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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號 70돌 | 김호기 교수가 만난 우리 시대 지식인

‘국민’ ‘민족’ 벗어나 ‘세계시민’으로 진화해야

사회학자 송호근

  • 김호기 |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kimhoki@yonsei.ac.kr

‘국민’ ‘민족’ 벗어나 ‘세계시민’으로 진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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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호근 교수는 탁월한 연구와 날카로운 칼럼으로 널리 알려진 우리 시대의 대표적 사회학자다. 사회학자의 시선에 잡힌 광복 70년의 빛과 그늘은 무엇이고, 70년을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은 무엇인가.
  • 송 교수는 현재 우리 사회에 부여된 과제를 공적인 것의 새로운 정립에서 찾는다. 이를 위해 ‘국가’에서 ‘시민’으로, ‘민족’에서 ‘세계시민’으로 가는 혁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산업화 시대에 젊은 시절을, 민주화 시대에 중장년 시절을 보낸 송 교수에게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물었다.
‘국민’ ‘민족’ 벗어나 ‘세계시민’으로 진화해야
김호기 1956년생이시죠? 6·25전쟁이 끝난 지 3년 뒤에 태어났으니 60년 가까이 살아온 셈인데, 광복 70년을 돌아보는 소회가 어떤가요.

송호근 나이가 드니 생각이 다소 바뀌더라고요. 50대 초·중반까지는 앞으로 어떻게 나갈 것인가, 이런 생각만 계속하다가, 아 이게 아니구나, 지난 70년의 역사를 나는 한 몸에 지니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식민지가 남겨놓은 많은 숙제를 광복 이후 우리가 해결해야 할 숙명이 있었구나, 하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내가 태어난 해로부터 60년을 앞당기면 갑오경장(1894)이에요. 그런데 갑오경장은 실패했잖아요. 그때는 대한민국이 ‘제1 변혁’을 할 때였는데, 내가 태어났을 때가 그 시절이 끝나고 새롭게 도약할 때였던 거예요. 그래서 5·16이 일어났을 거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게 60년이 지난 거지요. 5·16을 ‘제2 변혁’이라 한다면, 이제 ‘제3 변혁’을 시작해야 할 때다, 120년이 지났으니까. 그럼 제3변혁이 과연 뭐냐, 이런 생각에 몰두하게 됐어요.

비어 있는 시민사회

김호기 광복 70년은 ‘근대화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항(1876) 이후 자발적 근대화가 좌절되고 나서 광복은 새로운 국가와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근대화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이 근대화의 두 프로젝트가 경제적 산업화와 정치적 민주화였습니다. 현재의 시간은 이 근대화 시대가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는 전환의 시대인 것으로 보입니다. 광복 70년의 현재적 의미를 어떻게 보는지요.



송호근 역사를 돌아보면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한국 민족에겐 일종의 결벽증 같은 게 있어요. 뭔가 하나를 완벽하게 한 후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싶어 하는 그런 사상적 유전자 말이에요. 완벽을 기하려는 욕망 속에는 정통에 대한 치열한 집념 같은 게 함께 있기도 하고요.

이제 제3 변혁의 단계에 접어들었다면, 중요한 것은 120년 동안 우리가 어떤 목표를 갖고 지금까지 걸어왔는지에 대한 검토입니다. 나는 세월호 사태가 그 계기가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세월호 사태는 우리가 그동안 소홀히 해온, 비어 있는 공간을 보여준 거 아닌가요? 한마디로 요약하면, 한국에서 공(公) 개념이 비어 있다는 것을 보여줬어요. 시민성의 부재와 비어 있는 시민사회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해결해야 해요. 그래야 경제도, 다른 것들도 그 위에 설 수 있다고 봐요.

김호기 시민사회를 이루는 ‘시민’이란 말에는 두 전통이 있습니다. 하나가 ‘시투아앵(citoyen)’이라는, 공적 가치를 추구하는 공민(公民)의 의미라면 다른 하나가 ‘뷔르거(B·#50918;ger)’라는,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시민(市民)의 의미입니다. 우리 사회에선 공공 이익을 우선시하는 공민의 전통이 취약한 것 같습니다. 지난해 우리 사회를 뒤흔든 세월호 참사와 땅콩회항 사건은 공적인 것의 부재를 생생히 입증했습니다. 사적 이익에 과도하게 기울어진 사회가 바로 우리의 자화상 아닐는지요.

송호근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 얘기를 하면서 창의성이 중요하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 창의성이 어떻게 길러지느냐에 대해서는 얘기가 없어요. 제가 보기에 창의성은 자발성이에요. 자발적으로 뭔가 하고자 하는 의욕이 있을 때 창의성이 나타나는 거지요. 그게 때로는 굉장히 모순적인 아이디어일 수도,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자발성이 있는 경우엔 귀담아들을 만한 게 있어요. 이 자발성이 시민성의 핵심이에요.

문제는 이런 자발성을 배양할 수 있는 토양이 우리에겐 부족하다는 데 있어요. 지난 70년은 수동적인 동원의 시대였어요. ‘국민교육헌장’이 그런 거 아닙니까. ‘우리는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민족중흥에 이바지한다.’ 여기에 나란 존재는 어디 있나요. 첫 구절이 너는 참 귀한 존재다, 너는 하늘로부터 권리를 받고 태어났다, 네 몸을 귀중하게 생각해라, 이게 아니잖아요.

김호기 세월호 참사 이후 여기저기로부터 요청을 받아서 강연을 더러 다녔습니다. 제가 강의한 내용은 국가와 개인의 이중 혁신이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이제까지 국가가 주도하는 혁신이 중요했다면, 앞으로는 개인에서 국가로 가는, 아래부터의 혁신도 중요하다는 메시지였습니다. 알렉시스 드 토크빌에 따르면, 민주주의란 마음의 습관입니다. 이 마음의 습관에서 중요한 것은 시민적 덕성을 키우는 개인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개인의 정치, 정체성의 정치가 대단히 중요한 시점이고, 이것을 일궈내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가 진정한 선진국이 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경제성장 등 양적인 지표로만 선진국이 되는 것은 아니겠지요. 국가가 변화를 주도하던 시대에서 국가와 개인의 이중 혁신이 이뤄져야 하는 시대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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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kimhoki@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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