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호

성폭행 살해女 아닌데도 옷 벗겨진 까닭은?

유병언 사건으로 본 ‘시신의 비밀’

  •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

    입력2014-08-20 09: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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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폭행 살해女 아닌데도 옷 벗겨진 까닭은?
    “그는 살아 있을 것이다. 지금쯤 밀항선 타고 웃고 있는 건 아닐까?”

    5억 원이라는 사상 최고의 현상금이 걸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유병언(전 세모그룹 회장) 씨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으나 아직도 의혹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유씨가 시신으로 발견된 때는 6월 12일. 경찰은 실제 사망일은 발견 시점보다 3주가량 앞선 5월 말경으로 본다. 그간 유씨의 시신을 무연고자로 판단해 따로 보관하다가 지문 검사, 유전자 검사 결과 등이 뒤늦게 나오면서 변사체가 유씨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발표한 것이다.

    이를 두고 “유씨가 사망한 것을 믿을 수 없다”면서 의혹을 제기하는 이가 적지 않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이 7월 25일 “시신이 유씨인 것은 100% 확신하지만 사망 원인은 알 수 없다”고 발표하면서 의혹이 오히려 커졌다. 과연 이 시신은 유씨가 맞는 것일까. 왜 과학적인 조사를 거쳤는데도 사인을 알 수 없다고 하는 걸까.

    평소 한국의 미라나 미국 마이애미 법의학센터 등을 취재하면서 법의학과 관련한 기사를 다수 출고한 경험에 비춰본다면 유씨 사건처럼 법의학의 중요성을 일깨운 사례도 드물다. 유씨 사건을 계기로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은 법의학 관련 이야기를 정리해봤다.



    유병언 시신은 백골 아니었다

    유씨 사건과 관련해 궁금증 중 하나는 시신이 단기간 내에 ‘백골’ 형태로 부패할 수 있느냐다. 사진으로 남은 유씨 시신은 해골이 거의 그대로 드러난 상태다. 경찰은 “유씨의 시신이 80% 백골화됐다”고 밝혀 의혹을 부추겼으나 국과수는 “일단 백골이라는 용어 자체가 틀렸다”고 지적했다. 얼굴 등이 많이 훼손된 시신 사진이 인터넷에 돌면서 ‘온몸의 살점이 다 썩어 뼈만 남은 상태’라는 주장도 제기됐으나 국과수는 “실제로 썩은 얼굴과 목, 즉 두개골 언저리에서만 뼈가 드러났고, 나머지 부위는 피부와 근육이 유지됐다”고 발표했다. 백골화라고 말할 수는 없는 상태라는 것이다.

    설령 완전히 백골화가 됐더라도 이상하게만 여길 상황은 아니다. 유씨의 사망 시기는 5월 말 이후 비교적 온도와 습도가 높을 때다. 무덥고 습한 여름철,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으면 사람의 시체는 3~4주 만에 완전히 백골만 남기도 한다. 물론 습하지 않고 양지바른 곳이라면 1년 가까이 시신이 그대로 유지되는 경우도 있지만 “4주에 백골이 드러난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결론내리는 것은 무리라는 의미다.

    사람이 죽으면 생명 현상이 정지해 생체 방어기전이 파괴되며 당연히 육체는 썩기 시작한다. 사람의 몸에는 살아 있을 때도 많은 세균이 존재하는 데다 사망 이후에는 대장에 생리적으로 존재하던 세균과 입이나 코, 귀, 눈과 같이 평소에 습기에 젖어 있는 부위나 기도에 붙어 있던 세균이 번식해 조직 안으로 뚫고 들어간다. 그래서 얼굴 부위와 내장기관이 먼저 손상을 입는 것이 보통이다. 유씨의 시신 역시 얼굴과 대장 부분이 손상되고 팔다리의 피부나 근육은 비교적 온전했다.

    이렇게 부패하기 시작한 시신은 흔히 시취(屍臭)라고 하는 독특한 냄새를 풍기는데, 단백질이 분해되면서 나오는 암모니아, 황화수소 같은 물질이 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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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한영 중앙법의학센터장이 7월 25일 서울 양천구 신월동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서울분원에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사인 감정 결과를 브리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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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300년 썩지 않은 미라

    시신이 손상되는 데는 세균에 의한 부패보다는 포식자(들짐승, 벌레 등)의 영향이 더 크다. 시취를 풍기기 시작한 시신은 벌레의 좋은 먹잇감이다. 날아든 곤충이 직접 시신을 공격하기도 하지만, 성체가 될 때까지 동물의 사체를 파먹으며 영양분을 얻어 성장하는 종류의 곤충(대표적인 것이 파리다)에 사람을 포함한 동물의 사체는 중요한 서식처이자 영양 공급원이다. 성장에 필요한 에너지원을 주위에서 즉시 얻을 수 있어서다. 따라서 다수의 곤충이 애벌레의 먹이가 될 동물의 사체에 직접 알을 낳는데, 알은 빠르게 부화해 구더기로 변하고, 구더기가 시신을 훼손한다. 시신이 들개나 들쥐, 까마귀나 독수리 등 동물의 습격을 받는 경우도 많다.

    물론 부패가 빠르지 않고 냄새도 멀리 퍼지지 않으며 주변에 벌레를 찾아보기 어려운 겨울철에 사망한 시신은 그리 빨리 손상되지 않는다. 땅속에 묻어둔 시신은 벌레 등의 접근을 막을 수 있어 온전히 세균의 힘으로 썩는데, 온대지방의 경우 매장한 시신이 백골이 되는 데 평균 7년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수백, 수천 년 넘게 시신이 썩지 않고 유지되기도 한다. 그러려면 부패가 잘 진행되지 않는 특별한 조건이 필요하다. 사막 지역 등에서 시신이 바싹 말랐거나 동토 지역에서 꽁꽁 언 경우가 대부분이다. 드물게 늪이나 무덤 속에서 외부 공기와 차단돼 썩지 않는 경우도 있다.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확인된 사망 이후 가장 오랫동안 썩지 않은 시신은 5300년(이 정도 기간이 지나면 보통 ‘미라’라고 한다) 전 사망한 ‘아이스맨 외치(Oetzi)’다. 외치는 발견된 지역 명을 따 붙인 이름이다. 이탈리아 북부 알프스 산맥에서 1991년 발견된 이 미라는 현재까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最古) 미라로 남아 있다. 이렇게 긴 시간 썩지 않고 보존된 이유는 추운 기후 덕분에 얼어붙은 시신이 그대로 남았기 때문이다.

    외치는 1991년 9월 등산을 즐기던 부부가 발견했는데, 이들은 외치의 모습을 보고 살인사건이 벌어진 줄 알고 경찰에 신고했다고 한다. 보존 상태가 좋아 이탈리아 사우스티롤 고고학박물관 연구팀은 외치의 골격, 유전자 정보 등을 분석해 살아생전의 모습을 거의 완벽하게 복원했다. 외치의 사인을 분석한 많은 학자가 화살에 맞아 죽었다고 보지만 일부에서는 두부에 강한 충격을 받아 사망했다는 가설을 내놓았다.

    참고로 한국의 시신 중 썩지 않고 가장 오랫동안 남은 것은 2004년 대전 계룡산 인근에서 발견된 ‘학봉장군 미라’다. 사방을 회곽으로 밀봉한 조선 전통 무덤 회곽묘 덕분에 썩지 않고 미라로 남은 것으로 시신의 주인공은 약 600년 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대전 계룡산 자연사박물관에 실물이 전시돼 있다.

    저혈당발작·저체온증說

    유씨의 사망을 놓고 대중의 의혹이 끊이지 않는 건 제대로 된 사망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백 년, 수천 년 전 죽은 미라도 사인을 척척 알아내는데, 죽은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의 시신을 놓고 원인을 알 수 없다고 발표하니 국민 정서상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도 이해가 가는 점이다.

    경찰이 유씨의 사인을 감추고 있다거나 유씨가 이미 국외로 도피했는데 가짜 시신을 내놓았다는 낭설이 이어졌으나 사망 시기와 관계없이 사인 규명은 시신이 얼마나 온전하게 남아 있느냐에 달려 있다. 유씨는 발견 당시부터 시신이 크게 훼손돼 사망 원인을 알기 어려웠다는 것이 국과수의 주장이다.

    유씨가 타살됐다는 증거는 밝혀지지 않았다. 먼저 독극물에 의한 피살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검사 결과 유씨의 시신에선 독극물이 일절 발견되지 않았으며 뼈가 부러지는 등 눈에 띄는 외상도 없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주목되는 것이 당뇨로 인한 저혈당 발작이다. 유씨가 지병으로 당뇨를 앓은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추운 날씨에 비가 온 상황에서 당뇨나 고혈압 등의 지병을 가진 사람은 체온이 35도까지만 떨어져도 쇼크가 올 수 있다. 국과수 역시 이 점을 확인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백승경 국과수 독성화학과장은 “간과 폐의 독극물 검사에서 모두 음성 반응이 나타났다”며 “근육에서는 ‘케톤체(ketone body)’라는 성분에 음성 반응을 보였으며 나머지에는 반응을 아예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케톤체는 당뇨가 있는 사람의 몸이 포도당 대신 지방에서 에너지원을 얻을 때 생기는 물질로 보통 소변에서 검출되며 근육에선 검출되지 않을 확률이 높다.

    또 다른 유력한 추측으로 ‘저체온증 사망’이 꼽힌다. 만취 상태에서 길가에 쓰러졌다가 체온이 떨어져 죽었다는 것. 인근에서 술병이 발견됐다는 점, 양말 등을 벗고 있었다는 점 등이 정황 증거로 제시된다. 저체온이 계속되면 오히려 덥게 느껴져 옷을 벗는 현상이 종종 나타난다. 여성이 저체온증으로 사망한 경우 성폭행 살인으로 오해할 정도로 옷이 벗겨져 잇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한 법의학 전문가는 “시신이 신발과 양말을 벗은 상태에서 상의를 위로 끌어올리는 등 탈의 현상을 보인 것을 고려할 때 저체온 사망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저체온증 사망 추측을 두고는 “저체온증으로 객사한 시체라면 반듯하게 누워 있는 게 아니라 웅크리고 있어야 한다”는 반박이 나온다. 또한 “5월 말에는 저체온증으로 사망하기가 쉽지 않다”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5월 말이라고 하더라도 해가 뜨기 전에는 저체온증으로 사망할 만큼의 기온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점, 밤이슬 등에 젖으면 체온이 더 빨리 떨어질 수 있다는 점 등도 고려해야 한다. 사망할 때 몸 자세가 반듯했던 것도 앞뒤 정황을 모르는 상태에서는 왜 그랬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과학적 수사 기법 강화해야”

    유씨의 사인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 대해 일부 법의학자는 경찰이 현장검증의 중요성을 간과했다며 상당한 아쉬움을 표하기도 한다.

    미국 등 범죄 수사 선진국의 경우 변사체가 발견되면 법의학 전문가가 현장을 먼저 찾아가 의학적 판단이 필요한 근거를 수집하곤 하는데, 한국은 경찰이 수사를 마친 후 시신을 옮겨 부검만 요구하고, 이 결과를 토대로 경찰이 모든 것을 판단하는 것이 관례다. 이번 유씨 사건도 경찰이 현장에 남아 있을지 모를 수많은 법의학적 근거를 놓쳐 사인 규명이 미궁에 빠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강신몽 가톨릭대 법의학교실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국과수에서 유씨의 사인이 불분명하다고 발표한 데 동감하지만 사인은 시체를 부검해서만 밝히는 것이 아니다”라며 “그 사람의 행적이나 현장도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참고로 드라마 ‘CSI’로 유명한 미국의 법의학 체계는 법의관 및 검시관 제도로 크게 나뉘는데 검시관은 사건 현장을 조사하는 것이 주요 업무이고, 법의관은 사건 현장에도 참여하며 수사 과정에서 의학적 조언을 하고 범인 판단 여부에 결정적 의견을 낸다. 또 부검 여부를 판단하고 수행하는 것도 법의관의 권한이다. 따라서 변사체를 발견했을 때 경찰이 법의관이나 검시관을 대동하는 것이 상례다.

    특히 법의관은 드라마에서처럼 현장을 직접 찾아가기도 하고, 경찰에 CCTV 영상을 포함해 다양한 증거물을 역으로 요청하는 등 범죄 수사와 관련해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의 권한을 갖고 있다. 마이애미 주의 경우 법의관은 200건 이상의 부검 경험을 가진 병리학 전문의 중 시험을 통해 선발한다.

    반면 한국에서는 제대로 된 법의관 제도는커녕 범죄 현장을 신속하게 찾아 초동 조사를 할 검시관도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어서 제도 개선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많다.

    이상한 경북대 법의학과 교수는 “미국은 부검 등으로 조사해야 할 시신이 법으로 정해진 터라 범죄 수사 때 다양한 과학적, 의학적 수단을 총동원한다”며 “우리나라도 과학적 법의학 수사 기법을 강화하는 한편 현장 전문가를 양성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 시민은 “경찰이 사망 시기조차 알아내지 못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비난한다. “무언가 감추고 있으니 사망 시기를 발표하지 못하는 게 아니냐”는 견해도 있다. 이런 주장은 미국 드라마 CSI의 영향 탓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전문요원으로 분한 미남 배우들이 시신을 살펴보고 “며칠 전에 죽었다”고 단정하듯 말하는 장면이 자주 방영됐다.

    물론 시신은 말은 못해도 많은 정보를 전해준다. 법의학자들은 백골만 있어도 성별과 나이, 얼굴과 키 등을 알아낼 수 있다. 시신의 부패 정도만 보고도 대략적인 사망 시각을 추정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이런 것도 충분히 검증할 수 있을 만큼 시신 상태가 온전해야 가능하다.

    구더기, 8일 만에 번데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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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16일 미국 마이애미 주 법의학본부에서 한 전문가가 부검 과정에서 나온 표본의 독극물을 분석하고 있다.

    통상 시신의 상태를 맨눈으로 확인해 사망 시점을 역으로 추정할 수 있다. 실온 상태라면 사람은 보통 죽은 지 하루 만에 색깔이 변하고 구더기가 생기기 시작한다. 2∼3일이 지나면 썩기 시작해 물집이 나타나고, 8일이 지나면 구더기가 번데기로 바뀐다. 하지만 이 방법이 그리 정확한 것은 아니다. 기온이 섭씨 20도 이상이라면 시신은 12∼18시간 만에 급격하게 부패하기도 한다. 최근 일부 살인사건에서 범인이 시신에 횟가루를 뿌린 경우가 간혹 있다. 횟가루는 시신 표면의 수분을 흡수해 부패를 막을 수 있다. 사망 시점이 잘못 밝혀지기를 기대한 행위로 보이지만, 부패를 이용한 사망 시각 추정 기술이 부정확한 데다 다른 추정 방법이 많아 큰 의미가 없다는 지적이 우세하다.

    사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신이라면 체온측정법이 자주 쓰인다. 사람은 죽은 후 2시간까지는 체온이 변하지 않지만 이후엔 1시간마다 평균 0.8도씩 떨어진다. 체온이 다 식어버리기 전에 시신을 부검하면 대략적인 사망 시점을 알 수 있다. 물론 체온은 주위 온도나 습도, 바람 등의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법의학자들은 ‘헨스게법’이라는 표준 측정법을 이용하곤 한다. 시신의 직장 온도를 주변 온도, 체중과 비교하는 방법으로 사망 전후 2.8시간 이내로 사망 시점을 유추할 수 있다. 신뢰도는 95%다.

    이밖에 혈액이 가라앉으며 시신 아래쪽에 생기는 시반(검붉은 점)의 크기, 시신이 굳어져가는 사후경직 순서를 봐도 사망 시점을 알 수 있다. 시반은 사망 후 30분부터 발생하기 시작해 2∼3시간 지나면 점 모양으로 나타난다. 10시간이 넘으면 온몸으로 퍼져나간다. 법의학자들은 이런 결과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사망 시점을 추측한다.

    이 같은 전통적 방법 외에도 첨단 기술이 계속 등장한다. 유리체 검사가 그중 하나다. 유리체는 사람의 수정체와 망막 사이의 공간을 채우는 젤리 형태의 조직이다. 사망 이후에는 유리체의 칼륨 농도가 점차로 증가하는데, 이 농도를 측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같은 눈동자 안에서도 위치에 따라 칼륨의 농도가 들쑥날쑥하기에 아직 참고자료로서만 의미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이밖에 근육이 가진 에너지(글리코겐)의 양을 측정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이 방법도 정확도는 매우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씨의 사망 시점이 사인을 밝혀내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전망됐지만 국과수는 앞서 언급했듯 “시신의 손상이 심해 추정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이 말은 수긍이 간다. 유리체 검사를 할 안구는 이미 썩어 있고 장기도 대부분 손상을 입은 상태였다. 사망하고 수주 이상 지난 시신을 냉장 보관했으니 체온검사법 같은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국과수는 다만 발견한 날로부터 약 20일 전 안팎에 사망했을 거라는 막연한 추측만 내놓았다.

    수상한 점 있지만…

    국과수의 공식 발표에도 ‘시신이 정말 유씨의 것이 맞느냐’는 의혹은 여전히 가라앉지 않는다. 7월 25일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시신을 바꿔치기 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면사무소 업무일지와 112 신고기록에는 6월 12일 시신을 발견한 것으로 기록됐지만 매실 밭 인근 주민 5명은 ‘그 이전부터 시신이 있었다’고 밝혔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세월호 사망사고 이전인 4월에 사망한 시신이 아니냐는 일각의 주장도 나왔다.

    다양한 의혹이 불거지면서 “유전자 검사 결과를 믿을 수 없다” “실종된 이복형제의 시신 아니냐”는 등의 낭설도 나돌았다. 사진만을 놓고 유씨 시신의 키가 애초 알려진 것보다 더 큰 것 같다고 지적한 사람도 있었다. 이런저런 의구심이 남아 있긴 하지만 시신 자체를 유씨의 것이 아니라고 보기에는 드러난 과학적 사실이 너무 많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과학적으로는 유씨가 아니라 타인이라고 보는 것은 억지에 가깝다. 유전자 분석 결과 시신이 유씨의 이복형제일 가능성은 사실상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과수는 “어머니로부터 유전되는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를 검사한 결과 다른 어머니의 자식일 확률은 거의 없다”고 밝혔다.

    국과수는 정밀 기계로 측정한 결과 유씨 시신의 키는 159.3㎝가량으로 경찰이 파악한 키와 거의 같으며 치아의 형태나 치과 기록 역시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시신이 유씨의 것이라는 점은 명백하다는 것이다.

    치과 기록에 대해 한 치과 개업의는 “방송 등에 나온 영상을 기준으로 보면 금니로 때운 부분(골드크라운)은 어금니 두개를 묶어 씌운 것으로 과거의 치료법이지만 꽤 오래전에 치료받은 것으로 보여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면서 “치과 치료 기록을 주치의가 미리 제공했다고 들었는데 기록과 시신의 치아 상태가 일치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물론 과학적 증거와 관련해 “시료나 검사 결과 자체가 조작됐다” “국과수조차 정부의 끄나풀이라 모든 발표가 조작됐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의 주장은 음모론에 가까울 뿐 과학적으로는 설득력이 크게 떨어진다. 한 법의학 전문가는 “국과수 이외에도 수많은 법의학 전문가가 활동하며, 이 정도까지 증거를 제시했는데도 믿지 못하는 것은 타당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한 대학 법의학 교수는 “최근 우리나라 법의학자 중 4분의 1이 방송에 등장했을 만큼 국과수 검사 결과에 대해 시민의 의구심이 큰 것 같다”며 “정황상 의구심이 생기는 부분이야 있겠지만 과학적인 조사 결과만큼은 신뢰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돋보기 | 부검은 어떻게 진행되나?

    떼어낸 장기 제자리 넣고 꿰매 유가족 인도


    성폭행 살해女 아닌데도 옷 벗겨진 까닭은?

    1월 18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서울분원 법의조사과 법의관들이 시신 부검 준비를 하고 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거짓을 말하지도 않는다.

    부검(剖檢)이란 말은 한자로는 ‘갈라보고 검사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영어는 조금 다르다. ‘저절로 드러난다’는 뜻인 오톱시(autopsy)는 사체 역시 사람이기에 시신이 정보를 전달해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오톱시는 일반적으로 동물 해부를 뜻하는 주토미(zootomy)와 철저히 구분된다. 필자는 가깝게 지내는 병리학자 앞에서 동물 해부에 대해 ‘오톱시’와 혼동해 사용하다가 크게 혼이 난 경험도 있다.

    칼로 몸을 잘라보는 해부뿐 아니라 시신의 상태를 눈으로 살펴보는 검안, 시신에서 떼어낸 조직이나 체액 등을 검사하는 과정 등을 모두 포함해 ‘부검’이라고 한다.

    부검 순서는 담당 의사마다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지키는 원칙은 있다. 부검 전 시신의 상태를 기록으로 남겨야 하므로 보통 사진을 찍는다. 키와 몸무게를 측정한다. 죽은 지 얼마 안 된 시신은 체온이나 경직된 정도를 확인해 기록해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대부분 냉장 보관하던 시신을 부검하므로 큰 의미가 없어 시행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다음엔 시신의 몸 상태를 고루 살핀다. 특히 신체 내부와 외부가 연결되는 기관, 즉 눈꺼풀 콧구멍 목 귀 성기 등을 상세히 살펴본다. 상처가 있는 곳은 특히 집중해서 보아야 한다. 이후 시신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몸 전체를 고루 살펴보곤 한다.

    그러곤 칼로 시신을 절개한다. 먼저 정중선(신체의 중심선)을 따라 가슴부터 생식기 바로 윗부분까지 절개한 다음, 가슴의 피부와 근육을 벗겨 갈비뼈를 노출한다. 이어 갈비뼈의 연골을 잘라내면 가슴속과 배 속을 한꺼번에 열어 볼 수 있다. 내장기관을 살펴보고 정해진 순서대로 떼어서 무게를 잰 후 늘어놓는다. 다음 순서로 머리를 열어 뇌 안쪽을 살펴본다.

    떼어낸 장기는 차례대로 검사하는데 정황상 사망 원인과 관계가 깊을 것으로 보이는 장기, 예를 들어 심장마비로 사망한 것이 의심된다면 심장을 특히 유의해서 살펴본다. 의사에 따라 의심 가는 장기를 가장 먼저, 혹은 가장 나중에 살펴보기도 한다. 뇌 같은 정밀한 장기는 포르말린으로 고정한 후 나중에 그 분야 전문가 의견을 따로 구하기도 한다. 또 부검 의뢰 기관이 요청하는 경우는 특별검사를 시행하는데, 유전자 검사, 혈액형 검사, 모발 검사, 여성의 질액 채취 검사 등이 이뤄진다.

    부검이 끝나면 뼈와 장기를 최대한 제자리에 돌려놓고, 절개한 부위를 다시 꿰맨 후 깨끗이 닦아 유가족에게 돌려준다. 부검이 진행될 때 마음이 아파 대기실에서 눈물짓는 유가족이 많은 터라 법의학자들은 부검 후 시신을 매만지는 데 많은 공을 들이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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