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호

“자살 줄일 최선의 방책은 ‘심리적 부검’ 도입”

‘자살 예방 전문가’ 이광자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원장

  • 김진수 기자 | jockey@donga.com

    입력2014-02-20 15: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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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OECD 국가 중 10년째 자살사망률 1위
    • 불통의 사회…‘경청’과 ‘공감’만이 자살 막아
    • 강원지역 자살률 국내 최고, 최근 세종시 부각
    • 출산 장려보다 자살 예방이 더 중요
    • “언제든 죽을 수 있으니, 잠시 미뤄라”
    “자살 줄일 최선의 방책은 ‘심리적 부검’ 도입”
    자살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수첩에 ‘안녕하십니까’라는 제목의 유서 형식 글을 남기고 서울역 앞 고가도로에서 분신자살을 기도한 40대 남성의 충격적 사망 소식(1월 1일)이 새해 벽두를 잿빛으로 물들인 건 잇단 자살 행진의 서곡에 불과했다.

    치매를 앓던 노부모 간병에 지친 아이돌그룹 슈퍼주니어 멤버 이특 씨 아버지의 자살(1월 6일), 숭례문 부실공사 의혹 조사에 참여했던 충북대 박모(56) 교수의 자살(1월 18일), 2008년 광우병 파동 당시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 문제를 적극 제기했던 박상표(45)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정책국장의 자살(1월 19일)이 줄줄이 뒤를 이었다.

    그뿐 아니다. 아토피 피부염 증상이 악화된 딸(8)을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부산 30대 여성의 자살(1월 20일), 역시 아토피 피부염으로 고통받던 대구 여고생(16)의 자살(1월 24일), 조류인플루엔자(AI) 차단 방역으로 토종닭을 출하하지 못하는 처지를 비관한 전북 김제시 50대 축산농민의 음독자살(2월 6일), 주정차 단속 민원에 불만을 품은 인천 60대 택시기사의 분신자살(2월 7일), 우울 증상이 있던 울산 50대 여성의 자살(2월 8일), 충북 청주 세 모녀 동반자살(2월 10일) 등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하는 자살 사건은 일일이 헤아리기조차 힘들다.

    우리나라의 자살사망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 2003년 이래 무려 10년째 수위를 달린다. 2012년 한 해의 자살자만 1만4160명. 인구 10만 명당 28.1명에 달한다. OECD 국가 평균인 인구 10만 명당 12.5명을 매년 2~3배 웃돈다. 2011년 정신질환실태역학조사 결과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자살을 시도한 사람도 10만8000명으로 추산된다.

    사정이 이런데도, 자살사망률을 낮추는 데 힘써야 할 정책결정자(국회의원 및 보좌관)의 자살 인식 수준은 매우 낮다. 2월 9일 건강증진재단의 ‘우리나라 일반 국민과 정책결정자들에 대한 자살인식조사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일반인 501명과 정책결정자 158명, 자살 예방업무 담당자 121명을 대상으로 자살 인식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정책결정자는 모든 조사항목에서 자살 인식 수준이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살자는 신앙적 믿음이 부족하다’ ‘자살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등의 항목에서 자살 예방업무 담당자보다 정책결정자가 더 수긍함을 보여준 것. 이는 우리 사회가 자살에 둔감한 현실에 대한 방증의 하나다.



    성별과 연령, 계층, 지역을 가리지 않고 전염병처럼 번지는 자살을 막을 방도는 과연 없는 걸까.

    2월 4일 자타 공인의 국내 최고 ‘자살 예방 전문가’로 꼽히는 이광자(66)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원장을 만났다. 그는 이화여대 간호학부 교수(정신간호학)로 지난해 8월 말 정년퇴임한 직후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법에 의해 설립된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초대 원장으로 발탁됐다.

    이 원장은 교수로 임용된 1976년 당시 막 설립한 국내 최초 자살위기 상담기관인 ‘한국생명의전화’(LifeLine Korea, 이하 생명의전화)에서 상담봉사를 시작해 이후 37년 동안 상담활동 및 5000여 명의 상담원 양성 교육을 병행했다. 또한 한국자살예방협회 창립에 참여했고, 자살 관련 연구와 강의, 자문 등을 꾸준히 해왔다. 현재도 생명의전화 이사 및 교육위원장, 생명의전화 국제협회 한국대표로 활동 중이다.

    한 해 1만4000명 ‘자살 선진국’

    ▼ 최근 들어 부쩍 자살 사건이 두드러지는 듯하다.

    “사실 2012년 자살사망률 28.1명은 2011년의 31.7명보다 3.6명(11.8%)이 감소한 것이다. 2011년까지 줄곧 늘다 줄었는데, 이는 2012년 3월 ‘자살 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자살 예방법)’ 시행 이후 전국에 광역자살 예방센터가 확충된 덕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 생명의전화 같은 상담기관들의 지속적 상담 실시, 한강교량의 ‘SOS생명의전화기’ 설치·운영, 지하철역사의 스크린도어 설치, 농촌지역 노인 자살 예방을 위한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의 농약 보관함 설치, 서울 노원구와 동대문구 등 기초자치단체의 지역사회 중심 자살 예방사업 추진 등에 힘입은 것이라 추정되지만, 아직 속단하긴 이르다. 2012년 기준으로 10년 전인 2002년과 비교하면 자살률이 10.2명, 즉 57.2%나 급등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오는 9월 나올 2013년 통계를 살펴봐야 한다.”

    ▼ 왜 자살이란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고 보나.

    “무엇보다 급격한 사회·경제·문화적 변화의 영향이 크다. 다른 나라라면 100년 이상 걸렸을 텐데, 우리나라는 불과 40여 년 만에 세계에서 유례 없는 압축 성장을 급속도로 이뤄냈다. 그에 반해 내적 가치관의 성숙은 더뎌 고난에 대한 대처능력, 분노 조절 능력, 인내력이 부족한 자아능력 약화를 불러왔다. 삶의 의미와 목적의식을 상실하고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가 팽배한 걸 보면 그렇다.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2010년 기준 세계 13위, 고등교육 인구는 인구비례로 세계 1위다. 반면 부패지수는 180개국 중 39위, 행복지수는 103위로 매우 열악한 실정이다. 한마디로 경쟁·성취 위주, 물질만능, 향락지상이 판치는 세상이다. 이젠 다들 웬만큼 먹고살게 됐는데도 빈부격차와 사회양극화는 한층 심화돼 나도 남만큼은 돼야 한다는 정체성 혼란을 곧잘 겪는다. 그 속엔 ‘나’가 없다. ‘우리’와 집단의식을 더 중요시하니 늘 튀지 않아야 한다. 그러니 나답게 살지 못한다. 생각해보라. 다 같이 못 먹고살던 보릿고개 시절에 자살자가 많았던가. 흔히 의학계에서 자살의 주요인으로 꼽는 우울증 등 정신질환으로 인한 자살은 정작 전체의 4분의 1에 그친다. 자살은 더는 개인적 문제가 아니다.”

    한국인에겐 ‘화풀이 교육’ 필요

    “자살 줄일 최선의 방책은 ‘심리적 부검’ 도입”

    이광자 원장은 고교 시절 친구의 자살 시도를 겪은 것을 계기로 정신간호학의 길로 들어섰다.

    ▼ 자살에 빠져들기 쉬운 한국인만의 특성이 있나.

    “이성을 초월하는 감성의 문화, 즉 정(情)과 한(恨)의 문화가 강한 탓도 있다. 이는 분노 표출 방법과도 관련이 있는데, 평소 참을 대로 참다 한꺼번에 욱하고 분출하는 게 문제다. 분노가 자기 내부로 향하면 자살, 외부로 향하면 타살로 이어지곤 한다. 1900년, 러시아인들이 한반도에 관해 출판한 정책자료를 보면 우리 민족의 성격을 묘사한 대목이 나온다. ‘한국인들은 극도로 고집이 세며, 성질이 급하고, 복수심이 강하며, 자주 강렬하고 제어하기 어려운 분노를 터뜨린다. 분노가 폭발했을 때 한국 사람들은 믿기 어려울 만큼 쉽사리 목을 매달거나 물에 빠져 죽는다. 조그마한 불만, 모욕적 언사, 사소한 일들이 그들을 자살로 이끄는 것이다.’ 이런 평가는 자아실현 기회가 주어지지 않거나 박탈당할 때 한 맺힌 감정을 표현했던 우리 민족의 대응방식을 단편적으로 나타낸다. 따라서 우리에겐 화난 마음을 건강하게 말로 표현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일종의 ‘화풀이 교육’이 필요하다.”

    ▼ 가족을 살해하고 자살하는 이도 점점 느는 듯한데, 그들의 심경을 어떻게 분석하나.

    “그것도 한국인의 사회문화적 특성 중 하나다. 살인을 저지르고 자살하는 것이므로 엄밀히 말하면 ‘동반자살’이 아니다. ‘가족 살해 후 자살’이다. 자식을 ‘내 것’이 아니라 개개인으로 대하는 서양인은 그래서 그런 면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가족 간에도 분리화, 개별화가 되는데, 우리는 부모 자식 관계가 ‘너’와 ‘나’가 아니라 ‘=’다. 자살을 결심할 때도 ‘내가 죽고 난 후 자식이 천덕꾸러기가 되지 않을까’ 걱정한다. 이는 우리나라 사회복지 시스템이 미국 등 서구에 비해 크게 미흡한 현실과도 무관치 않다. 노인 자살도 마찬가지다. 배우자를 간병하다 살해한 후 자살하는 것도 부부 간 관계가 분화되지 않아서다. 낯선 사람끼리 인터넷을 통해 만나 모텔 등지에서 함께 자살하는 것도 의존 욕구가 강해서라고 봐야 한다.”

    ▼ 연예인, 정치인 등 유명 인사의 자살에 따른 모방·추종 자살도 큰 문제이지 않나.

    “‘베르테르 효과(유명인 자살을 본떠 일반인이 따라 하는 자살)’의 속설을 통계적으로 입증한 논문이 있다. 2012년 신상도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연구팀이 발표한 ‘연예인 자살이 모방 자살 시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다. 당시 연구팀은 2005∼2008년 전국 주요 대형병원 응급실 85곳에 온 환자 545만여 명 중 자살 시도 환자 2만7605명을 분석했다. 해당 기간에 자살한 이은주, 유니, 정다빈, 안재환, 최진실 씨 등 연예인 5명이 죽기 2주 전부터 4주 후까지의 자살 시도 환자 수를 비교했더니 연예인 자살 사건 1, 2주 후 자살 시도가 실제로 늘다 사건 이후 3, 4주 지나자 조금씩 줄었다. 이는 비록 나쁜 일이라도 동질감을 느끼고픈 대상이 하면 자신도 받아들이려 하는 심리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최진실, 이은주 씨가 세상을 뜬 2008년 10월과 2005년 2월엔 자살자가 눈에 띄게 급증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한 2009년 5월 직후에도 모방 자살이 잇따랐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자살은 계절보다는 그달에 어떤 유명인이 자살했는지에 따라 좌우되는 경향이 짙다. 그래서 공인의 목숨은 자기만의 것이 아니다. 언론도 유명인 자살 보도와 관련해 선정적 특종 경쟁을 자제하고 신중을 기해야 한다. 최진실 자살의 경우 바로 다음 날 자식들 사진까지 공개되고, 방법까지 구체적으로 보도됐지 않나.”

    통계로 입증된 모방 자살

    “자살 줄일 최선의 방책은 ‘심리적 부검’ 도입”

    서울 마포대교에 설치된 ‘SOS 생명의전화기’. 자살 충동자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설치됐다.

    2011년 입법조사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자살 또는 자살 시도로 인해 야기되는 사회·경제적 비용은 2009년 기준으로 적게는 2조4149억 원에서 많게는 4조9663억 원에 달한다. 이와 관련, 보건복지부는 2011년 3월 자살 예방법을 제정해 자살 예방사업 수행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2012년 3월부터 시행 중이다. 게이트키퍼 양성을 통해 자살 고위험군 관리체계를 구축하고, 다양한 자살 예방 프로그램을 실시하도록 하는 게 입법 취지다.

    ▼ 국내 자살 예방 시스템에 아쉬운 부분은 없나.

    “미흡한 게 많다. 자살 예방 관련 예산부터 너무 적다. 한때 이웃 나라 일본의 자살사망률이 우리나라보다 높았는데 현재는 많이 떨어졌다. 국가적 차원의 지원 덕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보건복지부의 자살 예방 관련 예산이 국민건강증진기금으로 편성돼 일반회계에 비해 예산의 대폭적 증액이 어려운 한계가 있다. 자살 예방법이 도입되면 중앙정부의 예산 지원이 뒤따르려니 기대했는데, 여전히 부족하다. 한국자살예방협회, 중앙자살예방센터에다 광역시·도마다 자살예방센터가 있음에도 운영 예산이 자살사망률 1위라는 사실에 비춰볼 때 너무 낮게 책정돼 있는 게 문제다.”

    ▼ 연령대별로는 자살에 어떤 차이를 보이나.

    “자살은 10~30대의 사망 원인 1위이고, 40~50대에선 암에 이어 2위(2010년 기준)다. 10대는 인지 기능이 발달하는 단계여서 정신적으로 미숙한 상태에서 사고가 왜곡될 수 있고 감정적이어서 때론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 갑자기 자살 시도를 하기도 하므로 분명히 고위험군이다. 하지만 자살 시도가 충동적이어서 사망으로 이어지는 확률은 노인보다 낮다. 반면 노인은 충동성은 적지만 계획적이고 치밀해서 자살을 시도하면 사망 확률이 높아 훨씬 위험하다. 게다가 젊은 사람들처럼 쉽게 죽고 싶다는 경고 사인을 내비치는 경우가 거의 없어 예방하기 훨씬 어렵다. 노인 자살자는 인구 10만 명당 100명이 넘는다. 특히 생활고에 시달리는 지방 거주 남성 독거노인의 경우 자살사망률이 일반인의 5배나 된다. 30~40대 자살사망률은 10대와 노인층의 중간인데, 이들은 대개 상담만 적절히 받으면 이내 생각을 바꾼다. 이 같은 자살의 특성상 젊은층, 노인, 남녀 등으로 세분화한 자살 예방 프로그램이 이뤄져야 실효성이 있다.”

    지방 남성 독거노인 가장 위험

    ▼ 자살 충동을 느끼는 이들의 내면은 어떤가.

    “충동성, 사고의 경직성, 양가감정(兩價感情·상반되는 감정이 동시에 있는 상태)을 특징으로 한다. 양가감정은 죽고 싶다는 감정과 살고 싶다는 감정이 혼재하는 것이다. ‘죽고 싶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사실은 살고 싶어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이에게 ‘죽지 말라’고만 하기 일쑤다. 죽고 싶은 마음 51%, 살고 싶은 마음 49%라면 그 간격은 불과 2% 안쪽이다. 그러니 그들의 살고 싶은 마음을 잘 포착하고 건드려줘야만 한다. 자살자는 어느 날 갑자기 죽지 않는다. 자살 생각을 쭉 해오다 실제로 죽는 날엔 충동적으로 자살을 결행한다. 그 충동적 순간을 누군가가 함께 해주면 충분히 자살을 막을 수 있다.”

    ▼ 자살 징후를 보이는 이를 접했을 때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무조건 그의 말에 정성껏 귀 기울여라. 판단과 설교는 하지 말고. 그게 곧 한 생명을 살리는 길이다. 자살에 이르는 사람의 80% 이상은 말로든 행동으로든 자살 시행 전 자신의 의도를 표출한다. 속상함, 억울함, 답답함을 벗어나려 주위 사람에게 강한 사인을 보낸다. 나름대로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이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우화도 있듯, 한바탕 자신의 속마음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나면 마음이 진정된다. 그렇지 못할 때 고립감에 빠져 막다른 골목으로 치닫는다. 그래서 자살은 가장 외로운 죽음이다. 결국은 진심 어린 ‘경청’과 ‘공감’만이 답이다. 그러려면 대화 테크닉도 필요하다. ‘hearing’이 아닌 ‘listening’, 그것도 ‘active(적극적인) listening’이다. 평소 가정에서도 부모 자식 간 ‘비폭력 대화(NonViolent Communication·NVC)’를 하는 법을 익혀두는 게 좋다. 우리네 대화법은 지시 문화의 영향으로 공격적 혹은 위축적이다. 그런 잘못된 대화법의 대(代)를 끊어야 한다. 대가족일 땐 형제자매와 조부모가 부모 자식 사이에서 완충장치 구실을 했지만 핵가족 시대엔 그런 지지체계가 부족해 가족끼리도 ‘돌직구’를 날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다들 ‘외로운 섬’이 되어 뭐든 혼자 결정하는 것이다.”

    ▼ 자살자 가족도 자살 고위험군 아닌가.

    “맞다. 여러 번 자살 시도를 한 사람과 더불어 가족 중 자살자가 있는 사람도 매우 위험하다. 자살자 가족이 자살할 확률은 일반인의 50배 이상이다. 그들은 ‘가족이 나 때문에 죽었다’고 자책한다. ‘내가 그때 이랬더라면’ 하고 후회하며 참담하고 비통한 심정에 빠져든다. 특히 자식이 자살한 엄마들의 경우 더 심하다. 심지어 아들이 엄마 생일에 자살한 경우마저 있다. 그래서 생명의전화나 서울시정신보건센터에선 자살자 가족 모임을 정기적으로 갖는다. 과부 사정은 과부가 안다고 하듯, 동병상련을 나누면서 죄책감에서 벗어나게 하고 다시 희망을 갖게 해준다. 이렇듯 자살자 가족을 지지하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active listening’ 익혀라

    “자살 줄일 최선의 방책은 ‘심리적 부검’ 도입”

    지난해 7월 26일 서울 마포대교에서 성재기 남성연대 대표가 투신하기 직전의 모습을 남성연대 회원과 방송국 카메라기자가 촬영하고 있다. 생명 경시 풍조의 한 단면이다.

    ▼ 국가·사회적으로 자살 고위험군에 대한 특단의 체계적 대응책이 필요치 않나.

    “자살사망률을 낮추려면 그 원인부터 파악해 예방하는 게 최선의 처방이다. 그래서 ‘심리적 부검(psychological autopsy)’을 하루빨리 도입해야 한다. 통상 사망 원인을 잘 모를 땐 시체 부검을 하지 않나. 마찬가지로, 심리적 부검은 자살자의 주변인, 유서 등 모든 자료를 이용해 자살의 구체적 원인을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조사방법이다. 자살사망률이 매우 높던 핀란드의 경우 1987년 1397건의 심리적 부검을 실시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국가 자살 예방대책을 수립해 1990~96년 자살사망률이 20%나 감소했다. 자살자 가족 면담 및 관련 기록에 대한 심층적 분석을 통해 자살 시도 원인, 일반인과 구분되는 특징을 규명하려면 향후 경찰이 자체적으로 조사할 수 있는 심리적 부검 수행 모형을 개발해야 한다. 가족을 제외하곤 자살자를 맨 먼저 살피게 되는 사람이 통상 경찰관이므로 그들이 유가족을 대상으로 자살자의 평소 언행 등을 조사하는 게 바람직하다. 하지만 시간이 더 들고 유가족 반응도 좋지 않으니 적극적 조사를 꺼리게 된다. 따라서 자살 사건 발생 시 경찰관이 심리적 부검을 실시하고, 부검을 수행한 경찰관에게 수당 혹은 인사고과 반영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과 자살예방센터 혹은 정신보건센터 전문요원이 의무적으로 출동해 유가족 및 주변인에 대한 심리적 부검을 실시하는 방안을 현재 내가 소속된 새누리당 가족행복특위 자살예방분과에서 검토 중이다. 자살 원인에 대한 명확한 규명이 이뤄지지 않으면 근거 기반의 자살 예방대책 수립이 어려운 만큼, 한국형 표준 자살 예방교육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서라도 심리적 부검 도입이 절실하다. 아울러 통계청의 자살사망통계 발표도 이듬해 9월에야 나와 즉각적 대응이 힘들므로 개선돼야 한다.”

    ▼ 지역별로 자살사망률 차이가 있나.

    “광역시·도별로 보면 강원지역이 1위다. 2012년 기준 전국 평균 자살사망률이 인구 10만 명당 28.1명인데, 강원지역은 31.4명이나 됐다. 수년째 그렇다. 특히 2010년 통계를 보면 정선군과 영월군이 매우 높은데, 전국 평균 자살사망률의 3배다. 왜 그럴까? 강원랜드 같은 카지노 때문이라고 추정하는데, 그 또한 심리적 부검을 실시해보면 분명한 원인을 파악할 수 있다. 2012년부터 통계에 잡힌 세종시의 자살사망률도 높다. 서울, 울산, 대구 등 대도시는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사돈의 8촌 병’도 자살과 관련

    ▼ 생명의전화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나.

    “내 전공이 정신간호학인데, 정신적 문제를 지닌 사람을 어떻게 돌보느냐가 관건이다. 자살도 그중 한 영역이다. 1970년대만 해도 자살자가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영민 목사(생명의전화 원장 역임)의 노력으로 민간 주도 자살 예방기관으로 생명의전화가 문을 열었다. 원래 1967년 호주 목사 앨런 워커가 만든 라이프라인 운동이 시초인데, 이후 전 세계로 파급됐다. 우리나라엔 현재 18개 도시에 20개 센터가 있다. 내가 교수로 임용될 당시 이화여대에 캐나다 선교사가 와 있었는데, 그의 권유로 생명의전화에서 1년 과정 교육을 이수하고 상담원 활동을 시작했다.”

    ▼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원장으로 발탁된 계기는.

    “우리 센터는 도박 문제를 국가 차원에서 예방, 홍보하고 치료재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다. 헤드헌터업체의 권유로 기관장 공모에 응했다. 처음엔 ‘난 자살(예방)하지 도박(예방)은 안 한다’고 고사했는데, 도박과 자살의 상관관계도 깊으니 내가 할 역할도 있겠다 싶어 생각을 바꿨다. 현재 국내 도박중독자는 260만 명, 도박중독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은 연간 78조 원이다. 도박을 ‘사돈의 8촌병’이라 일컫는데, 가족, 친지 돈까지 죄다 당겨쓴다고 해서다. 도박중독자 상당수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각종 범죄도 불사한다. 얼마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인천 모자 살해사건이 대표적이다. 그런 이들을 치유하는 게 센터의 임무다. 그래서 슬로건도 ‘도박의 빚을 희망의 빛으로’다.”

    ▼ 감수성이 예민했을 이 원장의 ‘소녀시대’는 어땠나.

    “문학을 좋아했다. 그런데 정신간호학의 길로 들어선 건 고교시절 절친했던 친구의 자살 기도를 겪은 영향이 컸다. 당시 친구 2명과 아주 친하게 어울렸는데, 모두 간호학을 전공하기로 약속했다. 그중 가장 머리가 좋고 누구보다 밝은 성격을 지녔던 친구가 고2 때 어느 날 새벽 자살을 기도했다. 그 친구 집에서 밤늦도록 같이 시험공부를 하기로 했다가 졸려서 그냥 귀가한 바로 다음 날이었다. 다행히 회복됐지만, 큰 충격을 받았다. 친구가 가족관계로 힘들어했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알았다. 그렇게 친한데도 왜 난 친구로서 그의 고민과 상처를 알아채지 못했을까. 그런 자책감에 정신간호학을 택했다.”

    자살 예방 위해 퇴직금 1억 원 기부

    ▼ 혹시 한때나마 자살을 염두에 둔 적이 있나.

    “단 한 번도 죽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해본 사람이 있을까. 나 또한 여러 가지로 힘들 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토마스 아켐피스(독일의 수도자이자 종교사상가)의 글을 되뇌었다. ‘오는 것은 지나가버림을 깨닫게 하옵시고, 나 자신까지라도 지나가고 마는 것임을 깨닫게 하옵소서.’ 그런 연후론 자살을 떠올린 적이 없다. 이처럼 다 지나가는 건데, 사람에 따라선 어느 순간 어떤 일로 인해 아주 죽고 못 사는 것처럼 심각하게 느껴지는 거다.”

    ▼ 자살 충동으로 번민하는 이들에게 꼭 들려주고픈 말은.

    “‘지금 안 죽어도 언제든 죽을 수 있다. 5분 후, 10분 후, 내일에라도 죽을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죽는 게 정말 최선의 선택인지, 혹시 잘못 생각해서 내가 나를 죽이는 건 아닌지 생각하며 죽음을 잠시 미룰 것, 그리고 그 시간에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내가 죽으면 누가 슬퍼할지, 살아오면서 잘해 준 한 사람만 생각하고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해줄 수 있는 가족이든, 친구든, 전화 상담이든 도움의 손길을 적극적으로 뻗어야 한다.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니 출산을 장려하는데,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산 사람부터 제대로 살게 하는 것이다. 자살 예방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삶에 대한 희망은 보물찾기를 위해 감춰진 보물이 아니다. 다 함께 힘을 합쳐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렇듯 생명도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자살은 결코 ‘나’ 하나의 문제로 끝나지 않으니까.”

    알려진 바 없지만, 이 원장은 지난해 12월 30일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교수 퇴직금 1억 원을 기부해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 대열에 합류했다. 기부금은 생명의전화에 도박중독 자살 예방상담센터를 만드는 기금으로 쓰일 예정이다.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명저 ‘자살론’을 통해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란 개념을 학계에 정착시켰다. ‘자살 선진국’ 대한민국의 자살, 아니 사회적 타살은 누구 책임인가.

    * 한국생명의전화 전국 공통 긴급상담 1588-9191

    * 도박 관련 자살문제 상담 헬프라인 080-300-8275

    (두 전화 모두 365일 24시간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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