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년 11월 23일 북한군의 집중포격을 받은 후 응전에 들어간 해병 연평부대의 k-9 자주포.
disproportionately
특정인에 대한 평가에 민감한 것은 인지상정이다. 평판은 여론을 만들고 여론은 정책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게이츠의 인물평을 놓고 논란이 인 것은 대한민국이 좌우 이념으로 첨예하게 나눠져 있음을 보여준다. 그 바람에 더 중요한 대목을 놓쳤다. 연평도 포격전 직후 한미 간 의견 대립과 봉합이 그것이다. 다음은 언론이 전한 게이츠 회고록의 내용.
‘(한국 측에서) 보복을 요구했는데, 한국의 보복 계획은 군용기와 포화를 동원하는 등 과도하게 공격적(disproportionately aggressive)이었다.’ ‘한반도 긴장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고조되는 것을 우려해 오바마 대통령과 클린턴 국무부 장관, 마이크 멀린 합동참모의장 등과 함께 한국의 상대 측과 며칠간 통화하면서 논의했다.’ ‘중국도 북한 지도부를 상대로 상황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노력을 했다.’
주목할 것은 ‘과도하게’라고 해석한 ‘disproportionately’이다. 영한사전은 이 단어를 ‘균형이 안 맞게’로 풀어놓았다. ‘균형이 안 맞게 공격적’이라고 하는 게 이상했는지 ‘과도하게 공격적’이라고 의역했다. 그러나‘과도하게’에 가까운 영어 단어는 ‘excessively’다. excessively라는 쉬운 단어가 있는데도 굳이 disproportionately를 쓴 데는 이유가 있을 텐데, 언론은 이를 따져보지 않았다.
대통령과 국무·국방장관, 합참의장 등 미국의 실력자가 총 출동해 며칠간 한국 측을 설득했다는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천안함 사건에 이어 ‘또 당한’ 한국이 미국이 집요하게 설득한다고 주저앉은 이유는 또 뭔가. 그리고 중국은 북한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가.
그간 우리는 ‘한반도에 무력충돌 사태가 일어나면 미국과 중국이 개입한다’ ‘미국과 중국이 어떤 타협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운명이 결정된다’ ‘결정적인 시기 우리는 미국과 중국을 끌고 나갈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해왔다. 연평도 포격전 직후 상황이 그러했다. 그런데 언론은 게이츠 회고록에 담긴 노무현 인물평에만 관심을 갖느라 그때 벌어진 ‘큰 게임’의 진실을 놓쳐버렸다.
연평도 사태 때 군사작전 수립에 참여하고 미국 측을 상대했던 인사들은 안보와 국제관계 등을 의식해 익명을 요구하며 취재에 응했다. 이들의 증언을 토대로 작성한 연평도 포격전 비화는 한반도의 위기가 어떻게 조성되고, 그때 국제사회는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려준다. 우리 군과 한미연합사령부, 청와대의 대응 시스템은 어떠한지, 그 시스템의 허점은 무엇인지도 잘보여준다.

연평도 포격전이 있은 날 저녁 합참을 찾은 이명박 대통령. 그는 끝내 보복을 지시하지 않았다.(왼쪽) 연평도 포격전 후 한국으로 긴급히 날아와 한민구 합참의장을 만난 멀린 미국 합참의장.(오른쪽)
먼저 남북한의 군사 충돌 시스템부터 살펴보자. 작전의 속성은 ‘뒤통수치기’다. 상대가 생각하지도 못한 방법으로 기습하는 것이다. 이를 허용하면 우리는 북한을 “예측 불가능한 망나니”로 부르는데, 이는 ‘당한 우리가 바보이고, 북한은 영악했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북한은 내부 통제가 안 되는 망나니 집단이 아니다. 진짜 망나니라면 벌써 전쟁을 일으켰을 것이다.
북한 지도부는 흥분하지 않으며 정교하게 북한군을 통제한다. 이유는 이기기 위해서다. 섣부르게 벌인 전쟁은 패망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그들도 잘 안다. 따라서 끊임없는 도발로 상대에게 겁을 줘 당황하게 함으로써, 우리 스스로 더 큰 허점을 만들게 한다. 허점이 충분히 커졌다고 판단하면 그들은 ‘모든 것을 결정짓는’ 잔인한 도발을 한다. 극대화된 충격과 공포를 안겨 한반도를 조기에 석권하는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