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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 PD의 지구촌 현장

‘자국민 보호’ ‘대량학살 방지’는 명분 정부·반군·쿠르드 견제용 고차방정식

미국의 이라크 반군 공습

  • 김영미 | 분쟁지역 전문 PD

‘자국민 보호’ ‘대량학살 방지’는 명분 정부·반군·쿠르드 견제용 고차방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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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한 정부軍

미국이 공습을 단행한 아르빌은 쿠르드 자치정부의 수도다. 한때 한국의 자이툰 부대가 주둔하기도 했다. 미국 영사관과 미군 특수요원이 투입된 작전센터도 이곳에 있어 ‘자국민 보호’라는 미국의 명분과 딱 맞아떨어지는 지역이다. 이곳은 현재 모술과 이라크 북부 지역에서 온 피란민으로 북새통을 이룬다.

쿠르드족은 IS의 세력이 커가는 과정에서 반사이익을 얻었다. 이라크 정부와 IS가 벌이는 내전을 틈타 이라크 제2 유전도시 키르쿠크를 점령한 것이다. 쿠르드족은 1991년 걸프전 당시 사담 후세인의 공격으로 키르쿠크를 빼앗긴 바 있다. 당시 후세인은 화학무기까지 동원해 쿠르드족을 학살했다.

페슈메르가라는 방위군을 갖고 있지만, 쿠르드족의 자체 전투력은 IS를 막을 만한 수준은 되지 못한다. 그나마 모술 댐 사수 작전을 거치면서 전투력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모술 댐 인근에서 IS와 페슈메르가가 전투를 벌일 당시 페슈메르가의 최정예 부대인 ‘제르바니(빨간 모자를 쓴 최정예 부대)’조차 속수무책으로 IS에 밀렸다. 기독교 마을인 카라코쉬 등 쿠르드 지역, 신자르 등에서도 페슈메르가는 IS에 밀려 철수해야 했다. 미군의 공습이 아니었다면, 쿠르드족은 절대로 자치정부 수도 아르빌을 지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철군하기 전 미군은 천문학적인 예산을 들여 이라크군을 정비하고 훈련시켰다. 그러나 막상 내전이 시작되자 아무 소용이 없었다. 전투가 벌어지자 이라크 정부군은 제대로 된 전투 한번 하지 않고 뿔뿔이 흩어졌다. 정부군 병사를 체포해 집단 처형하는 IS의 잔인함에 화들짝 놀라 도망가기 바빴다.



IS에 대항하기 위해 서로 손을 잡았지만, 쿠르드 자치정부와 이라크 중앙정부는 사실 오랫동안 불편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IS의 세력이 커지기 전까지만 해도 석유수출 배당금 등을 두고 위험수위를 넘나드는 감정싸움을 벌였다. IS 세력이 커지면서 이라크 정부가 공황상태에 빠져들자 쿠르드 자치정부는 몰래 독자적인 석유 수출까지 진행해 중앙정부와 갈등을 빚었다. 게다가 쿠르드 자치정부는 중앙정부의 노른자위인 키르쿠크 일대를 장악하고 동서로도 관할 지역을 대폭 늘린 뒤 독립 추진 의사마저 밝힌 상황이었다.

적과의 동침

쿠르드의 행태에 격분한 알 말리키 총리는 쿠르드 자치정부가 이슬람 수니파 반군의 비호세력이라고 비난하며 쿠르드 자치정부에 즉각 키르쿠크에서 나가라고 요구하며 각료회의 불참을 선언하기도 했다. 쿠르드 자치정부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중앙정부 관할이던 키르쿠크와 바이 하산 등 북부의 주요 유전 2곳을 장악한 뒤 대놓고 석유 수출에 나선 것이다. 하루 22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하는 KRG는 5월 터키 남부 항구도시 제이한에서 보관 중이던 100만 배럴의 원유 수출을 강행했고, 반군 봉기 이후 석유 수출량을 더욱 늘리겠다고 선포했다.

7월 이라크 중앙정부는 허가 없이 이뤄진 쿠르드의 원유 수출에 대한 보복으로 쿠르드 자치정부에 할당된 연방정부 예산 17% 중 일부를 삭감하고 파리 국제상업회의소(ICC)에 법적 소송을 제기했다. 또 미국 텍사스 해안에 있는 유조선에 선적된 쿠르드산 원유에 대한 압류 명령을 텍사스 법원에 신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IS로 인해 시작된 내전은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자체 군대가 전투력을 발휘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이라크 중앙정부는 쿠르드족 병력에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됐다. 이라크 정부로서는 자존심은 상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라크 정부는 모술 댐을 사수하고 쿠르드족 병력을 지원하기 위해 이라크 공군기까지 띄웠다. 적대적 관계인 이라크 정부와 쿠르드 자치정부가 IS라는 ‘공공의 적’이 나타나자 손을 잡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이라크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의 복잡한 계산

6월 IS의 이라크 진입 초기 때 미국은 이라크 정부의 군사개입 요청을 거절한 바 있다. 정치적인 방법으로 해결하자는 게 당시 미국의 방침이었다. 완전 철군한 마당에 다시 이라크 전쟁이라는 늪에 발을 담그기도 꺼려졌을 것이다. 이라크 정부는 난처해했다. 미국의 군사개입 없이는 IS를 퇴치할 뾰족한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라크 정부는 미국과 서방 세계에 이라크에서 또다시 재앙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전달하며 미국과 서방의 군사 개입을 유도했다. IS가 화학무기를 사용해 이라크를 전멸시킬 수 있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이는 2003년 이라크 전쟁이 처음 시작될 당시 미국이 화학무기 같은 대량 살상 무기가 전 세계를 위협할 수도 있음을 전쟁 명분으로 내세웠던 것을 상기시켰다.

7월 30일, 무함마드 알리 알하킴 유엔 주재 이라크대사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게 편지를 보냈다. 같은 달 11일 IS가 화학무기 공장을 지키는 정부군을 구금하고 무기를 빼앗았다는 내용이었다. 이 공장의 창고에는 치명적 신경가스인 사린가스로 채워진 2500대의 로켓, 180t의 사이안화 나트륨, 화학전의 시초가 된 신경작용제 타분 가스 등이 보관돼 있었다.

그러나 존 커비 미국 국방부 대변인은 “이 시설에 보관된 장비는 매우 낡아 당장 이용할 수 없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화학무기를 IS에 빼앗긴들 별로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설명이었다. 이라크 정부로서는 기운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이라크 정부는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미군의 군사적 개입을 요청하며 IS가 자행하는 ‘집단 처형’ ‘여성할례 강요’ ‘기독교 주민 학살’ ‘유적지 파괴’ 등의 위험을 부각했다. 결국 미국은 거듭된 이라크의 요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대량 학살 방지’ 등을 이유로 공습에 나선 것이다.

미국은 이번 공습을 결정하면서 여러 가지 계산을 한 것으로 보인다. 아르빌에 있는 자국민 보호는 사실 명분에 불과했다. 아르빌 공항에는 아랍에미리트 항공 등 각종 국제 항공사가 취항한다. 미국이 마음만 먹으면 군 수송기를 동원하더라도 아르빌에 있는 자국민을 탈출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것보다는 단지 쿠르드 군대와 이라크 정부의 무능함으로 이라크가 테러리스트 그룹인 IS에 넘어가게 되면 4400여 명이 전사하며 고전했던 8년간의 이라크 전쟁이 헛일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컸던 것 같다. ‘제한적 공습’이라는 방패막이를 치고 직접 개입은 하지 않으면서 명분은 살리는 전쟁을 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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