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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개혁 ‘슈퍼 甲’ 대한민국 대학교수

폴리페서, 텔레페서, 커미션페서…

  • 김정인 | 춘천교육대학교 교수 redpeng66@daum.net

反개혁 ‘슈퍼 甲’ 대한민국 대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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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개혁 ‘슈퍼 甲’ 대한민국 대학교수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

박정희는 대통령이 된 뒤에도 교수를 적극 활용했다. 여기에 주로 해당되는 교수들은 ‘평가교수’로 불렸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성과를 점검하기 위해 1965년 구성한 평가교수단이 원조에 해당한다. 자문기구 성격인 평가교수단은 박정희 정부 내내 운영됐다. 일부 교수들은 이를 바탕으로 출세가도를 달렸다.

그러나 상당수 교수는 처지가 궁박했다. 권력은 교수에게 학생 지도에 더욱 철저히 임할 것을 요구했고, 학생은 교수를 권력 요구에 맹종하는 벙어리 교수라고 손가락질했다. ‘교수는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 신세라는 한탄이 절로 나오던 시절이었다.

긴 겨울 끝에 1980년 민주화의 봄이 찾아왔다. 학생들은 어김없이 어용교수 축출에 나섰다. 서울대생은 어용교수 명단을 내놓았고 전남대생은 어용교수백서를 발표하며 교수 사회를 압박했다.

이번엔 정부까지 거들었다. 최규하 대통령은 “학자의 양심을 버리고 행동한 교수가 있다면 자퇴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는 담화를 발표했다. 유신독재에 적극 동조한 교수는 스스로 진퇴를 결정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도 컸다. 교수 사회도 ‘대학의 자율이 정치적으로 침해받던 상황에서 직분을 지키지 못한 소극적인 자세를 반성한다’는 성명을 냈다.



하지만 어용교수를 축출하려는 노력은 전두환 정부에 의해 좌절됐다. 교수가 권력에 협조하는 행태는 계속됐다. 학생들은 이런 교수에게 적개심을 드러냈다. 국회의원이 되거나 장관으로 입각한 교수의 연구실을 폐쇄하는 퍼포먼스는 1980년대 내내 대학에서 반복됐다. 학생들의 강경한 세에 눌려 서울대에선 전두환 정부에 참여한 교수들 중 한 명도 대학으로 복귀하지 못했다.

원론적으로 보면, 대학에서 교수는 학생과 함께 대학을 이끌어가는 주체다. 하지만 민주화운동기마다 어용교수 청산이 동맹휴업을 불사할 만큼 뜨거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학생은 어용교수 퇴출에 나서지 않는 교수 사회를 지탄했다. 그들에게 교수란 어용교수와 저항교수, 이렇게 두 부류였다. 어용교수에는 독재 권력에 참여하거나 협력하는 교수뿐 아니라 침묵하며 순종하는 교수도 포함됐다. 그러니까 저항교수를 뺀 모든 교수가 어용교수였다.

이렇게 대학 개혁의 두 주체인 교수와 학생은 어용교수 문제를 둘러싸고 자주 갈라섰다. 학생은 대학 개혁의 주체로, 교수는 대학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현상이 반복됐다. 그 세월을 거쳐 교수 사회에는 어용교수란 낙인을 피하기 위해 학생의 눈치를 보거나 그들에게 영합하는 교수가 생겨났다. 자정(自淨)이 아닌 보신(保身)을 택한 것이다.

1987년 6월 민주화운동 이후 어용교수가 대학에서 퇴출되는 일이 일어났다. 광주 조선대에서 어용무능교수로 지목된 30여 명의 교수가 쫓겨난 것이다. 이런 변화에도 교수를 바르게 세우는 일은 요원해 보였다. ‘동아일보’ 1990년 7월 10일자에 따르면 교수에게 개혁을 기대하기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학원의 자치와 학문의 자유를 요구하던 양심적 학자, 부정 불의 불합리와의 타협을 거부하던 지조 있는 많은 교수들은 오랜 세월 박해와 탄압을 받고 정든 대학에서 추방되었다. 모난 돌은 정을 맞았다. 이렇게 해서 대학사회에는 침묵과 무사안일주의가 유행하니 이것은 교권의 포기요 무기력의 극치이다. 그래서 교수는 있되 스승은 없는 대학이 되고 교권은 실종 상태였다. 반면 군사 문화에 아첨 아부하는 어용교수가 날뛰어 존경을 받으려는 대학사회는 뜻있는 양식인의 빈축과 냉소의 대상이 되었다. 이것이 슬픈 우리 대학사회의 현주소이다.

1991년 어용교수 퇴출이 곧 대학 개혁이라고 여긴 학생운동의 역사를 응축해 보여준 충격적 사건이 일어났다. 정원식 국무총리 서리는 한국외대에서 교수로서의 마지막 강의를 하고 나오다가 학생들로부터 밀가루와 달걀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언론은 패륜적 집단행동이라고 학생들을 질타했다.

그런 가운데 ‘교수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이 던져졌다. 이런 가운데 김영삼 정부는 대학 개혁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로 인해 교수 사회는 그만 갈 길을 잃고 말았다.

마음이 콩밭에 가 있으니…

우리 사회에서 어용교수라는 용어는 점차 폴리페서라는 용어로 대체됐다. 정치권과 학교를 오가는 교수를 뜻하는 용어인 폴리페서(polifessor·정치를 뜻하는 politics와 교수를 뜻하는 professor의 합성어)는 1980년 3월 7일자 동아일보 기사에 등장한 뒤 2014년 현재까지 우리사회에 널리 통용된다. 한 교수는 지금도 대학가에선 폴리페서가 넘쳐난다고 말한다. 이 교수는 폴리페서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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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인 | 춘천교육대학교 교수 redpeng66@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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