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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행보’ 좋지만, 공적 활동 나서주길

김정숙 여사와 영부인 역할 설문조사

  • 강지남 기자|layra@donga.com

‘요리 행보’ 좋지만, 공적 활동 나서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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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85%가 “영부인은 公人”
    ● 대통령 의사결정 영향 미치고(67.6%), 권력형 비리에 연루될 수 있어(72.3%)
    ● “간장게장보다 수해복구 참여가 좋았다”
    ● 사회적 약자 보호(71.7%), 여성권익 향상(19.4%)에 대한 요구 높아
    ● “육영수, 이희호 여사처럼 소외된 부분 보듬는 역할 기대”
    ● ‘화목한 부부’ 프레임 유효기간 지나…‘미세스 쓴소리’ 역할 기대
“많은 분들이 저만 보는 것 같아 때론 힘들다.”(김정숙 여사) 

“마치 사람들이 현미경을 갖다대고 보듯이 나를 보는 것 같다.”(멜라니아 트럼프 여사) 

대통령 부인은 선출직도 임명직도 아니다. 그러나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갖는다. 영부인이 무엇을 하는지, 어떤 옷을 입는지 대중의 관심도 높다. 이러한 현실을 절감한 듯 11월 7일 서울에서 만난 한미 양국 영부인은 집중적으로 관심받는 고충을 토로했다. 한 종합편성채널 관계자는 “문재인 대통령보다 김정숙 여사가 등장하는 뉴스 꼭지 시청률이 더 높은 편”이라고 귀띔했다. 

그러나 막상 영부인에 대한 연구나 영부인의 바람직한 역할에 대한 논의는 우리 사회에서 드물다. 정치학계는 그 이유로 그간 배출된 영부인 숫자가 열 명 남짓에 불과하고, 그 신분이 뚜렷한 ‘공직’이 아닌 데다, 영부인의 자질을 내조에 충실한 전통적 여성상과 동일시해온 사회 분위기 등을 꼽는다. 한국여성정치연구소가 영부인과 관련해 수행한 연구는 20년 전인 1997년 발표한 두 건의 논문(‘한국영부인론’ ‘정치인 아내의 바람직한 역할 및 위상’)이 전부다. 

‘신동아’는 국민이 영부인의 존재를 어떻게 인식하고, 영부인에게 어떤 역할을 바라는지, 현재 영부인인 김정숙 여사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는지 등을 살펴보기 위해 한국여성정치연구소 및 온·오프라인 리서치기업 ‘엠브레인’과 공동으로 설문조사를 벌였다. 이 조사는 서울 경기 및 5대 광역시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11월 8일부터 엿새간 온라인을 통해 진행됐다. 




여성의 기대가 더 커

조사 결과 우리 국민은 영부인을 공인(公人)으로 인식하며 공적 활동을 벌이기를 바라는 경향이 뚜렷했다. 대통령 내조에만 국한하지 말라는 주문은 남성보다 여성이 더 많았다. 김정숙 여사에 대한 호감도는 전반적으로 높은 편이나, 보다 활발한 공적 활동을 주문하는 목소리 또한 분명했다.

우선 영부인을 공인으로 생각하는 비율이 84.6%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10명 중 7명 가까이가 ‘영부인은 대통령의 의사 결정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해, 영부인의 정치사회적 영향력을 높게 평가했다. 영부인에 대한 호감(혹은 비호감)은 대통령에 대한 호감(혹은 비호감)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며(72.6%), 영부인이 권력형 비리에 연루될 가능성이 있다고도 여겼다(72.3%). ‘영부인 파워’가 좋고 나쁜 쪽으로 모두 존재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다수의 국민은 ‘공인’ 영부인이 공적 활동에 매진해야 하며(59.6%), 정부가 영부인의 공적 활동을 제도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맞다고 여겼다(52%).

한국 영부인의 역사는 그리 밝지 않다. 여러 명의 영부인이 비리에 연루됐고, 박근혜 정부에선 ‘주인 없는’ 청와대 제2부속실이 최순실 국정농단의 산실이란 오명을 썼다(제2부속실은 영부인을 청와대 내에서 전담하는 부처). 이러한 어두운 과거에도 불구하고 영부인에 대한 공적 기대가 큰 이유는 뭘까.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 원장은 “미셸 오바마의 높은 인기에서 확인할 수 있듯, 영부인 역할이 내조에서 외조, 더 나아가 동반자 관계로 넓어지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이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러한 흐름에서 우리 국민도 영부인이 양지(陽地)에서 활발하게 공적 활동을 벌여 사회에 기여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최 원장은 또한 “최순실 게이트의 역설로 영부인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고 분석했다. 최순실 게이트가 영부인 역할 축소론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영부인 역할이 중요하며, 공개된 영역에서 제대로 활동할 필요가 있다는 국민적 인식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한편 바람직한 영부인 역할의 ‘유형’은 남녀별, 세대별로 다소 차이가 나타났다. ‘아내로서 내조에 주력하며 최소한의 공식적 업무만 수행’하는 소극적 유형에 대한 지지는 남성(43.6%)이 여성(32.9%)보다, 50대(45.4%)가 20,30대(32.1%, 35.1%)보다 높았다. ‘내조와 더불어 공인으로서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적극적 유형에 대해서는 여성(47.5%)이 남성(35%)보다 더 많은 지지를 보냈다. 자신의 전문적 능력과 경험을 살려 정치 및 국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힐러리 클린턴’ 유형에 대해서는 남녀 구분 없이 지지도가 극히 낮았다(1.4%).

영부인이 자신의 주도하에 진행하는 사업을 펫 프로젝트(Pet Project)라고 한다(pet은 ‘특별히 관심을 갖는다’는 뜻의 형용사). 육영수 여사는 양지회(陽地會), 박근혜 영애는 구국여성봉사단, 이순자 여사는 새세대육영회 및 새세대심장재단을 설립해 운영했다. 김윤옥 여사는 한식세계화추진단 명예회장, 한식재단 명예고문 등을 맡으며 ‘한식 세계화’ 사업에 나섰다. 

이러한 펫 프로젝트는 항상 결과가 좋지 않았다. 재단 내 비리 등 잡음이 여지없이 불거졌다. 한 여권 인사는 “역대 영부인 사업의 전적이 좋지 않은 것을 반면교사 삼아 지금 청와대는 영부인이 나서는 사업을 고려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러나 국민은 영부인이 자기 브랜드로 삼을 만한 활동을 벌이는 것에 그다지 거부감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부인이 몇 가지 어젠다를 선정해 관련 활동을 벌이는 것에 대한 반대는 15.1%에 불과했고, 찬성이 41.7%, 보통이 43.2%로 집계됐다. 영부인이 주력하기를 바라는 어젠다로는 ‘사회적 약자 보호’가 71.7%로 가장 많이 꼽혔고, ‘여성 권익 향상’(19.4%)이 그 뒤를 이었다. 여성(28.1%)이 남성(9.3%)보다 더 많이 여성 권익 향상에 영부인이 나서줄 것을 희망해 남녀간 의견 차이가 두드러졌다. 

한편 국민이 꼽은 영부인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은 국민과의 소통 능력(40.2%), 사회봉사 정신(33.8%), 내조에 충실(21.7%) 순이다. 

김정숙 여사에 대한 호감도(61.8%)는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호감도(67.2%)에 뒤지지 않았다. 2012년 대선 때 김정숙 여사와 함께 캠페인을 벌인 한 인사는 “밥 먹다가 기분 좋으면 ‘제가 노래 한 곡 할까요?’ 할 정도로 소탈하면서 유쾌한 사람”이라고 김 여사를 기억했다. ‘유쾌한 정숙씨’라는 김 여사의 별명에 대해 62.2%가 ‘어울린다’고 인식했다. 


청와대 관저 처마에 감을 매달아 말리고 있는 김정숙 여사. 11월 4일 청와대가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했다. [뉴스1]

청와대 관저 처마에 감을 매달아 말리고 있는 김정숙 여사. 11월 4일 청와대가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했다. [뉴스1]

“수해복구 참여가 가장 좋았다”

취임 6개월이 갓 지난 현 시점에서 김정숙 여사의 대표 브랜드는 요리다. 청와대가 공개하는 김 여사 관련 뉴스는 유독 요리를 소재로 한 게 많다. 5월에는 여야 5당 원내대표 첫 오찬 때 ‘10시간 정도 대춧물로 달인 삼(蔘)을 과자 형태로 직접 만든 인삼정과’를, 6월에는 청와대 출입기자단에게 ‘김 여사만의 비법으로 탄산수와 사이다, 오미자 진액을 배합한 수박화채’를 대접했다. 9월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 뉴욕을 방문할 때는 직접 담근 간장게장 400인분을 대통령 전용기에 싣고 가 동포 어르신들에게 대접했다. 11월 5일 청와대는 페이스북에 김정숙 여사가 청와대 관저 처마에 직접 깎은 감을 매달아 말리는 사진을 공개했는데, 이틀 후 이렇게 말린 감에 초콜릿을 입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국빈 방문한 멜라니아 여사에게 대접했다는 소식이 연이어 전해졌다. 

이러한 잇따른 요리 행보에 대해 좋게 평가하는 국민이 상당수지만(59.8%), 이것이 국민이 가장 바라는 김정숙 여사의 역할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국민은 김정숙 여사와 관련된 뉴스 중 가장 좋았던 뉴스로 7월 충북 청주 수해 현장에서 고무장갑을 끼고 복구 작업에 직접 힘을 보탠 것(40.5%)과 장애인특수학교 설립을 호소하며 무릎 꿇은 엄마들을 청와대에서 만난 일(21.4%)을 꼽았다. 간장게장 뉴스와 곶감 뉴스가 좋았다는 응답은 각각 8.4%, 5.7%로 낮은 수준에 그쳤다. 

국민은 현 시점에서 김정숙 여사의 대외 활동에 대해 ‘충분히 잘하고 있다’(55.2%)는 후한 평가를 주는 한편, 자신만의 관심 사안을 정해 지속적으로 활동하고(18.9%), 보다 다양하게 공적 활동을 펼칠 것(13.1%)을 주문했다. 외부 활동을 자제하고 남편 내조에 충실하라거나(9.7%) 더 자주 요리 행보를 보여달라(1.3%)는 바람은 적었다. 

國政 빈자리 메우는 역할 기대

9월 20일 뉴욕 플러싱에 위치한 뉴욕한인봉사센터 한인경로회관 봉사 관계자들과 인사 나누는 김정숙 여사. 그는 이곳에서 직접 담근 간장게장을 재미동포 어르신들에게 대접했다. [뉴시스]

9월 20일 뉴욕 플러싱에 위치한 뉴욕한인봉사센터 한인경로회관 봉사 관계자들과 인사 나누는 김정숙 여사. 그는 이곳에서 직접 담근 간장게장을 재미동포 어르신들에게 대접했다. [뉴시스]

이러한 설문조사 결과에 대해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 원장은 “박근혜 정부 때와 달리 호감을 주는 새로운 영부인의 존재를 국민이 반기고 있는 것”이라며 “국민의 바람은 김정숙 여사가 육영수, 이희호 여사처럼 우리 사회의 소외된 부분을 보듬어나가는 역할까지 맡아주는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소장은 “다수의 국민이 영부인에 대한 호감/비호감이 대통령에 대한 호감/비호감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는 한, 영부인은 더 이상 사인(私人)이 아니”라며 “여성 국민이 영부인에 대해 기대가 더 높은 점에 주목해 영부인이 여성의 권익 향상과 남녀의 동등한 권리 실현을 위해 앞장서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한 김 소장은 “영부인이 주력할 어젠다를 고를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점은 영부인 개인의 퍼스낼리티”라며 “개인의 관심사와 성격, 사회적 요구가 잘 조화된 어젠다를 선정해 임기 5년 내내 지속적인 활동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청와대가 영부인이 요리하는 모습을 반복해 드러냄으로써 전통적 여성성을 선호하는 보수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라며 “영부인은 대통령이 미처 챙기지 못하는 현장을 다니며 보다 적극적으로 국정의 빈틈을 채우는 노력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김민정 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 교수는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하는 영부인’ 등 화목한 부부를 연출하는 것은 집권 초기에 유의미한 프레임”이라며 “지금부터는 영부인이 사회의 이곳저곳을 다니며 때로는 쓴소리더라도 거기서 보고 들은 바를 대통령에게 가감 없이 전달해 ‘사람의 장벽’에 둘러싸이기 쉬운 대통령중심제를 보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간장게장은 ‘해외교포 위한 위로’ (62%),  “영부인, 사인으로 지내도 된다” (40%)
11월 7일 서울에서 만난 멜라니아(오른쪽) 여사와 김정숙 여사.

11월 7일 서울에서 만난 멜라니아(오른쪽) 여사와 김정숙 여사.

간장게장 400인분 뉴스에 대한 댓글들을 보면 ‘보기 좋다’는 의견 외에도 영부인이 전통적인 여성상을 드러내는 것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는 시각도 있었다. 김민정 서울시립대 교수는 “영부인이 여성을 대표하진 않지만 사회적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그의 행동이 한국인 여성상의 표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여성들의 거부감이 큰 것”이라고 보았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간장게장’은 비교적 후한 점수를 받았다. ‘해외교포들의 노고에 대한 따뜻한 위로’라는 응답이 가장 높았고(62%), ‘어르신을 잘 모시는 전통적 여성성의 표현’(23.9%)이 그 뒤를 이었다. ‘가부장 사회 속 여성의 역할에 의존한 시대착오적 이미지 전략’(5.7%), ‘요리 이외의 콘텐츠가 빈약’(4.2%)이라는 의견은 소수에 그쳤다. 

청와대는 김정숙 여사가 옷을 홈쇼핑, 기성복, 맞춤복 등 다양하게 구매하고 직접 수선한다며 일부 ‘과소비’ 지적에 공개적으로 대응한 바 있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국민은 영부인 역할을 수행하는 데 패션은 주요한 자산이자 도구라고 생각하는 비율이 52.2%로 절반을 약간 넘겼으나, 영부인의 소비에 대해서는 최고위 공인으로서 검소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많았다(60.2%). 다만 20대와 30대는 상대적으로 ‘소비는 개인적 사항으로 국민이 의견을 밝힐 대상이 아니다’라는 의견에 높게 동의했다(각각 58.4%, 43.8%). 

세계적으로 보면 대통령 부인이라고 모두 공인으로 사는 것은 아니다. 마잉주 전 대만 총통 부인 저우메이칭 여사는 남편의 총통 취임 후에도 자신의 직장에 계속 출근했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부인 브루니 여사는 영부인 신분으로 우디 앨런의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다. 이번 조사에서 우리 국민은 절반에 좀 못 미치는 44.3%가 영부인이 “사인(私人)으로 지내길 원한다면 그래도 좋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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