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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태 리포트

돈, 건강, 외로움이 범죄 핵심 키워드

고령화시대 노인 대상 사기 백태(百態)

  • 박은경 객원기자 | siren52@hanmail.net

돈, 건강, 외로움이 범죄 핵심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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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누군데! 설마.’ 방심하다 당한다. 노인 대상 사기는 날로 급증하고 수법도 갈수록 교묘해진다. 홍보관 사기, 보이스피싱 사기, 대출 사기, 상조 사기, 효도관광 및 경로잔치 사기, 투자 사기, 공공기관 사칭 사기….
  • 끝 간 데 없는 노인 대상 사기 범죄 백태와 그 예방법.
돈, 건강, 외로움이 범죄 핵심 키워드

노인 대상 사기 범죄를 당했을 땐 신속한 신고가 최선이다. 전남 목포경찰서 산정지구대 소속 경찰관이 경로당을 찾아 전화 사기 등 범죄에 대한 예방법을 담은 안내문을 나눠주고 있다.

#1 65세 여성 최모 씨는 남편, 아들 부부와 심각한 가정불화를 겪는다. 동네 친구를 따라 마을 삼아 다니던 ‘홍보관’에서 자신도 모르게 사들인 물건이 어느덧 수천만 원어치에 달했던 것. 최씨가 산 물건은 허리 아픈 데 좋다는 프로폴리스, 뼈와 무릎을 튼튼하게 해준다는 상어연골, 정력에 좋다기에 손주 볼 욕심으로 아들을 위해 구입한 천삼, ‘무이자 할부’라는 말에 덥석 산 이온수기와 전기매트 등이다.

자식 몰래 갖고 있던 돈은 이미 바닥난 지 오래고, 앞으로 매달 나올 (캐피털) 할부금 청구와 지로 청구서를 생각하면 최씨는 ‘하루하루 사는 게 사는 게 아닌’ 지경이다. 그는 “남편은 아침에 나가면 저녁에나 돌아오고, 자식들은 분가해 지들 살기 바쁘지, 종일 우두커니 혼자 집 지키자니 심심하고 외로워서 친구 따라나선 게 큰 화를 불러올지 몰랐다”며 후회했다.

#2 수중의 노후자금이 부족하지 않을까 불안해하던 김모(64) 씨는 재작년 친구 말에 솔깃해 주식투자에 나섰다. “국내 명문대를 졸업하고 증권회사에 20년간 근무하면서 상장주식 운영관리를 맡았던 국내 최고 주식투자 전문가가 운영하는 회사다. 일단 투자만 하면 주식 데이 트레이딩을 통해 월 30%의 고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친구 말에 반신반의하며 퇴직금의 일부인 4000만 원을 우선 투자한 것.

매달 약속한 이자가 꼬박꼬박 통장으로 들어오자 나머지 1억4000만 원까지 모두 투자한 김씨는 형제는 물론이고 주변 사람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 하지만 ‘고수익 보장 주식투자’는 사기로 판명 났고 그동안 투자한 원금을 한 푼도 못 건진 그는 가족과 친구들까지 등지게 됐다.

5년 새 36% 급증



고령화시대를 맞아 노인들의 주머니를 노리는 사기가 기승을 부린다.

자식들과 떨어져 10여 년째 홀로 사는 배모(79) 씨는 얼마 전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수화기를 들자마자 대뜸 “어머니, 어머니”하면서 살갑게 구는 상냥한 여자 목소리에 배씨는 상대방이 누군지 미처 물어볼 생각조차 못하고 대화에 끌려들어갔다. 배씨는 “얼결에 이름과 나이, 내 명의로 된 단독주택에서 혼자 산다는 말까지 다하고 말았다. 한참 얘기하다 ‘아차’ 싶어 누구냐고 물었더니 ‘혼자 계시면 심심하지 않으냐? 놀러 나오시라, 여기 어머니 또래 친구가 많다’고 하기에 그제야 평소 딸이 조심해야 한다며 신신당부하던 말이 생각났다. 노인들을 꾀어내서 바가지 씌워 물건 팔아먹는 곳인지 깨달았다”고 했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이튿날이 되자 한 중년 남성이 전화를 걸어왔다. ‘배○○ 어르신 아니냐? 아드님이 이○○씨 맞느냐?’며 자신이 배씨 아들을 데리고 있다며 당장 통장과 도장을 들고 은행으로 가서 돈을 부치라고 했다. “처음엔 놀라 당황했다”는 배씨는 “남자가 말한 이○○는 아들이 아니라 사위이고, 해외에 나간 사위를 그가 데리고 있다는 게 말이 안 돼 꼬치꼬치 따졌더니 남자는 화를 버럭 내고 전화를 끊었다. 며칠 동안 무서워서 잠을 못 잤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대검찰청 ‘범죄분석’ 자료에 따르면, 2012년 한 해 전국에서 발생한 사기범죄 건수는 24만1275건. 이 중 피해자가 60세 이상인 경우는 1만9806건을 차지했다. 2007년 발생한 1만3784건에 비해 5년 사이 약 36% 증가했다. 이처럼 노인이 허위·과장 광고나 기만 상술에 쉽게 넘어가 사기꾼의 손쉬운 먹잇감이 되는 이유는 뭘까.

지난해 12월 서울시가 개최한 민관합동토론회에서 ‘고령 소비자 피해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한 황진자 한국소비자원 약관광고팀장은 고령소비자의 피해 특성을 몇 가지로 요약했다. 첫째, 일반적으로 재택률이 높다보니 가정방문이나 전화 권유를 받을 기회가 많고, 시간적 여유가 있기 때문에 악덕 상술의 타깃이 되기 쉽다. 둘째, 퇴직 등으로 일선에서 물러난 경우가 많아 정보 부족 혹은 새로운 상품이나 서비스에 어두워 전단지 광고의 체험담이나 감언이설에 쉽게 넘어가는 경향이 있다. 셋째, 서체 크기가 작고 표현이 어렵다는 이유로 계약서를 잘 읽지 않는다. 넷째, 평균수명 연장에 따라 현재 보유한 자산만으론 불안감을 느끼기 때문에 투자 등 자산 운용으로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말에 쉽게 넘어간다. 다섯째, 심신의 기능 저하나 건강에 대한 불안 때문에 효능이 검증되지 않은 상품이나 쓸모없는 물건을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

직장 또는 사회생활을 오래한 노인들은 퇴직금과 주택 등 기본적 자산을 가진 경우가 많다. 사회생활 경험이 많을수록 ‘내가 누군데! 설마’하며 방심하기도 한다. 또 독거 혹은 부부만 사는 노인가구가 늘면서 누군가 조금만 친절하고 살갑게 굴면 금세 믿고 마음을 여는 외로운 노인이 많아 사기꾼의 표적이 된다. 다시 말해 ‘돈’ ‘건강’ ‘외로움’이 노인 대상 사기의 키워드인 셈이다.

Interview | 한국노년복지연합 노정호 사무총장

“노년층 위한 놀거리, 문화공간 많아야”


돈, 건강, 외로움이 범죄 핵심 키워드
-노인을 대상으로 한 악덕 상술 사기 피해는 어느 정도인가.

“한국노년복지연합의 상담 사례는 2012년 한 해 동안 263건에 달한다. 지난해의 경우 9월까지 423건이었다.”

-주로 어떤 피해를 당했나..

“판매 유형으로 따지면, ‘홍보관’ 관련 피해가 76.6%로 가장 많고, ‘무료 강연·공연(경로잔치)’ 12.7%, ‘무료 여행(효도관광)’ 10.7% 순이다.”

-‘홍보관’ 폐해는 그동안 언론에서 수차례 다뤄졌다. 그런데도 왜 피해가 끊이지 않나..

“노인이 많이 앓는 관절염에 좋다는 약이나 건강기능식품의 상당수엔 진통제, 마약제 성분이 섞여 있다. 일단 복용하면 당장 안 아프니까 옆에서 누가 뭐래도 믿게 된다. 아프면 자식한테 짐 된다는 생각으로 약 사고 의료기기 사면서 스스로 건강을 챙기는 노인이 많아졌는데, 그걸 이용하는 거다. 또한 홍보관에 같이 안 가면 동네 친구들한테 왕따당하는 경우도 많다. 춤과 노래로 즐겁게 해주고 젊은 직원들이 간이라도 빼줄 듯 싹싹하게 구니 자식보다 낫다는 노인도 많다.”

-홍보관이나 체험방 같은 곳이 전국에 몇 개쯤 되나..

“메뚜기처럼 한두 달 만에 철수해 곧바로 다른 곳에서 판을 벌이니 정확한 통계는 없다. 다만 전국적으로 5000곳쯤 될 것으로 추산한다.”

-그런 곳에 수백만 원씩 쓸 돈이 노인들에게 있나..

“우리 상담 사례에 따르면 노인 1인당 평균 피해 금액이 300여만 원이다. 퇴직금에서 몰래 떼어두거나 자식들이 준 용돈을 안 쓰고 모아둔 쌈짓돈이다. 돈의 존재를 자식한테 절대 얘기 안 하는 사정을 훤히 꿰뚫고 사기꾼들이 접근한다.”

-외로운 노인을 꾀는 사기행각 대응책으로 필요한 것은?.

“노인은 갈 곳이 없다. 노인복지관과 문화센터 같은 곳은 소수만 이용할 뿐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가 노년층을 수혜 대상으로만 볼 게 아니라 건전한 소비자로도 봐야 한다. 노인을 위한 놀거리와 문화공간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홍보관 대신 그런 곳에 가서 시간을 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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