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력자 성적 일탈은 전통이면서 풍습
- ‘여성수집가’ ‘샤워 포함 5분’ ‘아프리칸 킬러’…
- 초록은 동색? “배꼽 아래는 논하지 마라”
- 기혼여성 셋 중 하나가 혼외정사 경험
프랑스 부부 사이에서 흔히 하는 말이다. 부모의 거듭되는 이혼과 재혼으로 가족 관계가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프랑스어에는 절반이 형제, 절반이 자매라는 의미의 ‘이복형제’를 일컫는 ‘드미 프레르(demi-freres)’와 ‘드미 쇠르(demi-sœurs)’란 단어가 있다. 부계나 모계를 통해 반쪽의 피가 섞인 경우를 뜻하기도 하지만 부모의 거듭된 이혼과 재혼으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자녀들을 일컬을 때도 통용되는 단어다. 프랑스 기혼남자들이 ‘친자 확인’을 위해 해외로 원정을 가는 사례도 급속히 늘고 있다.
침대는 함께, 지갑은 따로
국민의 절반이 ‘기혼남녀의 외도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불륜에 관해 독보적으로 관대한 통계를 지닌 프랑스인들에게 ‘법적 싱글’인 국가 최고 권력자가 여배우와 스캔들을 일으킨 것이 심각한 문제가 아니냐고 묻는 것은 난센스다. ‘배꼽 아래 사정은 논하지 말라’는 불문율이 유독 프랑스에서 힘을 발휘하는 것은 ‘초록은 동색’이라는 감정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도 똑같은데, 남을 탓할 수 없는 노릇 아닌가.
‘클로저 게이트’가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에게 정치적 타격을 줄 수 있을까. 올랑드는 대통령선거 초기부터 니콜라 사르코지의 ‘블링블링’한 삶에 비견되는 ‘보통(Normal) 대통령론’을 주창하며 “국민과 가까운 평범한 대통령이 되겠다’는 공약으로 표심을 얻었다. 그가 호언장담했던 대로 프랑스의 ‘보통 대통령’은 보통 사람들처럼 불륜을 저질러 2014년 벽두 전 세계 언론을 들끓게 만들었다.
엘리제궁과 담 하나 사이인 곳에 유명 연예인 쥘리 가예를 ‘내연의 처’로 두고 비밀리에 왕래를 해오던 대통령의 뒷덜미를 잡은 대중연예잡지 ‘클로저’를 정치인들은 일제히 ‘쓰레기 매체’라고 비난했다. 이 같은 비난에는 권력자의 불륜 스캔들은 싸구려 바에서나 논할 ‘술 안주거리밖에 안 된다’는 식의 프랑스인들의 성(性)에 대한 개방적인 인식이 반영돼 있다. 정치인의 여성 스캔들에 대해 늘 그랬듯 이번 사건도 눈을 감아주는 분위기가 압도했다.
다만 재야 및 여성계에서는 정치인의 도덕적, 윤리적 일탈을 계속 옹호하는 것이 프랑스 국민 저변에 확대된 불륜에 대한 ‘도덕 부재 현상’을 더욱 부추긴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집권 20개월 만에 불거진 유명 여배우와의 불륜 스캔들이 얼마나 영향을 끼쳤는지는 알 수 없으나 경제 침체 등의 이유로 올랑드는 역대 대통령 중 최악 수준인 지지율 19%라는 불명예를 기록했다.
스캔들이 불거진 후 프랑수아 코페 대중운동연합(UMP) 총재는 엘리제궁에 머무는 대통령의 공적인 동거녀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에게 지출되는 엄청난 국가 예산을 당장 끊으라는 으름장을 놓았다. 법적 부부의 절차도 거치지 않고 엘리제궁의 안주인이 돼 국가 예산을 사용하는 일명 ‘퍼스트 걸프렌드’의 거취에 대한 여론의 반응은 냉정했다. 대통령에게 ‘내연의 처’가 생긴 마당에 더 이상 나랏돈을 들여가면서 동거녀를 대접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침대는 공유해도 지갑은 공유하지 않는다”는 게 프랑스식 ‘러브’의 불문율이기도 하다.
“첩이 첩 두는 꼴 못 본다”
올랑드가 취임 후 “누구나 결혼할 권리가 있다”면서 ‘동성결혼 합법화’에 나섰다. 그런데 올랑드 자신은 한 번도 법적으로 결혼한 적이 없는 ‘생판 총각’이다. 그런 그는 25년간 동거한 세골렌 루아얄과도 트리에르바일레에게 한 것과 같은 형태로 2010년 결별을 선언했다. 올랑드는 루아얄과의 사이에 4명의 자녀를 뒀다. 현 파리 부시장이자 내년 파리시장선거에 후보로 나설 안 이달고와의 사이에도 아들을 한 명 두고 있다. 아이들의 출생 시기를 보면, 루아얄과 동거할 때도 이중생활을 했음이 드러난다.
클로저 게이트가 터지자 그 충격으로 트리에르바일레는 병원 신세를 졌다. 동거녀의 퇴원 즉시, 그러니까 사건 발생 2주 만인 1월 27일 올랑드는 차가운 몇 줄의 문장으로 동거녀와의 공식 결별을 선언했다. 8년간 동고동락했던 여인을 미결재 서류 다루듯이 속전속결로 처리한 것이다.
마음이 가는 곳에 몸이 간다고 했던가? 그 방식이 2010년 루아얄과 헤어질 때와 흡사하다. 당시엔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와 2005년부터 내연의 관계를 맺어왔으며, 그녀가 내 인생의 여인”이라고 공식발표를 하며, 하루아침에 루아얄과의 관계에 종지부를 찍었다. 당시 루아얄은 트리에르바일레에게 “한 번 배신한 사람은 또 배신하게 된다”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남겼다.
옛 속담에 ‘첩이 첩 두는 꼴을 못 본다’는 말이 있다. 2012년 6월 12일 ‘트위터 게이트’가 프랑스 전역을 강타했다. 트리에르바일레가 트위터에 총선에서 사회당 후보로 출마한 루아얄과 맞붙은 좌파계열 후보를 지지한다는 글을 올린 것이다. 만약 트리에르바일레가 올랑드의 과거 동거녀였던 루아얄에 대한 지나친 라이벌 의식과 질투심이 조금만 덜했어도 엘리제궁에서 그렇게 쉽게 방을 빼야 하는 수모를 겪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뿐이겠는가. 프랑스 국민의 동정표라도 좀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
아내를 권력자와 공유하다
프랑스 대통령과 정치인의 여성편력과 불륜 스캔들은 단순히 지난 20~30년 동안에만 일어난 사건이 아니다. 프랑스에서 권력자의 성적 일탈은 오랜 전통이자 풍습이다! 역사를 살펴보면 왕이나 황제나 대통령이 그들의 권력을 이용해 원하는 여성을 취하는 것은 당연한 관례처럼 반복 계승돼왔음을 알 수 있다. 프랑스 권력자의 성적 일탈을 논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흐름과 자취를 더듬어 중세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프랑스 현 정치인들의 문란한 연애 문화와 요란한 스캔들로 얼룩진 역사의 이면에는 성왕(聖王)으로 불리거나 프랑스 발전에 눈부시게 기여한 절대군주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권력자의 여성편력은 세기를 넘어 프랑스 역사의 골격에서 빼놓을 수가 없는 것 같다. 그 인물들은 앙리 4세, 루이 14세, 프랑스 첫 황제인 나폴레옹, 프랑스 공화국의 역대 대통령 순으로 이어진다.
비교적 성군으로 알려진 앙리 4세는 위그노(개신교)의 수장으로 프랑스 부르봉 왕가의 첫 왕이 된 후 낭트칙령을 반포했다. 마그리트 드 프랑스는 1572년 8월 18일 어머니인 카트린 메디시스의 강압으로 앙리 4세와 정략결혼을 하게 된다. 앙리4세는 결혼 초부터 사망 전까지 50여 명의 첩을 두고 여러 명의 혼외 자식을 두는 등 정력을 과시한 왕으로 꼽힌다.
루이 14세는 프랑스 역사에서 ‘왕 중의 왕’이면서 ‘바람둥이의 고수’로 꼽힌다. 루이 14세와 몸을 섞은 여인의 대부분이 그와 함께 국정을 보는 대신들의 부인이었거나 그들의 정부였다. 권력자의 총애를 받은 여인의 남편들이 아내를 왕과 공유하면서 출세 가도를 달리는 일종의 ‘은밀한 거래’가 이루어졌다.
권력자의 여성편력 못지않게 절대 권력자의 총애를 받기 위한 여인들의 적극적인 유혹도 대단했음을 기록에서 볼 수 있다. 절대군주와 ‘여인’을 공유할 수 있음을 오히려 영광으로 여겼던, 그 시대의 개방적인 ‘성 풍습’이 오늘날 프랑스의 대통령은 물론 공직자의 빈번한 성적 일탈에도 무감각할 수 있는 내성을 키웠던 것 같다.
정치인은 여성 스캔들을 통해 따분한 지도자의 이미지를 쇄신하거나 혈기왕성하고 정력적인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얻기도 했다. 언제부터인가 프랑스 대통령의 부적절한 불륜 스캔들은 흔한 TV 멜로드라마 시리즈와 비슷한 방식으로 시중에서 화제가 된다.
사생활은 사적으로 처리할 것
앞서 언급했듯 프랑스 공화국의 최고 권력자가 엘리제궁에 부인이 아닌 동거녀를 두고 유명 여배우와 ‘부적절한 동침을 했다’고 해서 프랑스 국민을 부담스럽게 할 것이라는 추측은 이웃나라 영국이나 독일의 얘기다. 특히 국민의 사랑을 받지 못한 동거녀와의 결별은 현재까지 별다른 정치적 이슈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프랑스 대통령은 곧 왕이다. ‘보통 대통령’이라는 옷을 입고 엘리제 ‘궁’에 살면서 최고의 권력을 지닌 ‘왕’ 같은 대통령’이다. 18세기 프랑스혁명이 절대군주의 목을 ‘기요틴 칼날’로 날려버렸지만 여전히 프랑스는 호칭만 바뀐 왕과 같은 대통령이 존재하는 국가다. 유럽의 어느 국가에서도 볼 수 없는 절대 결정권과 막강한 권력을 지닌 프랑스 대통령에게 복잡한 사생활은 정치적으로 장애 요인이 되지 않는다.
공화국의 대통령 가운데 한 명이었던 펠릭스 포는 직업여성과 격렬한 성관계를 하던 중 의문사했다. 엘리제궁에 부인을 버젓이 두고도 ‘아프리카 여성 킬러’라는 전설적인 타이틀에 걸맞게 검은 대륙에서 건너온 다양한 직업군의 첩을 두었던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집권 말기까지 언론의 비호를 받으며 불법 체류녀와의 사이에 둔 딸(마자린)을 숨겼던 프랑수아 미테랑.
‘여성수집가’ ‘샤워 포함 5분’이라는 별명이 뒤따랐던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부인 베르나데트가 공인한 바람둥이였다. “일본인 여류화가와의 사이에 숨겨둔 아들이 있다”는 소문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임기 중 일본을 40여 차례나 오가며 ‘저팬 드림(Japan Dream)’을 만들기도 했다. 각종 염문을 뿌린 역대 대통령과 비교해 비교적 신사였던 니콜라 사르코지는 취임 3개월 만에 두 번째 이혼과 세 번째 결혼으로 도마에 올랐으나 정치적 타격을 받기보다 오히려 연인 카를라 브루니의 유명세 덕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권력자와 공직자의 부도덕한 행위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심판대에 오르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프랑스에서 벌어지는 일과 비슷한 짓을 저질렀을 때 정치 인생이 막을 내리는 미국이나 유럽의 이웃나라들과는 사뭇 다른 프랑스인의 쿨(Cool)한 반응에 외신은 난색을 표한다.
미국의 경우 불륜에 독보적이던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여성 스캔들에 연루돼 혼쭐이 난 빌 클린턴 대통령이 있다. 영국 보수당 정치인 존 프로퓨모와 젊은 무용수의 스캔들, 총리이던 존 메이저의 불륜 등은 당사자에게 강력한 정치적 타격을 입힌 것은 물론 영국의 정치적 흐름을 바꿨다. 미국과 영국에서는 잘나가던 정치인이 스캔들로 줄줄이 옷을 벗었다.
佛 남성 둘 중 하나 불륜
프랑스에서 불륜 스캔들로 옷을 벗은 대통령이나 정치인은 찾아볼 수 없다. 프랑스에서는 대통령의 불륜도 ‘사생활은 사적으로 처리할 것, 대통령도 사생활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단호한 문장 하나로 다 용서한다.
프랑스에서 외도는 단순한 개인의 사생활일 뿐이다. 올랑드의 불륜사건이 터지자 때맞춰, 미국의 유명 여론조사기관 퓨 리서치가 불륜을 주제로 해 39개 국가를 대상으로 조사한 통계를 발 빠르게 발표했다. 미국(64%)을 비롯한 대부분의 유럽국가와 중동국가가 최소 60%(독일)에서 최고 94%(팔레스타인)의 비율로 ‘불륜은 안 된다’고 답했다. 프랑스인의 경우 남성의 45%, 여성 50%가 같은 대답을 해 39개국 중 가장 낮은 비율을 보였다. 이 여론조사를 통해 또 한 번 프랑스인이 불륜에 독보적으로 관대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프랑스 기혼남녀를 대상으로 불륜에 대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남성은 두 명 가운데 한 명이, 여성은 세 명 가운데 한 명이 ‘부적절한 관계’를 가진 적이 있다. 오래전부터 기혼 남녀의 불륜은 존재했지만, 40여 년 전 19%를 밑돌던 불륜 경험 비율이 1970년대에는 30%로 상승하고 최근 10년엔 43%에 달하는 등 꾸준한 상승곡선을 탄다는 것이다.
불륜이 유행 아닌 유행으로 번지기 시작한 것은 1968년 5월 사회문화혁명을 겪으면서다. 당시 혁명의 주요 슬로건은 평등, 성해방, 인권이었다. ‘모든 금지를 금지하라’ ‘파괴는 창조의 열정이다’ ‘굶주릴지라도 권태로운 것은 못 참는다’ 등이 그것인데, 매우 선정적이다. 1970년대 여성해방운동은 ‘개인성(性)에 대한 자유’‘반(反)권위주의’를 강조했는데, 여성의 사회참여가 확대되면서 거듭되는 이혼과 재혼에 대한 인식이 변화했다는 분석도 있다.
‘검은 머리 파뿌리’는 천연기념물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과 부인 카를라 브루니.
이 글에서 첫 문장으로 인용한 “당신의 아이가 내 아이와 싸워서, 우리 아이가 말렸다”라는 복잡한 이야기처럼 프랑스에서는 부모의 거듭되는 이혼과 재혼으로 인해 가족관계가 확대되거나 재구성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 비율은 사회지도층일수록 높으며, 남자들만 이혼, 재혼을 거듭하는 것도 아니다.
사르코지의 전 부인인 세실리아는 남편의 바람기에 진절머리가 나 역대 퍼스트레이디 가운데 유일하게 엘리제궁을 박차고 나왔다. 그러곤 세계적 홍보회사의 회장 아티아스와 세 번째 결혼을 했다. 전 법무부 장관이자 사르코지 대통령의 대변인이던 라시다 다티는 친부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은 채 미혼모로 딸을 출산했지만, 여전히 파리7구 구청장직을 맡고 있다. 프랑스에서 화려한 외도는 비단 정치인이나 국가 권력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LVMH, 푸조, 닷소 등 프랑스를 대표하는 대기업의 총수 중 부인과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사는 사람은 ‘천연기념물’이다.
‘앙리 4세에서 올랑드’까지 프랑스 최고 권력자의 불륜 스캔들은 그들의 경력에 어떤 흠집도 내지 않았다. 이처럼 불륜에 관대한 여론을 등에 업고 외줄을 타는 프랑스 지도자의 일탈은 도덕적 규범이 일신되고 사회적 지탄을 받지 않는 한 전통으로서 반복될 것이다.
어디까지 가야 불륜인가?
케네디 대통령은 연방수사국(FBI)이나 중앙정보국(CIA)을 통해 언론과 담합할 수 있는 매체 환경에서 살았고, 미테랑 대통령은 허락 없이 사진 한 장이 외부에 유출되는 것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 시대의 언론은 권력자의 행동을 묵인하고 팩트를 왜곡하면서 권력과 공존했다.
그러나 이제 그러한 시대가 막을 내렸다. 대통령의 사생활이 철저히 보호받을 수 있는 시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숨기고 싶어도 숨길 수가 없다. 실시간으로 정보가 전달되는 새로운 시대가 온 것이다. 과거엔 인터넷이 발달하지도 않았고 트위터 같은 SNS가 목을 조이지도 않았다. 스마트폰은 신종 파파라치를 낳았다. 생존경쟁에 쫓기는 언론 매체는 제보자에게 지불할 비싼 포상금을 쌓아두거나 엄청난 소송비용을 연간 예산으로 책정해두고 유명인의 사생활 들추기에 나선다. 권력자의 성적 일탈에 대한 프랑스인의 관대함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사회학자 프랑수아 드 생그리는 ‘어디까지를 불륜으로 봐야 하느냐?’는 화두를 던진다. 돌아올 잠깐의 바람이냐? 아니면, 방 빼야 할 심각한 관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