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호

사실을 바탕으로 한 허구 역사적 사건 재해석

‘대통령 영화’들

  • 노광우 │영화 칼럼니스트 nkw88@hotmail.com

    입력2014-02-20 17:59: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사실을 바탕으로 한 허구 역사적 사건 재해석

    영화 ‘링컨’의 한 장면.

    영화나 TV 드라마에서 대통령을 다루는 건 쉽게 볼 수 있는 일이다. 영화는 두 시간 안팎의 상영시간을 맞추어야 하므로 대통령의 인생에 큰 변화를 주는 어떤 일화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경우가 많다. 영화 ‘변호인’도 이에 해당한다. 이런 점에서 일부 평론가가 “‘변호인’이 노무현의 요트 취미를 왜 상세히 다루지 않느냐”고 주장하는 건 좀 억지스럽다.

    이에 비해 TV 드라마는 출생부터 어린 시절, 청년기, 중년기에 이르는 비교적 긴 기간과 많은 관련 인물을 다루면서 시대상을 더 자세히 보여준다.

    대통령을 다룬 최초의 한국 영화는 1959년 제작된 ‘독립협회와 청년 이승만’(신상옥, 장일호)이다. 이 영화는 1960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자유당의 대통령 후보로 4선에 도전하는 이승만 대통령에게 우호적인 내용이었다. 곽영주 당시 경무대 경호실장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서 제작됐다고 알려졌다. 청년 시절 이승만이 독립협회 활동을 통해 애국계몽과 독립운동을 했다는 내용이다. 이 작품도 ‘변호인’처럼 대통령의 인생사 중 특정한 시기만을 다룬다.

    ‘효자동 이발사’와 ‘변호인’의 차이

    이후 대통령을 직접 다룬 작품이 자주 제작되지는 않았다. 전직 대통령들이 생존한 점, 하나같이 도덕적 흠집을 갖고 있어 영화화하기에 그리 매력적이지 않은 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경우 MBC의 ‘공화국’ 시리즈 같은 정치드라마에서 많이 다루어온 점도 고려됐을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경우 영화는 아니지만 TV 드라마인 ‘야망의 세월’(KBS·1991)과 ‘영웅시대’(MBC·2004)를 통해 긍정적 이미지로 다뤄졌다. 이 두 드라마는 주로 1950년대 말부터 1970년대까지를 다룬다. ‘야망의 세월’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을 연상시키는 인물인 박형섭(유인촌)은 대학 총학생회장으로서 시위를 주도하다가 투옥된다. 감옥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자기들 같은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일해달라고 하는 모습을 보고 출옥 후 건설회사에 입사한다. 고속도로 같은 대규모 토목공사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중동지역에 진출해 회사를 키우고 아울러 국가경제 발전에 이바지한다.

    박형섭에 대비되는 인물로 그의 동생인 박형철(김주승)이 배치된다. 박형철은 평생 형에 대한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반항적인 인물인데 형이 산업화에 매진할 때 별다른 동기 없이 민주화운동에 투신한다. 사회 현실에 대한 자각보다는 형에 대한 콤플렉스에서 비롯된 것처럼 다뤄진 것이다. 이 드라마에서 박형철로 대표되는 민주화 진영은 대체로 문제만 일으키는 인물들로 그려진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다룬 영화로는 ‘효자동 이발사’(임찬상·2004)와 ‘그때 그 사람들’(임상수·2004)이 있다. 이 중 송강호가 주연을 맡은 ‘효자동 이발사’는 이승만-박정희로 이어지는 시기를 살아온 힘없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있어 ‘변호인’과 비교되는 장면이 많다.

    ‘효자동 이발사’에서 성한모(송강호)는 대통령 전담 이발사가 되지만 국가기관이 잡아간 아들을 지켜주지 못한다. ‘변호인’에서 송우석(송강호)은 상고 출신이라는 사회적 약자의 처지를 반영한다. 그는 명문대 출신 변호사들과 동등하게 경쟁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하다고 여겨 이들이 다루지 않는 틈새시장을 개척해 치부(致富)한 것이다. 그러나 이발사 성한모가 항의 수단을 가지지 못한 반면, 송우석은 법이라는 수단을 동원해 약자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려고 한다. 즉, 이발사 성한모는 1970년대의 소극적이고 실패한 아버지인 반면 송우석 변호사는 1980년대의 적극적이고 싸우는 아버지다.

    할리우드의 ‘젊은 링컨’

    미국의 경우,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과 존 F 케네디 대통령 관련 영화나 드라마가 자주 만들어져왔다. 링컨과 케네디는 노예해방과 뉴프런티어라는 극적인 역사를 만든 인기 있는 대통령들이다. 또 둘 다 저격수에 의해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영화로 자주 만들어진 다른 대통령은 리처드 닉슨이다. 링컨과 케네디를 다룬 영화가 대체로 존경, 회고, 비극, 미스터리를 담는다면 닉슨을 다룬 영화는 워터게이트 같은 추문, 베트남전쟁 패배 같은 굴욕, 조롱이 담겼다.

    링컨 영화 중 고전으로 통하는 영화는 ‘영 미스터 링컨’(존 포드·1939)이다. 이 영화는 링컨이 변호사로서 활동하던 시기를 다룬다. 19세기 중반 서부로 떠나는 한 가족은 링컨이 운영하는 구멍가게에 들러 물건을 산다. 현금이 없어 가지고 있던 책 한 꾸러미를 맡긴다. 링컨은 이 꾸러미에서 법전을 발견해 독학으로 법을 공부한다. 변호사 자격증을 따고 일리노이 주 주도(州都)인 스프링필드에서 변호사로 개업한다. 살인자로 기소된 어떤 피고인을 성난 대중의 폭행으로부터 보호하고 마침내 그가 누명을 썼음을 밝혀낸다.

    이 영화가 제작된 1939년의 상황을 살펴보자. 유럽에서 히틀러의 독일 나치 정당이 인근 국가들을 병합했고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당이 이탈리아를 장악했다. 아시아에서는 중일전쟁이 격화됐다. 바야흐로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진 상황이었다. 미국에선 이미 재선에 성공했고 뉴딜정책으로 미국을 대공황에서 구한 민주당 소속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3선에 도전할 것이 확실했다.

    당시 미국의 대기업 오너들은 루스벨트의 3선이 달갑지 않았다. 할리우드도 공화당을 알게 모르게 지지했다. 그래서 공화당 소속 대통령들의 영웅인 링컨 대통령 관련 영화를 제작하게 된 것이다. ‘영 미스터 링컨’을 제작한 행위 자체는 ‘할리우드가 민주당과 루스벨트를 반대 한다’는 명백한 정치적 의사를 밝힌 행위였던 셈이다.

    링컨과 케네디를 다룬 영화는 정치인이 되기 이전 개인의 성장을 중심으로 스토리를 풀어가기도 한다. 두 대통령의 전체 삶에서 사소한 부분일지 모르나 인물 됨됨이와 미국적 가치를 설득력 있게 조명하는 데 유리하다.

    좌파 선전영화 vs 서민영화

    영화 연구가인 로버트 로젠스톤은 “영화는 역사를 시청각 이미지로 보여주는 새로운 역사 서술 방식”이라고 말한다. 그는 영화가 역사를 다루는 방식을 ‘역사와 경쟁하기’ ‘역사를 시각화하기’ ‘역사를 재시각화하기’로 구분한다.

    역사와 경쟁하기는 영화가 역사에 나오는 추상적 개념들과 당시 실제 사람들의 관련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역사를 시각화하기는 영화가 당시 시대 상황을 시청각적으로 재현한다는 것이다. 역사를 재시각화하기는 영화가 과거의 사건을 현대적 시각으로 재해석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변호인’에도 적용될 수 있다.

    사실을 바탕으로 한 허구 역사적 사건 재해석
    노광우

    1969년 서울 출생

    미국 서던일리노이대 박사(영화학)

    고려대 정보문화연구소 연구원

    논문: ‘Dark side of mod-ernization’ 외


    변호인이 노무현을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어떤 이들은 이 영화를 ‘좌파 선전영화’라고 본다. 다른 어떤 이는 ‘잘 만들어진 법정영화’ ‘서민성이 담긴 대중영화’라고 본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 영화가 역사적 사건을 새로이 선보였다는 점이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