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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식으로 만들었더니 ‘과학적으로 최고’ 라네요”

고려紙 재현에 평생 바친 김삼식 한지장(韓紙匠)

  • 한경심 │한국문화평론가 icecreamhan@empas.com

“옛날식으로 만들었더니 ‘과학적으로 최고’ 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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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식으로 만들었더니 ‘과학적으로 최고’ 라네요”
“가려워지는데, 환장하겠더라고요. 그런데 동상 걸린 부위를 콩자루에 넣으면 낫는다고 하잖습니까. 2주 동안 콩자루에 넣고 살았더니 정말로 효과가 있더군요.”

동상은 차치하고 자칫하면 목숨까지 잃을 뻔했던 그날의 기억은 서러운 어린 시절을 대표하는 듯 “음력으로 섣달 스무이레”라며 날짜까지 똑똑히 기억한다. 그 3년 뒤 그는 다시 한겨울 길에서 자는 ‘사건’으로 또 한 고비를 넘겼다. 이번에는 종이를 팔고 기분이 좋아 술을 한잔 걸친 결과였다. 이 이야기는 겸연쩍은 듯 웃으면서 이야기한다.

아홉 살에 시작한 종이 일은 열일곱 살 무렵엔 혼자 해나갈 정도로 익숙해져 더 이상 닥 공장을 오가지 않고 집에서 혼자 하게 됐다. 당시 유행하던 일본식 쌍발뜨기와 화학제품으로 처리하는 과정을 그는 평생 한 번도 안 했다. 아니, 못 했다.

“일제 때 지장(紙匠)들이 일본으로 끌려갔는데, 유영운 어른은 끝까지 도망 다니다 안 잡혀갔답니다. 광복 후 돌아온 장인들이 일본에서 배운 쌍발뜨기를 퍼뜨렸을 때에도 유 어른은 옛 방식으로만 하셨지요. 그래서 제가 (쌍발뜨기를) 못 배운 겁니다.”

“하던 대로 하세요”



우리 종이는 뜰 때 발 하나로 물질하는 외발뜨기로, 물을 전후좌우로 흘려보내(흘림뜨기) 섬유소가 우물 정(井)자 형으로 얽혀 조직이 매우 튼튼하다. 그런데 두 장을 한꺼번에 뜰 수 있도록 된 넓은 쌍발뜨기는 발에 테두리가 있어서 섬유소 섞인 물을 가두어 아래로만 흘려보낸다. 전후좌우 흔들기는 하지만 외발뜨기처럼 완전한 흘림뜨기는 못 된다. 외발뜨기처럼 발을 방향 바꿔가며 아홉 번씩 물에 담갔다 뺐다 하지도 않으니 종이를 빠르게 많이 뜰 수 있다.

“전라도 지방은 종이 만드는 곳이 많아 그곳에선 쌍발뜨기가 유행했다고 하는데, 그때만 해도 전라도는 먼 곳이어서 쌍발뜨기란 게 있는지 알지도 못했습니다. 한참 지나서야 겨우 알게 됐는데, 그때도 발틀이 비싸서 설치를 못했고요.”

제작 과정에 들어가는 잿물이나 표백, 닥풀 역시 마찬가지다. 쪄낸 닥 껍질을 벗겨 한겨울에 말렸다가 그 껍질(피닥, 흑피)에서 검은 부분을 긁어내 속껍질(백피)만 얻는데, 마른 피닥을 물에 불려가며 긁어내는 작업이 만만치 않다. 김 장인의 삼식지소에서는 이 과정을 온 식구가 매달려 몇 달씩 걸려 하지만 화학약품을 쓰면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다.

이렇게 얻은 백피를 적당히 잘라 삶아 섬유소를 분리해내는데, 이때 넣는 잿물도 그는 메밀대나 콩대 등을 태워 내린 천연잿물을 쓴다. 잿물 대신 가성소다나 소다회를 넣으면 간단히 해결될 일이다.

“천연잿물은 약하기 때문에 엄청난 양을 만들어야 하지만, 3만 원짜리 약품을 쓰면 1년치 종이를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처럼 하면 돈과 시간, 노동 모두 손해지요.”

전통 지키기의 역설

표백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흰 종이를 만들기 위해선 그저 더 많이 씻어 말리고, 백피 만들 때 더 많이 긁어내고, 삶아서 더 많이 씻어내고, 말릴 때 잡티를 더 많이 잡아내는 법만 알았지 무슨 표백제를 써야 하는지도 몰랐다. 집에서 종이를 만들던 시절, 혼자 만드는 양이 한정돼 있어 그는 남은 닥나무나 피닥을 다른 종이공장에 팔곤 했는데, 공장에서 본 하얀 종이는 그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들었다.

“전북 완주 상감면의 공장에서 처음 하얀 종이를 봤는데, 너무 좋아 제가 사장에게 어찌 만드느냐고 물어보았지요. 사장이 약품처리 했다기에 무슨 약을 어떻게 쓰면 되냐고 묻자 안 가르쳐줘요. ‘선생은 그냥 하던 대로 하시라’면서요.”

화학약품으로 손쉽게 처리하면 생산량이 폭발적으로 는다. 그러면 김삼식 씨가 다른 공장에 팔 닥나무도 없을 테니 아마 그 때문에 공장 사장님은 안 가르쳐줬을 것이다. 아니면 시속(時俗)의 흐름과 달리 하나부터 열까지 옛날식으로밖에 할 줄 모르는 고지식한 삼식 씨를 배려한 건지, 무시한 것인지 알 수 없다. 다만 그 사장님이 안 가르쳐준 것은 정말 잘된 일이었다.

한때 쌍발뜨기와 화학약품으로 처리하던 장인들도 요즘엔 옛 방식으로 되돌아가는 추세다. 하지만 화학제품과 기계를 앞세운 근대화는 재래방식과 기구, 터전을 앗아가기 일쑤다. 이곳 삼식지소처럼 한뎃솥(닥솥)부터 토종 참닥나무 밭, 닥풀 만드는 황촉규 밭까지 고루 남아 있는 곳은 드물다.

삶아낸 섬유를 쳐서 으깨는 과정도 많은 한지업체나 장인들이 비터(beater)를 사용하는 데 반해 이곳은 닥방망이로 직접 친다. 기계로 자르지 않고 이렇게 손으로 두들기면 섬유소가 크게 훼손되지 않아 질 좋은 종이를 만들 수 있다. 기계로 처리하는 손쉬운 맛에 한번 길들면 이렇게 일일이 방망이로 쳐내는 고된 작업을 계속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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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심 │한국문화평론가 icecreamhan@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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