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호

“오빠, 빨리 ‘연애’ 안 해? 예약 잔뜩 밀렸는데…”

3人3色 성매매 여성 밀착취재

  • 특별취재팀

    입력2014-08-20 15: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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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빠, 빨리 ‘연애’ 안 해? 예약 잔뜩 밀렸는데…”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 포화에 이지러진 도룬시(市)의 가을 하늘을 생각게 한다.’

    1940년 7월 발표한 김광균(1914~1993)의 시 ‘추일서정(秋日抒情)’ 도입부다. 1939년 독일의 폴란드 침공에 따른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이라는 역사적 비극에 일제강점기 치하에서 억압받던 우리 민족의 현실이 오버랩되는 가운데, 정처 없이 떠도는 낙엽은 문명의 황량함에 대한 묘사의 극치(極致)를 보여준다.

    그런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 같은 부질없는 종이 쪼가리들이 대한민국에도 흩날린다, 전국 방방곡곡에. 각종 불법·퇴폐업소 전단지다. 때 이르게 시들어버린 낙엽처럼 포도(鋪道)에 한가득 내려앉고 주택가 주차 차량 앞유리에도 지천으로 꽂힌다. 그것도 스산한 바람 몰아치는 만추(晩秋) 아닌 한여름에.

    ‘지폐’엔 ‘위인(偉人)’ 대신 화끈하게 몸을 드러낸 반라(半裸)의 ‘여인’ 사진들이 떡하니 자리를 차지했다. 자극적인 유혹성 문구에 저마다 배시시 웃는 표정. 유쾌할 일 흔치 않은 세상에 이 ‘영혼 없는 미소’는 왠지 모를 서글픔을 한층 더한다.

    잘못 꿰인 단추



    단언컨대, 대한민국은 ‘성매매 공화국’이다. 부정할 이, 있을까. 성(性)을 열망하는 건 인간 본성 중 하나. 한데 그 정도가 과하면 자신과 가족, 주변인, 그들을 둘러싼 환경마저 그르친다. 줄줄이 늘어선 옷 단추들을 잘못 꿰었을 때의 낭패감과도 비슷하달까. 그것은 곧 질서의 흐트러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옷에만 단추가 있을까. 사회 곳곳에도 잘못 꿰인 단추는 적지 않다. 2004년 9월 23일 성매매 근절이라는 태생적 당위성을 지니고 전격 발효된 ‘성매매특별법(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과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이하 특별법)’은 왜 아직껏 ‘전범(典範)’이 되지 못한 채 잘못 꿰인 단추처럼 제자리를 찾지 못할까.

    ‘신동아’ 취재팀은 특별법 시행 10년을 맞아 성매매 문제와 관련한 우리 사회의 민낯과 속살을 들여다보기 위해 7월 31일부터 여드레간 현장 실태 취재에 나섰다. 비록 특별법 시행 이후의 사회 이면을 속속들이 보여주진 못하더라도, 법 집행 사각지대에서 시시각각 목격되는 편린들을 주워 담는 작업을 통해 이젠 둘째, 셋째 단추까지 잘못 꿰어가는 우리에게 자성(自省)이 되지 않을까 해서다.

    취재팀의 발품은 어쩌면 당신이 이미 겪은 경험이거나 추체험(追體驗·다른 사람의 체험을 자기 체험처럼 느끼거나 이전 체험을 다시 겪는 것처럼 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 사실 우리는 대개 비슷한 삶을 살아가지 않던가.

    # 풍경 하나

    8월 1일 15:00

    서울 서대문구 모텔

    “오빠, 빨리 ‘연애’ 안 해? 예약 잔뜩 밀렸는데…”

    무수히 뿌려지는 불법·퇴폐업소 전단지.

    출장마사지 여성과 접촉하기 위해 야릇한 문구가 담긴 홍보 명함을 애써 주워들 필요는 없었다. 세계 으뜸의 정보기술(IT) 강국에선 언제 어디서든 스마트폰 하나면 족하다. 7월 31일부터 이틀 동안 출장마사지 관련 정보를 사전에 인터넷으로 집중 검색했다.

    몇몇 업소를 알아봤지만, 서비스 내용은 어슷비슷했다. 이를테면, ‘A코스(60분) 15만 원, B코스(90분) 20만 원, C코스(120분), 35만 원’ 하는 식이다. 하지만 상당수 출장마사지 업소는 새벽 늦게까지 영업한 뒤 다음 날 저녁부터 영업을 재개하기 때문에 이른 오후 시간엔 좀처럼 전화를 받지 않는다.

    대실(貸室)료를 지불하고 서울 서대문구 한 모텔에 방을 잡은 뒤 24시간 영업한다는 모 업소에 전화를 걸었다. ‘○○출장안마.’ 상호는 있지만, 소재지는 알 길 없다. 업소 모바일 홈페이지의 ‘마사지 코스 안내’ 코너엔 A코스(50분) 15만 원, B코스(90분) 20만 원, C코스(150분) 35만 원이라고 소개돼 있다.

    연락처라곤 문자메시지 상담 코너와 휴대전화 번호 한 개뿐. 서너 번 신호음이 울리더니 여성이 전화를 받는다. 목소리로는 30대 초반? 통상 ‘실장’이라 불리는 업소 관계자일 터다. 친절한 어조로 응대하며 ‘고객’의 질문에 답한다.

    “A코스는 뭐고, B, C코스의 차이는 뭐죠?”

    “A는 ‘대딸’(여성이 대신해주는 남성의 자위행위) 포함, B는 ‘원 샷’(성관계 한 번), C는 ‘투 샷’(성관계 두 번)이에요. B코스를 많이들 찾으세요.”

    B코스로 선택했다. “20대 예쁜이로 보내달라”는 말을 덧붙이자 “스물일곱 살 ‘아가씨’가 갈 테니, 간단히 샤워하고 20~30분만 기다리라”고 했다.

    낮밤 잊은 ‘방학 대목’

    남자 혼자 대낮 모텔 방 안에 있으려니 묘한 긴장감마저 든다. 통화가 끝나고 20분쯤 지났을까. “딩동, 딩동.” 도어 벨이 두 번 울린다. ‘우편배달부는 벨을 두 번 울린다’던가. 난데없는 잡생각이 떠오르면서 살짝, 가슴이 두근거린다. 왜 안 그렇겠는가. 문을 여니 블루스카이 색상의 원피스 차림 20대 여성이 오도카니 서 있다. ‘페이스펙(얼굴을 뜻하는 페이스(face)와 학점, 학력을 뜻하는 스펙(spec)을 합친 단어)’을 꽤 인정받을 만한 외모. 그녀의 별칭은 ‘세아.’ 24세란다. 실장이 말한 나이보다 세 살쯤 깎은 듯하다. 대학교 3학년. “여름방학이라 ‘알바’ 뛰는 것”이라고 대수롭잖게 말한다. “사극에 어울릴 만한 고전적 미모”라고 슬쩍 치켜세우자, “한복이 잘 어울릴 거라는 소릴 자주 듣는다”고 맞장구친다.

    “오빠도 ‘탈의’하시죠?”

    올 것이 왔나? 말 끝나기 무섭게 그녀가 훌훌 벗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허걱!

    “안마 안 하는 거야?”

    “오빤…요즘엔 만나자마자 다 ‘연애’(성매매 여성이 성관계를 일컫는 은어)만 해. 혹시 처음이에요?”

    분명 마사지를 가장한 출장 성매매다. 수년간의 노하우와 경력을 지닌 전문 출장안마사들이 고객을 직접 찾아간다는 업소 소개와는 딴판이다. 안 되겠다 싶어 “어제 과음한 탓인지 좀전에 갑자기 배탈이 나는 바람에 몸 컨디션이 안 좋아졌다. 대화나 나누자”니까 그녀의 표정엔 일순간 당혹감과 의심이 교차한다. 그래도 방에 들어서자마자 20만 원을 선불로 받았으니 ‘비자발적’이긴 해도 말벗이 돼줄 수밖엔 없다.

    세아의 집은 서울. 부모님과 같이 산단다. 세 살 연상의 직장인 남자친구도 있다고 거리낌 없이 말한다. “결혼 생각? 안 해요. 섹스도 그다지 즐기지 않고요. 남자친구는 제가 알바 하는 걸 전혀 모르죠. 만일 알게 되면 제가 먼저 떠날 거지만.”

    그녀는 출장마사지를 시작한 지 한 달가량 됐다고 했다. ‘인기 상한가’란다.

    “예약 손님이 많으냐”는 물음에 “엄청! 엄청! 하루 5번 이상. 낮에도 바빠요. 어떨 땐 새벽 6시에도 찾는 손님이 있어요. 주로 강남 일대를 도는데, 오늘 오빠 만나게 된 건 아까 모처럼 인근에서 일(출장 성매매)을 막 마쳐서 가능했죠.”

    “업소에 아가씨가 몇 명쯤 돼?”

    “몰라요. 실장님과만 전화나 카카오톡으로 연락하니까. 아가씨들끼리 얼굴 마주할 일이 전혀 없죠. 사무실도 따로 없어 단속 걱정도 안 해요.”

    하루 5번 이상 ‘출장’

    수입이 꽤 많을 듯하다.

    “궁금해요? 궁금하면 500원! 호호. 뭐, 거의 매일 돈을 벌긴 하지만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하겠죠? 그냥 사고 싶은 것 사요. 물론 제게도 명품은 있지만, 그런 것 사려고 함부로 돈을 쓰진 않아요. 돈이 적지 않다는 걸 부모님께 쉽게 내보여서도 안 되니까…그래서 보이는 데선 잘 안 쓰죠.”

    출장마사지는 특별법 시행 이후 직접 업소를 찾아가 성매매 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남성이 늘면서 호황을 누린다. 이들 업소는 이른바 ‘대포폰’을 장만해 손님에게서 연락이 오면 아가씨를 호출한 뒤 약속 장소로 보내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아가씨가 손님에게 돈을 받으면 업주에게 일부를 보내고, 나머지는 자신이 갖는 구조다. 가령 한 업소에 아가씨가 10명이고, 그들이 하루 두 번씩만 20만 원짜리 출장을 뛴다 해도 한 달이면 최대 1억2000만 원의 매출을 올리는 셈이다.

    “매번 낯선 남자를 만나야 하는 게 무섭지 않으냐”고 물었다. “전혀. 운전기사랑 같이 다니는데요, 뭘. 어쩌면 남자들이 단속 때문에 더 겁날 걸요?”

    출장마사지는 2003~2004년 발생한 희대의 범죄인 ‘유영철 연쇄살인사건’을 계기로 한때 종적을 감췄다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케이스다. 유영철 사건이 특히 세간의 눈길을 끈 이유는 21명의 희생자 중 11명이 출장마사지 등 윤락업에 종사한 여성이라는 점이었다. 당시와 크게 다른 점은 이젠 유영철의 타깃이 됐던 ‘나홀로 출장 여성’을 거의 찾기 힘들다는 것. 요즘 대다수 출장마사지 업소는 성매매 여성을 손님이 지정한 ‘접선’ 장소까지 태워주고, 약정된 시각까지 기다렸다가 나오지 않을 경우 철저히 확인하는 등 관리 작업을 하는 남성을 따라붙인다. 운전기사 겸 일종의 보디가드인 셈이다.

    대화를 나누는 도중 세아의 휴대전화가 연신 울려댄다. 벌써 4번째다. 한 번은 안 받았는데, 세 번은 카톡을 한다. 다음 출장이 잡힌 게다. ‘불금(불타는 금요일)’의 밤을 앞둔 그녀로선 예약이 급선무인 듯싶었다. 40분 지났다며 그냥 자리를 뜨려고 한다. 홈페이지에 안내한 서비스 내용과 약정 시간은 죄다 엉터리 아닌가.

    “오빠, 그건 다른 가게도 마찬가지예요. 연애 끝나면 다 가요. 누가 90분 다 채워? 예약이 자꾸 밀리는데…. 예약 없을 땐 가끔 같이 놀기도 하지만….”

    “다음에 또 만나려면 업소로 연락하면 돼?”

    “네, 가게로 연락하세요. 세아 찾으면 돼요. 잘해드릴게. 다음엔 얘기보단 몸 비비면서 ‘시간 연장’도 해봐요.”

    통통 튄다, 대답이. 성매매를 하면서도 그늘진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활기발랄. 성을 사고판다는 데 대한 거리낌조차 없다.

    “쉬세요.” 그녀가 갔다. 잠시 후 혼자 모텔 입구를 나서는데, 한낮의 햇빛에 눈이 부시다. 어릴 적 중·고교 영화감상 수업이었던 ‘문화교실’ 행사 때 극장의 어둠 속에서 영화를 보고 갓 나와 갑자기 동공이 얼얼했던 그 가물가물한 경험처럼 말이다.

    “어떤 손님이 가장 변태 같아?” 방을 나서던 세아의 마지막 대답은 이랬다. “호호, 오빠 같은 사람. 시시콜콜 캐묻는 남자.”

    ‘이색 지대’에서 빠져나오니 머릿속이 아득해진다. 34℃를 기록한 이날 서울의 수은주 탓만은 아닐 것이다. 무한 속도전을 벌이는 IT 세상에선 성매매마저 이렇듯 스피디하다.

    # 풍경 둘

    8월 6일 14:30

    서울 마포구 전화방

    비가 내린다, 추적추적. 하늘엔 구름이 낮게 드리웠다. 대기는 습한 기운으로 가득하다. 서울 마포구의 한 전화방. 각종 유흥업소가 빼곡히 늘어선 왕복 8차로 대로변의 번잡한 상가건물 2층을 향해 계단을 오른다. 특별한 상호는 없다. 그냥 ‘성인PC 컴퓨터 전화방.’ 업소 안으로 들어서자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카운터 남자 직원이 안내한다. “동영상만 보는 건 시간당 6000원, 전화 대화까지 겸하면 1만5000원요.” “전화 제대로 오느냐”고 묻자 힐난조의 답변이 돌아온다. “오니까 (손님들이) 찾아오죠.”

    대관절 뭔 소리? 이미 사흘 전 새벽 1시에 한 차례 들렀던 곳. 그땐 그 직원이 그랬다. “지금은 너무 늦은 시각이라 전화 오는 여자들 거의 없을 걸요.”

    취재팀에겐 이번이 2차 시도다. 20개 남짓한 방 중 문 열린 곳은 고작 두어 개. 성업 중인 게다. 1만5000원을 지불한 뒤 19번 방으로 들어갔다. 방문엔 각기 일련번호가 붙어 있다.

    두 평이 채 못 될 것 같은 좁은 공간. 비치된 것이라곤 낡디낡은 데스크톱 컴퓨터 본체와 모니터, 헤드셋, 어정쩡하게 몸을 기대야 하는 의자, 소형 선풍기, 슬리퍼, ‘물 먹는 하마,’ 싼 티 풀풀 풍기는 구형 전화기, 메모지와 볼펜, 두루마리 휴지와 휴지통. 거기에 덤으로 어두컴컴하고 칙칙한 조명. 마치 핏기 서린 1970년대 정육점 분위기와 흡사하다.

    “오빠, 빨리 ‘연애’ 안 해? 예약 잔뜩 밀렸는데…”

    서울 마포구의 한 전화방 내외부.

    “휴가 중인데 심심풀이로…”

    모니터 바탕화면엔 폴더가 두 개 깔려 있다. ‘성인1’ ‘성인2.’ 야동 폴더다. 그중 한 폴더를 열자 22개의 하위 폴더가 주르륵 뜬다. ‘서양 시리즈물’ ‘방송사고편’ ‘스타킹 아줌마’ ‘명작 영화 속 노출 모음’ ‘동물’….

    방 내부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아마도 아날로그적 향수를 좀체 잊지 못하는 30~40대 남성들에겐 어쩌면 이런 살풍경한 모습이 낯설지 않을 터다. 그런데 그 추억 속 전화방, 아직도 건재하다. 오감(五感)이 오로지 전화기로만 쏠린다. 단절에 익숙지 않은 세상이어서 일까. 외부와 단 1시간의 차단에도 왠지 긴장감에 빠져든다.

    “뚜르르르르~뚜르르르르~.”

    “여보세요?”

    들어간 지 30분쯤 됐을까. ‘신호’가 감지되는 통화가 연결됐다. 끈적이는 듯한 목소리. 다짜고짜 본론부터 말한다.

    “‘(조건) 만남’ 하고 싶은데…서대문구 대현동이니 되게 가깝네요. ‘용돈’은 8만 원이면 돼요. 비도 오는데 신나게 ‘연애’ 한번 하면 좋잖아요?”

    자신을 48세 주부라고 소개한 여성. 이름도 성도 알 길 없다. 전화방은 그저 익명의 공간일 뿐. 제안에 동의하자 그녀는 즉각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전화방에선 번호를 먼저 공개하는 사람이 ‘약자’다. 안 걸면 그뿐인 일방적 관계여서다. 먼저 달라고 하자 가르쳐준 그녀의 번호는 ‘010-5XXX-XXXX.’ 옷차림새를 말해주니 30분 후 지하철 신촌역 3번 출구 앞에서 만나잔다.

    약속 시각. 자잘한 호피 무늬 원피스에 비슷한 톤의 양산 겸 우산을 든 중년 여성이 손짓을 한다. 150cm를 갓 넘을 듯한 키, 상체와 뱃살이 도드라진 몸매까지 전형적인 ‘아줌마’의 모습이다. ‘조건 만남’을 즐기는 남성들은 이런 스타일을 흔히‘폭탄’ 내지 ‘오크족’(영국 작가 톨킨의 판타지 소설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추하게 생긴 생명체)이라는 속어로 일컫는다.

    인근 모텔까지 함께 걸으면서 “어떻게 전화하게 됐느냐”고 묻자, “휴가 중인데, 마땅히 할 일이 없어 심심풀이로 한 것”이라고 답했다. 그녀는 모텔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먼저 씻겠다면서 원피스 지퍼를 내려달라고 했다. 급히 만류하면서 취재 중임을 밝히자 그녀는 무척 당황하면서도 “나름의 사정 때문에 나온 것”이라며 “오래 얘기할 수는 없다”고 했다.

    “저도 일하는 엄마예요. 애는 둘. 중학생, 고등학생. 근데 가끔 남자 몸이 그리워 만나고픈 생각에 전화방을 통해 접속하곤 해요. 보통은 낮엔 일해야 하고 밤엔 집에 들어가면 파김치가 되니까. 오늘은 휴가라서 타이밍이 딱 맞아떨어졌다 싶었는데….”

    실망하는 눈초리. 남편에 대해 묻자 말꼬리를 흐린다. “그냥 사정이 있으니 이런다고만 생각하세요.” 자신이 일하는 곳의 직원도 죄다 여성뿐이라 남자들과 직장에서 접촉할 기회도 거의 없단다. “이 바닥 용어로 ‘많이 굶은’ 것 아니냐”고 묻자, “그건…사실이죠. 그렇다고 매번 남자를 만나는 건 아녜요. 하지만 이왕 만날 거면 즐기면서 돈까지 벌면 더 좋잖아요”라고 답한다.

    남자를 만날 성공 확률이 높지 않은 건 아니냐고 농을 건네자 화난 듯한 답변이 돌아왔다, 즉각적으로. “그까짓 거, 못할 건 뭐 있어요? 하지만 애들도 있고 하니 쉽게 하긴 힘든 거지.”

    “돈보다 느낌이 먼저”

    그녀를 포함해 이날 통화가 연결된 4명은 모두 기혼여성. 그중 2명이 ‘용돈’만 주면 나오겠다는 ‘조건 만남’을 노골적으로 원했다. 전라도 사투리 억양의 또 다른 한 여성은 숫제 반말이었다.

    “선풍기 바람 쐬다 무료해서 전화해봤어. 여긴 서초구 방배동이야. 나이? 41세 주부. 애들? 둘인데, 방학이라 다 놀러갔어. 장학생이라서 학원엔 안 보내. 남편? 일하지 뭐하겠어? 그러지 말고 좀 재미난 얘기해봐. 어떤 얘기? 있잖아. 여자 사귀어본 얘기. 누굴 만나 어땠는지…그런 거 있잖아. 나도 전화방 통해 남자 몇 번 만나봤는데, 좋더라. 근데 요즘은 직접 만나는 게 귀찮아. 얘기만 하는 게 더 좋아.”

    확실히 전화방은 경찰 단속을 피해 1대1의 은밀한 성매매를 연결하는 고리이자 창구임에 틀림없다. 색다른 스릴과 성적 판타지, 돈벌이 유혹을 쉽사리 떨치기 힘든 일탈의 공간.

    전화방 문을 나서는데, 무려 20여 분이나 전화를 끊지 않던 첫 번째 통화 여성(39세)의 말이 떠올랐다.

    “‘낮술 한잔 할까요’가 대체 뭐예요? 그렇게 무례하게 술집 여자 취급하면 안 돼요. 여기서 전화 주고받는 이들 중에 사연 없는 사람 하나도 없어요. 그러니 매너를 지켜야죠. 돈보단 느낌이 먼저예요. 아시겠어요?”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아직도 의문이다. 그렇게 ‘도덕 선생님’ 같던 그 첫 번째 여성은 왜 굳이 전화방에 접속해 설교하듯 ‘입바른 소리’를 했을까. 진심 어린 조언이었을까, 전화방과 결탁한 ‘알바’의 시간 갉아먹기였을까.

    # 풍경 셋

    8월 5일 18:00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미아리 집창촌

    “오빠, 빨리 ‘연애’ 안 해? 예약 잔뜩 밀렸는데…”

    미아리 집창촌의 ‘아가씨’. 월수입이 성매매특별법 시행 전의 4분의 1로 줄었다고 했다.

    담벼락 곳곳에 ‘24시간 청소년 출입금지구역’ 팻말이 걸린 곳. 외부 시선을 차단하려 입구를 반쯤 가린 세칭 ‘미아리 텍사스’의 장막을 들춘다. ‘신동아’ 2004년 11월호 ‘9·23 성매매특별법 폭격 이후’ 제하의 특집 취재를 위해 미아리·영등포 집창촌 여성 현장 인터뷰를 한 지 꼭10년 만이다. 얼마나 어떻게 달라졌을까.

    거미줄처럼 이어진 미로 같은 좁은 골목길은 여전하다. 하지만 특별법 시행 직전 350여 개, 직후 170여 개소에 달하던 성매매 업소 수는 90여 개로 확 줄었다. 한때 1000명을 웃돌던 ‘아가씨’도 이젠 한 업소에 10명이 있다 치면 고정적으로 일하는 이는 4명가량에 불과하다. 그만큼 들고나는 인원이 많다. 잠깐 일하곤 나가거나 한참 만에 다시 들어오거나. 예전엔 이곳에서 숙식하는 아가씨가 대다수였지만, 요즘엔 80%가량이 출퇴근한다. 연령대도 30대 초반이 대다수이고, 20대는 찾아보기 힘들다.

    “2002년 12월부터 (성매매) 일을 했어요. 계속 이곳에만 있다 특별법이 시행되면서 2005년 여름까진 노래방, 안마시술소, 룸살롱 등을 전전했죠. 당시 미성년자, 기혼자, 기소중지자들 다 빠져나갔어요. 여기로 돌아오기 전까진 북창동 가게에서 잠깐 일했고요.”

    집창촌 한 켠의 건물 지하에 자리한 ‘자율정화위원회’ 사무실에서 만난 ‘방울이’(35)는 전남 영광 출신.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곤 곧장 서울로 와서 성매매를 해왔다. 아직 미혼. 7명의 업소 아가씨 중 딱 중간인 중고참이다. 집창촌 최고참은 50대라고.

    “돈 때문에 시작했죠. 마땅히 할 만한 일도 없었고. 홀어머니 밑에서 외동딸로 컸는데 엄마가 많이 편찮으세요. 잘못 넘어져 뇌수술을 6번이나 받았는데, 지금은 답십리의 요양병원에 입원해 계세요.”

    그녀가 하루 상대하는 손님은 3~4명. 다른 아가씨도 사정은 비슷하다. 통상 30분에 9만~10만 원을 받는데, 지난해 10만~11만 원까지 가격이 올랐다가 손님이 대폭 줄자 가격을 내렸다고 한다. 손님이 너무 없을 땐 8만 원까지 내려 받기도 한다.

    “월 400만~500만 원 벌면 순수익은 250만 원 정도? 어머니 병원비와 간병비로 일단 150만 원쯤 들어요. 게다가 머리 해야지, 화장품 사야지, 담배 사 피워야지, 강아지 사료며 간식도 줘야지…하루 2만 원씩은 무조건 지출해야 해요. 특별법 시행 전엔 월 1100만 원까지도 벌었는데, 이젠 수입이 반에 반으로 준 거죠. 그러니 저축은 엄두도 못 내요.”

    아닌 게 아니라 네이비 색상 민소매 후드티에 같은 색 반바지 차림인 그의 무릎엔 강아지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다. “여기 아가씨들, 강아지나 고양이 많이 키워요. 다들 외로우니까.”

    업소 측과 아가씨 간 수익 분배는 6대 4. 업주에겐 경찰 단속에 대비한 벌금 충당 목적의 비용이 필요한 데다, 아가씨들의 식사와 빨래, 방 청소를 챙기는 ‘낮 이모’, 손님 술상 봐주는 ‘밤 이모’에게도 비용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검사도 찾아온다”

    “단속이 잦아요. 경찰도, 공무원도. 매일 단속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예전엔 성매매 현장을 덮쳤는데 요즘은 거의 식품위생법 위반으로 단속하죠.”

    업소 영업시간은 평일은 밤 9시부터 오전 7시, 주말은 밤 9시부터 오전 8시다. “일 끝나면 화장 지우고 아는 언니들이랑 가게 식구랑 한잔 해요. 돈 많이 벌 땐 호스트바도 가고 술도 좋은 것 마셨는데, 지금은 언감생심이죠.”

    집창촌을 찾는 남성은 여전히 다양하다.

    “30대 중후반이 가장 많고, 직업은 무한대. 심지어 40대 검사가 온 것도 봤어요. 이곳 아가씨한테 홀딱 빠져 돈을 대준 모양인데, 아가씨가 휴대전화 번호 바꾸고 종적을 감추니 직접 찾으러 왔어요. 만취해 검사증까지 보여주면서 ‘이 업소 신고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의외로 공무원이 많이 오는데, ‘진상’이 특히 많죠. 법을 잘 아니까. 반면 홀로 사는 남성, 친구가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오는 장애인, 노인, 일용직 노동자, 중국집 배달부 등은 되레 아가씨들에게 고마워하죠. 그들이 진상치는 건 한 번도 못 봤어요.”

    미성년과 성년의 구분이 모호한 1994년생, 95년생도 더러 찾아오는데, 그럴 땐 이모들이 신분증 검사를 한단다. 언젠가 다른 가게에서 ‘너무 얼굴이 삭아’ 미성년자인 줄 모르고 7명 단체 손님을 받았다가 그들이 되레 경찰에 신고한다고 협박하는 바람에 결국 돈을 다 물어줬다고 한다. “나중에 들으니, 걔들이 네이버에서 ‘미아리에서 놀고 돈 토해내게 하는 법’을 검색하고 왔다던가?”

    외국인도 곧잘 찾는다. 그들의 ‘전용 구역’은 주로 뒷골목에 위치한 업소들. 한국 손님들이 그들의 집창촌 출입을 못마땅해해서다. 돈 좀 가진 일본, 홍콩, 중국인 남성은 밤늦게까지 가이드를 끼고 다니는 반면, 동남아 등지의 외국인 근로자는 경기 성남시나 안산시에서 서너 명이 돈을 갹출해 택시를 타고 온다. 그들이 아가씨들과 있는 동안 운전기사는 기다렸다가 다시 태워 출발지로 돌아간다. 아가씨들은 그들을 대부분 피부가 까맣다고 ‘깔라’라고 부른다. 만취한 손님은 ‘꽐라.’

    “개 알레르기 있으니 돈 내놔”

    업주와 아가씨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은 ‘진상 손님’을 상대하는 것이다.

    “사정 못했다고 돈 물어내라는 건 약과예요. 길길이 뛰며 가게 영업장부 내놓으라면서 성매매 때문에 자기가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며 위자료 달라는 경우마저 있어요. 업소에 들어올 때 강아지 있는 걸 분명히 봐놓고도 ‘연애’하고 나선 개 알레르기가 있다며 치료비 달라질 않나, ‘긴 밤’ 끊어놓고 아가씨가 코를 골아 기분 나쁘다며 돈 물어내라고도 해요.

    치졸한 남자 많아요. 성매매 자체가 불법이니 다들 그걸 역이용하는 거죠. 아가씨 인권만 ‘개무시’당해요. 그래도 단속 맞아 1000만~1500만 원씩 벌금 무는 것보단 나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돈 내줄 때가 적지 않아요. 매상은 그만큼 줄어들고, 그날은 완전히 ‘황’ 되는 거지. 어제도 손님 두 명한테서 16만 원을 텔레뱅킹으로 송금 받고 일했는데, ‘연애방’에서 자기들이 시간 내에 못하자 휴대전화에 송금 사실이 증거로 남아 있으니 환불해달라고 진상을 쳤어요. 손님이 휴대전화만 집어 들면 업주나 아가씨, 마담(삐끼) 모두 긴장하게 돼요.”

    출퇴근하는 아가씨들은 ‘알바’를 뛴다. 목·금·토요일에 와서 일하곤 바로 돌아간다. 백화점 직원, 여대생 등 다양한 여성이 ‘투 잡(two job)’ 개념으로 일하는데, 이들이 ‘고정’ 아가씨들과 교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방울이’는 한 달에 엿새 쉰다. “그럴 땐 뭐하느냐”고 묻자 대답이 심드렁하다.

    “다들 찜질방 가든지, 생리 빼든지, 남자친구 만나든지 하죠. 저는 주로 자요.”

    ‘데자뷔’의 세상

    여성단체에서도 종종 집창촌을 찾는다.

    “한 달에 한두 번씩 와요. 얼마 전엔 가게마다 돌며 ‘여기 언니들, 몇 명이세요’라고 묻곤 머릿수만큼 부채를 나눠주고 ‘네, 그럼 수고하세요’ 하고 갔어요. 부채는 뭐 하러 줘요? 에어컨 켜는데. 가끔씩 괜찮은 선물 주면 실제 아가씨 수보다 많은 인원을 말하죠. 이모들도 줘야 하니까. 쇼핑백에 초콜릿이나 수면양말 등을 넣어오는데 딱히 필요한 것도 없어요. 차라리 일하는 데 필요한 연고 같은 걸 주던가.”

    ‘탕치기’(성매매 여성의 선불금 사기) 여성도 많다고 했다.

    “특별법 때문에 탕치기가 생긴 건데, 걔들 때문에 정작 여기 아가씨들이 급전이 필요할 때 업주한테 빌릴 수가 없어요. 선불금 당긴 뒤 잠적했다가 잡히면 자기가 먼저 ‘경찰서에 가자’고 하죠. 돈이 수중에 들어올 때까지는 별짓 다하다가도 돈이 들어온 순간 ‘오늘 몸이 좀 안 좋네’ 하며 개기다 경찰에 ‘나 감금돼 있다’고 신고해요. 선불금 자체가 불법이니까. 탕치기를 많이 당해 자살한 업주도 있어요.”

    일부 아가씨는 집창촌을 떠나 개인적으로 음성적 성매매를 하기도 한다.

    “친구 중에도 많아요. 강동구 길동 노래방으로 빠진 애들도 있는데, 거기선 ‘즉석 구이(노래방 업소 내에서의 즉석 성관계)’를 한대요. 집창촌 가게 하나 없어지면 외부엔 음성적 성매매 업소 두세 개가 생긴다고 보면 돼요.”

    “언제까지 (성매매) 할 생각이냐”고 물었다. 간단명료한 답변이 이어졌다.

    “여기가 없어질 때까지. 돈 쓸 데는 정해져 있는데 수입이 없어지면 어떻게 할 거예요? 같은 가게 식구랑 동업하든지, 독립적으로 뛰든지 해야죠.”

    ‘불법’ 이전에 ‘생계’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단어부터 들이대는 집창촌. ‘방울이’는 이날 밤에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영업에 나설 것이다.

    특별법이 ‘성매매=불법’이라는 등식을 대중에 주지시킨 건 분명 성과다. 하지만 정작 성매매를 제대로 근절했는지에 대해선 의문부호가 남는다. 그래서일까. 오늘도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는 성매매의 ‘몸짓’은 한껏 넘실댄다. 10년 만에 대한민국 성매매 실태를 다시 두루 살펴보면서 머릿속에 떠오른 세 음절은 이렇다. ‘데자뷔(deja v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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