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호

“기획소송이라고? 분노가 지갑을 여는 것”

사상 최악의 개인정보 유출 카드 3사 집단소송 이끄는 이흥엽 변호사

  • 김진수 기자 | jockey@donga.com

    입력2014-02-21 14:08: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기획소송이라고? 분노가 지갑을 여는 것”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무려 1억580만 건에 피해자가 1000만 명이 넘는 KB국민카드, NH농협카드, 롯데카드 3사의 개인정보 유출사고 후폭풍이 거세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이번 사고는 세계 역대 정보 유출사고 중 3위에 해당한다. 국내에선 최다 규모인 데다, 단순한 개인정보가 아닌 금융 관련 정보의 유출이란 점에서 정부의 재발방지 대책 발표, 국회 국정조사, 카드 3사에 대한 금융당국의 3개월 영업정지 조치 등에도 ‘카드런(Card Run)’ 행렬과 분노의 아우성은 수그러들 기미가 없다. 그야말로 ‘백약이 무효’라는 옛말을 실감케 한다.

    사실 주위만 둘러봐도 개인정보가 유출되지 않은 사람을 찾기 힘들다. 롯데카드를 쓰는 기자 역시 홀라당 ‘신상털이’를 당했다. 이러니 ‘대책(對策)’에 반응하는 여론은 ‘대책(大責·큰 꾸지람)’일 뿐, ‘개인정보 대란’ 피해자들에 대한 실질적 피해구제 수단이라곤 결국 카드 3사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이라는 자구적 노력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런 와중에서 새삼 화제로 떠오른 키워드가 ‘집단소송’이다. 법무법인 ‘조율’이 일찌감치 100명의 원고를 모집해 1월 20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소장을 제출함으로써 손해배상청구소송의 포문을 연 데 이어, 법무법인 ‘평강’과 ‘시내’, 유철민 변호사, 금융소비자연맹과 원희룡 전 의원까지 가세해 소송 참여자를 모집한다. 유례없는 집단소송이다.

    그중 단연 주목받는 게 이흥엽(54·이흥엽법률사무소) 변호사의 인터넷 카페다. 그가 포털사이트 네이버와 다음에 개설한 집단소송 카페에 가입한 소송 참여자 수는 가파르게 상승 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변호사는 이미 2011년 하나로텔레콤(현 SK브로드밴드)을 대상으로 2만3000여 명이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대리해 그해에 원고 개인당 10만~20만 원의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법원 판결을 이끌어낸 바 있다.

    하나로텔레콤은 2005년 당시 자회사와 외부 업체에 고객정보 51만 건을 무단으로 넘겨 텔레마케팅에 이용하게 했다.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동의하지 않은 고객의 정보를 제3자에게 넘긴 것이다. 이 변호사는 포털사이트에 1인당 소송비용 6600원을 내건 집단소송 카페를 개설하고 소송에 임해 승소했다.

    이 때문에 이 변호사가 이번 소송에 어떻게 임할지가 피해자들에겐 초미의 관심사다. 그를 만나 집단소송에 뛰어든 배경과 소송 준비과정에 대해 들었다.

    ‘카드사들 혼내주라’

    “기획소송이라고? 분노가 지갑을 여는 것”

    이흥엽 변호사에게 소송을 맡긴 의뢰인 명단 서류.

    ▼ 이번 유출사고와 관련해 이 변호사의 개인정보는 ‘안녕’하신가. 어느 카드의 몇 개 항목이 털렸나.

    “사고 소식을 접하고 즉시 유출 여부를 조회해보니 KB국민카드의 15개 항목이 털렸더라. 게다가 계열사 간에 공유한 정보까지 유출됐다고 뜨더라. 아내의 개인정보도 유출됐다. 금융회사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수집했고, 광범위하게 유출됐다는 데 변호사로서 큰 충격을 받았다.”

    ▼ 예전에도 본인 정보가 유출된 적이 있나.

    “2011년 7월 SK커뮤니케이션즈가 운영하는 네이트·싸이월드 회원 3500만 명의 개인정보 유출사고 때도 내 정보가 유출됐다. 당시 유출 범위를 직접 확인해보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사이트 회원 가입 관련 정보였을 거라 추정한다.”

    ▼ 이번 소송을 맡게 된 계기는.

    “그동안 개인정보 유출사건·사고가 여러 번 있었음에도 매번 해당 기업에 대한 제재는 경고나 과태료 부과 등으로 물렁했고, 정보 유출은 되풀이돼왔다. 그런 상황에서 사상 최다 규모의 유출사고가 터지자 국민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공분(公憤) 상태에 빠졌다. 그들을 위해 누군가가 구원투수로 나서야 할 판인데, 때마침 예전 하나로텔레콤 승소 경험을 누렸던 집단소송 카페 회원들이 이번 소송도 맡아달라고 많이 권유했다. 패소해도 좋으니 카드사들을 혼내주라는 의견이 많았다.”

    ▼ 이 변호사를 찾는 소송 신청 인원은.

    “2월 6일 현재 소송비용 입금 기준으로 보면 3만9000여 명에 달한다. 곧 4만 명을 돌파한다. 1월 18일 카페에 카드 3사에 대한 집단소송 공지를 했는데 카드사들을 통합해 1인당 소송비용 9900원에 원고인단을 모집 중이다. 첫날에 100명, 이튿날엔 600명, 이후론 하루에만 6000명 이상이 모여든다.”

    ▼ 가장 많은 공동소송인을 확보했는데, 이런 반응을 예상했나.

    “그렇지 않다. 1만 명을 넘어서는 걸 보곤 매우 놀랐다. 내가 느끼는 것보다 상황이 훨씬 심각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카드런 사태와 2차 피해에 대한 우려가 점점 커지는 걸 보면서 사회적 신뢰관계가 완전히 깨졌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나도 원고인단에 포함”

    ▼ 아직도 문의하는 사람이 많나.

    “빗발친다고 해야 하나? 워낙 많은 사람이 문의해와 다른 업무가 마비될 정도다. 그래서 문의전화에만 응대하는 임시직원 5명을 별도로 고용했다. 원래 우리 사무실 직원은 나와 내가 고용한 변호사 2명, 사무직원 2명인데 식구가 배로 늘어난 셈이다.”

    ▼ 주로 어떤 점을 문의하나.

    “언제까지 소송 참여 신청을 받나? 승소 가능성은 있나? 승소하면 얼마쯤 피해배상을 받을 수 있나? 신청한 게 제대로 접수됐나? 등 매우 다양하다.”

    ▼ 이 변호사도 소송 원고로 들어가나.

    “물론이다. 나도 원고인단에 포함된다.”

    ▼ 다른 변호사와 법무법인들도 소송 참여자를 모집 중이다. 이번 사고와 관련한 집단소송 전체 규모를 어느 정도로 예상하나.

    “대략 12만~13만 명이 되지 않을까 추산한다. 피해 규모는 사상 최대지만, 실제 소송 참여자는 예전 집단소송보다는 좀 적을 것으로 예상한다. 집단소송에선 승소보다 패소한 사례가 더 많다는 일종의 ‘학습효과’로 인해 소송 참여를 꺼리는 이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 소송의 성격은.

    “기존 집단소송과 마찬가지로 금전적 피해에 대한 배상이 아니라 정신적 피해에 대한 위자료를 청구하는 것이다. 자신들의 수익 극대화를 위해 고객 개인정보를 마구잡이로 이용하다 관리 소홀로 유출해 수많은 국민을 집단적 공포감에 젖게 한 정신적 고통에 대해 배상하라는 것이다.”

    ▼ 위자료 액수는.

    “기존 법원 판결에선 피해배상액이 대개 1인당 20만 원선이었다. 이번 소송에선 손해배상청구액을 30만 원선으로 할까 한다. 더 많은 액수를 청구하는 법무법인과 변호사도 있지만, 그건 의뢰인 보호 차원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패소하면 되레 의뢰인의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기획소송이라고? 분노가 지갑을 여는 것”

    1월 21일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내 롯데카드센터에서 카드 재발급 및 해지를 하려고 기다리는 시민들.

    ▼ 하나로텔레콤 소송 땐 어땠나.

    “좀 힘든 상황이었다. 그 이전까지 개인정보 유출사고 관련 집단소송에서 계속 원고 패소 판결이 내려져서다. 변호인은 의뢰인에게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승소라는 결과로 답례해야 한다. 그만큼 정신적 부담이 크고 책임감에 시달린다. 승소하지 못하면 이른바 ‘기획소송(변호사가 먼저 소송을 기획해 원고가 될 피해자를 모아서 내는 소송)’을 하는 변호사쯤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일반 소송에선 소송 당사자와 사건 범위가 한정적이므로 변호인이 신경 쓸 일이 제한적이지만, 집단소송에선 무조건 상대방에게 단 1%의 부주의라도 있었는지를 찾아내는 게 관건이다. 그만큼 변호인 처지에선 손이 많이 간다. 결국 집단소송의 승패는 변호인의 고심과 집념에 달렸다.”

    ‘1%의 부주의’를 찾아라

    ▼ 소송이 진행되면 어떤 부분에 주의를 기울이나.

    “하나로텔레콤 소송 당시 수많은 관련 자료와 외국 사례를 뒤지고,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경우의 수를 놓고 숙고했다. 이번 소송에서도 마찬가지다. 바둑 둘 때 몇 수를 미리 내다봐야 하듯, 상대방이 이 단계에선 어떻게 나올지 예측해 몇 단계씩 면밀히 시뮬레이션해보면서 매일같이 미세한 틈바구니를 세심히 살필 것이다. 그러다보면 상대방의 몇몇 허점이 드러나게 돼 있다.

    하나로텔레콤 소송 때도 개인정보 제공에 대한 고객 동의를 제대로 받지 않은 경우를 밝혀냈다. 소송 전략상 소상히 말하긴 힘들지만, 이번에도 개인정보 수집 당시 어떤 절차를 거쳐 고객 동의를 받았는지, 동의과정이 부실하지는 않았는지, 동의 범위를 넘어선 부분은 없는지 등도 쟁점이 될 것이다. 특히 이번엔 정보 수집 범위가 예전 사례와 달리 훨씬 광범위한데다, 유출 대상이 된 정보를 여러 금융회사가 공유했고, 그 공유 정보들까지 유출됐기 때문에 양파껍질처럼 까다보면 언제든 상대방의 부당행위가 새로 드러날 수 있다. 물론 그 출처는 카드사들에 요구할 그들의 방대한 내부 자료다.”

    “친기업적 성향 달라질 것”

    ▼ 하지만 금전적 피해, 즉 2차적 피해가 아직껏 실제로 발생하지 않은 이상 승소 확률이 낮은 것 아닌가. 피해를 입증해야 하는 책임은 고객에게 있다.

    “개인정보 유출 자체만 놓고 본다면 승소 확률이 50%를 웃돌 것으로 생각한다. 해볼 만하다. 특히 전체 소송 참여자의 10%가량은 10년 전 카드를 해지했는데도 개인정보가 남아 있다 유출됐다거나, 금융지주회사 소속 카드사가 아니어서 은행정보를 공유할 수 없는 롯데카드에 가입하지 않았는데도 정보가 유출됐다고 하는 이들이다. 이 경우엔 승소 확률이 80~ 90%로 높아질 수 있다.”

    ▼ 패소할 경우 카드사로선 엄청난 피해배상액을 물어야 할 텐데, 재판과정에서 해당 기업의 파산 등 사회경제적 요인에 대한 고려가 작용하지 않겠나.

    “맞는 얘기다. 우리나라 상황에서 보수적인 법원은 친기업적 성향을 띤다. 정신적 피해가 분명히 존재함에도 그에 대한 배상책임을 인정하면 기업은 막대한 타격을 입는다. 실제로 그런 정책적 고려가 판결에 영향을 끼친다. 그렇더라도 법률상으론 전혀 문제될 게 없다. 민법은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 배상책임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걸 적용하느냐 마느냐는 법원의 판단이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상황이 좀 다르다. 사안이 중대한데다, 그간 기업들의 반복된 개인정보 유출에도 금융당국이 솜방망이 징계에만 그쳐 정보관리 소홀의 방조자 노릇을 해왔다는 비판적 정서가 팽배해 법원도 더는 친기업적 판결을 하기 힘들 거라 본다.”

    ▼ 보이스피싱이나 스미싱 같은 2차 피해를 걱정하는 이가 많다. 실제 2차 피해 발생 가능성이 높다고 보나.

    “유출사고 이후 여느 때보다 스팸 문자메시지가 갑자기 많아졌다고 주장하는 의뢰인도 있긴 하지만, 아직 드러난 피해는 없다. 만일 실제로 2차 피해가 발생한다면 그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 언제 소송에 돌입하나.

    “원고인단 파일을 한창 정리 중인데, 2월 중순 법원에 소장을 제출할 예정이다. 재판이 진행되면 검찰 자료와 카드사가 보유한 자료를 받아내서 검토할 것이다. 받아야 할 자료도 많고 소송 참여자가 많으므로 일반 소송보다는 훨씬 오래 걸릴 것이다.”

    ▼ 1심 판결은 언제 나올 것 같나.

    “내년은 돼야 할 걸로 본다. 집단소송을 맡는 재판부마다 1심 판결이 다를 수 있다.”

    ▼ 3심까지 갈 건가.

    “그렇다. 그건 카드사도 마찬가지다. 상호 간 타협의 여지가 없으니 거의 치킨게임(chicken game) 수준이라 보면 된다. 어떤 판결이 나와도 한쪽은 불복할 게 빤하니 결국 대법원까지 올라간다. 최종심까지는 몇 년 걸릴 것이다.”

    ▼ 여러 법무법인과 변호사가 저마다 각기 다른 소송비용을 내걸고 집단소송에 나서면서 시류에 영합해 ‘영업’을 하려는 기획소송 아니냐는 일각의 부정적 시선도 없지 않다.

    “네이트·싸이월드 소송 때 내가 맡은 의뢰인은 단 264명뿐이었다. 하나로텔레콤 소송 때도 내가 직접 대리한 원고인단은 1000여 명에 그쳤다. 그동안 수많은 집단소송이 있어왔기에 승소하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아는 이도 이젠 많아졌다. 통상 일반 소송의 경우 법무법인과 변호사들이 사건을 수임하려고 포털사이트에 유료광고를 많이 하는데, 이번 경우는 다르다. 광고를 한 것도 아닌데, 관심 가진 사람들이 기존에 개설된 집단소송 카페로 스스로 찾아들어와 소송을 신청하는 것이다. 피해배상금을 받아내려는 이들보다는 그동안 쌓인 카드사와 정부에 대한 불신과 항의의 표시로 소송을 신청한 이가 더 많다. 그게 아니라면 그들이 수많은 변호사 중 ‘이흥엽’이란 이름 석 자를 어찌 알겠나. 국민적 공분, 즉 분노가 지갑을 열게 하는 것이다. 기획소송이라고? 국민이 바보인가.”

    승소 땐 성공보수 기부

    이 변호사는 성균관대 법학과(85학번)를 졸업했다. 원래 연세대 원주의대(79학번)에 입학했지만, “의학 공부가 쉽지 않아” 예과 1년만 마치고 군에 입대했다고 한다. 제대 후 다시 대학입시를 거쳐 법학도가 됐고, 이후 사법시험(42회)에 합격한 뒤 바로 변호사 개업을 했다. 그동안 이혼·상속 관련 소송을 많이 맡아왔다.

    ▼ 승소할 경우 성공보수 전액을 본인과 원고인단 이름으로 불우이웃을 돕는 데 기부하겠다고 집단소송 카페에 공표했는데….

    “성공보수를 내가 갖지 않는다고 해서 먹고사는 데 지장은 없다. 기획소송이란 세간의 오해를 불식하기 위해서라도 꼭 실천할 것이다.”

    사상 초유의 손해배상청구소송 전초전은 이미 시작됐다. 전쟁의 승패는 어떻게 갈릴까. 이래저래 ‘솔로몬의 지혜’를 발휘해야만 하는 재판부의 고민이 만만치 않을 듯싶다.



    인터뷰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