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호

“아, 내가 시집도 못 갔는데 바다에서 죽을 수도 있겠구나”

중국어선 179척 나포한 해경 최유란 경사

  • 조성식 기자 │mairso2@donga.com

    입력2014-02-20 14:33: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전자충격기로는 약해 모래탄으로 제압
    • 동료가 중국 선원에게 살해된 후 더 세게 단속
    • 불법 중국 어선들, 서너 번 조업하면 1억 벌어
    • 연애는 적성에 안 맞지만 결혼생활은 자신 있어
    • ‘영예로운 제복상’ 상금 전액 기부, “내 돈 아냐”
    “아, 내가 시집도 못 갔는데 바다에서 죽을 수도 있겠구나”

    ‘강한 해경’ 최유란 경사. 때론 ‘여성’이고 싶다.

    불법 조업을 하는 중국 어선을 179척이나 나포한 여경(女警)이라기에 선입관을 가졌던 게 사실이다. 아마도 드세 보이고 덩치도 클 거라고. 아무런 과학적 근거가 없는 선입관은 여지없이 깨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도무지 힘이라곤 쓸 것 같지 않은 여리고 앳된 모습에 덩치도 작아 실망스러울 정도였다. 도대체 저 몸으로 어떻게 그 흉포하기 짝이 없는 중국 어선을 잡았다는 거야! 나는 속에서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르는 의구심을 짓누르며 멀리 목포에서 상경한 그녀를 의례적인 웃음으로 맞이했다.

    그녀의 소속은 해양경찰청 서해지방해양경찰청 목포해양경찰서다. 이름은 최유란. 계급은 경사. 나이? 그게 뭐 대수라고. 이따 물어보자.

    최 경사는 지난해 말 동아일보와 채널A가 주관하는 ‘영예로운 제복상’을 받았다. 국민의 안전을 위해 헌신하는 군인, 경찰, 해경, 소방관의 노고를 기리려 제정한 상이다. 국방부와 경찰청, 해양경찰청, 소방방재청 추천을 받아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위원회를 거쳐 선정한다. 이번 제3회 수상자는 모두 6명. 상이 좋긴 좋은 모양이다. 경장인 그녀가 이 상을 받자마자 경사로 특진했으니.

    그녀가 인터뷰 중 다음과 같은 얘길 안 했다면 나의 의구심은 실망감으로 바뀌었을 테고, 어쩌면 인터뷰를 요청한 것 자체를 후회했을지 모른다.

    “아,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드는데, 이상하게도 무섭다는 생각은 안 들더라고요.”



    이 얼마나 감동적인 말인가. 과연 여장부이지 않은가 말이다. 그녀는, 중국 어선을 단속하던 동료가 중국 선원들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두려움보다는 분노에 휩싸였다고 당차게 말했다. 나는 습관적으로 인터뷰이의 손가락을 훔쳐봤다. 새끼엿가락 같은 그녀의 손가락은 사나운 바다에서 거친 중국 선원들과 몸싸움하기엔 지나치게 곱다. 눈망울은 송아지처럼 큼지막하다.

    ▼ 여자로서 꽤 험한 일을 하는데, 적성에 맞아서인가요.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힘들다는 생각, 한 번도 안 해봤어요. 진짜로, 거짓말 안 하고. 시험 봐서 (해양경찰학교에) 입교한 후 고된 체력훈련을 받았어요. 그걸 마치고 임무를 부여받고 나서는 ‘내가 남자 직원들한테 짐은 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래서 정말 노력을 많이 했고 힘들어도 내색을 안 했어요. 지금은 남자직원들보다 제가 (배도) 더 잘 타고 (중국 어선을) 더 잘 잡는다고 생각하니 진짜 힘들지 않아요.”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

    ▼ 중국 어선 상대하는 게 무섭지 않나요.

    “현장에 투입되면 다른 생각 안 들어요. 어떻게든 잡아야 한다는 생각밖에는. 동료가 다치는 경우엔 더욱 그래요.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고…. 임무를 완수하겠다는 생각뿐입니다.”

    ▼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적은?

    “지난해 10월 중국 선원들을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죄로 체포한 적이 있어요. 그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어떤 상황이었죠.

    “조업 허가를 안 받은 배였죠. 우리가 접근하자 거칠게 반항하더라고요. 칼을 던지고….”

    지난해 10월 7일 중국 어선 120t급 기풍어(冀豊漁) 60015호는 전남 신안군 흑산면 가거도 북서쪽 해상에서 불법 조업을 하다 해경에 적발되자 흉기를 휘둘러 문모 경사 등 4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목포해양경찰서는 선장을 비롯한 선원 13명을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죄로 구속했다. 올 1월 26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은 선장에게 징역 4년에 벌금 1000만 원을 선고하는 등 관련자 모두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다. 도주한 종선(從船) 선장에게는 벌금 1억 원을 선고했다.

    당시 최 경사는 동료 10명과 함께 고속단정에 올라타 중국 어선에 접근했다. 길이 20m가 채 안 되는 단정은 어선보다 덩치가 작았다. 중국 어선이 자꾸 밀어냈다.

    “큰 배가 계속 밀어내니 붙이는 게 쉽지 않았어요. 단정이 거의 뒤집힐 뻔했어요. 해수가 차 침몰 직전까지 갔거든요.”

    당사자들에겐 미안하지만, 이런 무용담은 정말 흥미롭다. 자칫 목숨을 잃을 뻔한 위급하고도 급박한 상황에서 기어이 ‘해적선’을 나포하다니…. 그녀의 얘기를 더 들어보자.

    “배가 뒤집힐 것 같은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 내가 시집도 못 갔는데 이렇게 죽는구나.’ 갑자기 정적이 흘렀어요. 저희가 헬멧을 쓰고 헤드셋으로 서로 통화하거든요. 그런데 그 순간 다들 아무 말이 없었던 거예요. 그 일을 겪은 후 내가 바다에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 위급한 상황에서 ‘시집 못 간 것’을 생각하다니. 이건 휴머니티와 리얼리티의 극치다. 만약 그녀가 그 순간 가족이나 동료들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면 나는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중국 선원들의 저항은 단순하면서도 거칠었다. 배 안의 모든 쇠붙이가 흉기로 변해 해경에 날아왔다. 쇠파이프, 쇠꼬챙이, 칼…. 최 경사를 비롯한 해경 대원들은 방패로 막으며 기어이 중국 어선에 올라탔다. 당연히 뭘 쐈겠지.

    “모래탄이 든 12게이지 샷건을 쐈는데, 다리에 4, 5발 맞고도 쓰러지지 않더라고요. 우리가 갑판에 올라가니 그제야 아프다면서 쓰러지더라고요. 도와달라면서.”

    중국어 특채

    ▼ 전자충격기는 안 써요?

    “전자충격기는 가까이서 쏴야 효과적입니다. 그런데 중국 선원들은 구명조끼에 두꺼운 솜바지를 껴입고 있어 전자충격기가 뚫지를 못해요. 반면 모래탄은 솜바지를 뚫어요. 치명적이진 않지만 맨살에 박히기 때문에 엄청 아파요. 우리가 나중에 헬기로 병원으로 이송해줬죠. 중국 선원들이 조업 나오면 술을 한잔씩 하기 때문에 총을 쏴도 아픈 줄 몰라요. 감각이 무뎌진 거죠.”

    실탄은 탄통에 따로 챙겨 간다. 오발 사고의 위험성 때문이다.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단정에 실탄을 싣는다. 하지만 여태껏 현장에서 권총을 사용한 일은 없었다고 한다. 최 경사는 “민간인에게 살상무기를 쓸 수는 없지 않으냐”고 덧붙였다.

    ▼ 몸싸움은 없나요?

    “배에 올라타기 전까지는 거칠게 반항해요. 우리가 한꺼번에 올라가는 게 아니라 한두 명씩 엄호를 받으며 올라가거든요. 우리 대원들이 갑판에 다 올라가면 그때부터는 저항을 포기해요.”

    ▼ 그쪽은 몇 명이나?

    “16~17명 돼요. 늘 우리가 부족하죠.”

    ▼ 선장, 항해장, 기관장 빼고는 다 덤비겠군.

    “맞아요.”

    그녀가 타는 1509함은 1500t급이다. 길이 100m, 폭은 15m쯤 된다. 1509함은 지난해 9월 해양경찰청이 주관한 ‘해상 종합전술 경진대회’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 현장에 늘 투입돼요?

    “예. 늘 따라 나가죠.”

    ▼ 매번 단정에 올라타나요?

    “예.”

    ▼ 대원들 중 여경이 또 있어요?

    “원래 2명이었는데 한 명이 발령 나서 지금은 저 혼자예요.”

    ▼ 굳이 여경이 안 나서도 되는 일 아닌가요. 남자 대원들이 싸우면 되잖아요?

    “제 임무가 있기 때문에…. 제가 중국어 특채로 들어왔거든요. 중국어 잘하는 사람이 적어요. 단정이 2척인데 한 배에 한 명씩 중국어 특기자가 타죠.”

    그녀는 대학에서 중어중문학을 전공했다. 중국에 1년 유학도 했다.

    ▼ 단정에 오르지 않고 방송으로 하면 안 되나요?

    “바다엔 바람이 거세요. 방송이 안 들리죠, 최대한 가까이 가도. 중국 어선에 건너가서 얘기해야 해요. 중국 선장들이 가장 싫어하는 게 강압적인 조사예요. 근데 언어가 통하는 사람이 있으면 협조를 잘해줘요. 제가 여경이라 더 좋아해요.”

    ▼ 여경 앞에선 폭력을 덜 쓰나요?

    “예. 단정에 있을 때는 헬멧에 진압복을 입고 있으니 여자인 줄 모르죠. 제가 배에 올라가면 태도가 조금 달라져요.”

    괴테가 말한 ‘여성성의 위대한 구원’이 해적 잡는 현장에서 발현될 줄이야! 이건 중요한 얘기다. 21세기 들어 가장 주목할 만한 세계 질서의 변화는 금녀(禁女)의 성벽이 완전히 허물어진 것이다. 대표적 남성 영역인 군대만 하더라도 여성이 전투병이 되고 파일럿이 되고 함정까지 탄다. 학자들은 머잖아 여성이 명실상부하게 세상을 주도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러한 세계 질서의 재편은 단순히 여성이 남성과 동등해지는 것을 넘어 여성성의 위대함이 구현되는 것을 뜻한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리플리’(영화 ‘에이리언’ 시리즈 여주인공, 시고니 위버 분)의 초강력 파워가 아니라 최 경사의 ‘부드러운 힘’이다.

    “그냥 해양경찰이 좋다”

    “아, 내가 시집도 못 갔는데 바다에서 죽을 수도 있겠구나”

    “그냥 해양경찰이 좋다”는 최유란 경사.

    ▼ 중국 선원들을 힘들게 제압하고 나면 쾌감을 느끼나요?

    “뿌듯하죠. ‘내 손으로 우리 바다를 지켰다’는 생각에.”

    그녀는 도대체 죽음이 두렵지 않단 말인가. 2008년 9월 해경 박경조 경위는 중국 선원이 휘두른 삽에 맞고 바다에 떨어져 순직했다. 2011년 12월 이청호 경사는 중국 선장이 휘두른 칼에 찔려 순직했다.

    최 경사는 고(故) 박 경위와 목포에서 같이 근무한 인연이 있다. 박 경위가 순직했을 때 최 경사가 탄 배에서 시신을 인수했다.

    ▼ 박 경위 사고를 겪으면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 안 들었어요?

    “너무 화가 나더라고요. 더 많이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만 안 두겠다….”

    ▼ 복수를 하겠다?

    “더 강력하게 단속하겠다는 결심이었지요. 그간 경미한 범죄는 현장에서 많이 봐줬거든요. 불쌍하기도 하고. 박 경위 사건을 계기로 더 강력하게 단속했어요. 그러곤 중국 선원들 잡을 때마다 강조했죠. 너희 때문에 우리 경찰관이 희생당했다고. 앞으로 조심하라고.”

    ▼ 뭐라던가요.

    “우린 모른다, 우리가 안 그랬다, 왜 우리한테 그러느냐….”

    ▼ 직업적 사명감입니까. 아니면 본능적 행동인가요? 싸우는 걸 좋아해요?

    “그 점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봤어요. 그냥 해양경찰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 거친 세계에 대한 동경심이 있었나요?

    “그건 아닌데요. 적성에 잘 맞는 것 같아요. 활동적인 걸 좋아하거든요. 함정근무는 해양경찰의 기본이에요. 그 제일선에서 임무를 수행한다는 게 정말 뿌듯해요.”

    수영장에서 수영 배우는 중

    그녀가 해경이 된 것은 2005년. 근무기간 8년 중 5년 동안 배를 탔다. “바다가 두렵지 않으냐”니까 고개를 끄덕인다. 배를 타면 탈수록 무섭다고. 무섭다니?

    “근데 임무에 투입되면 무서운 생각이 없어진다니까요. 그냥 ‘나는 이걸 해야 한다’는 생각만 들어요. 그리고 혼자가 아니고 동료들이 있잖아요. 팀원끼리 서로 안전을 챙겨줘요. 누가 단정에 탔고 누가 중국 어선에 올라탔는지 실시간으로 점검하고 보고해요. 그런 신뢰 속에서 임무를 수행해요. 그러니 바다는 무섭지만 안심이 되는 거죠.”

    그러면 그렇지. 중국 어선 179척을 아무나 잡겠나. 함상근무가 그녀의 천직(天職)이라는 또 다른 증거가 있다. 바로 뱃멀미를 안 한다는 것. 처음 배 탈 때부터 멀미라는 걸 몰랐다고 한다. 해경 함정의 1회 작전기간은 8박9일. 단 한 번의 정박도 없이 9일 내내 항해한다.

    그녀는 처음 함정을 타고 망망대해로 나갔을 때의 느낌을 이렇게 얘기했다.

    “무척 멋있고 좋았어요. 내가 이런 곳에서 근무한다는 사실이. ‘나는 아무나 살 수 있는 인생을 사는 게 아니다’라고 생각했죠. 지금은 무서운 걸 많이 겪어봐서 ‘위험한 곳’이라 생각하지만요.”

    그런데, 놀랍게도 수영을 못한단다. “수영을 못해서 지금 배우고 있다”는 그녀의 말이 믿기지 않아 나는 큰소리로 되물었다. “배우고 있다고요, 지금?”

    “해경 들어올 때 수영이 필수 조건은 아니었어요. 직별에 따라 다르니까. 그런데 지금은 다 수영해야 한다고 해서 배우는데 잘 안 되네요.”

    ▼ 단정이나 중국 배에서 떨어질 수 있으니 기본은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방검부력조끼를 입으니…. 그걸 입으면 수영 못 해요. 무거워서.”

    고 이청호 경사가 중국 선원의 칼에 옆구리를 찔려 순직한 이후 방검부력조끼를 착용한다고 한다. “수영장에서 수영을 배운다”는 그녀의 말에 나는 그예 폭소를 터뜨렸다. 근무한 지 8년이 지난 해경이 수영장에서 수영을 배우다니. 게다가 그녀는 완도 출신이다. 이 점을 지적하자 “바닷가가 아니라 읍내에서 살았다”고 강조한다. 매년 체력검증시험을 치르는데 거기에 수영이 포함돼 안 배울 수가 없다고 한다.

    ▼ 섬 출신의 해경이니 수영은 당연히 잘할 줄 알았지요.

    “다들 그렇게 생각하시더라고요. 하지만 예외란 게 있으니까.”

    가만, 남 얘기할 게 아니다. 명색 해군 장교로 군함을 탔던 나도 제대 후 수영장에서 비로소 수영을 배우지 않았던가.

    어획량 축소 보고

    다시 중국 어선 얘기로 돌아갔다.

    ▼ 중국 어선들은 불법이라고 생각지 않는가 봐요.

    “아뇨. 알면서도 하는 거죠.”

    ▼ 그놈들, 불법인 줄 알면서 도대체 왜 들어온다는 거예요.

    “고기 때문에. 자기네 바다엔 고기가 없대요. 중국 수산물 시장이 엄청 커졌다고 들었어요. 예전에 안 먹던 고기까지 먹는대요. 운 좋게 안 걸리고 잡아가면 떼돈 번다는 거예요. 그러니 앞으로도 계속 할 거라고 하더라고요.”

    ▼ 잡으면 어떻게 처리하죠.

    “무허가인 경우엔 목포로 끌고 들어와요. 고기와 어구를 다 압수하죠. 벌금도 매기고. 금액은 톤수에 따라 다른데 보통 1억 원 이상이에요.”

    ▼ 벌금은 잘 내나요?

    “안 내면 계속 붙잡아두니 중국 측에서 송금해줘요. 선주들 모임이 있어요. 거기서 돈을 대줘요.”

    ▼ 도대체 얼마나 남기에 벌금 1억 원을 감수하면서까지 불법 조업을 하는 걸까요.

    “엄청 남는대요. 서너 번 잡으면 벌금 뽑아낸대요.”

    중국 어선들은 연평도 부근에선 주로 꽃게를 잡는다. 서해 남쪽에선 조기와 홍어를 싹쓸이하고 고등어, 삼치까지 잡아간다.

    중국 어선들이 조업하는 구역은 우리 영해와 배타적경제수역(EEZ) 사이다. 영해는 육지로부터 12해리이고 EEZ는 200해리다(1해리는 1852m). 중국 어선이 다 무허가는 아니다. 우리 정부로부터 조업 허가를 받은 배도 많다. 허가를 받으려면 입어료를 내고 어획량 보고 등 몇 가지 규정을 지켜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중국 어선은 어획량을 정확히 보고하지 않는다. 우리 정부가 어획량을 통제하기 때문이다. 기준치 이상을 잡으면 다음번 허가 때 제약을 받게 되니 실제 잡은 양보다 축소해 보고한다는 것이다. 어획량을 속이는 중국 어선은 해경 함정을 만나면 도주한다. 해경이 일일어획량 장부와 실제 잡은 고기 양을 비교하면 속인 것이 금방 탄로 나기 때문이다.

    ▼ 그동안 상대했던 중국 선원들 중에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면?

    “젊은 선장이 있었어요.”

    ▼ 잘생겼어요?

    “잘생기기도 했죠. 저보다 어린데 조사받으면서 계속 울더라고요. 울면서 거짓말을 하는 거예요. 어머니가 엊그제 돌아가셨다며 선처해달라고.”

    갑자기 입에 거품 물고

    ▼ 거짓말인 줄 어떻게 알아요.

    “아, 거짓말이죠. (배에) 올라가보면 딱 알아요. 하도 거짓말들을 잘하니까. 어머니가 돌아가신 건 돌아가신 거고 잘못한 건 잘못했으니 벌은 받아야 하지 않겠냐고 했죠. 그러자 다른 소리를 하더라고요. ‘사실은 내가 선장 된 지 얼마 안 됐다. 이렇게 걸리면 바로 잘린다. 지금 월급도 못 받았다. 한 번만 봐달라.’ 사정이 딱하긴 하지만 지켜야 할 건 지켜야 하니 원칙대로 처리했어요.”

    ▼ 뭣 때문에 걸린 거예요.

    “어획량 축소 보고였어요.”

    ▼ 자해 소동은 없어요?

    “꾀병 부리는 친구들이 있긴 해요. 갑자기 입에 거품을 물거나 심장이 아프다면서 쓰러져요. 그러면 우리가 헬기로 이송해요. 병원에서 꾀병이라는 게 드러난 적이 몇 번 있어요.”

    ▼ 필요한 도움을 준 적은 없어요?

    “간혹 로프에 맞아 팔이나 머리를 다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때는 저희가 이송해주죠. 침수하는 배의 선원을 구조한 적도 있고.”

    최 경사는 중국 선원들에 대해 나쁘게만 말하진 않았다. “순박한 애들도 많다”면서.

    “대부분은 잘 협조해줘요. 일부 흉포한 애들이 문제지.”

    ▼ 무허가와 허가 중 어느 쪽이 많아요.

    “허가가 많죠. 경제수역 바깥쪽은 무허가, 안쪽은 허가 배가 조업을 해요. 고기들도 아나봐요. 이상하게도 경계선을 기준으로 밖은 고기가 적고 안쪽은 많다고 해요. 무허가 배들은 최대한 경제수역 가까운 곳에서 대기하다 잘 안 잡히거나 날씨가 안 좋으면 경계선을 넘어와 한 번 휩쓸고 가죠.”

    ▼ 최근엔 언제 단속 나갔어요?

    “1월 9~17일에 했어요. 두 척 잡았어요. 어획량 축소 보고로.”

    ‘서른 살엔 미처 몰랐던 것들’

    “아, 내가 시집도 못 갔는데 바다에서 죽을 수도 있겠구나”

    사랑은 가슴에 묻고, 임무 수행하러 바다로 떠나는 최유란 경사.

    ▼ 조직이 최 경사를 이용한다거나, 국가에 이용당한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공무원으로서 당연한 거죠. 제가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가야죠.”

    특수기동대원인 최 경사가 한 달에 받는 시간외수당은 80만 원가량. 100시간 기준이니 시간당 8000원꼴이다. 목숨 내놓고 하는 일에 시간당 1만 원도 안 쳐주는 셈이다. 해상 출동 주기는 열흘. 8박9일 배 탄 후 열흘 정도 정박해 있다가 다시 바다로 나간다.

    어린 시절 그녀는 말괄량이였다. 엄마가 예쁘게 입힌 옷이 다 찢어진 채 집에 돌아올 정도로 남자애들과 험하게 놀았다. 하지만 중고생 시절엔 모범생으로 공부도 열심히 했다고 한다. 대학 졸업 후 전공인 중국어를 활용하려 해외로 나갈 생각을 했다. 해외에 지사를 둔 중소기업 입사시험을 쳐서 합격했는데 동시에 응시한 해양경찰청에서도 합격 통보가 왔다. 그녀는 해경을 선택했다.

    이제 그녀의 나이를 알아보자. 30대 중반으로 치닫는 1981년생. 서른이 되던 2010년, 경력 5년차인 그녀는 육상 근무를 하고 있었다.

    “엄청 우울했어요. ‘서른 살엔 미처 몰랐던 것들’이라는 책을 읽고는 위안을 많이 받았어요.”

    ▼ 왜 우울했어요.

    “서른 살을 인생의 터닝 포인트로 삼겠다고 생각했는데 별로 실천한 게 없더라고요. 매일 일만 하고 있더라고요. 경찰서에서 매일 밤늦게까지 일하고 집에 가면 지쳐 쓰러져 잠들고. 또 새벽에 나오고. 그런 일이 반복되더라고요. 남자친구도 없었고.”

    ▼ 연애라도 했으면 좀 나았을 텐데.

    “아, 연애도 해봤는데 별것 없더라고요.”

    ▼ 사실 연애가 피곤한 면도 있지요.

    “피곤해요, 피곤해. 적성에 안 맞아요.”

    ▼ 근데 왜 피곤해요.

    “저랑 스타일이 맞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 자신에겐 문제가 없어요?

    “저의 문제는 상대한테 너무 잘해준다는 것.”

    ▼ 잘해주는 게 왜 문제죠.

    “남자들이 괜히 밀당(밀고 당기기)하는 게 아니더라고요. 밀당을 잘해야 관계가 오래가는데 처음부터 제가 너무 잘해주니까. 호기심이 없어지는 거죠. 그래서 1년 연애하고 쉬고 있어요. 힘들어서.”

    대학생 때 만난 ‘첫 남자’는 7년 연애 끝에 헤어졌다. 이런저런 이유로 서로 힘들었다고 한다.

    밀당은 싫어

    ▼ 사랑이 뭐라 생각해요?

    “사랑은 없는 것 같아요. 결혼한 어른들 얘기를 들어봐도 그렇고.”

    ▼ 많은 사람이 허상을 보죠. 실체가 아닌 상상 속의 이미지.

    “맞아요.”

    ▼ 오래 사귀다보면 열정과 감동이 사라지고 단점이 눈에 띄게 마련이지요.

    “그 뒤로 정이 들잖아요.”

    ▼ 정을 사랑으로 봐도 되는지…. 최 경사는 그 경계선에서 끝나는 것 같네요.

    “예. 사랑은 없는 것 같아요.”

    그녀는 거듭 사랑의 실체를 부인했다. 씩씩한 말투로. 그러면서도 “연애는 적성에 안 맞지만 결혼생활은 잘할 것 같다”며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는 것에 대한 기대감조차 없는 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아, 내가 시집도 못 갔는데 바다에서 죽을 수도 있겠구나”

    동료들과 함께. 앞줄 오른쪽 끝에서 두 번째가 최유란 경사.



    “저는 밀당을 싫어해요. 솔직한 게 좋아요. 싫으면 싫고 좋으면 좋고. 내가 좋으면 계속 잘해주고 싶고. 그런데 상대방은 그걸 집착으로 여기더라고요. 답답하게도 보고. 여자는 나쁜 남자에게 끌리고 남자는 나쁜 여자한테 끌린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았어요.”

    바다에선 그토록 용맹한 여걸도 사랑 앞에선 여리디여리구나. 그녀의 마음을 온전히 받아줄 남자는 대체 어디 숨어 있단 말인가. 국가야 그녀가 중국 어선을 잡는 데만 관심 있겠지만 내가 보기엔 이 문제가 더 중요한 것 같다.

    하여간 그건 그녀의 몫이고, 공적인 얘기를 마저 하자.

    ▼ 현장 근무자로서 상부에 바라는 게 있다면 얘기해보세요.

    “대형 함정이 더 있으면 좋겠어요. 헬기를 실을 수 있는 배요. 단정도 더 큰 게 필요하고.”

    ▼ 목포 기지에는 어떤 배가 있나요?

    “현재 1500t급 두 척과 3000t급 한 척이 있어요. 그런데 1500t급엔 헬기를 못 싣거든요. 효율적 작전을 위해선 헬기가 필요해요.”

    1500t짜리 함정에 타는 해경은 의무경찰관 포함해 40여 명. 조별로 하루 8시간씩 돌아가며 조타실에서 당직을 선다. 비번일 때는 체력단련장에서 운동하거나 독서하거나 잔다. 스카이라이프가 설치돼 TV도 잘 나오는 편이다.

    전통적으로 금녀의 공간인 배에서 그녀는 불편하지 않을까.

    “같이 생활하다 보면 여잔지 남잔지 몰라요. 갑자기 단속 나가면 씻을 겨를도 없고. 서로 볼 것 못 볼 것 다보죠. 동료들이 여경이라는 생각을 안 해요. 그저 같은 직원일 뿐이죠.”

    그녀가 타는 함정엔 여경실이 독립돼 있다. 침실은 물론 휴게실과 화장실까지 갖춰져 있어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아이들이 자랑스러워할 ‘해경 엄마’

    그녀가 이번에 ‘제복상’ 받으면서 받은 상금은 2000만 원. 상금 전액을 중국 어선 잡다 순직한 고 박경조 경위 및 이청호 경사 유가족과 불우이웃에 기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 아니, 그걸 다 기부해요? 좀 남기지.

    “아유, 어떻게 남겨요. 다 드려야죠.”

    ▼ 쇼핑도 하고.

    “쇼핑은 제 월급으로 충분해요.”

    ▼ 아깝지 않아요?

    “제 돈이라고 생각지 않아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얘기를 하라고 주문했더니, 조직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국민이 해경을 좀 더 사랑하고 도와주시면 좋겠어요. 평소 잘하다가 조금만 잘못하면 심하게 질책하는 풍토가 안타까워요. 제가 만약 결혼하면, 언제 할지 모르겠지만, 제 아이들이 ‘우리 엄마는 해경’이라고 자랑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저는 정말 저희 조직이 사랑스러워요. 아빠도 딸이 해경이라고 얼마나 자랑하고 다니시는지.”

    ▼ 마음속에 품은 꿈이 있다면?

    “큰 꿈은 없어요. 그냥 이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해보자.”

    ▼ 첫 여성 해경청장을 해봐요. 그 꿈을 지금부터 품어요.

    “아유, 해경청장은…. 그럴까요?”

    ▼ 여성 해경청장이 되면 할 일이 많을 거예요.

    “그만큼 소양을 갖춰야 하는데….”

    ▼ 그건 차차 갖추면 되고. 꿈은 크게 가지라고 했어요.

    “그럴까요?”

    그녀의 크고 동그란 눈이 보석처럼 반짝거렸다.

    ▼ 결혼이야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그것 때문에 죽고 못 사는 건 아니니까.

    “어른들이 걱정하셔서. 지금 애 낳아도 늦다고….”

    ▼ 늦게 낳는 여자 많아요. 늦게 나온 아이 중에 특별한 사람도 많고. 아, 박정희 알죠? 그 어머니가 45세에 낳고는 창피해서 애 떼려고 간장 마시고 높은 데서 뛰어내리고 했잖아요. 그런데도 살아남아 대통령까지 했어요.

    “대단하시네요.”



    Face to Face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