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년 여름 의기투합… “김정은 괴롭히는 게 목표”
- 졸업생 300명 탈북하면 北 뒤집힐 것
- 정보기관 언론계 시민단체 학계에서 활약 중
- 임수경, 강경대, 박종철도 김일성대 명예졸업생
- 엘리트 탈북자도 배척, 경계 대상일 뿐
김일성종합대학 전경(왼쪽)과 졸업증.
“김일성대 출신 탈북자가 300명 넘으면 북한이 뒤집힐 것이다.(김광진·46·외국어문학부)
“종합대학 졸업생은 북한의 최고 엘리트다. 북한도 국가다. 지식인층, 전문가들이 있다. 그 많은 인구 가운데 쓸 만한 두뇌를 가진 사람이 왜 없겠는가. 해외유학을 다녀온 사람도 적잖다. 북한을 수준 이하의 비정상적 집단으로만 치부하면 그들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어디로 가려 하는지 파악할 수 없다.”(최세웅·54·외국어문학부)
“김일성대를 나오면 출세 길이 열린다. 서울대 졸업생의 사회적 위상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A씨·외국어문학부)
“북한에는 한국의 스카이(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대학 같은 서열은 없다. 김일성대와 김일성대가 아닌 대학으로 나뉜다.”(C씨.외국어문학부)
1990년대 이후 탈북해 한국에 정착한 김일성대 졸업생은 30명이 넘는다. 김일성대에서 유학한 후 서울에서 근무하는 옛 사회주의권 국가 외교관을 포함하면 한국에서 활동하는 이 대학 졸업자는 50명 안팎으로 추정된다.
한국인 ‘졸업생’도 있다. 북한 민족화해협의회 문건은 박종철(조선어문학부), 임수경(외국어문학부), 강경대(경제학부), 김태훈(경제학부), 조성만(화학부), 최덕수(법학부) 씨가 명예졸업생이라고 밝힌다.
고(故) 박종철(1964~1987) 군은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불씨가 된 한국 민주화의 상징이다. 박군의 아버지 박정기 옹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2000년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55돌 행사를 참관한 후 북한을 떠나기 전날 밤 김영성 북한 민족화해협의회 부위원장이 숙소인 평양시 봉화초대소로 찾아와 종철이의 명예졸업장을 낭독하고 전달했다. 졸업장은 종철이의 졸업연도인 1989년경 만들어졌다고 전해 들었다. 김일성대는 1987년 강의실에 종철이 책상과 의자를 마련했다고 한다.”
이렇듯 명예졸업장을 받은 한국인은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김일성대가 멋대로 수여한 것이다.
“잘난 놈이 뭣 하러…”
“서울에 김일성대 총동문회가 만들어진 것을 아십니까?”
2011년 여름, 조명철 당시 통일연구원장(현 새누리당 의원)이 사석에서 이렇게 말했다. 호기심이 동했다. “회장은 누군가요?”라고 묻자 동석한 한 탈북자가 “조명철 원장이 회장입니다”라고 답했다. 김일성대 출신 탈북자에게 부탁해 총동문회 모임에 가보려고 했으나 매번 퇴짜를 맞았다. 하나같이 외부에 총동문회가 알려지는 것을 꺼렸다.
김일성대를 졸업한 A씨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 사람들에게 탈북자는 동포가 아니라 경계의 대상입니다. 호기심의 대상이지 함께 일할 상대는 아닌 겁니다. 한국 사람들이 탈북자를 믿지 않는 것처럼 우리도 한국 사람들을 믿지 않습니다.”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은 “청와대에 있을 때 탈북자 관련 통계를 보고 깜짝 놀랐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북한에서 오신 분이 2만 명 남짓인데 그중 3700명이 한국에서 못 살겠다는 겁니다. 북한이 싫어 천신만고 끝에 넘어온 동포를 껴안지도 못하면서 무슨 통일을 하겠다는 겁니까? 한국에 오신 분들이 북쪽에 남은 가족에게 한국 사정을 전할 텐데 북쪽 분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김일성대 졸업생은 보통의 탈북자와 달리 대부분 한국 사회에 안착(安着)했다. 상당수가 공무원, 언론인, 연구원, 시민단체 간부 등으로 활동한다. 국가정보원 등 특수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도 여럿이다. 이렇듯 반듯한 직장을 가진 이가 대다수지만 배타적 문화와 비딱한 시선 탓에 이질감을 느끼는 것은 보통의 탈북자와 똑같다. 영향력 있는 위치에서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는 상실감 또한 크다.
김일성대 외국어문학부를 졸업한 한 인사는 “탈북자가 아니라 난민으로 대우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국 사람들이 엘리트 탈북자에게 느끼는 감정은 두 갈래예요. 첫째는 경계심입니다. 둘째는 잘난 놈이 뭣 하러 넘어왔느냐는 힐난입니다. 한국 사람은 자기보다 머리 좋은 북한 사람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탈북자보다 난민이 차라리 낳아요. 난민은 무조건 도와줄 대상이잖아요. 난민이라면 마음대로, 사실대로 말할 수 있습니다. 탈북자는 그렇게 할 수 없어요. 한국인의 선입관에 어긋나지 않는 말만 해야 합니다. 탈북자가 언론에 나와서 하는 말은 대부분 거짓입니다. 한국인이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겁니다.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거든요. 북한과 관련해 눈곱만큼이라도 호의적인 얘기를 하면 의심의 대상이 되고요.”
“탈북 엘리트는 통일의 자산”
한국에서 활동하는 김일성대 졸업생 모임의 정식 명칭은 ‘재한 김일성종합대학 총동문회’다. 국정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으로 일하는 김광진 씨는 “김정은을 괴롭히는 일을 함께 하자는 데 의기투합했다”면서 “북한과 관련해 엘리트 탈북자가 역할을 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김일성대 총동문회장인 조명철(55) 의원은 속내를 드러내지 않기로 유명하다. 조 의원은 북한의 명문가 출신이다. 김일성대 경영업무자동화학부를 졸업했다. 당 간부 자제들만 다니는 남산고등중학교 출신이기도 하다. 부친 조철준 씨는 정무원(현재 명칭은 내각) 건설부장을 지냈다. 한국으로 치면 장관급이라고도 할 수 있으나 북한은 노동당의 국가다. 내각의 상(옛 정무원의 부장)은, 노동당의 부부장과 비슷하거나 낮은 위치다.
조 의원은 한숨을 내쉬면서 이렇게 말했다.
“대북정책, 통일정책과 관련해 정치권이 제일로 문제예요. 북한을 잘 다루려면 누구와 함께해야 하는지를 몰라요. 함께 할 사람은 멀리하고, 경계할 자는 가까이 합니다. 할 것은 하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해야 한다고 하고, 나중에 할 것을 지금 해야 한다고 합니다. 북한 실상에 대해 무엇을 오판하는지, 대북정책, 통일정책에서 무엇이 잘못돼 있는지 모릅니다. 정치권이 앞장서 오판을 바탕으로 잘못된 정책을 주동하고 있어요. 과거에 실패한 것에서 교훈을 찾지 않고 앵무새모양으로 재탕, 삼탕 합니다.”
조 의원은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됐으나 대북정책 수립이나 집행에 참여한 적은 없다.
장진성 뉴포커스 대표는 조선어문학부를 졸업했다. 노동당 통일전선부에서 일하다 탈북해 국정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소에 몸담았다. 뉴포커스는 북한 내부 소식을 전하는 인터넷 매체다.
“한국 사회는 탈북 엘리트가 자부심을 갖고 활동할 수 없는 곳이에요. 탈북 엘리트를 통일의 자산으로 여겨야 하는데, 실제로는 배척의 대상 아닙니까. 국회의원 한 명 배출한 게 전부죠. 우리는 증언자일 뿐입니다. 조언자나 입안자가 될 수 없어요.”
장 대표는 최근 ‘경애하는 지도자에게’라는 제목의 책을 탈고했다. 글로벌 출판사 랜덤하우스와 계약을 맺었다.
“세계에서 탈북자 대우를 가장 잘 안 해주는 곳이 한국입니다. 4월 독일에서 시사주간지 타임 기자를 만나 출간되는 책과 관련해 인터뷰를 하기로 했습니다. 표지에 얼굴이 나간다고 해요.”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한 조명철 새누리당 의원, 최세웅 전 에스엔뱅크 대표.
1995년 탈북한 최세웅(54) 씨는 조 의원보다 집안이 더 좋다. 노동당 재정경리부장을 지낸 최희벽 씨의 차남. 1979년 평양외국어학원, 1984년 김일성대 외국어문학부를 졸업했다. 노동당의 대외결제를 담당하는 조선대성은행에 입행해 외환담당 과장과 국제부 차장을 거쳤다. 이후 런던 현지법인에서 대표로 일하며 금과 외환선물을 거래하다 조선통일발전은행 부총재보를 끝으로 서울에 왔다. 금융결제원, 나라종금, 외국계 기업 한국지사에서 일했다.
김광진 씨는 “탈북 초기에 최세웅 선배가 고급 술집에서 술을 사주곤 했다”고 말했다. 최세웅 씨는 “찾아오는 후배가 여럿 있었다”면서 웃었다. “대한민국 사람이 탈북자를 자기 국민으로 여겨요, 안 여겨요?”라고 물으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자존심을 없애는 데 20년이 걸렸습니다. 탈북하면 그해가 한 살이에요. 한국 사회는 그것을 고려를 안 해줍디다.”
국가안보전략연구소에서 일하는 현성일(55) 씨도 북한의 내로라하는 명문가 출신이다. 부친 현철규 씨는 노동당의 핵심인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간부부장을 지냈다. 삼촌은 김정일의 측근 중 한 명이던 현철해 전 인민부력부 제1부부장. 현씨는 김일성대 외국어문학부에서 영어를 전공했다. 잠비아 주재 북한대사관 3등 서기관으로 일하다 부인과 함께 1996년 탈북했다. 부인 최선영(54) 씨는 연합뉴스 기자로 일한다. 현씨는 경남대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위논문인 ‘북한의 국가전략과 간부정책 변화에 관한 연구’는 북한 연구자의 필독서다. 김일성대 조선어문학부 문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부인 최씨는 ‘북한 김정일, 후계자 삼남 김정은 지명’ 기사로 2011년 한국기자협회가 수여하는 한국기자상 대상을 받았다.
박진희 KBS 북한전문기자도 김일성대를 졸업했다.
2010년 12월 첫 모임
한국에 거주하는 김일성대 졸업생들은 2010년 12월 첫 모임을 가졌다. ‘재한 김일성종합대학 총동문회’를 결성한 것은 2011년 여름이다.
2012년 2월엔 ‘조명철 회장’ 명의로 중국에 거주하는 김일성대 동문에게 편지를 보냈다. ‘존경하는 재중 김일성종합대학 동문 동지들께’로 시작하는 서신엔 북한으로 강제 송환될 위기에 처한 탈북자를 유엔 난민협약과 인도주의 원칙에 따라 처리해달라고 호소하는 내용이 담겼다. 김일성대에서 공부한 중국 공산당 간부가 적지 않다. 장더장(張德江) 중국 전국인민대표회의 상무위원장, 천하이(陳海) 주한 중국 대리대사 등이 김일성대를 졸업했다.
김일성대 졸업자들은 하나같이 모교를 ‘김대’나 ‘김일성대’가 아닌 ‘종합대학’이라고 했다. 북한에서 종합대학이 오랫동안 김일성대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건설대학 철도대학 농업대학 음악대학 식의 단과대학이었다.
현재는 김일성대를 포함해 종합대학세 곳이 있다. 김책공대가 김책공업종합대학으로 확대됐으며 개성경공업기술대가 고려성균관대학교로 명칭을 바꾸면서 종합대학으로 승격했다. 480여 개 대학이 북한에 설립돼 있으며 재학생 51만 명, 신입생 12만 7000명으로 추산된다.
학생들이 선호하는 김일성대의 전공은 시기마다 달랐다고 한다. 1980년대 학교를 다닌 A씨는 이렇게 말했다.
“옛날에는 법학부 안에 종교학 전공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없어진 것으로 압니다. 목사를 키우는 곳이었는데요. 문화교류 행사 등으로 해외에 자주 나가 그 나름으로 인기가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경제학부에 우수한 학생이 몰렸어요. 사회가 발전하면서 외국어문학부가 가장 인기 있는 곳이 됐고요. 외국어문학부를 졸업하면 해외 근무를 할 기회가 생겼거든요.”
A씨는 명문 고등중학교인 평양외국어학원 독일어과를 졸업하고, 김일성대 외국어문학부에서도 독일어를 전공했다. 한국에 정착한 김일성대 출신 탈북자 중 A씨처럼 외국어문학부 출신 비율이 높은 것은 해외 근무를 하다 탈북한 경우가 많아서다.
“외국어학원 우리 반이 12명이었는데, 7명은 종합대학 합격할 자신 없으니까 다른 대학에 갔습니다. 김책공대 간 놈, 의대 간 놈…. 평양외대에는 독일어과가 없었거든요. 종합대학에 5명이 합격했습니다. 가장 인기 있는 전공이요? 공부 잘하는 애들이 영어과로 빠졌습니다. 불어 독일어 스페인어가 영어 다음이었고 노어는 한심한 애들이 갔어요. 오해하는 사람이 있는데 북한은 러시아에 의탁하지 않았습니다. 제일 머저리 같은 과가 중국어과였습니다. 중국에는 대사로 가도 돈을 벌 수 없었거든요. 요즘은 중국어가 최고라고 합디다.”
평양외국어학원은 평양외국어대학 부설 고등중학교다. 거칠게 비유하면 한국의 외국어고와 비슷하다.
김일성대 졸업 사칭하기도
한 졸업생의 설명이다.
“김일성대에서도 외국어문학부가 최고였습니다. 외국어문학부에 들어가려면 울타리 3개를 넘어야 한다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외국어 실력만 따지면 평균적으로는 평양외대가 더 좋았던 것 같아요. 고등중학교 때부터 외국어만 전문적으로 배운 덕분입니다. 평양외대는 평양외국어학원 출신만 받았습니다. 평양외국어학원 졸업생은 외대에 남거나 김일성대로 옮기거나 다른 대학에 가는 세 부류로 나뉘었고요.”
김일성대는 이렇듯 북한에서 내로라하는 수재들이 입학하는 곳이다. 1980년대 김일성대를 다닌 졸업생의 설명이다.
“도에서 각 군별로 대학 갈 사람을 10명씩 할당했다고 합시다. 군에서 시험을 쳐요. 10개 군이 있다고 가정하면 도에 100명이 모일 것 아닙니까. 도에서 또 시험을 칩니다. 1지망 종합대학, 2지망 김책공대 이런 식으로 지원합니다. 성적이 우수하면 종합대학에 가는 겁니다. 수재 중에서도 핀트가 약간 어긋나게 똑똑한 아이들은 이학대학으로 진학했어요. 수학 같은 것은 잘하는데, 조금 이상한 녀석들 있지 않습니까. 출신성분에 따른 혜택이요? 그런 것 없습니다. 간부 자식도 똑같이 시험 봐야 합니다. 간첩, 매국노의 자식이 아닌 이상 아무런 제한이 없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오해하는 게 있습니다. 출신성분이 좋아야 북한에서 성공한다고 알던데, 제일 좋은 성분은 농민, 노동자의 아들이에요. 성분이 좋다는 게 별 게 아니라 일제 때 지주 자식만 아니면 되는 겁니다. 자강도 촌구석에서 스스로 머리 좋다고 여기는 아이들도 김일성대 입학하려고 혁명 역사 달달 외우고 죽어라 공부하는 겁니다. 방학 때면 교복 입고 한번씩 고향에 내려가잖아요. 다들 출세가도 달리는 아이라고 부러워하죠. 대부분 미래가 보장되니까요. 간부 자식이면 나중에 일자리 얻을 때 힘쓰는 것은 당연히 있죠.”
북한에서 공대는 인기가 별로라고 한다. 한 졸업생은 이렇게 말했다.
“북한에서 대학에 서열 같은 것은 없지만, 김일성대의 위상은 서울대와는 비교가 되지 않아요. 노동당 교육부 안에 5개 처가 있습니다. 중앙대학, 지방대학, 고등중학, 초등교육을 담당하는 처가 각각 하나씩 있고, 김일성대만 맡은 처가 따로 있습니다. 한국식으로 선호도를 따지면 김책공대는 10위권 안에 못 들어갑니다. 김일성대에서도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레벨이 다릅니다. 북한이 한국보다 더 공대를 괄시해요. 공대 출신은 당 간부가 되기 어렵거든요. 김일성대를 졸업해도 지리학, 지질학을 공부하면 당 간부가 되지 못하고 지질관측소 같은 곳에서 일해야 합니다.”
김일성대 출신 탈북자들은 하나같이 한국에 ‘가짜 김일성대 출신’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한두 시간 얘기하다보면 김일성대 졸업했다는 게 거짓말이라는 것을 곧바로 알아챈다고 했다. 한 김일성대 졸업자의 설명이다.
“○○○, ○○○은 김일성대 출신이 아닙니다. 한국에 와 사기 친 거예요. 김일성대 통신과정을 나왔다는 사람도 있던데, 거짓말입니다. 통신과정이 있다는 말은 듣도 보도 못했어요. 평양의대, 사리원농대가 종합대학에 통합됐는데, 통합되기 전 두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도 한국에 와서 김일성대 졸업생으로 행세합니다. 옛날에 평양의대를 졸업한 사람들이나 사리원 농대 출신은 최고 엘리트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또 다른 김일성대 출신 인사는 “한국 사회에서 탈북자가 성공하려면 사기를 쳐야 한다. 그 사람들은 진실이 까발려질까봐 통일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개탄했다.
2013년 1월 3일 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이 도서관에서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다.
북한에서도 의사는 선호하는 직업이다. 당 간부가 되긴 어렵지만 뇌물 받을 기회가 많다. 그렇다고 해서 최우등생이의대를 선택하는 것은 아니다.
북한에서 법학대학은 김일성대에만 있다. 북한 검찰의 위계질서는 한국보다 훨씬 엄격하다고 한다. 판사, 검사 모두가 동문이기 때문이다. 판사와 검사의 권력은 강하지 않다. 검사 대신 예심원이 취조하고 검사는 그 내용을 바탕으로 기소만 한다. 판사는 기소 내용대로 형량을 정한다. 판사, 검사가 아니라 예심원이 뇌물을 받는다는 것이다.
김일성대 출신이라고 해서 동문 선배가 밀어주고 끌어주는 일은 없다고 졸업생 대부분이 말했다. 김광진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만 다르게 말했다.
“세상 이치는 비슷해요. 간부 사업할 때 내가 종합대학 졸업생인데, 후배가 있으면 봐주는 거죠. 김책공대 졸업생도 비슷하게 할 거고요. 대놓고 하다가는 혼나죠. 뭔가 챙겨주지 않을까 기대를 갖기도 하고, 실제로 챙겨주기도 하고요.”
국가안보전략연구소에서 일하는 김광진 씨는 노동당 행정부 산하 대외보험총국 싱가포르 지사에서 일하다 탈북했다. 북한대학원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국민대에서 NBA 과정을 마쳤다. 미국 워싱턴의 NGO 북한인권위원회에서도 2년간 일했다. 현재는 국민대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장성택 부장을 7년 동안 모신 부하로서 장 부장의 뜻과 불씨를 계속 살려 북한의 3대 세습을 종식하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통일 후에는 북한지역에서 금융산업을 건설하는 일을 하고 싶고요. 탈북 엘리트들의 사회 진출과 관련해 ‘첫 술에 배부르랴’는 말이 있지만 한국 사회가 탈북자를 포용해 탈북자들이 더 많은 역할, 기여를 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소금 녹이듯이 북한 체제 변화를 이끄는 게 방법인 것 같습니다. 겨울에는 북쪽 주민이 제주도로 휴가를 가고, 여름에는 남쪽 주민들이 백두산에 스키 타러 가는 통일된 조국을 꿈꿉니다. 수령절대주의 김가왕조 정권의 본질을 꿰뚫지 못하고 막연한 기대를 하는 사람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북한을 얕잡아보거나 지나치게 과소평가하는 것도 잘못이고요. 북한을 같은 민족과 동포가 아닌 외계 세계처럼 인식하는 것은 한반도의 미래에 대해 무관심한 겁니다. 한국 사회와 탈북인의 소통 문제는 사랑과 너그러움을 통해 풀어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1946년 10월 1일 설립된 이래 지난해까지 김일성대 졸업생은 9만 명가량으로 추산된다. 한국에 정착한 김일성대 출신 탈북자 30명은 0.00033%에 해당하는 셈이다. 김일성대를 졸업한 북한 엘리트들의 탈북이 줄고 있다. 한 탈북자는 이렇게 해석했다.
“북한에서 먹고살 만한데 탈북을 할 이유가 없죠. 위험부담을 감수하기 싫겠지요.”
김일성대를 졸업한 B씨는 여덟 살 아들, 다섯 살 딸을 데리고 탈북했다. 아들은 지난해 명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딸은 명문 여대 시각디자인학과를 다닌다. 자녀들은 한국에 오기 전 외국에서 자랐다. 평양은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
“자식들을 보면 후회가 될 때가 있습니다. 아들이 취업을 못해요. 아들보다 못한 녀석들도 합격을 한답디다. 대기업에서 탈북자라고 직업을 잘 안 줍니다. 탈북자는 믿지 못할 사람으로 낙인찍혀 있어요. 회사에서는 국정원이 간섭하지 않나 하는 걱정도 한답니다. 자식들은 이질감을 느끼지 않고 차별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더군요. 혼자 탈북해 북한으로 돈을 부쳐주며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북한에서보다 훨씬 나은 교육을 받았지만 아버지 탓에 아들 인생은 꽝이 된 겁니다.”
엘리트 離反 늘리려면…
김광진 씨의 말대로 김일성대 출신 탈북자가 300명이 넘으면 북한이 뒤집힐지도 모른다. 엘리트들의 탈북 러시는 북한 체제의 수명이 다해간다는 방증으로 해석될 것이다. 한국 사회와 탈북인의 소통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잖다. 장진성 씨의 말처럼 탈북 엘리트는 통일의 자산일진대, 사회 각 영역에서 영향력 있는 위치에 진출한 이를 찾아보기 어렵다. 포용하지 못해서일 수도 있고, 믿지 못해서일 수도 있다. 북한의 김일성대 졸업생은 탈북한 동문들이 남쪽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풍문으로 들었을 것이다. 성공한 탈북자가 늘어야 북한 엘리트들의 이반(離反), 이탈도 가속화하지 않을까. 천신만고 끝에 탈북한 북한의 엘리트들조차 끌어안지 못하면서 통일을 이룰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