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밤 잊은 ‘방학 대목’
남자 혼자 대낮 모텔 방 안에 있으려니 묘한 긴장감마저 든다. 통화가 끝나고 20분쯤 지났을까. “딩동, 딩동.” 도어 벨이 두 번 울린다. ‘우편배달부는 벨을 두 번 울린다’던가. 난데없는 잡생각이 떠오르면서 살짝, 가슴이 두근거린다. 왜 안 그렇겠는가. 문을 여니 블루스카이 색상의 원피스 차림 20대 여성이 오도카니 서 있다. ‘페이스펙(얼굴을 뜻하는 페이스(face)와 학점, 학력을 뜻하는 스펙(spec)을 합친 단어)’을 꽤 인정받을 만한 외모. 그녀의 별칭은 ‘세아.’ 24세란다. 실장이 말한 나이보다 세 살쯤 깎은 듯하다. 대학교 3학년. “여름방학이라 ‘알바’ 뛰는 것”이라고 대수롭잖게 말한다. “사극에 어울릴 만한 고전적 미모”라고 슬쩍 치켜세우자, “한복이 잘 어울릴 거라는 소릴 자주 듣는다”고 맞장구친다.
“오빠도 ‘탈의’하시죠?”
올 것이 왔나? 말 끝나기 무섭게 그녀가 훌훌 벗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허걱!
“안마 안 하는 거야?”
“오빤…요즘엔 만나자마자 다 ‘연애’(성매매 여성이 성관계를 일컫는 은어)만 해. 혹시 처음이에요?”
분명 마사지를 가장한 출장 성매매다. 수년간의 노하우와 경력을 지닌 전문 출장안마사들이 고객을 직접 찾아간다는 업소 소개와는 딴판이다. 안 되겠다 싶어 “어제 과음한 탓인지 좀전에 갑자기 배탈이 나는 바람에 몸 컨디션이 안 좋아졌다. 대화나 나누자”니까 그녀의 표정엔 일순간 당혹감과 의심이 교차한다. 그래도 방에 들어서자마자 20만 원을 선불로 받았으니 ‘비자발적’이긴 해도 말벗이 돼줄 수밖엔 없다.
세아의 집은 서울. 부모님과 같이 산단다. 세 살 연상의 직장인 남자친구도 있다고 거리낌 없이 말한다. “결혼 생각? 안 해요. 섹스도 그다지 즐기지 않고요. 남자친구는 제가 알바 하는 걸 전혀 모르죠. 만일 알게 되면 제가 먼저 떠날 거지만.”
그녀는 출장마사지를 시작한 지 한 달가량 됐다고 했다. ‘인기 상한가’란다.
“예약 손님이 많으냐”는 물음에 “엄청! 엄청! 하루 5번 이상. 낮에도 바빠요. 어떨 땐 새벽 6시에도 찾는 손님이 있어요. 주로 강남 일대를 도는데, 오늘 오빠 만나게 된 건 아까 모처럼 인근에서 일(출장 성매매)을 막 마쳐서 가능했죠.”
“업소에 아가씨가 몇 명쯤 돼?”
“몰라요. 실장님과만 전화나 카카오톡으로 연락하니까. 아가씨들끼리 얼굴 마주할 일이 전혀 없죠. 사무실도 따로 없어 단속 걱정도 안 해요.”
하루 5번 이상 ‘출장’
수입이 꽤 많을 듯하다.
“궁금해요? 궁금하면 500원! 호호. 뭐, 거의 매일 돈을 벌긴 하지만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하겠죠? 그냥 사고 싶은 것 사요. 물론 제게도 명품은 있지만, 그런 것 사려고 함부로 돈을 쓰진 않아요. 돈이 적지 않다는 걸 부모님께 쉽게 내보여서도 안 되니까…그래서 보이는 데선 잘 안 쓰죠.”
출장마사지는 특별법 시행 이후 직접 업소를 찾아가 성매매 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남성이 늘면서 호황을 누린다. 이들 업소는 이른바 ‘대포폰’을 장만해 손님에게서 연락이 오면 아가씨를 호출한 뒤 약속 장소로 보내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아가씨가 손님에게 돈을 받으면 업주에게 일부를 보내고, 나머지는 자신이 갖는 구조다. 가령 한 업소에 아가씨가 10명이고, 그들이 하루 두 번씩만 20만 원짜리 출장을 뛴다 해도 한 달이면 최대 1억2000만 원의 매출을 올리는 셈이다.
“매번 낯선 남자를 만나야 하는 게 무섭지 않으냐”고 물었다. “전혀. 운전기사랑 같이 다니는데요, 뭘. 어쩌면 남자들이 단속 때문에 더 겁날 걸요?”
출장마사지는 2003~2004년 발생한 희대의 범죄인 ‘유영철 연쇄살인사건’을 계기로 한때 종적을 감췄다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케이스다. 유영철 사건이 특히 세간의 눈길을 끈 이유는 21명의 희생자 중 11명이 출장마사지 등 윤락업에 종사한 여성이라는 점이었다. 당시와 크게 다른 점은 이젠 유영철의 타깃이 됐던 ‘나홀로 출장 여성’을 거의 찾기 힘들다는 것. 요즘 대다수 출장마사지 업소는 성매매 여성을 손님이 지정한 ‘접선’ 장소까지 태워주고, 약정된 시각까지 기다렸다가 나오지 않을 경우 철저히 확인하는 등 관리 작업을 하는 남성을 따라붙인다. 운전기사 겸 일종의 보디가드인 셈이다.
대화를 나누는 도중 세아의 휴대전화가 연신 울려댄다. 벌써 4번째다. 한 번은 안 받았는데, 세 번은 카톡을 한다. 다음 출장이 잡힌 게다. ‘불금(불타는 금요일)’의 밤을 앞둔 그녀로선 예약이 급선무인 듯싶었다. 40분 지났다며 그냥 자리를 뜨려고 한다. 홈페이지에 안내한 서비스 내용과 약정 시간은 죄다 엉터리 아닌가.
“오빠, 그건 다른 가게도 마찬가지예요. 연애 끝나면 다 가요. 누가 90분 다 채워? 예약이 자꾸 밀리는데…. 예약 없을 땐 가끔 같이 놀기도 하지만….”
“다음에 또 만나려면 업소로 연락하면 돼?”
“네, 가게로 연락하세요. 세아 찾으면 돼요. 잘해드릴게. 다음엔 얘기보단 몸 비비면서 ‘시간 연장’도 해봐요.”
통통 튄다, 대답이. 성매매를 하면서도 그늘진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활기발랄. 성을 사고판다는 데 대한 거리낌조차 없다.
“쉬세요.” 그녀가 갔다. 잠시 후 혼자 모텔 입구를 나서는데, 한낮의 햇빛에 눈이 부시다. 어릴 적 중·고교 영화감상 수업이었던 ‘문화교실’ 행사 때 극장의 어둠 속에서 영화를 보고 갓 나와 갑자기 동공이 얼얼했던 그 가물가물한 경험처럼 말이다.
“어떤 손님이 가장 변태 같아?” 방을 나서던 세아의 마지막 대답은 이랬다. “호호, 오빠 같은 사람. 시시콜콜 캐묻는 남자.”
‘이색 지대’에서 빠져나오니 머릿속이 아득해진다. 34℃를 기록한 이날 서울의 수은주 탓만은 아닐 것이다. 무한 속도전을 벌이는 IT 세상에선 성매매마저 이렇듯 스피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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