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림픽 1년 반 지나 박태환 포상금 지급
- 한국신기록 세우고 포상금 못 받은 일 많아
- 선발전 기록 대신 ‘자체 위원회’에서 국가대표 지명
- 연맹 후원 브랜드 수영복 강요
2012년 런던 올림픽 남자 400m 자유형에서 실격 번복 뒤에 은메달을 딴 박태환 선수.
런던 올림픽 선수단장을 맡았던 이기흥 수영연맹 회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박태환이 올림픽 이후 꿈나무를 대상으로 한 연맹 행사에 참가하지 않고 런던에서 ‘빨리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고 하는 등 대표선수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에 박태환 측은 “경기를 마치고 몸살에 걸려 힘든 상황에서도 런던에서 메달리스트로서 일정을 소화했고 연맹 주관 행사는 미리 알려주지 않아 갈 수 없었다”며 “도대체 박태환이 품위 손상한 게 뭐가 있느냐”고 맞받아쳤다.
2013년 6월 박태환은 SBS ‘힐링캠프’에 출연해 “2012년 런던 올림픽 실격판정 번복에 연맹이 도움을 줬는지 몰랐다. 포상금 미지급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듣지 못하고 언론 보도를 통해 알았다”며 “나는 수영연맹에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것 같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박태환은 대한민국 수영 국가대표 선수가 아니다. 수영연맹은 박태환을 국가대표에서 제외한 것에 대해 “박태환이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운동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운동 종목대부분의 경우 국가대표 선수가 기량 향상을 위해 선수촌 밖에서 자체 훈련하는 것을 허가한다.
런던 올림픽 직후 후원사 SK텔레콤과 결별한 박태환은 현재 자비로 전담팀을 꾸려 호주에서 훈련 중이다. 국가대표 선수일 때도 정부에서 제공한 국가대표 수당(하루에 1만 원 수준) 외 별도 훈련비 지원은 받지 못했다.
박태환은 3개월마다 비자 연장을 위해 한국에 오지만, 서울에는 운동할 수영장이 없어 열흘 이상 머무를 수 없다. 전직 수영연맹 관계자는 “수영연맹은 박태환의 훈련 공간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없다”고 설명했다. 수영연맹은 “그렇다면 국가대표 선수들이 운동하는 진천선수촌으로 들어오면 될 것 아니냐”는 입장이다. 사재를 털어 박 선수를 후원하는 수학강사 우형철 씨는 “호주 훈련이 익숙한 선수에게 진천선수촌만 강요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한국에서 기록이 제일 좋은 선수가 서울에 훈련할 수영장 하나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포상금 대신 영수증만
한편 수영연맹의 포상금 미지급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90년 베이징아시아경기대회 배영 200m에서 금메달을 따는 등 1990년대 한국 수영을 이끈 지상준 감독은 현역 시절 수십 차례 한국신기록을 세웠지만 포상금을 받은 기억이 거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과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남자 배영 종목에 출전했고 9차례나 한국신기록을 경신한 성민 전 국가대표 선수 역시 “한국신기록을 수립하면 포상금 100만 원이라는 규정이 있었음에도, 수영연맹 측에서 약속한 포상금을 준 적이 거의 없다”며 “특히 2005년 터키에서 열린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남자 50m 배영에서 한국신기록을 세우며 은메달을 땄는데, 경기 전에 분명히 포상금이 있다고 했지만 귀국 후에는 ‘포상금 책정이 안 돼 있다’는 말만 들었고 결국 포상금을 못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수영연맹 측에서 포상금을 주지 않는 분위기가 만연했다고 설명했다.
“국내 대회 경기에서 신기록을 세우면, 시상식 때 관중 앞에서 수영연맹 관계자가 선수에게 흰 봉투를 준다. 관객은 그 안에 당연히 포상금이 들어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알고 보면 영수증뿐이다. 이후 사무국에 영수증을 제출하며 포상금을 달라고 했더니 ‘아직 예산 책정이 안 됐다’ ‘한꺼번에 지급하겠다’며 미루기만 했다. 이에 대해 항의하자 한 수영연맹 임원은 나에게 ‘왜 이렇게 어린 놈이 돈을 밝히냐’며 역정을 낸 적도 있다.”
수영연맹은 “현재는 한국신기록 수립애 대해서는 포상금이 없고 올림픽, 세계선수권대회 같은 국제대회에서 수상할 때만 포상금을 지급한다. 관련된 별도의 규정은 없다”고 말했다. 한 실업팀 감독은 “운동만 해서는 생활하기 어려운 선수가 상당히 많기 때문에 포상금은 아주 중요한 동기부여가 된다”고 말했다. 한편 수영연맹 측은 2월 중순 박태환에게 런던 올림픽 포상금 5000만 원을 지급했다. 런던 올림픽이 끝난 지 꼬박 1년 반 만이다.
2009년 동아수영대회 남자 50m 배영에서 한국신기록을 세운 성민 선수.
1월 15일 문화체육관광부는 대한체육회 등 체육단체 특별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수영연맹이 올림픽·아시아경기대회·세계선수권대회 대표선수를 선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발전을 개최해야 함에도 선발전을 거치지 않고 해당 종목위원회 추천 및 경기력향상위원회에서 임의로 회장 결재를 통해 부당하게 국가대표를 선발한 것이 적발됐다.
수영연맹의 국가대표 선발 과정이 지적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0년 국민권익위원회는 “일부 경기단체가 국가대표 선발 시 관련 규정 및 절차를 무시한다”며 “수영연맹은 대표선수 선발 규정조차 없다”고 비판했다.
현재도 수영연맹은 국가대표 선발에 대한 별도의 규정을 두지 않고 있다. 수영연맹 내 경영위원회에서 선수 및 지도자가 선수를 추천하면, 경기력향상위원회에서 국가대표를 선발하고, 이사회가 최종 확정하는 절차를 거친다. 경영위원회는 현직 고등학교 체육 교사, 수영클럽 감독, 개인 수영코치 등 수영지도자나 지방 수영연맹 간부로 구성됐다. 최종 결정을 하는 경기력향상위원회는 수영연맹 전무이사가 위원장을 맡고, 수영연맹 임원들이 위원을 맡았다.
명확한 규정 없이 추천으로 국가대표를 선발하다보니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한 수영 꿈나무 학부모는 “기록이 부진한 선수라도 위원회에서 ‘가능성을 보고 뽑았다’는 식으로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며 “상비군에라도 들기 위해서는 경영위원회 위원이 운영하는 수영클럽을 다녀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라고 말했다. 취재를 위해 접촉한 현직 수영클럽 감독들은 “나야 수영연맹에 대해 ‘쓴소리’를 하고 싶지만 내가 섣불리 제보하면 수영연맹에서 내 학생들을 꿈나무, 대표팀으로 뽑지 않을 것”이라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성민 선수 역시 국가대표 선발 과정에서 수영연맹과 마찰을 빚었고, 갈등은 선수 은퇴로까지 이어졌다. 2010년 태릉선수촌에서 나와 소속팀 서울시청에서 광저우아시아경기대회를 준비하던 그는 1차 선발전 배영 100m에서 1위를 했지만 이후 수영연맹은 갑자기 “2차 선발전을 열겠다”고 결정했다. 성민은 “1차 선발전에서 국가대표 선수들의 실력이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한 방송사와 인터뷰하면서 수영연맹의 국가대표 선발 방식에 대해 불만을 표했고, 다음 날 징계위원회에 회부됐다. 이후 성민은 석연치 않은 이유로 2차 선발전 참가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고, 결국 광저우아시아경기대회에 출전하지 못했다. 그는 현재 미국에서 지도자 생활을 한다.
“수영연맹 때문에 한 사람의 인생이 망가졌다. 나는 광저우아시아경기대회가 마지막 경기라고 생각하고 후회 없이 훈련하고 싶어서 태릉을 떠나 소속팀에서 운동했다. 예선전 1위를 하고도 아시아경기대회에 나갈 수 없었는데 정작 아시아경기대회 금메달 선수의 기록과 내 최고기록이 거의 차이 나지 않았다. ‘내가 수영연맹과 갈등 없이 잘 준비해서 아시아경기대회에 나갔더라면…’하는 회한과 고통은 평생 나를 따라다닌다. 사건 이후 한국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없어 미국으로 왔다. 이제 한국에 갈 생각이 없다.”
스피도 vs 아레나
박태환과 수영연맹의 갈등 역시 2006년 도하아시아경기대회 직후 시작됐다. 자유형 200m, 400m, 1500m에서 금메달을 휩쓴 박태환은 귀국 후 2년간 태릉선수촌 생활을 마치고 개인훈련에 돌입하겠다고 발표했다. 박태환은 이후 ‘힐링캠프’에서 “태릉선수촌 내 운동할 환경은 정말 좋지만 인간관계 등에서 어려움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박태환의 오랜 훈련 파트너로 함께 태릉을 떠난 강용환 선수는 국가대표 자격을 박탈당했다. 수영연맹은 “강용환의 ‘개인훈련 신청서’가 마감일보다 하루 늦게 도착했기 때문에 그가 대표선수 소집에 무단 불응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전담팀을 구성하기 위해 박태환은 후원사를 찾았다. 당시 막 한국에 진출한 영국의 수영용품업체 스피도가 나섰다. 스피도는 2007년 1월 박태환과 2년간 후원 계약을 맺었다. 계약금과 연봉 3억 원, 그리고 내·외국인 코치, 물리치료사, 트레이너, 훈련파트너 등 8명으로 구성된 전담팀을 지원받는 조건으로 약 30억 원 규모로 알려졌다 .
미국의 마이클 펠프스, 일본의 기타지마 고스케 등 세계적인 스타들을 후원해온 스피도가 한국 신예 선수에게 한 후원치고는 파격적이었다. 스피도 측은 박태환이 펠프스를 능가할 선수로 성장할 것이므로 아시아 시장에서 상품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수영연맹 측은 당황했다. 수영연맹은 1992년부터 스피도의 라이벌 수영용품업체인 아레나에서 수영용품과 유니폼 등을 후원받아왔으며 아레나 측 관계자들은 수영연맹 및 지방 수영연맹의 임원을 맡으며 서로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현 서울시수영연맹 김동한 회장은 아레나를 운영하는 김재우 동인스포츠 대표 아들이고, 정부광 수영연맹 부회장과 이동운 오픈워터스워밍 이사는 아레나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다.
아레나의 후원을 오랫동안 받아오는 상황에서 대한민국 수영 간판 선수가 경쟁사의 후원을 받게 됐으니 수영연맹이 난처해졌다. 하지만 박태환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한다. 한 관계자는 “아레나가 박태환에게 제안한 조건은 연봉 7200만 원 수준으로, 스피도가 제시한 조건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며 “수영연맹을 오래 후원했던 아레나 측에서 느긋하게 협상하다 스피도에 당한 것”이라고 말했다.
코치 1명이 선수 5명 지도
수영연맹과 박태환의 갈등은 2007년 멜버른 세계선수권대회 경기장에서 극에 달했다. 복수의 관계자 증언으로 당시 상황을 재구성하면, 수영연맹이 박태환 전담팀 감독, 마사지사 등에게 ID카드를 발급해주지 않아 박태환은 경기장에 혼자 들어갔다. 전담 코치, 마사지사 등과 함께 경기를 준비하는 다른 선수들과 달리 혼자 대기실에 앉아 있던 박태환에게 당시 수영연맹 관계자들이 “스피도 수영복 말고 아레나 수영복을 입으라”고 말했다는 것.
고민 끝에 박태환은 결국 본인의 후원사인 스피도 수영복을 입었고 아시아선수로는 최초로 세계대회 남자 400m 자유형에서 금메달을 땄다. 한 관계자는 “당시 태환이가 만 19세였다. 갑자기 훈련할 때 입던 수영복 말고 다른 수영복을 입으라니 얼마나 당황했겠나. 그것도 스피도의 후원을 받아 훈련을 받은 선수에게 말이다. 그럼에도 금메달을 딴 것을 보면 정말 정신력이 강한 선수”라고 말했다.
아레나는 현재도 수영연맹 후원사다. 수영연맹이 대의원들에게 공개한 수입·지출 내역서에 따르면 런던 올림픽이 열린 2012년 아레나는 수영연맹에 4000만 원을 후원했다. 한 전직 국가대표 상비군 선수는 “후원은 수영연맹이 받고 선수들에게 수영복 입기를 강요한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아레나는 수영연맹을 후원하는 것이지 선수들에게 직접 금액으로 주는 것은 없다. 물론 아레나도 세계적으로 좋은 브랜드지만, 2009년 로마선수권대회 때 전신수영복 때문에 세계기록이 쏟아졌듯 수영복도 과학이고 선수 개개인에게 맞는 브랜드가 있다. 하지만 국가대표라는 이유만으로 연맹이 후원받은 아레나 제품을 강요하니 불만이 안 생길 수 없다.”
수영연맹 측은 “현재는 국가대표 선수들이 원하는 브랜드의 수영복을 입는 것을 막지 않는다”고 반론했다.
박태환과 성민을 비롯해 수영연맹과 갈등을 겪는 선수들은 태릉선수촌을 떠나 개인훈련을 한 것이 문제가 됐다. 그렇다면 왜 이 선수들은 선수촌을 떠나려고 할까. 한 전 국가대표 코치는 “후진적인 국가대표 교육 시스템으로는 절대 ‘제2의 박태환’을 키울 수 없다”고 비판했다. 현재 국가대표 감독진은 총 5명, 국가대표 선수는 23명이다. 코치 1인당 최소 4~5명의 선수를 전담해야 하는 것이다.
그 코치는 “수영은 자유형, 배영, 평영, 접영 등 각 종목과 남녀, 장거리 단거리 등 세부적으로 나눠지는데 현재 인력구조로는 세부 교육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2009년 태릉선수촌에 출퇴근하며 훈련을 받은 박태환은 “나만을 위한 개인 코치와 훈련에 집중하고 싶은데, 한국 수영 현실상 도저히 그게 안 됐다”고 고충을 털어놓은 바 있다. 전 국가대표 코치는 “사정이 이렇다보니 실업팀 출신의 경력 많은 선수한테는 ‘스스로 연습량을 정해서 하라’고 한다. 사실상 방목하는 것”이며 “이 때문에 ‘대표팀에 가면 선수들이 망가진다’는 얘기가 있다”고 덧붙였다.
남의 돈으로 코 푸는 수영대회
자유로운 생활에 익숙한 요즘 선수들에게 선수촌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다. 한 전직 국가대표는 “태릉선수촌에서 합숙할 때 상당수 선수가 외출해서 술 마시는 것을 코치, 감독이 용인한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20대 청년들이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가 없다. 훈련시간에만 성실히 참여하고 결과만 잘 나오면 되는데 군대식으로 너무 선수를 옥죄고 가둬놓는다. 게다가 이제는 충북 진천으로 내려갔으니 오죽하겠냐”며 안타까워했다.
2007년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자유형 남자 400m에서 금메달을 딴 뒤 포즈를 취한 박태환 선수와 박석기 전 국가대표 감독.
자체 수입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수영대회를 개최할 때 받는 후원금이다. 수영연맹은 2012년 총 14회 국내 대회를 열었다. 수입·지출 내역서에 따르면 수영연맹은 수영대회를 열 때마다 시도단체에서 받은 후원금으로 경기를 치렀다. 현 지방수영연맹 임원은 “국내 모든 수영대회에는 수영연맹 돈이 한 푼도 안 들어간다”고 말했다.
“전국 수영대회를 유치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에서 수영연맹에 5000만~1억 원을 제공한다. 수영연맹은 국고나 자체 비용을 한 푼도 보태지 않고 딱 그 돈으로 경기를 치른다. 지방 도시로서는 경기를 열면 5박6일 동안 전국에서 수영 꿈나무, 학부모, 지도자 등 3000여 명이 오기 때문에 경제 부흥 효과가 있다. 결국 학부모들만 돈 쓰는 것이다.”
한편 수영연맹 회장은 선거에 입후보 할 때 1년 출연금을 약속한다. 우성산업개발 대표이사이기도 한 현 이기흥 회장은 2010년 회장직에 입후보하면서 “수영연맹에 1년에 3억 원을 출연하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수입·지출 내역서에 따르면 이 회장은 2012년과 2013년 각 7000만 원 수준의 사재를 출연했다. 한편 전임자인 심홍택 전 수영연맹 회장 역시 1년에 3억 원 출연을 약속했지만, 임기 10년간 총 3억 원의 사재를 출연한 것으로 알려졌다. 건설업을 하는 심 전 회장의 딸은 2000~2004년 수영 국가대표를 지냈다.
“임원 단임하라” 체육부 권고 거부
이 때문에 수영연맹 관계자들 사이에서 ‘회장이 사재 출연 약속은 지키지 않고 수영연맹 회장의 지휘만 이용한다’는 비판이 자자하다. 이 회장은 2010년 1월 수영연맹 회장으로 취임한 후 10월 광저우아시아경기대회 선수단장, 2012년 런던 올림픽 선수단장을 도맡았고 현재 대한체육회 이사다. 대한불교조계종 중앙신도회 회장이기도 한 이 회장은 런던 올림픽 당시 조계종 스님 10여 명과 런던에 동행해 구설에 올랐다. 수영연맹 사무국장은 “실제 출연 금액은 저 정도지만 기업 후원을 유치하는 등 실질적인 도움을 많이 준다”고 말했다.
1월 15일 문화체육관광부는 수영연맹에 회장 등 임원의 중임을 제한하는 제도를 만들라고 지시했으나 수영연맹이 거부했다며 보조금을 삭감하는 등 제재를 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수영연맹은 회장과 이사, 감사는 각 1회에 한해 중임할 수 있다는 규정을 만들었다. 다만 대한체육회 심의를 통해 예외를 인정할 수 있다는 조항이 신설됐다.
대한체육회가 수영연맹 임원의 임기를 제한한 것은, 그만큼 수영연맹 임원이 장기 집권했다는 방증이다. 전임 회장인 심홍택 회장은 3차례 연임해 10년 간 회장직을 맡았고 대다수 임원이 10년 남짓 임기를 이어왔다. 한 수영연맹 전직 관계자는 “박태환 덕분에 수영연맹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한 대기업 측에서 ‘회장직을 맡을 마음이 있으니 추대해달라’고 했지만 수영연맹이 추진하지 않았다. 연맹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후원금을 많이 낼 수 있는 대기업을 받아들였어야 하는데 거부한 것”이라며 불만을 표시했다.
2007년 수영연맹에는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6월 서울 양천경찰서가 당시 서울시 수영연맹회장 등 간부의 공금 횡령 혐의를 조사하기 시작한 것. 이에 6월 22일 박석기 전 수영 국가대표 감독과 오창균 전 시드니 올림픽 감독 등 주요 관계자들은 서울 송파구 잠실학생수영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이들은 “수영연맹이 한국신기록 포상금을 주지 않았다” “꿈나무와 상비군 등 동·하계 훈련비를 부풀려 차액을 챙겼다”고 주장했다. 심민 전 아테네 올림픽 수석코치는 “전국 순회코치를 하며 연맹에서 한 푼도 안 받았는데, 연맹 결산서에는 코치비가 지급된 것으로 돼 있다”며 수영연맹이 선수들에게 투자해야 할 훈련비를 빼돌렸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한체육회 역시 대대적인 감사를 벌이며 ‘자정운동추진본부’를 설치했다.
“빅토르 안, 이해된다”
양천경찰서는 전·현직 수영연맹 임원 3명에 대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하지만 검찰 조사에서 이들은 모두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조사를 받은 임원 대다수가 현재 수영연맹 임원직을 유지한다. 대한체육회 내 자정운동추진본부도 흐지부지됐다. 양심선언에 참가했던 한 관계자는 “대한체육회 자정운동추진본부에 수영연맹 관련 의혹과 증거자료를 정리해 보내면 체육회는 ‘수영연맹이 답변할 사항’이라며 이를 수영연맹에 전달했고, 수영연맹은 자료를 보낸 지도자들을 추궁했다”고 말했다.
기자회견에 앞장섰던 박석기 전 국가대표 감독은 현재 수영연맹에서 영구 제명돼 호주에 영주권을 신청해놓은 상태다. 박 감독은 “한국에서는 수영 관련 일을 전혀 할 수 없어 호주로 갔다”며 “아내와 고령의 어머니를 생각하면 한국에 살고 싶지만 한국에서는 일을 할 수 없으니 고민”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전·현직 국가대표 수영 선수 및 학부모들은 한결같이 “러시아로 귀화한 쇼트트랙 선수 ‘빅토르 안’을 이해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 전직 수영 국가대표의 말이다.
“운동은 하고 싶은데 연맹에서 도와주지 않는 상황에서 현수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이해된다. 그나마 현수는 기량이 출중해서 귀화를 해서라도 실력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 부럽고 나는 그럴 능력이 없다는 게 한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