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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 PD의 지구촌 현장

멀고 먼 여성해방 세계 최대 마약 생산

아프간을 떠나는 자와 남는 자 ②

  • 김영미 │국제분쟁지역 전문 PD

멀고 먼 여성해방 세계 최대 마약 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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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해방은 아프간전쟁의 두 번째 명분이었다. 하지만 대다수 여성의 삶은 바뀌지 않았다. 가족법에 따라 여성은 남편의 동의가 있어야만 공부하고 취업할 수 있다. 혼자선 병원에도 갈 수 없으며 4일에 한 번은 남편과 잠자리를 가져야 한다. 전쟁 이후 아프간은 마약으로 뒤덮였다.
  • 헤로인은 두 살 아이의 울음을 달래는 데 요긴하게 쓰인다.
멀고 먼 여성해방 세계 최대 마약 생산

마약 원초인 양귀비를 키우는 아프칸의 농부들.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여하는 남편들의 목적은 아프간 여성의 해방이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개시 직전 조지 W부시 대통령의 영부인인 로라 부시가 라디오에 나와 한 말이다. 아프간전쟁은 차별과 억압 속의 여성 해방이라는 목적을 가진 전쟁임을 강조하던 그녀의 부드럽고 단호한 목소리로 미국 역사상 가장 긴 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미국이 아프간전쟁을 일으킨 첫 번째 명분은 9·11 테러를 일으킨 오사마 빈 라덴 체포였고, 두 번째는 부르카로 상징되는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해방이었다. 2001년 10월 7일 미국과 영국이 미사일과 전투로 아프간 전역을 공습하면서 전쟁은 시작됐다. 그리고 12년 후, 미국은 2014년 12월까지 아프간에서 철군하기로 결정했다.

그동안 미국은 빈 라덴을 사살했으며 아프간 여성해방과 아프간 재건사업을 위해 많은 예산을 쏟아 부었다. 아프간의 수도 카불은 전쟁 전에 비해 외관상 많이 변했다. 탈레반 정부 시절, 저녁이 되면 컴컴하고 차도 별로 안 다니던 것에 비해 지금은 교통 체증이 빚어질 만큼 발전했다. 카불에서 휴대전화 없는 생활은 상상도 할 수 없으며, 시내 곳곳에 신식 건물이 들어서고 전깃불도 환하게 켜져 야경이 제법 멋있게 변했다.

화장실도 없고 탈의실도 없고



카불 시내에 사는 마리암 샤래즈(22)는 현재 카불 경찰청에서 4년째 경찰로 근무하고 있는 신식 여성이다. 아프간전쟁이 발발할 무렵 겨우 열살이던 그녀는 “시내 중심에 있던 텔레비전 타워가 한밤중에 엄청난 굉음을 내며 미사일에 폭파되던 장면을 기억한다. 난 엄마를 붙잡고 울었고 아버지는 동생을 달랬다”고 말했다.

그러나 마리암은 어른들이 말하는, 그 옛날 탈레반 정부 시절에 대해서는 잘 기억하지 못했다. 집안에서 맺어준 그녀의 남편도 경찰이다. 외출이 금지됐던 탈레반 정부 시절과 비교하면 아프간 여성의 생활은 가히 혁명적으로 변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아프간에는 1500여 명의 여경이 일한다. 전체 경찰 인력의 1% 정도를 차지한다. 아프간 내무부는 올해 말까지 여경 5000명을 더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마리암이 경찰이 된 직후 맡은 일은 경찰서장실에서 차를 끓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여성 피의자를 체포해서 감시하는 일을 한다. 결혼 전에는 아버지가 매일 마리암의 출퇴근길에 동행했다. 지금은 남편과 같이 출퇴근을 한다. “아프간에서 여성 경찰로 일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느냐”는 질문에 마리암은 “나는 다행히 경찰인 남편을 만났지만, 다른 여경은 고작 2~3년 일하고 결혼하면 일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여경에 대한 복지제도도 제대로 된 것이 없다”고 말했다.

아프간 정부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여경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여경에 대한 복지 수준은 몹시 열악하다. 여경 대부분이 남자 동료들과 화장실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것은 단적인 예다. 국제 인권단체 ‘휴먼 라이츠 워치(HRW)’에 의하면, 여성 전용 화장실이 따로 설치된 경찰관서는 수도인 카불의 경찰청 본청뿐이다.

여경이 남녀 공용 화장실을 이용하다보니 남자 동료로부터 성추행을 당하기 쉽다. 화장실이 외진 곳에 있거나 화장실문에 잠금장치가 없는 경우가 많아서다. 마리암은 “화장실에서 성추행을 당할 수 있어 우리는 두 사람이 짝을 지어 서로 망을 봐주며 화장실을 가거나 근무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집에 가서 해결한다”며 멋쩍게 웃었다.

하지만 화장실보다 더 큰 문제는 탈의실이다. 경찰 정복 차림으로 출퇴근하면 탈레반의 공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여경들은 대부분 출근한 뒤 경찰복으로 갈아입는데, 옷을 갈아입을 수 있는 여성전용 탈의실은 단 한 곳도 없다. 화장실과 탈의실 같은 여경의 신변안전과 관련된 시설에 대해 아프간 정부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유엔은 올해 아프간 경찰에 여자화장실 설치 예산을 지원할 계획이지만, 예산이 제대로 집행될지는 알 수 없다. 익명의 한 유엔 직원은 “유엔이 아무리 여경을 위한 예산을 책정해도 내무장관의 승인과 당국의 의지가 있어야 하는데 그들은 이 돈이 왜 화장실 따위에 집행돼야 하는지 이해를 못 한다”고 말했다. HRW의 브래드 애덤스 아시아지부장도 “이는 단순히 화장실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아프간 정부가 사법기관에서 일하는 여성의 임무를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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