자 씨, 딸 순연 씨까지 모두 닥무지에 달려들어 닥나무 단을 옮기기 시작한다. 부인 박 씨는 “이때만큼은 춥지 않아서 좋다”고 말하며 웃었다.

종이 만드는 일은 추위와 씨름하는 일이기도 하다. 달력의 날짜보다 자연현상을 기준으로 이야기하는 옛사람의 어법으로 말하자면 “서리 내릴 때 시작해 진달래 피기 전까지”가 종이 만들기에 최적기다. 게다가 종이 제작의 정점이라고 할 종이뜨기는 아예 차가운 물통에 손을 담그고 해야 한다. 전통 공예는 모두 자연에 순응하면서 발전해온 것이라 농작물처럼 저마다 ‘제철’이 있는데, 따스하고 부드러운 느낌의 전통 종이는 철저하게 겨울이 제철인 공예품이다.

아홉 살부터 종이 만들어

김삼식 장인이 종이 만드는 힘든 일에 뛰어든 것은 겨우 아홉 살 때다. 일제의 강제노역에 시달리던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자 해방둥이인 어린 장남은 옆 마을 갈골로 시집간 누이의 시아주버니였던 유영운 장인의 닥 공장에 나가게 됐다. 평생 몸무게가 50kg을 넘어본 적이 없는 그가 아홉 살 적엔 얼마나 자그마했을까. 어린애에 불과한 그 나이에 닥나무를 등짐 져 옮기고 껍질을 벗기고 찬물에 손을 담가야 하는 종이일은 틀림없이 고되었을 터다.

“밥줄이 걸린 일인데 싫다, 힘들다는 생각은 꿈에도 못하고 그저 일만 했습니다. 제가 이래 봬도 남보다 세 배로 일할 만큼 힘이 좋습니다.”

소매를 걷어 보여주는 팔뚝을 만져보니 정말로 돌덩이처럼 단단하다. 그 작고 단단한 몸으로 그는 농번기에는 집에서 농사짓다 겨울에는 종이를 만들며 가족을 부양했다. 땅이 없어 남의 농사를 품팔이로 하고, 1년 내내 노동하고 종이까지 팔러 다니는 고된 세월이었다. “열다섯 살 겨울, 종이 20kg을 지고 보은 가까이 있는 화령으로 팔러 간 적이 있어요. 왕복 40km 거리였는데, 가보니 눈이 많이 내려 장이 서질 않은 겁니다. 첫새벽 누님 집에서 아침을 먹고 지게 지고 걸어왔는데, 한 장도 못 팔고 돈도 없어 쫄쫄 굶은 채로 돌아오다가 길을 잃었어요.”

좁은 길에 눈이 쌓이니 분간이 안 돼 길을 잃고 만 것이었다. 눈길에 엎어지면서 잠이 들었는데, 배가 고프면 지쳐 잠들기 쉽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고 한다. 얼마나 잤을까, 추워서 깨어보니 온몸이 땀에 젖었고 사방은 어둑어둑했다. 정신 차려 집을 찾아갔는데, 집이 가까워오자 발이 가렵기 시작했다. 동상 증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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