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힐 전 대사는 2월 10일 오전과 오후 천주평화연합(UPF) 주최로 열린 ‘동북아 평화를 위한 한반도 평화 로드 맵’ 강연에 잇따라 참석해 연설했다. 여러 언론이 그의 강연 내용을 보도했다.
인터뷰 시간 맞추려다 생고생
그런데 그는 이 강연 하루 전인 2월 9일(일요일) 오전 서울에서 ‘신동아’와 단독 인터뷰를 하기로 돼 있었다. 이 약속 때문에 그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출발해 8일 저녁 인천공항에 도착하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그러나 비행기가 경유하는 도쿄 나리타 공항에 전례 없는 폭설이 내렸다. 비행기 이·착륙이 어려워 그는 일본 공항에서 발이 묶이고 말았다. 25시간 정도를 공항 대합실 침낭 속에 있다가 10일 새벽녘 서울에 왔다고 한다. 잠시 눈을 붙인 뒤 국회에서 강연했다. 어찌나 고생했던지 강연에서 “굉장히 불편하게 주말을 보내고 왔다. 공항의 마루에서 잤다. 그래도 한국에 오니 마음이 편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9일 오전에 잡혀 있던 인터뷰는 자연 취소됐다. 그는 10일 오후 국회에서의 강연 일정을 끝낸 뒤 “‘신동아’ 측이 좋다면 지금이라도 하자”고 했다. 그는 여의도에서 곧장 광화문 사거리로 와서 기자와 마주 앉았다. 공항 노숙 등 생고생으로 피곤할 터인데도 인터뷰 약속을 지켜준 점이 인상 깊었다.
“당신은 한국에서 맥아더 장군 다음으로 인지도가 있는 미국인”이라는 몇 년 전 신문기사에서 본 내용으로 인사말을 건넸다. 그는 싫지 않은 듯 너털웃음을 지었다. ‘힐=북핵’이므로 북한 핵 문제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실 이 문제는 요즘 또 수면으로 부상했다. 북한은 2013년 2월 3차 핵실험을 했다. 1년이 지난 올 2월 북한은 영변 원자로를 재가동했다. 이와 함께 평안북도 동창리의 장거리로켓 발사대 공사도 거의 마무리했다. 제임스 클래퍼 미국 국가정보국 국장은 “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의 배치 초기 단계”라고 말했다.
▼ 클래퍼 국장은 최근 ‘북한이 영변 핵 단지에 있는 우라늄 농축시설의 규모를 확충하고 있고 플루토늄 원자로도 재가동에 들어갔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북한의 움직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이것은 매우 부정적인 상황 전개입니다. 우리는 지난 일들을 되돌아봐야 해요. 6자회담 때 어떠한 합의가 이뤄졌는지 말입니다. 첫 번째는 원자로의 불능화였죠. 이것은 그들이 핵을 포기하는 마지막 단계는 아니죠. 그러나 이어 그들은 핵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더 진행하지 않겠다는 데 동의했어요. 궁극적으로 우리는 북한 핵을 사라지게 하려 했죠.”
▼ 합의하고 파기하는 일이 항상 반복됐죠. 북핵 문제를 지켜보면 데자뷰(旣示感) 비슷한 게 느껴져요.
“우리가 북한 핵을 폐기하려고 단계적으로 소비한 지난 수년여의 시간은, 이제 여가를 즐겼던 시간이 됐어요.”
2005년 힐 전 차관보가 참여한 6자회담에서 ‘북한의 모든 핵무기와 현존 핵 계획의 포기’를 담은 9·19 합의가 이뤄졌다. 또 2007년 10·3 합의의 결과로, 북한은 2008년 6월 영변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하고 가동중단 절차를 밟았다. 그러나 북한은 2009년 4월 ‘6자회담 불참과 핵시설 원상복구’를 선언했다. 같은 해 5월과 2013년 2월 2차, 3차 핵실험을 단행했다. 유엔(UN)의 제재 등이 이어지자 북한은 2013년 6월 대화 재개를 요구했다. 한미는 기존 합의 이행을 요구했다. 그러자 북한이 원자로 재가동에 들어간 것이다. 이러한 상황 전개와 관련해 힐 전 차관보는 협상파트너였던 북한에 대한 불신감, 북한과의 대화에 대한 회의감을 드러냈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듯”
▼ 이번 영변 원자로 재가동은 얼마나 심각한 건가요?
“북한이 원자로를 다시 가동했다는 건 나쁜 뉴스죠. 그러나 그들이 자신들 목표에 도달한 것은 아니라는 증거들도 있는 것 같아요. 이건 좋은 뉴스죠. 그러나 나쁜 뉴스가 좋은 뉴스를 압도하는 상황입니다. 북한이 핵을 계속 개발하려고 하는 점이 분명히 드러났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