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박 대통령은 ‘윤진숙’이라는 깜짝 카드를 꺼내 들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연구원 출신이라는 ‘전문성’과 ‘여성’이라는 점을 높이 산 것. 그러나 취임 이후 수차 구설에 휘말리다 결국 여수 기름유출사고를 계기로 낙마했다.
윤진숙 장관의 깜짝 기용은 박 대통령 특유의 인사 스타일과 용인술을 잘 보여준다. 박 대통령은 인사 때 정치와 행정 영역을 철저히 구분하는 스타일이다. 내각에서는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과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을 제외하고는, 청와대에서는 김기춘 비서실장과 이정현 홍보수석을 빼고는 정치인 출신을 찾아보기 힘들다. 자신의 세력을 형성해 정부를 장악하기보다 본인을 정점으로 실무를 잘 수행할 수 있는 이들로 참모진을 구성하는 것이 박근혜식 인사스타일이다.
노무현 정권 사람 중용?
대통령선거가 끝난 후 새누리당 내에서는 박 대통령이 “노무현 정권 사람을 중용한다”는 불만이 컸다. 전임 이명박 정권 때 사람을 쓰지 않으려다보니 어부지리로 노무현 정권 때 사람이 잘나간다는 것이었다.
10년 만에 정권 교체를 이뤘던 이명박 정부는 철두철미하게 과거 정권 사람을 배제했다. 반면 박 대통령은 사람을 쓰는 데 이전 정권에 대한 반감은 적은 편이었다. 공교롭게도 지금 외교안보의 큰 축인 김장수 국가안보실장과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모두 노무현 정부 때 국방부 장관과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이라는 최고위직을 지냈던 이들이다.
2010년 박 대통령은 측근에게 윤 장관을 직접 추천하며 함께 정책 연구를 하라고 지시했다. 당시 해당 측근이 “노무현 정부 때 사람인데 괜찮겠습니까”라고 묻자 박 대통령은 “나라 일하는 데 어떤 정부 사람이란 게 있나요”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이는 박 대통령이 군인, 관료 출신을 좋아하는 성향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군인, 관료들은 ‘행정’ 경험이 풍부하기 때문에 실무 능력은 탁월한 편이다. 반면 아이디어를 내고 창의적으로 기획하는 데는 약점을 보이게 마련이다.
역대 정부는 핵심 통치 분야인 외교-안보 분야만큼은 대통령 본인과 함께 대선을 준비한 외부 인사들을 주축으로 삼았다. 노무현 정부 때 정치인 출신의 정동영·이재정 통일부 장관, 학자 출신의 이종석 통일부 장관이나 이명박 정부 때 학자 출신의 현인택 통일부 장관, 김태효 대외전략기획관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외교안보 라인을 군인과 관료 출신으로 채웠다. 최고 정보책임자인 국정원장을 포함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비서관급 이상 10명 중 군인과 관료 이외는 학자 출신 홍용표 통일비서관이 유일하다.
이는 박 대통령이 외교-안보 분야는 본인이 직접 중심을 잡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참모들은 전문성을 갖고 상황을 정확하게 보고하는 그룹이지 주요 결정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시각이 강하다.
외교-안보 분야만큼은 아니지만 다른 정책 분야도 마찬가지다. 2012년 대선까지 정책 실무 역할을 도맡아 했던 안종범, 강석훈 의원을 청와대에도 내각에도 부르지 않고 대선 때 한 번도 호흡을 맞추지 않은 기획재정부 관료 출신의 현오석, 조원동을 각각 경제부총리와 경제수석으로 경제사령탑에 앉힌 것이 상징적이다.
조 수석은 지난해 2월 제3자로부터 임명 사실을 전해 듣고 “제가 세종시 수정안에 대해 찬성했던 사람이다. 이를 잘 알고 있나”라고 물었다고 한다. 이에 박 대통령은 “공무원이었는데 그 당시 정권이 가장 역점적으로 추진하던 사업에 반하게 행동하면 그게 이상한 거지요”라며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고 한다.
박 대통령이 1998년부터 15년을 국회에 있었지만 남성 정치인 특유의 ‘형님’ ‘동지’ 문화와 거리가 멀다는 점도 국가운영에서 정치권 인사를 잘 활용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8월 8일 청와대에서 박준우 신임 정무수석비서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은근한 내 사람 챙기기
박 대통령은 지난달 스위스에서 열린 다보스 포럼 때 이학재 의원을 동행시겼다. 일반적으로 대통령 해외 순방 때 동행하는 의원은 방문국과 인연이 있는 이들로 구성한다. 이번 순방에 동행한 정갑윤 의원은 한·인도 의원친선협회장이었다. 반면 이 의원은 방문국인 인도, 스위스와 관련이 없다. 그럼에도 이 의원은 박 대통령의 이번 순방 행사 때 근접해서 모든 일정을 수행했다. 이를 두고 청와대 내에서는 박 대통령이 인천시장에 출마하려는 이 의원에게 힘을 실어주려 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해 8월에는 이 의원을 관저로 불러 독대(獨對)도 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 주변에서는 측근을 챙기지 않는다는 불만이 많다. 박 대통령은 누구에게도 자리를 약속하는 일이 없다. 인사 청탁을 했다가는 “이러려고 저를 도우셨어요”라는 ‘레이저’만 받게 된다. 정치권 인사의 낙하산 논란이 여전하지만 역대 정부와 비교하면 그 수가 적은 편이다.
그래도 문제가 생기지 않는 범위 내에서는 신경을 꽤 쓰는 편이다. 지난해 10월 재보선에서 서청원 전 대표의 공천을 두고 박 대통령이 공천을 지시하지는 않았지만 이심전심으로 당 지도부와 통했다는 이야기가 많다. 박 대통령은 서 전 대표가 친박연대를 세웠다가 공천 헌금 사건으로 구속되는 등 고초를 치른 것이 본인을 도우려다 생긴 일이라고 여기고 마음 아파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2011년 유승민 의원이 사실상 친박의 대표주자로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 박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두 번이나 반대의 뜻을 전했다고 한다. 전대가 계파 간 대결로 치러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 의원은 출마 뜻을 접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당시 전대가 진행되는 도중에 지역 방송사 기자가 “유 의원의 전대 출마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그 소식을 반갑게 생각하시는 분이 많이 있지 않겠습니까”라고 답했다. 사실상 지지의사를 밝혀 유 의원에게 힘을 실어준 것이다.
박 대통령이 인간관계에서 신뢰를 중시하는 만큼 ‘배신에 대한 트라우마’도 깊다. 2004년 당 대표를 맡은 이후 2006년까지 한나라당은 사실상 박근혜 독주체제였다. 그러나 정작 2007년 대선 경선 때 본인과 함께 당을 운영했던 많은 사람이 이명박 후보 쪽으로 옮겨갔다.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는 2006년 박 대통령 후임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에서 박 대통령의 도움으로 승리했다. 그러나 친박 인사들은 강 전 대표가 2007년 대선 경선 때 경선 룰을 이명박 후보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정하고, 2008년 총선 공천 때는 친박 학살의 방조자라고 여긴다. 강 전 대표는 이후 박 대통령의 부름을 받은 적이 없다.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를 지낼 때 함께 남해 여행을 다녀오기도 한 박희태 전 국회의장과 사무총장이던 김형오 전 국회의장도 2007년 대선 경선 때 이명박 후보 쪽으로 간 이후 박 대통령과 거리가 멀어졌다.
그렇다고 박 대통령이 먼저 사람을 내치는 스타일은 아니다. 한 핵심 참모는 “박 대통령과 같이 일하고 완전히 척진 사람은 전여옥 전 의원 한 명 정도다. 그러나 그 경우도 본인이 배신한 거지 박 대통령이 내친 건 아니다”고 말했다.
일대일 미션 부여
이명박 전 대통령은 참모를 다룰 때 자유방임형이었다. 어떤 프로젝트와 관련해서도 한 곳에 맡기지 않고 여러 루트로 보고를 받고 제일 좋은 걸 선택했다. 사실상 공개 경쟁을 유도해서 성과를 높이는 스타일이었다.
반면 박 대통령은 본인이 직접 일일이 참모들에게 미션을 부여하는 스타일이다. 그 미션을 아는 사람은 박 대통령과 지시를 받은 사람뿐이며 그 보안을 지키는 것을 그 사람과의 신뢰 문제로 여긴다. 참모들은 서로 무슨 미션을 받았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 전 대통령은 경쟁 과정에서 잡음이 좀 나더라도 결과를 중시하는 성과 지상주의라면 박 대통령은 참모들 사이에서도 갈등이 일어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박 대통령과 함께 일하는 참모들은 답답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대통령의 측근이라면 결정을 하기 전에 대통령과 상의하면서 본인의 고민도 함께 나누는 것을 기대한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의견을 내면 좋다, 나쁘다는 의사 표시를 잘하지 않는다. 그저 대통령이 눈을 마주치는 걸로,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의사를 추측할 뿐이다. 또한 미션을 줄 때 자율권을 많이 주지도 않는다.
박 대통령은 참모들에게도 말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다. 그러나 가끔 한 시간 가까이 통화하며 얘기를 나누거나 화를 내는 경우도 있다. 그런 전화 통화는 본인이 정말 편하게 말할 수 있는 소수 참모에게만 국한된다. 박 대통령은 선거 때 최경환, 안종범 의원, 조윤선 전 의원 등 핵심 참모들에게 그런 속내를 비치기도 했다. 청와대에서는 이정현 홍보수석 정도가 가능한 일이다.
박 대통령에게는 청와대나 내각 참모 이외에 의견을 제시하는 외부 조언 그룹이 있다. 정치인 시절에도 본인의 개인 e메일이나 전화로 그런 건의를 직접 받았다. 그러나 소문대로 그들이 청와대나 내각보다 대통령의 결정에 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다. 이들 역시 박 대통령에게 자신의 생각을 건의할 뿐이다. 선택을 하는 건 박 대통령이다. 이들 외부 조언 그룹 중엔 원로 그룹이 많기 때문에 대체로 보수적인 성향을 보인다는 것이 주변의 관측이다.
수첩 인사 제2막
민경욱 대변인이 2월 5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임명 때부터 낙마 때까지 한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미국 국적의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도 박 대통령이 꾸준히 관리했던 인물이다. 박 대통령은 김 후보자가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만나 ‘창조경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명절 때 선물도 보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의 싱크탱크 구실을 한 국가미래연구원 출신 인사도 내각과 청와대 에 많이 합류했다. 그러나 수첩에 적힌 명단이 점점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정치권 인사를 선호하지 않다보니 정무직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한번 자리가 비면 새로운 인사가 선임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 청와대 참모는 “박 대통령이 본인이 가진 인맥을 비상대책위원, 공천심사위원, 지난 총선 공천, 대통령직인수위 등 곳곳에 상당수 활용했기 때문에 남아 있는 인사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
인연 위주의 인선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인사의 신호탄이 지난해 8월 임명된 박준우 정무수석이다. 정통 외교관 출신의 정무수석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박 대통령은 이정현 홍보수석의 이동으로 공석이 된 이후 두 달 동안 정무수석 인선에 고심을 거듭했다. 쉽게 생각하면 정무수석 1순위는 친박 전직 의원들이다. 그러나 전직 의원 중에 마땅한 인물이 없자 중진 언론인으로도 범위를 넓혔다. 그러다 박 대통령은 외교관 출신 수석이라는 깜짝 카드를 꺼냈다.
박 수석은 벨기에 대사 시절 유럽연합(EU)을 방문한 박 대통령과 한 번 만난 적은 있지만 이후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는 아니었다. 박 수석 인선은 평판 조사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외교부 간부 중 정무 감각이 가장 뛰어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다는 것. 박 대통령은 “정무수석은 제가 잘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고 고사하는 박 수석에게 “정치라는 게 누가 따로 잘하는 게 아니다. 글로벌 정치는 잘 알지 않느냐”고 설득했다. 박 수석 이후 박 대통령과 특별한 인연이 없지만 누군가의 추천으로 심사 대상에 오른 사람에 대해 기본적인 도덕성 외에 평판 조사를 하는 인선 패턴이 이어진다. 황찬현 감사원장도 김기춘 비서실장이 누군가의 추천을 받아 박 대통령에게 올렸고 강직하고 사심이 없다는 주변 평판에 따라 임명됐다고 한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 임명도 박 대통령 인사 스타일의 변화 사례로 꼽힌다. 친박 인사를 중용할 것이라는 여론과 달리 박 대통령은 처음부터 중진 언론인에 초점을 맞췄고, 인연이 전혀 없던 민 대변인을 발탁했다. 청와대 내에서는 높은 대중성에 점수를 준 박 대통령의 이번 인사스타일이 앞으로도 계속될지 주목한다.
임기 중반 이후 무게감 있는 정치인을 기용해 정권의 중심을 잡으려 했던 역대 정권의 전철을 밟을지도 관심사다. 무엇보다 대선 때 함께했던 안대희 전 대법관과 김종인 전 비대위원을 박 대통령이 언제 호출할지 주목된다. 박 대통령에게 부담스러울 수 있는 이들의 기용은 대통령 인사 스타일의 또 다른 전환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