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호

멀고 먼 여성해방 세계 최대 마약 생산

아프간을 떠나는 자와 남는 자 ②

  • 김영미 │국제분쟁지역 전문 PD

    입력2014-02-20 16: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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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해방은 아프간전쟁의 두 번째 명분이었다. 하지만 대다수 여성의 삶은 바뀌지 않았다. 가족법에 따라 여성은 남편의 동의가 있어야만 공부하고 취업할 수 있다. 혼자선 병원에도 갈 수 없으며 4일에 한 번은 남편과 잠자리를 가져야 한다. 전쟁 이후 아프간은 마약으로 뒤덮였다.
    • 헤로인은 두 살 아이의 울음을 달래는 데 요긴하게 쓰인다.
    멀고 먼 여성해방 세계 최대 마약 생산

    마약 원초인 양귀비를 키우는 아프칸의 농부들.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여하는 남편들의 목적은 아프간 여성의 해방이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개시 직전 조지 W부시 대통령의 영부인인 로라 부시가 라디오에 나와 한 말이다. 아프간전쟁은 차별과 억압 속의 여성 해방이라는 목적을 가진 전쟁임을 강조하던 그녀의 부드럽고 단호한 목소리로 미국 역사상 가장 긴 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미국이 아프간전쟁을 일으킨 첫 번째 명분은 9·11 테러를 일으킨 오사마 빈 라덴 체포였고, 두 번째는 부르카로 상징되는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해방이었다. 2001년 10월 7일 미국과 영국이 미사일과 전투로 아프간 전역을 공습하면서 전쟁은 시작됐다. 그리고 12년 후, 미국은 2014년 12월까지 아프간에서 철군하기로 결정했다.

    그동안 미국은 빈 라덴을 사살했으며 아프간 여성해방과 아프간 재건사업을 위해 많은 예산을 쏟아 부었다. 아프간의 수도 카불은 전쟁 전에 비해 외관상 많이 변했다. 탈레반 정부 시절, 저녁이 되면 컴컴하고 차도 별로 안 다니던 것에 비해 지금은 교통 체증이 빚어질 만큼 발전했다. 카불에서 휴대전화 없는 생활은 상상도 할 수 없으며, 시내 곳곳에 신식 건물이 들어서고 전깃불도 환하게 켜져 야경이 제법 멋있게 변했다.

    화장실도 없고 탈의실도 없고



    카불 시내에 사는 마리암 샤래즈(22)는 현재 카불 경찰청에서 4년째 경찰로 근무하고 있는 신식 여성이다. 아프간전쟁이 발발할 무렵 겨우 열살이던 그녀는 “시내 중심에 있던 텔레비전 타워가 한밤중에 엄청난 굉음을 내며 미사일에 폭파되던 장면을 기억한다. 난 엄마를 붙잡고 울었고 아버지는 동생을 달랬다”고 말했다.

    그러나 마리암은 어른들이 말하는, 그 옛날 탈레반 정부 시절에 대해서는 잘 기억하지 못했다. 집안에서 맺어준 그녀의 남편도 경찰이다. 외출이 금지됐던 탈레반 정부 시절과 비교하면 아프간 여성의 생활은 가히 혁명적으로 변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아프간에는 1500여 명의 여경이 일한다. 전체 경찰 인력의 1% 정도를 차지한다. 아프간 내무부는 올해 말까지 여경 5000명을 더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마리암이 경찰이 된 직후 맡은 일은 경찰서장실에서 차를 끓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여성 피의자를 체포해서 감시하는 일을 한다. 결혼 전에는 아버지가 매일 마리암의 출퇴근길에 동행했다. 지금은 남편과 같이 출퇴근을 한다. “아프간에서 여성 경찰로 일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느냐”는 질문에 마리암은 “나는 다행히 경찰인 남편을 만났지만, 다른 여경은 고작 2~3년 일하고 결혼하면 일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여경에 대한 복지제도도 제대로 된 것이 없다”고 말했다.

    아프간 정부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여경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여경에 대한 복지 수준은 몹시 열악하다. 여경 대부분이 남자 동료들과 화장실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것은 단적인 예다. 국제 인권단체 ‘휴먼 라이츠 워치(HRW)’에 의하면, 여성 전용 화장실이 따로 설치된 경찰관서는 수도인 카불의 경찰청 본청뿐이다.

    여경이 남녀 공용 화장실을 이용하다보니 남자 동료로부터 성추행을 당하기 쉽다. 화장실이 외진 곳에 있거나 화장실문에 잠금장치가 없는 경우가 많아서다. 마리암은 “화장실에서 성추행을 당할 수 있어 우리는 두 사람이 짝을 지어 서로 망을 봐주며 화장실을 가거나 근무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집에 가서 해결한다”며 멋쩍게 웃었다.

    하지만 화장실보다 더 큰 문제는 탈의실이다. 경찰 정복 차림으로 출퇴근하면 탈레반의 공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여경들은 대부분 출근한 뒤 경찰복으로 갈아입는데, 옷을 갈아입을 수 있는 여성전용 탈의실은 단 한 곳도 없다. 화장실과 탈의실 같은 여경의 신변안전과 관련된 시설에 대해 아프간 정부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유엔은 올해 아프간 경찰에 여자화장실 설치 예산을 지원할 계획이지만, 예산이 제대로 집행될지는 알 수 없다. 익명의 한 유엔 직원은 “유엔이 아무리 여경을 위한 예산을 책정해도 내무장관의 승인과 당국의 의지가 있어야 하는데 그들은 이 돈이 왜 화장실 따위에 집행돼야 하는지 이해를 못 한다”고 말했다. HRW의 브래드 애덤스 아시아지부장도 “이는 단순히 화장실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아프간 정부가 사법기관에서 일하는 여성의 임무를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4일에 한 번 잠자리 같이해야

    아프간 정부의 여성인권에 대한 인식은 2009년 통과한 ‘가족법’에서도 엿볼 수 있다. 당시 개정된 아프간 가족법에는 외출 시 남편의 허락을 얻어야 하며, 취업·교육·병원 검진 시 반드시 남편의 동의가 필요하며, 여성을 제외한 아버지와 할아버지에게만 자녀 양육권을 부여한다는 조항이 있다. 게다가 여성은 최소 4일에 한 번 남편의 잠자리 요구에 응해야 한다는 조항까지 들어 있어 문제가 된 바 있다. 당시 유엔과 산하 원조기구 등은 남편의 아내 강간을 합법화한다며 비난을 쏟아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혐오스러운 법안”이라고 말했고,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이 법안은 아프간의 진전보다는 후퇴를 가속화할 위험이 크다”라고 지적했다.

    미국과 영국 등이 이 법안에 그토록 예민하게 반응한 이유는 아프간전쟁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가 ‘여성해방’이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아프간 여성의 인권이 9·11 테러 이전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평가를 듣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 가족법은 내용상 탈레반 정부 시절과 다를 바가 거의 없어 미국과 영국은 당황했다.

    미국이 계획한 아프간 여성해방계획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미국 사회가 처음 인지한 건 2005년 톨로 TV의 여성 앵커 샤리마 레자위가 살해된 사건이 발생하면서부터다. 아프간의 신세대를 대표하며 인기를 한 몸에 받았던 이 여성 앵커는 얼굴을 드러내고 남성 앵커와 단둘이 방송에 나온다는 이유로 오빠에게 ‘명예 살인’을 당했다. 필자는 그 사건을 취재하며 당시 그녀를 살해한 오빠를 만났다. 샤리마의 오빠는 ‘이웃들의 계속되는 압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랑하는 동생을 명예살인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멀고 먼 여성해방 세계 최대 마약 생산

    마약을 소각하는 아프간 군인들

    미국인들은 충격과 함께 ‘탈레반도 없는데 왜 명예살인이 벌어졌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다. 아프간 여성부 공보부 직원은 이 의문에 대해 “아프간에서 여성해방의 적은 탈레반이 아니라 남성의 여성인권에 대한 인식이다. 탈레반은 이를 등에 업고 정치력을 구사하는 것뿐이다. 탈레반이 없어져도 여성은 절대 하루아침에 해방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언론인보호협회(CPJ)의 밥 디츠는 “그 사건은 미국 언론에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여성해방을 말하는 것’이 잘못된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한 계기가 되었다. 여성에 대한 차별의식은 아프간 전체에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고, 미국 정부가 아프간 여성해방을 이유로 전쟁을 개시한 것은 섣부른 착각이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미국 언론계에서 나오기 시작했다”라고 했다.

    아프간의 현지 언론 아프간 옵서버의 여성 기자 쉬키버는 “2001년 미군이 아프간에 들어왔을 때 많은 여성이 희망을 가졌다. 이제 학교와 직장도 다닐 수 있고, 여성이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꿈을 펼칠 수 있다는 미국의 말 때문이었다. 여학생들은 조심스럽게 학교도 다녔고 여자 경찰에 응시했으며, 세상 밖으로 나오려 했다. 하지만 그것은 환상일 뿐 지금은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카불 위클리’의 하뮨 기자는 “여성이 교육받는 것을 반대하는 테러범들은 장난감 총에 든 염산을 여학생들에게 발사한다. 이 액체에 맞은 여학생들이 얼굴에 화상을 입고 실명 상태가 되었다. 여학교 교장이 탈레반에게 참수되는 일도 있었다. 아프간 동부 카피사 주에서 여학생들이 있는 교실에 독가스를 살포해 수십 명이 실신하는 사고도 있었다. 그 학교는 사실상 폐쇄됐다. 부모들이 여학생을 학교에 보내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명예살인당한 여성 앵커

    여성 국회의원이나 여배우, 여기자 등 아프간전쟁 이후 꿈에 부풀어 사회 각층에 진출했던 많은 아프간 여성 인사가 끊임없이 살해 협박에 시달렸다. 이들이 자신의 꿈을 펼치는 것은 목숨을 담보로 하는 일이었다. 이슬람 근본주의 율법 ‘샤리아(Shariah)’가 지배하는 아프간에서 여성에 대한 인식은 하루아침에 바뀔 수 없었다. 미군이 아무리 여성해방을 외치고 강조해도 상황은 쉽게 달라지지 않았다.

    탈레반 정부에서 비밀리에 여성운동을 하던 아프간 여성혁명연합(RAWA)은 탈레반이 물러난 2001년 이후에도 수면 으로 나오지 않았다. 어렵게 통화가 된 이 단체의 조직원은 “미국이 탈레반을 쫓아냈어도 아프가니스탄의 사회 정서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여성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은 아프가니스탄의 오래된 역사이자 전통이다. 여성에 대한 계속되는 테러는 탈레반이 저지르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들은 행동대원일 뿐이다. 여성이 밖으로 나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대다수 아프가니스탄 남성의 묵인이 탈레반이 아무렇지도 않게 여성을 죽일 수 있는 배경이다. 우리는 이 정서를 알기에 여전히 지하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프간에서 여성 역할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큰 과제다. 물론 아프간전쟁 이후 아프간 여학생들의 취학이나 여성 근로자의 증가, 여성의 시위 참가 등 겉으로는 여성의 권리가 신장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동시에 인권 유린과 탄압이 벌어진다. 딸만 내리 2명을 낳은 22세 아프간 여성이 아들을 낳지 못했다는 이유로 남편에 의해 목이 졸려 살해된 사건이나 15세 신부가 시댁 가족으로부터 윤락을 강요당하다 이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고문을 받는가 하면 강간당한 여성이 간통 혐의로 수감되는 등 아프간에서는 자고 일어나면 여성의 인권과 관련된 끔찍한 사건이 터진다.

    아프간에서 여성 인권 문제가 계속 발생하자 미국이 전쟁을 일으킨 정당성이 흔들리는 것은 당연하다. 아프간의 통신사 ‘PAN’의 기자 샤피르는 “아프간에서 여성 인권 사건이 요즘 특히 많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원래 일어나던 사건이 미디어의 발달로 많이 알려지는 것뿐이다. 미군과 연합군이 들어온 후 12년이 지났지만 여성 인권 문제는 예전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프간 여성 억압의 상징인 부르카는 여전히 카불 시내에서도 쉽게 볼 수 있으며 시골지역은 부르카를 걸치지 않고는 외출할 수도 없다. 탈레반의 강제가 없음에도 아프간 치안이 불안해지면서 여성들은 외출을 스스로 삼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프간 주재 미대사관은 최근 아프간 정부가 여성 권리 향상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고 칭송하는 성명을 종종 발표한다.

    전쟁 이후 증가한 양귀비밭

    여성 인권 문제뿐 아니라 아프간 내에서의 마약 문제도 올해 아프간을 떠나는 미국의 발목을 잡는다. 2001년, 미국이 아프간에 들어오며 가장 호기 있게 한 일 중 하나가 아편 재배지에 불을 지르는 것이었다.

    아프간은 세계 헤로인 생산량의 90%를 차지한다. 당시 미국은 아프간에 안정과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이 나라의 헤로인 생산과 밀수를 단호하게 막아야 한다고 믿었다. 마약을 없애겠다는 미국에 문제를 제기하는 나라는 없었다. 마약 밀매로 만들어진 지하 세계의 은밀한 돈이 국제사회의 골칫거리였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세계 최고의 헤로인 산지를 없앤다는 말은 당연히 국제 사회의 응원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12년이 지난 지금 아프간은 여전히 세계 최고의 헤로인 생산국이며 지난해에는 오히려 양귀비 재배 규모가 사상 최대였다. 지난해 말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는 ‘아프가니스탄 아편 조사’ 연례 보고서에서 올해 아프간의 양귀비 재배 면적이 20만9000㏊로 지난해보다 36% 넓어졌다고 밝혔다. 이는 종전 최대 수준인 2007년 19만3000㏊를 뛰어넘은 수치다.

    올해의 아편 생산량은 지난해 대비 49% 증가한 5500t에 달한다. 연합군이 진주한 후 10년 동안 아프가니스탄의 마약 생산은 40배가량 늘어났다. 이렇게 만들어진 아프간 마약 경제의 1년 거래 규모는 현재 650억 달러에 달한다. 국제사회의 응원을 업고 시작한 아프간의 마약 퇴치 사업이 어쩌다 이런 지경에 이르렀을까. 그 궁금증을 풀어보기 위해선 아편을 재배하는 농부들을 만날 필요가 있다.

    아프간 북부도시 마자리샤리프의 외곽에는 드넓은 양귀비밭이 펼쳐져 있다. 매년 4월이면 밭은 온통 붉고 아름다운 양귀비꽃으로 뒤덮인다. 6월이 오면 이 꽃이 떨어지고 열매가 맺히는데 칼로 열매를 가르면 짙은 보라색 유액이 흘러나온다. 그 유액을 말리면 아편이 되고 여기에 화약약품을 첨가하면 헤로인이 된다.

    멀고 먼 여성해방 세계 최대 마약 생산

    탈레반 폭탄테러 희생자들의 장래식.(왼쪽) 마약원료인 양귀비를 수확하는 아프간 여성들.(오른쪽)

    반미감정 확산

    마자리샤리프 인근에서 제법 큰 규모의 양귀비 밭을 소유한 모하메드(45, 가명)씨는 1년에 한 번 수확할 수 있는 아편을 지난 12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수확했다. 그는 “그동안 별일이 다 있었다. 아프간 군인이 와서 우리밭에 석유를 뿌리고 불을 지르기도 하고 낫을 들고 와서 꽃을 다 잘라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이에 굴하지 않고 아편 농사를 지었다”고 말했다. 지역 사회에서 그는 ‘포기하지 않는 아편농부’로 불린다. 그의 아편 재배 방식을 배우려 연일 그의 집에는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

    이런 현상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에서는 이해하기 힘들다. 마약을 재배하는 사람이 범죄자가 아니라 지역 유지로 떠받들어지고 영농기술 배우듯 그의 아편 재배기술을 배우려 사람들이 모인다는 사실이 말이다. 하지만 아프간 농부의 시각으로 보면 간단히 이해된다. 아편 재배가 다른 나라에서는 범죄인 것을 아느냐는 질문에 모하메드 씨는 “나는 농부이고 아편은 밀이나 옥수수 혹은 토마토처럼 내가 재배하는 작물일 뿐이다. 이게 왜 범죄가 되는지 나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태어나서 아프간은 고사하고 자신이 사는 마을도 벗어나본 적이 없는 문맹의 농부로서 마약이 세상에 미치는 잘못된 효과를 이해하기 힘들다.

    대부분의 아편 재배 농부들은 미국과 아프간 군인이 자신들의 밭에 불을 지르고 농작물을 훼손하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 양귀비밭에 타오르는 불길만큼 반미감정도 확산된다. 그리고 그 틈을 이용해 탈레반이 세력을 키운다. 탈레반이 농부들에게 양귀비 밭을 보호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수익금을 나누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 결과 양귀비밭은 계속 번창하고 탈레반은 활동 자금을 얻게 됐다. 이를 두고 유엔마약범죄국(UNODC)의 안토니오 마리아 코스타 국장은 “아프간에 축적된 아편은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아프간 양귀비밭에 불을 지르는 동안 아프간산 헤로인이 전 세계 거래 규모의 93%까지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 후 오바마 행정부는 부시 행정부 때의 잘못된 아프간 마약정책으로 농민과 부족장들의 반발을 샀고, 그들이 오히려 탈레반과 더 유착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판단했다. 이는 미국으로서는 무척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모두 찬성하는 양귀비밭 파괴 때문에 오히려 반미감정만 부추기는 꼴이 됐으니 탈레반의 돈줄인 마약 단속 정책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해졌다. 그래서 미국 정부는 2009년부터 아프간에서 마약 생산의 원천인 양귀비밭을 주로 파괴해온 기존 정책에서 벗어나 아편밭은 건드리지 않고 연방 마약단속국(DEA) 요원들을 아프간에 대거 투입해 마약거래 조직을 집중 단속하는 것으로 작전을 바꾸었다.

    하지만 급속도로 불어난 아프간의 마약은 이미 국경을 넘어 인근 국가에까지 확산됐다. 아프간과 국경을 마주하는 이란에 아프간 마약은 엄청난 골칫거리다. 현재 이란 경찰이 밀수업자로부터 몰수하는 마약은 하루 평균 1t이 넘는다고 한다. 지난 1월 마약 전담 경찰 수장인 알리 모아예디는 “하루 평균 1286㎏의 마약을 몰수하고 있다”며 “이는 이란으로 반입되는 마약의 5분의 1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몰수되지 않는 마약 중 이란에서 소비되는 것은 35% 정도에 지나지 않으며 나머지 65%는 유럽 등지로 흘러간다. 이란이 아프간에서 생산되는 마약을 유럽과 중동 지역으로 전달하는 주요 통로가 된 것이다.

    대통령 형제들도 마약 장사

    UNODC는 2009년 보고서를 통해 “이란과 파키스탄, 중앙아시아 각국이 실크로드를 통해 운송하는 아프간의 아편으로 인해 큰 타격을 입는다”면서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아편 유통의 폐해가 전 세계로 파급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아프간-타지키스탄 국경은 아편의 주요 유통망이다. 국경의 경비가 소홀한 이곳을 지나 대량의 아편이 타지키스탄으로 넘어가 유럽에 도달한다.

    이에 영국 정부는 2015년 3월까지 180만 달러를 지원해 아프간-타지키스탄 국경 경비를 강화하기로 했다. 이 국경을 막아야 영국까지 마약이 오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도 아프간 마약의 불법 유통을 막으려 여권 제조기술이 떨어지는 타지키스탄에 무상으로 여권을 만들어 주겠다고 제안했다. 러시아의 빅토르 이바노프 연방마약청장은 “러시아에서 유통되는 헤로인의 90%는 아프간에서 온 것으로 확인된다”며 “매년 러시아인 3만 명이 헤로인 때문에 숨진다”고 밝혔다. 아프간의 아편수출은 주 소비시장인 유럽과 러시아에 도달하기도 전에 마약거래 루트에 위치한 국가들을 중독시키는 결과도 낳고 있다.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같은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대표적인 경우다.

    마약의 증가는 아프간의 만성적 빈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아프간의 빈곤상태는 심각하다. 2001년 처음 미군과 연합군이 아프간으로 들어오면서 국제사회의 원조금이 따라 들어왔다. 외국에서 들어온 시민단체나 외국인 덕분에 2006년 후반까지 아프간 경기는 나쁘지 않았다. 부동산 값은 치솟고 건설 경기도 좋아 일당직 건설 노동자도 많이 필요했다.

    그러나 연합군과 탈레반의 전투가 심해지고 자살폭탄 테러가 계속 일어나자 안전을 우려한 외국인들이 아프간을 떠나기 시작했다. 치안 상태 악화는 아프간의 빈곤을 가속화했다. 외국인이 떠나면서 일감도 줄고 원조액도 줄었기 때문이다.

    카불에서 고등학교 교사를 하는 하이다르(34)는 세 아이를 키우는 가장이다. 부모님이 물려준 작은 집에서 살기 때문에 카불 시민의 최대 고민인 집 임차료는 물지 않지만, 월급의 대부분을 식비로 지출한다. 그는 “그렇다고 우리가 많은 음식을 먹는 것은 아니다. 나는 아주 적은 월급을 받아 식비만 겨우 해결한다, 더 쓸 수 있는 현금이 없어 식비만 지출할 만큼 가난하다”며 한탄했다.

    아프간 경제는 계속 하향곡선을 그렸고 실업률은 40%를 넘겼다. 그러자 어디든 돈이 되는 곳으로 사람들이 모이게 됐다. 그런데 아프간에서 유일하게 호황을 누리는 사업이 바로 마약이었던 것이다. 돈이 되는 마약 사업을 하고자 너도나도 모여들었다. 심지어는 아프간의 대표 항공사인 캄 에어도 자사 항공기에 아편을 실어 인접국인 중앙아시아 타지키스탄으로 밀수출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엄마와 아기가 동시 중독

    미군은 캄 에어와 맺은 계약을 모두 중단했다.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의 형제들도 마약 사업으로 큰돈을 벌었다. 대통령의 동생이자 칸다하르 지방협의회 의장인 아메드 왈리 카르자이의 별명이 ‘마약왕’일 정도다. 아프간 내무부 고위관리는 “아프간에서 국경을 넘어가는 모든 짐에는 반드시 아편이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마약사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아편 재배지는 더욱 늘었다. 이것이 아프간에서 아편 재배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배경이다”라고 말했다.

    유엔마약범죄국은 아프간 인구 중 15~64세의 100만 명가량이 마약중독자라고 밝힌다. 이는 아프간 전체 인구의 8% 되는 규모다. 세계 평균(2.65%)보다 3배 이상 높은 수치다. 그나마 이 수치는 여성과 아동 마약 복용자는 포함하지 않은 것이다.

    멀고 먼 여성해방 세계 최대 마약 생산

    자살폭탄 테러 현장을 조사하는 나토 군인들

    아프간에서는 엄마와 아기가 동시에 마약 중독이 되는 경우가 많다. 아프간 중부 와르닥 주에 사는 아이샤(18)와 그의 두 살 된 아기는 헤로인과 아편에 중독된 상태다. 아이샤는 어릴 때부터 아플 때마다 마약을 상비약처럼 복용해왔고 출산 후 우는 아기를 달래기 위해 직접 마약 연기를 아기에게 불어주어 그녀의 아기까지 마약에 중독됐다. 마약에 중독됐다는 개념조차 잘 모르는 아이샤는 “아기에게 헤로인을 쓰는 것이 잘못된 일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 고유의 방법이다”라고 말했다.

    그녀뿐 아니라 아프간 엄마들이 상비약으로 혹은 아기를 달래려는 목적으로 마약을 사용한다. 아프간 경찰도 마약에 중독돼 어린아이들을 학대하거나 납치·강간하는 등 사건사고의 장본인이 되곤 한다. 영국 BBC에 따르면, 지난해 2월 마약에 중독된 아프간 경찰이 어린애들을 납치해 몸값을 받은 사건도 발생했다.

    미국의 선택은 옳았나

    세계보건기구(WHO)의 조사 결과 아프간은 전 세계에서 우울증 환자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다, 정치적 혼란과 전쟁에 시달려온 아프간 사람들에게 우울증이 번지게 됐고, 이는 마약 소비를 높이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그동안 아프간이 ‘세계 최고의 마약왕국’이었다면 이제는 마약 중독자로도 세계 최고라는 오명을 얻게 된 것이다.

    우울함과 가난. 이 두 가지가 마약의 소비를 높였고 아프간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난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아프간 정부의 부정부패를 들었다. 영국에 본부를 둔 국제구호단체 ‘옥스팜’이 아프간 성인남녀 704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실시해 2009년 공개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70%가 빈곤 및 실업을 전쟁 발생의 원인으로 꼽았다. 응답자의 절반에 육박하는 48%는 부패와 정부의 비효율성을 전쟁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반면 탈레반(36%), 다른 나라(25%), 알 카에다((18%), 다국적군(18%) 등 현재 아프간전쟁에 개입한 당사자들을 전쟁의 원인으로 지목한 응답 비율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하지만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은 퇴임을 6개월가량 앞둔 지난해 10월 영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재임기간에 아프간 정부가 부패와의 전쟁에서 패하고 여성인권 상황이 악화됐다”는 기자의 지적에 대해 “아프간 정부는 다른 나라 정부에 비해 약하고 영향력이 크지 않은데다,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다. 수억 달러의 돈이 오가는 정말로 큰 부패는 아프간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이다”라고 부인했다. 또한 그는 미국과 연합군은 아프간 국민에게 고통만 안겨주었다며 서방 세계를 비난했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지지율로 2008년 퇴임한 조지 W 부시 전 미 대통령은 퇴임 직전 전미 공영라디오(NPR)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재임 8년간 업적과 관련해 “이라크와 아프간 국민 5000만 명을 압정에서 해방시켰다”고 말했으며 그 자리에서 함께 인터뷰를 했던 영부인인 로라 여사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여성을 해방시켰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며 남편과 미국의 선택이 옳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들의 자화자찬에도 12년간 진행된 아프간전쟁으로 인한 고통은 고스란히 아프간 국민의 몫이 되고 있고, 누구도 그 책임을 지지 않는다. 현재 아프간에 주둔 중인 나토군은 치안권을 현지 군경에게 모두 이양했으며, 남아있는 9만7800여 명의 나토군은 올해 말까지 아프간에서 완전히 철군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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