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호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이자놀이’

美, 공식 인정…7년 만에 특종 확인

  • 이형삼 | 동아일보 출판국 기획위원 hans@donga.com

    입력2014-02-20 17: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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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년 9개월. 2007년 ‘신동아’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의 이자수익 발생 사실을 폭로한 이후 미국 당국이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신동아는 그해 4월호 ‘주둔비 부족하다는 미군, 금융권에 8000억 예치·운용’ 기사에서 한국 정부가 제공한 방위비 분담금 가운데 상당 금액이 원래의 용도대로 집행되지 않고 축적돼왔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뒤이은 5월호 기사는 “이 자금에서는 이자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당시 주한미군 측 설명과 달리, 실제로는 이 돈이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서울지점에 예치돼 있으며 여기에서 발생한 이자수익은 매년 미 국방부로 고스란히 입금되고 있음을 추적한 후속 보도였다.

    두 기사는 황일도 기자(현 ‘주간동아’ 기자)가 작성했다. 황 기자는 이 같은 사실을 입증하는 수년간의 미 국방부 재무제표, BoA 서울지점의 해당 자금 담당 본부장 등 금융권 관계자들의 증언과 경영공시자료, 미군 영내 은행의 자금 운용 자료, 국제통상전문가와 미국 변호사의 의견 등을 제시함으로써 기사의 신뢰도를 높였다. 당시 신동아 편집장이던 필자는 ‘동아일보’ 수습기자 교육 때 이 두 기사를 충실한 취재와 치밀한 증거 확보의 생생한 사례로 들며 강의하기도 했다.

    보도의 파장은 컸다. 그 무렵 주한미군은 한국 정부의 방위비 분담금이 부족하다며 거듭 증액을 요구하고 있었다. 주한미군사령관이 직접 나서서 재정난으로 인한 한국인 고용자 및 군수보급물자 감축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그런 마당에 주한미군이 수천억 원의 한국 측 방위비 분담금을 금융권에 예치해놓은 채 막대한 이자수익까지 얻었다는 보도는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미 국방부로 전액 입금된 한국 측 분담금의 이자가 주한미군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일미군 운영비나 이라크전 비용으로 쓰인다 해도 우리로선 확인할 길이 없는 노릇이었다.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이자놀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축적 사실을 처음 폭로한 ‘신동아’ 2007년 4월호 기사(위)와 이자 수익 발생 사실을 추적한 같은 해 5월호 후속 보도.

    협상의 ‘틀’ 바꾼 기사



    한국 국민의 혈세로 조성된 방위비 분담금의 운용 투명성 문제가 신동아 기사를 통해 공론화하자 이후 한미 양국의 방위비 분담금 협상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틀에서 진행됐다.

    2008년 8차 방위비 분담 특별협정(SMA) 개정협상은 현물지급을 늘리고 현금지급 비율을 낮추는 방향으로 이뤄졌고, 지난해 이뤄진 9차 협정 개정협상에서는 투명성 문제가 핵심 이슈로 떠올랐다. 국회와 언론, 시민단체의 문제 제기가 잇따른 결과였다.

    하지만 거듭된 논란에도 변화의 속도는 더뎠다. 먼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의 상당액을 평택에 새로 짓는 기지 이전 예산으로 사용하기 위해 계속 쌓아놓겠다는 미국 측 방침은 변함이 없었다. 2013년 8월 기준으로 미집행 금액 규모는 7100억 원에 달했다. 한국 측이 별도로 제공하는 수조 원 규모의 기지이전 특별회계 외의 이전비용은 미국 측이 부담한다는, 2004년 양측의 협상 결과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태도였다.

    특히 이렇게 축적한 자금에서 발생한 이자의 행방에 대한 미국 측 주장은 한결같았다. 주한미군사령부는 이 돈을 영내 커뮤니티뱅크의 무이자 계좌(escrow account)에 예금해두고 있으며, 커뮤니티뱅크가 이 자금을 어떻게 운용하는지는 미국 당국이 관여할 사항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커뮤니티뱅크가 실제로는 BoA의 산하기관이며, 여기에 축적된 자금은 BoA 서울지점을 비롯한 시중은행에 양도성예금증서(NCD) 형태로 예금해 매년 100억 원이 훨씬 넘는 규모의 이자를 지급받는다는 사실, 이렇게 얻은 수익이 커뮤니티뱅크와 미 국방부의 사업계약에 따라 고스란히 미국 국고로 입금된다는 신동아 기사의 폭로를 애써 무시하며 버티기로 일관한 것이다.

    그러던 지난 1월 23일, 동아일보는 복수의 정부 관계자 말을 인용해 “9차 SMA 협상과정에서 미국이 쌓아둔 분담금 은행계좌에서 이자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처음 인정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이튿날 외교부는 백그라운드 브리핑을 통해 미국 측의 인정 사실을 언론에 공식 확인했다. 이렇게 발생한 이자에 과세가 가능한지, 얼마나 소급 적용할 수 있을지 국방부와 국세청이 협의를 시작했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축적된 분담금 규모는 매년 조금씩 달라졌지만, 지난해 미집행금을 기준으로 삼을 경우 초단기 콜금리(2.5%)를 적용해도 연간 178억 원의 이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며, 이 돈에 12%의 소득세율을 적용하면 연간 세금은 21억 원이 된다.

    미국 측이 2002년부터 분담금을 쌓기 시작해 2007년부터는 8000억 원 안팎을 유지해왔음을 감안하면 이자수익 누적금액은 최소 1500억 원, 세금은 180억 원에 육박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미국의 고육지책?

    상황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지만, 갈 길은 아직 멀다. 당장 과세 가능성을 검토 중이라는 국세청은 신동아의 첫 폭로 직후 시민단체의 고발에 따라 과세를 검토했으나 “한미 조세조약 13조 3항에 따라 미국 정부가 전적으로 소유한 기관에 의해 발생한 수익에 대해서는 한국 정부 과세로부터 면제된다”는 이유로 비과세 결정을 내린 바 있다. BoA 서울지점을 비롯해 축적된 분담금을 운용한 곳은 민간 상업은행이므로 정부 기관과는 관계가 없다는 미군 측 설명과 배치되는 처분이었다.

    이번 9차 협상과정에서 미국 측이 이자소득 발생을 인정한 것 또한 ‘민간은행이 소득을 얻었으므로 과세 여부는 한국 정부가 결정할 사항’이라는 취지일 뿐, 미국 정부가 이자를 챙겼음을 인정한다는 뜻은 아니라는 게 정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과세를 피하려면 그간의 ‘돈놀이’를 인정해야 하는 곤혹스러운 처지에서 벗어나려는 미국 측의 고육지책일 수 있다는 뜻이다. 향후 국회 비준과 국세청의 검토 과정에서 이 문제가 다시 한 번 쟁점이 될 공산이 큰 이유다.

    신동아는 2007년 4월호 첫 보도 이후 모두 여섯 차례에 걸쳐 이 사안을 집중적으로 추적하며 논의를 이끌어왔다. 신동아는 앞으로 이 문제가 어떻게 귀결될지 관심 있게 지켜볼 것이다. 유리알 같은 투명성이 한미동맹의 가치를 한 차원 더 끌어올릴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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