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호

“난 안현수 팬 그 정도만 얘기하겠다”

<인터뷰> 이에리사 새누리당 의원

  • 한상진 기자 │ greenfish@donga.com

    입력2014-02-17 15: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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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체부가 체육계 개혁? 큰 기대 안 한다
    • 체육회장 됐으면 인간쓰레기 취급당했을지도…
    • 소치 올림픽 끝나면 시끄러워질 것
    “난 안현수 팬 그 정도만 얘기하겠다”
    1월 15일,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유진룡, 이하 문체부)는 체육계 전반에 대해 실시한 특별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감사 대상인 2099개 체육단체에서 수백 건의 불·탈법 사례가 확인됐다. 조직 사유화, 단체 운영 부적절, 심판 운영 불공정, 회계관리 부적절 등이 확인됐다. 문체부는 그중 정도가 심한 9건을 검찰에 수사의뢰했다. 적발건수로는 대한체육회(196건)가 가장 많았다. 문체부 관계자는 이번 특별감사에 대해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체육계 감사”라고 설명했다.

    문체부가 감사에 착수한 건 사실상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지난해 7월 말, 박 대통령은 문체부의 ‘체육단체 운영 비리 및 개선 방안’에 대한 보고를 받은 뒤 “본인의 명예를 위해 체육단체 협회장을 하거나 장기간 재임하는 것은 체육 발전을 위해서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발언 직후 문체부는 체육계에 대한 대대적인 특별감사에 부랴부랴 착수했다.

    다수의 정부 관계자, 체육계 인사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가 체육계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게 된 계기는 지난해 2월 실시된 대한체육회 회장 선거였다. 선거에는 김정행 당시 용인대 총장(현 체육회장)과 태릉선수촌장 출신의 새누리당 이에리사 의원이 맞붙었다. 박용성 회장은 불출마를 선언한 뒤 김 총장 지지를 선언했다. 김 총장은 이 의원을 상대로 3표 차 신승을 거뒀다. 그러나 문제는 결과가 아니었다. 선거 진행 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불거졌다. 전임 회장과 임원들의 노골적인 선거 개입, 투표권을 갖는 대의원 선정과정에서 빚어진 잡음으로 체육계가 시끄러웠다. 정부 관계자는 “당선인 신분이던 대통령께서 선거 과정과 결과에 대한 보고를 받으시고 상당히 충격을 받으셨다. 화를 크게 내셨다”고 말했다.

    지난해 대통령 발언 이후 문체부는 감사와는 별도로 여러 차례 대책을 내놨다. 그러나 정부는 여전히 만족하지 못한 분위기다. 2월 13일 박 대통령은 문체부 업무보고에서 또다시 체육계 문제를 언급했다.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 문제를 거론하면서 “안 선수 문제가 파벌주의, 심판 부정 등 체육계 저변에 깔린 부조리와 구조적 난맥상에 의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말한 것. 문체부에 대한 불신이 깔린 발언으로 해석된다.

    ‘신동아’는 최근 사회적 이슈로 등장한 체육계 문제와 관련해, 지난해 체육회장 선거에 출마했다 낙선한 이에리사(59) 의원을 만났다. 탁구선수 출신인 그는 코치와 태릉선수촌장, 용인대 교수를 지냈다. 이 의원은 선수촌장이던 2005년경부터 박 대통령과 친분을 쌓아왔다. 2012년 19대 총선에 박근혜 당시 의원의 제의를 받고 정치에 발을 디뎠다.



    ▼ 체육계 문제가 사회문제로 떠오릅니다.

    “그동안 체육계는 국민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체육인의 한 사람으로서 가슴 아픈 일입니다. 사실 NOC(국가올림픽위원회)인 체육회가 상급기관인 문체부로부터 감사를 받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입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헌장에도 맞지 않고요.”

    ▼ 오랫동안 누적된 문제가 터졌다고 보는 시각이 많은데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죠. 다만 올림픽, 월드컵 등에서 거둔 성적으로 덮여왔을 뿐입니다. 체육계가 자정기능을 상실하면서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해요.”

    ▼ 문체부 발표 내용은 보셨죠?

    “봤어요. 하지만 저는 미흡하다고 생각해요.”

    ▼ 어떤 부분이?

    “검찰 고발까지 했으니 몇몇 비리단체나 임원은 처벌을 받겠죠.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요. 전 문체부 대책에 큰 기대를 하지 않습니다. 안현수 선수 문제가 터지니까 급히 내놓은 것이다, 그 정도로 봐요. 이런 식으로는 제도 개선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덤덤하게 보고 싶네요.”

    ▼ 어떤 개혁 방안이 필요할까요.

    “지금 체육계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건 불공정 판정, 공금횡령, 선거제도의 문제점 같은 전형적이고 고질적인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건 다 체육단체와 임원들의 문제입니다. 심판 자격의 문제, 지도자의 부정부패도 마찬가지죠. 답은 뻔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다시는 체육계에 발을 못 붙이도록 하면 됩니다. 그런 것부터 해야 해요. 그런데 문체부가 그동안 내놓은 건 ‘체육단체장 2번 이상 연임 제한’이나 매우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스포츠 4대악 신고센터’ 같은 것뿐입니다. 그것도 문체부 산하에 말이죠.”

    ‘공정위원회’ 이상하게 변질

    ▼ 체육단체장 임기 제한은 의미가 있어 보이는데요.

    “좋은 회장은 오래해도 관계없어요. 그리고 그게 문제의 본질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양궁협회 정의선 회장이나 탁구협회 조양호 회장 같은 분들은 고마운 분들입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물심양면으로 체육 발전에 도움을 주시니까. 그런 분들의 임기를 제한하는 게 체육계에 무슨 도움이 되겠어요? 문체부와 체육회가 할 일은 오히려 이런 분들의 업무를 열심히 보좌하고 돕는 겁니다.”

    ▼ 문체부가 내놓은 개혁안 중 문제가 있는 것을 또 지적한다면.

    “지난해 제가 ‘스포츠공정위원회’ 설립과 관련된 법안을 발의한 게 있어요. 그런데 그게 문체부를 거치면서 이상하게 변질됐어요. 인터셉트 당한 기분이랄까.”(웃음)

    이 의원은 지난해 9월 ‘스포츠공정위원회’ 설립을 골자로 하는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승부조작, 금품수수, 회계·행정비리, 부정선거, 도핑에 대한 문제들을 다룰 수 있는 독립기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 그런데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 전에 문체부가 이 아이디어를 차용했다. 2월 11일 문체부는 차관이 위원장을 맡는 공정위 출범을 발표했다. 공정위 안을 처음 냈던 이 의원은 문체부의 공정위 설립안에 반대했다.

    “공정위는 독립적인 기관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문체부는 그걸 자신들의 산하단체로 만들어놨어요. 그래선 공정한 조직이 될 수 없죠.”

    ▼ 관이 주도하는 기구여서는 안 된다?

    “독립기구여야 체육계가 자정능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전 문체부에 ‘공정위원회’라는 이름을 쓰지 말라고 요구했어요. 제가 문체부와 조율을 했다고 생각하는 분이 많은데, 전혀 아닙니다. 대통령과도 의견을 나눈 적이 없어요.”

    ▼ 지난해 체육회장 선거 얘기를 좀 해보죠. 선거가 혼탁했다는 얘기가 있던데요.

    “태릉선수촌장을 하면서 우리 체육계의 문제점을 다 알게 됐어요. 그냥 방관할 것이냐, 아니면 바꿀 것이냐를 두고 고민을 많이 했죠. 그러다 출마를 결심했어요. 내가 좀 무리해서 선거를 진행했으면 당선됐을 겁니다. 그러나 전 그러지 않았어요. 체육회장 선거가 제 인생의 목표는 아니니까. 선거를 하면서 내내 생각했어요. ‘내가 당선되고 김정행 후보가 떨어지면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를.”

    얘기할 가치도 없는 선거

    “난 안현수 팬 그 정도만 얘기하겠다”
    ▼ 낙선이 아니라 당선을 고민했다?

    “(오랫동안 체육회를 움직였던) 그분들이 나를 어떻게 몰아붙일까 걱정됐어요. 나를 곤란하게 했겠죠. 저를 배은망덕하고 부도덕한, 어른을 모시지 않는 인간쓰레기로 취급했을지도 몰라요. 당시 선거 분위기도 그랬고요.”

    ▼ 선거 과정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죠.

    “다 지나간 일을 들추고 싶진 않지만…, 출마 전까지 저는 회장 투표권이 있는 선수위원장이었어요. 출마하면서 사임했죠. 그런데 박용성 전 회장은 제가 선수위원장 자리를 내놓자마자 그 자리에 자신의 측근을 임명했어요. 그리고 언론 인터뷰에서 ‘내가 밀고 싶은 사람에게 표(자리)를 준 건 당연하다’고 말해요. 그 한 표 때문에 당락이 결정됐습니다. 그 표만 없었다면 과반수 당선 원칙에 따라 재선거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김정행 회장이 받은 28표 중에는 자신이 회장을 맡았던 유도협회 표도 있어요. 그분은 작년 1월 말에 유도협회 회장이 됐고, 2월 초 사임한 뒤 체육회장에 출마합니다. 그러면서 유도협회장 권한대행에게 대의원 자격(투표권)을 줍니다. 심지어 직무정지 가처분 상태의 사람도 투표권을 행사했으니까. 대한체육회 사무총장, 선수촌장 할 것 없이 다 선거운동에 뛰어들었고요.”

    참고로, 체육회장 선거권은 대한체육회 52개 가맹단체와 IOC 위원(이건희, 문대성), 선수위원장이 갖고 있다. 총 55표 중 과반수를 득표해야 당선된다.

    ▼ 왜 공격을 받았다고 생각하세요.

    “회장 선거는 체육회 내 실세들의 각본대로 이뤄집니다. 그런데 저는 그들의 각본 속에 없는 사람이죠. 자기들 계산 속에 없던 제가 국회의원이 되고 체육회장 선거에 나온 거죠. 마뜩지 않았을 겁니다.”

    ▼ 김정행 회장이 이 의원을 부회장으로 발표했다가 취소한 해프닝도 있었죠.

    “저와는 아무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이뤄진 일이었어요.”

    ▼ 체육회장 선거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요.

    “그래서 체육회장 선거법 개정안을 작년 말에 냈어요. 일찍 내면 복수한다고 할까봐 연말에 냈어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선거를 위탁하자는 안입니다. 최소한 후보자가 언제까지는 공직을 사퇴해야 하고, 돈은 얼마 이상 쓰면 안 되고 하는 규정을 넣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 러시아로 귀화한 쇼트트랙 안현수 선수와 관련해 말이 많습니다. 체육계의 고질적인 병폐를 보여주는 좋은 예로 지적되는데요.

    (공교롭게 이 의원과 인터뷰하던 날, 박 대통령은 문체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안현수 선수 문제를 지적했다. “체육계 저변에 깔린 부조리에 의한 것이 아닌가” 하는 발언이었는데, 발언의 파장이 거셌다.)

    “전 안현수 선수의 팬입니다. 그 말 한마디로 모든 걸 표현하고 싶습니다. 내가 국회의원만 아니면 정말 할 얘기가 많은데 (참는 겁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안 선수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2006년 토리노 올림픽 때 제가 선수촌장이었어요. 그때 저는 다 봤습니다. 이번 소치 올림픽 선수단장 임명 과정도 많은 것을 보여줬잖아요.”

    스키협회장 없는 소치 올림픽

    소치 올림픽 선수단장 선임과정을 두고도 논란이 있었다. 체육회가 빙상연맹 회장을 단장에 임명하자 스키협회장인 윤석민 태영건설 부회장이 협회장직을 사퇴했다.

    “체육회가 D-100일 기자회견을 할 때 빙상선수들만 데리고 했어요. 스키협회는 회장이 그만둔 뒤에 체육회가 관리단체로 지정했고요. 사실상 기능이 정지된 거죠. 메달을 딸 희망이 없는데도 올림픽을 준비하는 선수가 많아요. 스키점프, 알파인스키 같은 종목이죠. 스키협회가 관리단체로 지정됐을 때 저는 ‘내가 회장을 맡아서 아이들을 데리고 갈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상황이 이 지경인데 체육회가 대체 뭘 하는지 모르겠어요. 올림픽이 끝나고 나면 상당히 시끄러울 겁니다.”

    ▼ 상급기관인 문체부는 아무런 역할을 안 했나요.

    “만약 빙상연맹 회장이 없이 올림픽에 간다고 했으면 문체부가 가만히 있었겠어요?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이 메달밭인데, 누굴 데려다놔도 놨겠죠.”

    ▼ 그동안 체육 관련 법안을 많이 내셨죠. 통과된 것도 있고.

    “체육인 유공자법을 통과시킨 게 제일 기쁜 일이었죠. 훈련을 하다 다쳐서 휠체어를 타게 된 체조선수 김소영, 대회에 나갔다 사망한 양궁감독과 승마 선수, 이 사람들이 다 국가대표 자격으로 뛰다가 이런 일을 당했는데 왜 국가유공자가 안 됩니까. 보훈처 직원들은 자기들끼리 체육대회를 하다가 넘어져 인대가 끊어져도 유공자가 되는데, 체육인들은 왜 안 된다는 건지 이해가 안 가요. 작년 연말 여야의원들의 전원 찬성으로 대한민국 체육유공자법이 통과됐을 때, 김소영 선수한테 문자를 보냈어요, 너무 기뻐서. 그런데 정작 제일 기뻐해야 할 대한체육회는 성명서 하나 안 내요. ‘축’ 이라고 쓰인 현수막이라도 걸어야 할 판인데 말이죠. 여야 의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제가 보도자료를 냈어요.”

    ▼ 진행 중인 법안도 있을 텐데요.

    “체육인 복지법도 제안한 상태죠, 1년 넘게 싸우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지금 체육인들에게 주는 훈장과 서훈이 엉망진창입니다. 1988년 올림픽 때는 금메달 하나만 따면 체육훈장 청룡장을 바로 줬어요. 그런데 지금은 누진점수제로 바꿔서 올림픽 금메달 2개를 받아야 받을 수 있어요. 1988년에 받은 금메달과 양학선 선수가 받은 금메달이 뭐가 다르냐는 게 제 주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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